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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51화 (51/250)

51화. 설희네 집으로 가는 길

조민희는 괜히 기분도 이상하고 묘했다.

“사주가 같다는 말이에요.”

“가족들은 있고?”

“네? 아니 가족이 없을 리가 있어요? 엄마하고 사는 외동딸이긴 하지만, 이모들도 셋이나 되고 사촌들도 있다는데요?”

태월의 말에 왠지 안심되는 조민희다.

‘가족이 많다면, 관계는 없겠구나. 더구나 쌍둥이라면, 홀로 남겨졌을 리도 없고.’

“식탁에 밥 차려 놨어. 밥은 제때 먹어야지, 안 그러면 키가 안 커!”

“흐흐, 저 또래 중에선 큰 편이거든요? 하여간 잘 먹을게요. 그런데 아빠는 아직 안 오셨어요? 같이 먹어도 되는데.”

“아빠는 오늘 지인들과 한잔하고 오나 보더라.

나도 저녁 먹고 들어온 거지만.

그리고 그 동굴 말이야. 바닥을 새로 다듬는 중이야. 전등도 달아 놓을 거고. 그걸 연계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준비 중인데.”

“오호 볼 만하겠는데요? 기회 되면 꼭 가봐야겠네요.”

“언제 시간 되면 한번 가봐.”

“그런데 금괴는 처분하셨어요?”

“양이 워낙 많아서 한 번엔 어렵잖니. 종로 쪽 귀금속 상가 연합과 관련해서 팔았고, 산업용으로도 팔고. 팔리는 대로 부동산 쪽 매입은 계속하고 있어.”

“부자들은 금괴로 보관하기도 한다면서요? 그럼 부동산 사고팔 때 그걸로도 거래되지 않을까요? 더구나 골동품 같은 금괴니까, 더 가치 있게 볼 거 같은데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 금괴를 감정받아서, 보증서와 함께 쓰면 되겠어.”

태월의 아이디어로 인해, 금괴는 빠르게 소모되었다. 꽤 많은 부자의 금고 속으로, 이 금괴들이 쌓이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TW 투자&개발의 강남 부동산 매입은 속도를 더 높일 수 있었다.

빈 택지들은 토지개발공사를 통해서도 대량 매입하였고, 그곳에 TW 건설이라는 회사가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급매로 나오는 웬만한 강남땅 건물은 대부분 매입했고, 그로 인해 매월 임대료 수익만 해도 엄청났으니.

며칠이 지났다.

“아카는 오늘 공부 안 하나?”

“응, 안 해.”

예상 밖의 아카의 대답에, 태월은 눈을 껌뻑였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고.

“내일이 주말이지? 나도 태월 따라다닐 거야. 이제 심심해졌어. 이 컴퓨터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얻었는데?”

“오? 대단한데? 그래, 그럼. 난 내일 설희한테 기타를 가져다주기로 했어. 넌 더 있다가 잘 거야? 난 이만 자야겠다.”

“아니, 나도 지금 잘래.”

언제부턴가 아카는 태월이 자면 꼭 같이 옆에 붙어 잤다. 사람처럼 피곤해서 자는 게 아니라, 영혼의 성장을 위해 그러는 것 같았다.

처음에 태어났을 땐, 두 주먹만 하더니 지금은 수박만 한 몸체다.

신촌의 주말 분위기는 역시나 활기찼다.

“어머? 이 애가 그 아카구나? 아카, 안녕?”

“어? 너도 내가 보이나 보네? 다른 사람들은 날 못 보던데. 신통방통하네.”

“호호, 나도 영안을 떴거든? 그런데 태월아. 얘 아무에게나 반말해?”

“처음에 태어났을 땐, 아기라서 그랬는데. 안 고쳐지네?”

“그런 이야기는 둘 다 나 없을 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컴퓨터에선 그렇게 한다고 나와 있던데? 타인을 배려해줬으면 해.”

“호호호, 아카, 너무 웃기다.”

“나도 니가 웃겨. 분홍 키티 빤쮸!”

“어머머, 너 왜 그래? 숙녀한테. 배려라며?”

둘의 토닥거림을 재미있게 보다가, 태월은 가져온 기타를 앞으로 내밀었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전용 가방인 하드 케이스를 열어 기타를 꺼내 보인다.

기타 케이스 자체는 꾸미지 않았다.

가지고 다닐 때 너무 눈에 띄면, 좋지 않을 듯해서다.

“우와, 이거 너무 아름답다. 예술품 같아.

하얀 여우가 너무 인상적인데?

복숭아꽃?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아.”

“설희는 역시 하얀 여우로 보네?”

“아, 이거 또 그 신기야? 엄마가 전에 그려준 그 그림 보고 많이 놀라셨거든. 기운에도 놀라셨지만, 부엉이는 엄마도 너랑 같게 보더라.”

“황금 눈에 갈색 부엉이?”

“응, 그런데 이모들은 그냥 갈색 부엉이였어.

이모들은 귀신을 못 보시거든.”

설희의 말에 태월은, 다시 한번 사실이 입증된 거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 정말 고마워. 이거 그리느라고 고생했겠네. 내가 오늘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먹을까?”

“키티! 나도 한 손 거들었거든?”

허리에 손을 척 올려 으스대 보는 아카다.

“어머, 진짜? 아카도 고마워. 그리고 키티가 뭐야? 차라리 설희라고 이름을 부르든가.”

“아임 미스떼이쿠, 아임 써릐. 유어 네임 이즈 써릐. 오케이?”

“헐, 해보자 이거지? 아카라카! 아카라카 칭! 아카라카 쵸! 아카라카 칭칭! 쵸쵸쵸!”

“......”

“설희야, 응원 구호 같은 그건 뭐야?”

“신촌에 대학 하나 있잖아? 거기 응원단 이름이기도 하고, 응원 구호야.”

아카라카는 1986년 5월 29일에 첫 시작을 알린 연대 응원단이다.

아카라카는 가슴소리라는 함경도 방언이다.

“핑크 헬로키티, 미안. 우리 잘 지내자.”

“사과할 거면 키티를 빼야 하는 거 아냐?”

“아임 써릐!”

“......”

설희와 함께 신촌에 있는 초밥집으로 향했다.

역시나 길거리 캐스팅은 또 생겼다.

의외인 것은 아카가 설희의 머리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영혼을 만지지 못하는 설희인지라, 무게감도 느끼지 못하지만.

아카는 토닥이면서도 설희가 편한지, 그러고 있다.

“너 머리에서 안 내려올래? 밉상이 거긴 왜 올라가?”

“자꾸 구박하면 나 여기다 응가 한다?”

“......”

영체가 응가를 할 리가 없지만.

초밥집은 20평 정도였고, 여기저기 일본풍의 장식품들이 걸려있었다.

작은 방으로 앞장서서 들어간 설희는, 뒤따라온 직원의 메뉴판을 받아 들고 있다.

“여기 종류별로 하나씩 일단 주세요.

먹어보고 입에 맞는 걸로 추가 주문할게요.”

직원이 돌아가자 태월이 웃으며 눈을 맞춘다.

“오? 능숙한데?”

“호호, 엄마랑 좀 와 봤어. 그리고 이 집이 맛도 좋고, 초밥 종류가 제일 많아. 그래서 일부러 온 거야.”

조금 기다리고 있자, 초밥이 모둠 접시에 담겨서 나왔다.

“마구로(참치), 긴메다이(도미), 하마치(새끼방어), 카츠오(가다랑어), 마다이(참돔), 엔가와(광어 지느러미), 시메사바(절인 고등어), 산마(꽁치), 아지(전갱이), 부리(방어), 에비(새우), 사몬(연어), 이까(오징어), 츠부가이(고둥), 아와비(전복), 우나기(장어), 아나고(붕장어), 가즈노코(청어알), 가니(게), 타코(문어), 다마고(계란), 덴푸라(튀김).”

하나씩 나온 22개의 초밥을 순서대로 부르는 아카다.

“어머? 놀랍네. 책도 아니고 실물로만 보고도 그걸 다 알아내? 아카가 엄청나게 똑똑하네.”

실제로도 놀란 듯 설희의 눈이 커졌다.

그 반응에 신이 난 아카가 이야기를 또 한다.

“그런데 초밥, 즉 스시는 ‘물고기를 얇게 저며서 숙성, 발효시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바로 잡아서 초밥 만든 것은. 스시가 아니란 거지.”

“어머? 그래서?”

“스시의 기원이 어디일 거 같아?”

“일본이지 어디긴 어디야?”

“땡! 전혀 아니올시다. 두 번째도 아니고 세 번째가 일본이야.”

“그럼, 원래 시초는 어딘데?”

“동남아야. 지금도 그곳의 산속에선 물고기를 보존하는 방법으로, 식해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먹어. 그게 중국으로 건너가서 송나라 때 꽃을 피워.”

“지금 중국엔 스시가 없잖아?”

“전혀 없진 않아. 있긴 있지. 어패류 발효가.

다만, 송나라가 패망하고 중국 땅이 원나라에 정복되면서, 북방 민족인 그들에게는 입에 맞지 않았어.”

“그래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응, 그러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인 특유의 기호 취미를 자극하여 그들에게 맞게 다시 정착된 거야.”

-짝짝짝!

설희가 아카의 스시 강의에 손뼉을 쳐준다.

“또 없어? 오늘 명강사를 모셨는데?”

“에헴, 초밥용 밥을 왜 샤리라고 하는지 알아?”

“글쎄? 일본어 아닌가?”

“부처의 사리가 흰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 어원이야.”

“나도 아는 게 있는데. 여기 초밥에 얹는 재료를 네타라고 하고, 계란말이를 교쿠 또 생강을 가리라고 하잖아?

초밥에 생선을 통째로 올리면 마루즈케, 반 마리를 얹으면 카타미즈케.”

“네타는 천한 것이나 쓰는 말이고, 원래는 타네야.”

졸지에 천한 것이 되어 버린 설희는, 국자를 들어 아카를 때렸다.

-딱!

“크, 아야. 난 왜 때리냐?”

태월의 머리에 앉아 있던 아카를 때린 것이다.

다만, 아카는 영체라서 국자가 그냥 통과한 것이고.

***

국민학교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들! 오늘 친구 집 가서, 맛나게 많이 먹고 와. 선물은 꽃으로 알았지? 그런데 진짜 청바지 입고 가려고? 더 좋은 옷도 많은데.”

“네, 편하게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여간 다녀올게요.”

“다음엔 이리로 데리고 와. 엄마에게도 인사를 시켜야 할 거 아니니?”

“네, 그렇게 할게요.”

집을 나서는데 아카가 통통 튀어 다니더니, 태월의 등에 폴짝 올라탄다.

“너도 오늘 가려고?”

“응, 나도 헬로키티 집에 구경 가보고 싶어.”

“설희 엄마가 널 알아볼 텐데?”

“키티도 날 알아봤지만, 별일 없었잖아.

날 숨겨둔 자식 정도로만 생각하는 거야?”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아침드라마!”

“엥? 아침에 다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데? TV를 누가 켜주는데?”

“태월이 쌈박질 연습할 때, 종종 영혼 에너지를 사용하던데. 그걸 응용했지. 그래도 현재는 리모컨 겨우 켜는 정도만 가능해. 더 연습 중이야.”

“헐, 너 진짜 신통방통하다. 그리고 쌈박질이 뭐냐? 그건 택견하고 각희라는 전통 무예야.”

신촌에서 내려 꽃을 풍성하게 산 태월.

메모지에 적힌 주소를 보며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 이 길이 아닌가? 헷갈리네. 번지수 안 적은 집들이 여러 곳이네.”

“거기로 가는 게 아냐. 좌측에서 꺾어졌어야지. 뒤로 다시 5m를 간 후에, 우측으로 10m를 더 가. 그럼 7m 앞에 푸른색 대문 집이 있을 거야. 바로 거기야.”

“응? 넌 그런 걸 어찌 알아?”

“컴퓨터로….”

자기 머리를 톡톡 치는 아카다

“그럼, 말을 했어야지. 아까부터 헤맸는데, 너 왜 진작 안 알려줬어?”

“안 물어보기에 그냥 지켜본 건데?”

컴퓨터로 지리까지 외운 걸로 보였다.

영령 내비게이션이랄까?

태월은 아카의 새로운 능력을 하나 알아냈다.

컴퓨터처럼 저장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긴 수십에서 수백만 영혼의 정화로 태어난 아카이다 보니, 그런 능력 정도는 기본일 수도 있었다.

‘길 안내 도우미 회사를 차려도 성공하겠네.’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는 태월이다.

드디어 설희의 집 앞이다.

문패에 쓰인 이름은 홍미연, 설희의 엄마 이름이다.

어른이 있는 집을 혼자 방문하기는 처음이라, 살짝 긴장되는 태월이다.

몇 번 심호흡하고 나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 똥! 띵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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