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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52화 (52/250)

52화. 엄마와 아들 그리고 딸

설희네 집은 2층 단독주택으로, 널찍한 마당이 있고 대지는 80평 정도다.

마당에는 눈을 가리는 복슬복슬한 털이 특징인, 삽살개 두 마리가 있었다.

삽살개도 여러 가지 털 빛깔이 있다.

이 삽살개는 둘 다 등 쪽은 회색이고, 배 얼굴 다리 꼬리 쪽은 갈색이었다.

그리고 귀 쪽은 짙은 회색이다.

쫓는다는 ‘삽’과 귀신이나 액운을 뜻하는 ‘살’ 합쳐진 순우리말 이름의 삽사리다.

예로부터 귀신 쫓는 개로 불려, 한국의 3대 토종견 중의 하나다.

온순해 보이지만 충성심이 강하고, 낯선 이가 영역에 오면 가족 보호를 위해 큰 소리로 짖는다.

진돗개와 달리 방어적인 싸움을 하며, 후퇴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띠 리릭!

잠금장치가 풀어지며 문이 살짝 열린다.

안으로 밀고 들어가니, 설희가 마중하러 나오고 있었다.

“용케 잘 찾아왔네? 오느라고 고생했어! 아카도 안녕?”

“조금 헤매긴 했지만, 와보니 정원이 좋네?”

“옐로우 키티, 안녕?”

-빠직!

설희의 이마가 찡그려지며, 신고 있던 슬리퍼를 손에 든다.

“야, 나한텐 던지지 말아, 아카! 너 또 그럴래? 손님으로 왔으면 공손해야지.”

“아임 미쓰떼이꾸, 아임 써릐.”

-크르릉! 크르릉!

갑자기 삽살개 두 마리가 경계 태세로 돌입한다. 태월을 향하긴 하는데, 시선을 보니 부정확하다.

“오, 귀신을 쫓는 개라더니, 보진 못해도 느낌으로 아는 거였구나. 아카? 너 때문에 초대 분위기 엉망이 되면 알아서 해. 오늘 집에 가서 잘 때, 네 이마에 부적을 붙여 버릴 거야.”

“아, 안 그럴게. 미안.”

전에 말썽을 피운 적이 있어 혼내 주려 했다. 영혼 에너지를 쓰려다, 생각나는 것이 있어 부적을 붙여본 적이 있었다.

아카가 악령이 아닌 영령이라서 피해를 주진 못했는데, 움직이지 못하니 갑갑해서 고생한 기억이 있었다.

“설군아! 설양아! 손님이야. 자리로 돌아가!”

설희의 말을 바로 알아듣는지, 원래의 자리로 슬금슬금 움직인다.

“흐, 이름만 들어도 성별이 구분되네?

설 씨 남매냐?”

“호호, 내가 쟤들 누나고 언니야.

그런데 쟤들 남매는 아니야. 부부거든?”

“그런데 비슷하게 생겼는데?”

“비슷한 애를 찾느라 고생을 좀 했어.”

뒤에 감춰둔 꽃다발을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작은 거고 하나는 풍성한 다발이다.

작은 걸 하나 내민다.

“요건 설희 거!”

배시시 웃으며 작은 꽃다발을 받아드는 설희다. 그리곤 큰 다발에 눈길을 준다.

“어, 엄마가 꽃을 좋아하는진 어찌 알았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거 같은데?”

“흐흐, 안 가르쳐주지. 안에 계셔?”

“응, 상 차리느라 바쁘셔. 어서 들어가자.”

엄마인 조민희 덕분에 1차는 무사히 통과했다.

-딸랑!

“엄마! 내 친구 왔어!”

주방에서 두 사람이 나오는데, 그중 한 사람은 한눈에 봐도 설희를 닮은 것이 엄마 같았다.

그런데 영혼의 전율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마음이 아려왔다.

‘뭐지? 설희를 처음 봤을 때랑 비슷한데?’

“아, 안, 안녕하세요. 박태월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녀에게서 대답이 없다.

설희도 엄마도 왜 갑자기 굳어진 것인지, 의아해져서 어리둥절 해있다.

‘아, 이게 무슨 일이지? 왜 가슴이 간질거리며 아프지? 더구나 영혼이 흐느껴?’

“어, 엄마 뭐 해? 내 친구 왔다니까!”

“아, 미, 미안. 어서 와요. 오느라 힘들었지요?”

“저기, 말씀 놓으세요. 친구 어머니신데….”

“그, 그럴까? 안쪽으로 들어와 앉으렴.

설희야 엄마 안방 좀 있다 올게. 잠깐이면 돼.

기름 냄새를 오랜만에 맡아서인지 좀 어지럽네. 아줌마는 여기 학생 좀 잠시 챙겨주세요.”

“엄마, 알았어. 준비하느라 피곤해진 거 아냐? 빨리 와야 해.”

“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학생 이리로 앉아.”

“네, 그럴게요.”

태월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살며시 구석에 내려놓았다.

‘아, 왜 이리 진정이 안 되지?’

두 사람이 이러는 이유는 핏줄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월령주의 영향이다. 생모 홍미연이 익힌 영매술과 진언에 의해 전해진 태월의 영매술. 그리고 그 진수가 담긴 월령주.

이 세 가지가 호응을 해서, 영혼의 공명이 일어난 것이다.

“잉, 나도 기분이 이상해져 오네.”

둘 사이에 일어난 공명이 설희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3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안방 문이 열리고,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을 한 홍미연이 나왔다.

“태월이라 했지? 아줌마가 몸이 잠시 피곤해서 실례했네. 맛있게들 먹자. 아줌마는 이제 가서 쉬어요. 오늘 고생했고요.”

“네, 사모님.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파출부 아줌마가 나가자,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 태월이 일어났다.

“네, 아. 잠시요.”

태월은 구석에 두었던 꽃다발을 가져와 내밀었다.

“호호, 뭐 이런 걸…. 꽃을 받아보기는 오랜만이네. 이런 센스는 어디서 배웠을까?”

“엄마가 가르쳐줬어요. 마음에 드신다니 기뻐요.”

“엄마? 나도 하나 받았어.”

자신이 받은 꽃다발도 보여주는 설희다.

어색함이 조금 있긴 했어도, 인사동 한정식집의 음식보다도 더 맛있었다.

“응? 그런데 아카는 어디 갔어?”

“어? 그, 그러고 보니 어디 간 거지? 같이 안 들어왔었나?”

“아직도 밖에 있는 거 아냐?”

태월이 현관 쪽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았다.

삽살개 등에 아카가 올라서서, 말타기 놀이를 하는 게 보였다.

‘아카가 무슨 수로 삽살개들을 꼬셨을까?’

태월은 아카를 손짓으로 불러들였다.

“딸? 누가 같이 왔었니? 왜 안 데리고 오고, 밖에 혼자 둔 거야?”

홍미연이 딸에게 질문하는 그사이에, 이미 아카는 집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묘한 느낌이 든 홍미연은, 현관 쪽을 바라보다 벌떡 일어섰다.

“영, 영령?”

“어? 엄마도 영령을 아시네요? 난 태월이에게 들어서 알게 된 건데. 그리고 이제 말하는 거지만, 태월인 우리처럼 귀신을 볼 줄 알아.”

“귀신을 볼 줄 안다고? 아니, 아니지. 영령이 보인다고?”

“아, 같은 거 아냐?”

“귀신은 볼 줄 아는 사람이 아예 없진 않아. 그러나 영, 영안은 그런 것과 차원이 달라.”

영체를 볼 수 있는 영안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홍미영의 영매술 계보만 그게 가능했었다.

그래서 일본의 닌자와 무녀들이 그녀를 노린 것이었고.

“혹, 혹시? 생일이?”

분위기가 이상했지만, 묻기에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설희와 사주가 같아요.”

손에 힘이 빠지면서 들고 있던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땡그랑!

설희는 엄마가 숟가락을 떨어뜨리자, 영문을 몰라 또 멍해졌다.

“호, 혹시, 집안사람 중에 경주시 안강 쪽에 사는 분이 있니?”

“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세요.”

-털썩!

서 있을 힘마저 빠져 의자에 주저앉는 홍미연이다.

홍미연은 삼기산에서 아들을 떠나보내고, 몸을 피했었다. 추적자들이 한 달 후 떠나고, 몸마저 추스르자 지인을 통해 조사했었다.

안강읍에 사는 사람 중에 갓난아기를 낳았거나 기르게 된 사람이 있는지를.

찾아내면 그 사람들에게, 그에 합당한 재물이라도 내어 보상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 년간 조사했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야간 통행금지 시절이라, 가까운 데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 산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역을 넓혀 경주까지도 알아보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반쯤 포기한 상황이었다.

‘아,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는데…. 처지가 그렇다고 해도, 딸만 살리려 한 것을 어찌 이해하겠어. 거기다 딸까지 저 애에게 이성적 감정을 가졌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렇다 해도 아들과 딸이 그래서는 안 돼.

외국이라도 떠나야 하려나….’

밝힐 수도 밝히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된 홍미연이다.

“엄마? 아직도 아파?”

“으, 으응….”

“저, 저기. 약 사올게요.”

“아, 아니야 그냥 쉬면 괜찮아져. 오늘 기름 냄새 때문에 그런 거야.”

태월의 마음 씀씀이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홍미연이다.

‘아, 아들, 이렇게 훌륭하게 컸구나. 엄마가 정말 미안해.’

“어, 엄마? 많이 아픈 거 아냐? 눈물이 나오잖아? 진짜 괜찮은 거야?”

“아유, 우리 딸! 엄마는 괜찮아요.”

“응, 다행이네. 그런데 친구에게는 왜 이상한 질문을 했어?”

딸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드는 홍미연이다.

감정을 주체못해, 생각이 너무 모자랐었다.

“아, 안강에 아는 분이 있어서, 혹시 그분 가족인가 해서 물었던 거야. 엄마가 주책이지?”

딸과 말을 나눈 후, 이제 태월의 문제를 해결하려 고개를 돌리는 홍미연이다.

“태월아? 아마 친척일 수도 있어.

내가 직접 만나 물어볼 테니, 부모님에게는 오늘 일을 비밀로 해줄 수 있겠니?”

“네, 그럴게요.”

“부모님은 너에게 잘해주시니?”

“그럼요. 엄마 아빠에게는 제가 전부인걸요.

그만큼 저를 많이 사랑해주세요.”

태월의 마음을 알게 되자, 가슴이 쿵 내려앉는 홍미연이다.

이렇게 사랑받고 있으니, 감사해야 할 일인데도 말이다.

“호호, 좋은 부모님은 두셨구나. 우리 딸 친구인데 아줌마가 한번 안아봐도 될까? 대견해서 그래.”

“그, 그러세요.”

약 10년 만에 안아보는 어린 아들이다.

껴안은 상태서 눈물이 자꾸 흘러내려, 아들의 목을 감싼 옷소매를 끌어당겨 닦는다.

“으잉? 내가 태월이랑 친척이 되면 어떡해?”

그 둘의 상황을 지켜보다, 화들짝 놀란 설희가 끼어든 것이다.

“딸? 확인도 안 된 일인데, 뭘 벌써 그리 신경을 쓰니?”

“응? 친척이 되면 더 좋은 거 아냐?”

태월의 말에 설희가 성질을 부렸다.

“야! 이 바보 멍청이 멍게 똥꼬 말미잘!”

해산물 세트 비슷한 게 지나갔다.

태월의 말에 홍미연이 그나마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아, 아들은 설희에게 이성적 감정은 아직 없구나. 그나마 다행인 건가….’

“흥! 그래도 내가 배운 게 있지. 부계 팔촌, 모계 사촌! 그것만 아니면 되는 거잖아?”

홍미연은 설희의 말이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다 생각나는 게 하나 있어 화들짝 놀란다.

동성동본에 대한 혼인 제한 규정을 설희가 말한 것이다.

‘헛, 우리 딸 너무 과하게 조숙한 거 아냐?

겨우 10살짜리가 저런 생각까지 한다고?

월령주의 부작용이란 소리구나. 여고생도 아닌데…. 더구나 아들이 지금은 아니래도, 정들다 보면 바뀔 수도 있어.

이대로 두는 것도, 나중엔 문제가 될 거야.

외국 이민 가는 걸로 헤어지게 해도, 내 딸의 성격상 멈추지 않을 거고.

아니지 오히려 불을 더 키우게 될 거야.

아무래도 저쪽 부모를 직접 만나봐야겠어.

그 두 사람 얼굴은 많이 안 변했겠지?’

비록 어둠 속이었지만, 환한 달빛 아래인지라 그 정도는 호족에겐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 두 남녀를 기억하고 있다.

어쨌든 그 둘은 홍미연에게 있어, 아들을 살려준 은인이었다.

그 마음만큼은 잊지 않는 그녀다.

태월은 돌아갔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따르릉! 따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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