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50화 (50/250)

50화. 귀기 서린 기타와 피리

태월의 말에 악기점 사장의 얼굴이 하얘졌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기타가 사람을 어떻게 죽여?”

“아저씨! 제 친구가 신기가 있거든요? 무당들도 거의 기절해요.”

무당들을 태월을 만난 적도 없다. 그냥 편들려고 하다 보니 없는 말도 하게 된 거다.

설희는 귀신은 볼 줄 알지만, 저 기타에 귀신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거기서 귀기는 느껴지긴 했다.

“그, 그러냐? 그렇지만 기타로 사람을 죽이고 그러진 않아. 단지 이 기타가….”

“말해보세요. 싸게만 주시면 그것과 관계없이 살 의향도 있어요.”

“그, 그래? 어휴, 그래, 미안하다. 사실은 이 마틴 기타가 요물이긴 해. 가지고 있던 사람마다, 다 좋지 않은 일만 생겼거든.”

“이야기해주세요.”

악기점 사장은 자신이 아는 사연을 늘어놨다.

마틴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있는 이 명품 기타는, 첫 소유주의 유품이란다.

기타에 미쳐서 음악에 미쳐서 지내다가, 어느 날 공연 다녀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사고 때 그 사람은 무슨 정신이 났는지, 기타를 꼭 안고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기타는 무사할 수 있었고 다만 피가 묻어 있었다 했다.

피가 묻어 있던 기타를 유족이 잘 닦아 보관하다가, 중고 악기로 팔게 되었단다.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지만, 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악몽을 꾸기도 하고.

공연 중에 이유 없이 줄이 끊어지기도 하고, 몸의 기가 빨리기도 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귀신 붙은 기타라고….

“그래서 얼마에 파시는데요?”

“이거 원래 시세는 750만 원은 줘야 해.”

“헉! 거의 적은 빌라 한 채 값이네요?

그래서 지금은 얼마에 파시려는?”

“20%만 줘 150!”

“100 드릴게요. 그거 악귀 보내려면 무당에게 굿값만 300은 들어요. 그것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불확실한 일에 그 이상 투자가치는 없어 보여요. 어려우시면 그냥 갈게요. 이야긴 잘 들었습니다.”

태월이 설희의 손을 잡고 일어서자, 악기점 사장이 붙잡는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100에 줄게. 김 사장도 그러더니 나도 이런 애물단지를 맡게 될 줄이야.”

“귀신 붙은 물건이 또 있나 봐요?”

“아, 그건 이런 거와 다른데, 매장품이야. 산기슭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지으려고 토목공사를 하던 중에 나온 거지.

오래된 철 상자에 들어있는 건데. 청동으로 만든 피리야. 깨끗하게 잘 닦아서 팔러 왔다고 하더라고. 골동품 가게서는 연식이나 그런 걸 추정하기 어렵다고, 제값 안 쳐줬나 봐.”

“그런 고물 청동 피리를 악기점에서 왜 사는데요? 제값은 또 얼마길래요?”

“김 사장이 원래 옛날 물건 좋아해. 30만 원 달라던데? 소리는 잘 나진 않았지만, 고급스러워서 반값에 샀어.

우연히 골동품 애호가가 들렀다가 사 갔나 봐.

그런데 밤에 스스로 소리를 낼 때가 많대.

소름이 돋고 그래서 다시 가져왔다고 하네.”

“그 철 상자는 같이 없었나요?”

“철 상자는 삭아서 버렸다나 봐.”

“그럼 그 피리는 살 수 있는 거네요?”

“살 수야 있지만, 내가 전에 물으니 최소 본전은 받아야겠다던데?”

“그럼 그것도 살게요. 제가 김 사장님까진 뵐 필요는 없을 테고. 가져와 주시면, 저 기타와 같이 해서 115만 원 드릴게요. 그럼 되죠?”

“그러지. 같은 건물에 있으니, 금방 가져올 거야. 전화하면 되거든. 대신 전부 현금이어야 해. 카드는 곤란해.”

“네, 찾아올 테니, 기다리세요.”

귀신 붙은 물건에 관심이 확 생긴 태월이다.

설희는 별말 없이 태월을 지켜볼 뿐이고.

현금 자동 입출금기는, 한국에서는 1979년 11월 조흥은행 명동지점에 처음 설치되었다.

80년대부터 각 금융기관이 독자적으로 현금 자동 지급기를 도입하기 시작해 많은 기기가 보급된 상태였다.

현금을 찾아 돌아와 보니, 피리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인 청동의 색은 탁한 갈색이다. 그런데 이 피리 색은 조금 달랐는데, 검정과 갈색의 중간 정도로 짙고 탁했다.

녹도 완벽히 제거된 거 같지는 않았고.

태월은 청동 피리라고 하니, 청동으로 만든 줄 알 뿐이다.

계산을 다 한 후에, 태월은 설희를 쳐다봤다.

“이 기타는 정화를 시켜야 하고 또 다른 작업도 해야 해. 내가 잘 보완해서 이쁘게 만들어줄게. 이건 내가 주는 선물이 될 거야. 그리고 연습용 기타는 가볍게 하나 사도록 하자.”

결국 그 집에서 4만 원짜리 기타를 하나 샀다.

낙원상가를 나와 인사동에서 둘은 점심을 먹었다.

“호호, 어때? 여기 한정식집이 근사하네.”

“우리 나이에 이런 데 오는 사람 드물지 않나? 봐, 다 어른들이지.”

“비싼 기타 선물을 받을 것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이 정도는 나도 돈 있거든?”

“그 돈이 혹시 한 달 용돈 아냐?”

“아, 아니야. 기타 사러 간다고 하니, 엄마가 넉넉히 준 거야.”

그런 것 치고는 말 더듬는 게 너무 표났다.

“기타에 악한 것을 물리치는 그림을 그릴 건데, 넣고 싶은 동물 없어? 너 양띠니까, 양을 넣어줄까?”

“나 어차피 지금도 홍 양이거든? 내가 좋아하는 동물이 좋겠네. 양은 됐고, 여우를 그려줘. 꼬리도 이쁘게.”

홍설희라서 홍 양이고, 그래서 양이 필요 없다는 설희다.

“그럼, 신묘한 기운도 생기게 꼬리 아홉 개로 해줄까?”

“오호호, 구미호 기타네? 아 좋아.”

개인별 접시와 수저 세트가 차려져 있는 상태다.

컵에 녹색의 차도 한 잔 따라주고 갔다.

전복죽과 물김치, 야채 샐러드가 나온다.

곤약 메추리알 조림에 냉채 잡채 배추전이 따라 나오고, 탕평채, 회무침, 궁중신선로, 삼색전, 해산물 볶음, 게장, 대구탕수육, 갈비찜.

그걸 반쯤 먹고 있는데, 보리굴비와 식사가 나온다.

후식으로는 수정과와 식혜가 나오고.

비싼 게 이상하진 않았다.

설희의 한 달 치 용돈이 아니라, 두 달 치 용돈일 것 같다고 생각해보는 태월이다.

“아주머니 양이 너무 많아 그러는데, 이거 싸주시면 안 돼요?”

태월은 음식을 남기고 가면 다 버려지기에 싸가려는 것이다.

절에 있으면서, 음식을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 몸에 익은 탓이다.

한정식집 주인도 두 중학생이 비싼 걸 시키고는, 반도 먹지 못한 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기타를 들고 가야 하기에, 결국 설희가 그 음식들을 가져가게 되었지만.

***

집으로 돌아온 태월은 작업실로 들어갔다.

작업실에 있었던 금괴는, 이미 회사로 다 이동된 상태였기에 텅 비어있다.

도깨비 문신을 이용하니 한 번에 삭 귀기의 염원이 제거되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이런 정도는 진언도 필요가 없네. 악귀보다야 귀기가 강할 리가 없겠지.’

청동 피리를 입에 대고 불어보니, 악기점 사장 말대로 소리가 잘 안 난다.

세로로 부는 피리는, 가로로 부는 퉁소와 다르다.

피리는 3종류가 있는데.

궁중음악, 무속음악에 쓰이는 향피리와 제일 얇은 소리를 내는 현악기나 가곡에 쓰는 세피리. 그리고 제일 소리가 큰 종묘 제례악에 쓰는 당피리가 있다.

이것은 향피리와 비슷하긴 한데, 크기는 단소와 향피리의 중간 길이로 40cm였다.

‘이거, 설희가 선물해준 그 종하고 같은 이치일 거 같은데?’

영혼 에너지를 이용해서 피리를 불어보았다.

-삐릴리~ 삐릴릴리~

‘응? 흔히 듣는 피리 소리보다 공명음이 크고 맑은데? 어? 부스러기가 떨어지네?’

영혼 에너지를 이용했더니, 피리에 남아 있던 녹 부스러기도 떨어져 나간다.

그거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미세한 균열이 생겨났다.

영혼 에너지를 강하게 주입하자, 균열이 일어나며 부스럼들이 생긴다.

그리고 피리 안쪽도 같은 현상이다.

옆에 놓인 면으로 닦아 부스럼들을 제거하고 보니, 전체적으로 진갈색이 아니라 먹색인 까만색이었다.

표면에는 붉은 복숭아꽃 문양이 겹겹이 이어져 있었다.

복숭아꽃은 이상향을 그리면서도 삿된 것을 물리치는 의미로, 한국의 고대에서도 쓰던 문양이다.

철사를 가져와 천을 한 겹 감은 후, 부지런히 속을 닦아 냈다.

‘아니, 이게 청동일 리가 없잖아?’

다 제거하고 피리를 불어보니, 전보다 더 맑은 공명이 일어난다.

‘청동도 아닌데 청동 피리라고 부르긴 이상하네. 도화 문양이 이어지니 도화적(桃花笛)이라고 해야겠어.’

피리를 옆으로 치우고 기타를 올려놓았다.

피리와 달리 이 기타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조금 더 깨끗해진 느낌 정도?

‘여기엔 파사의 기운을 담아 구미호를 그려주고, 만월을 띄우고 거기에 구미호를….’

대략적 계산이 끝나자,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했다.

그림을 통한 기타의 커스터마이징이다.

기타의 양면을 다시 깨끗이 닦고, 경면주사와 천연물감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려나갔다.

앞면에는 만월을 그리고 여우를 그리고 뒤쪽으로 아홉 개의 꼬리가 생겨난다.

옆면에는 나무가 그려지고 벽사의 꽃인 도화가 사방에서 피어났다.

기타의 뒤판에는 태월의 손목에 있는 문신을 그려 넣었다.

도깨비 얼굴과 큰 입은 조금 줄여 먹색으로만 그렸고, 겉 테두리는 금물을 써서 넣었다.

그림 속으로는 영혼의 에너지가 주입되었고, 천수경에 이어 반야심경 260자를 읊조렸다.

그림 속에서 영혼의 에너지가 꿈틀거렸다.

언제 또 나와 보고 있었는지, 아카가 거기에다가 영혼 에너지를 또 쏘아줬다.

이렇게 만드는 데에 2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3시간 후에 그림이 다 말랐는데, 천이나 종이 위에 그린 게 아니라서 생각보단 빨리 건조되었다.

다 마른 그림 위에는 마지막으로 바니쉬를 써서 코팅작업을 하였다.

‘갈색 여우로 그리긴 했는데, 설희는 백여우로 보이려나?’

밤 8시에 작업실 문을 여니, 조민희가 깜짝 놀란다.

방문 밖에서 궁금해하다가, 태월에 의해 벌컥 문이 열린 탓이다.

“앗 깜짝이야! 노크하고 좀 열어.”

노크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태월이다.

“여기서, 뭐 해요?”

“아들이 안에서 뭘 그리 열심히 하는지 궁금해서 그랬지.”

조민희의 말에 방문을 열어준다.

들어가서 보란 소리다.

“보시되 만지면 안 돼요. 마감이 아직 안 말랐거든요.”

조민희는 안으로 들어와 작업대 위의 커스터마이징 된 기타를 보게 되었다.

“우와! 이 이쁜 기타는 대체 뭐야?

너 기타 배우려고? 이건 치는 게 아깝겠다.”

“제가 쓸 거 아니고요. 친구에게 줄 선물이에요. 괜찮아 보이나요?”

“친구? 너 학교에서 친구 안 사귀었잖아?”

“큰스님의 사제가 되시는 숙부님의 제자예요.

얼마 전에 서울로 이사 왔거든요. 나이는 동갑이고요.”

“호호호, 너 이 기타 보니, 그 동갑 애가 여자애지? 이쁘냐?”

“흐흐, 네. 이쁘긴 해요.”

아들이 만나는 여자친구가 이쁘다고 하니 왠지 궁금증이 치솟는 민희다.

“우와 아들! 이러다 곧 장가가는 거 아냐?”

“헐, 10살인데 뭘 장가가요? 그리고 그 애랑은 진짜 친구예요. 처음엔 가슴이 쿵쾅거리긴 했는데, 요즘은 그런 건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도 애틋한 기분이 드는 건, 뭔지 모르겠어요.”

“흠, 이건 뭐. 짝사랑과는 증세가 다르네. 혹시 플라토닉 사랑 뭐 그런 거냐?”

아들이 사춘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남다른 게 있어요. 우리 둘이 태어난 날과 시간까지 똑같아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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