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6학년으로 월반
서둘러야 한다.
“일단 옮기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그, 그래. 석준이도 오늘 고생 많았겠다.
눈이 빨간 거 보니, 잠도 못 잔 거 같은데?”
“하하, 집 마련한다는 게 뭐 쉬운 일인가요?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죠.”
“응? 웬 집? 트럭으로 캠핑카라도 만들려고?”
“아빠! 빨리 나르자고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요. 석준이 형도 쉬어야지요.”
“아, 알았어. 후딱 날라주지. 왕년에 이 아빠가 말이야.”
“빨리해요!”
“헐!”
사람들에게 이 상황이 눈에 띄면 좋을 게 없는 것이다.
한 시간 후 정도면, 출근하는 사람과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3명이 함께 엘리베이터로 이동시키니, 시간은 빨라졌다.
40분 만에 완료가 되었다.
최석준은 밥이고 뭐고 자러 간다며, 트럭을 끌고 가버렸다.
“아들? 이게 대체 뭐야? 뭐가 이렇게 무거워?
그런데 둘이서 이렇게 많은 걸, 뭘 어떻게 나른 거야? 이야 신기하네.”
“팔로 날랐어요.”
“헐, 아들 요즘 보니 점점 엄마 닮아 가는 것 같아? 어디 학원이라도 같이 다니니?”
“여보? 아들 씻고 나오게 좀 놔둬. 당신도 아침 차리는 거 좀 돕고. 궁금한 건 밥 먹고 묻자고, 나도 참고 있거든?”
“아, 알았어!”
태월이 씻고 나오자, 식사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아들! 먹자!”
“네!”
제대로 된 식사는 어제 아침 이후로 처음이다.
오늘은 시간 타임 파출부 아주머니가 일이 있어서 쉬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가 시간을 내서 아침을 차려 주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민희와 승철은 태월을 빤히 본다. 어서 말하라는 것이다.
‘귀신이 알려줬다고 말하려면, 처음부터 다 말해야 하겠네. 언젠가 알게 될 일이긴 했는데…. 이참에 말하는 게 더 낫겠지. 나중에 알면 얼마나 서운해하시겠어.’
“제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는 건 아시죠?”
“큰스님에게 들었다니까. 사람의 기운도 볼 줄 알고 땅의 기운도 볼 줄 안다고.”
“그게 다가 아니어요. 사람의 기운을 볼 줄 아는 건 맞지만. 꼭 산 사람만 보는 건 아니고, 죽은 사람 것도 볼 수 있어요.”
“헉!”
박승철이 아들의 말에 등치답지 않게 헉하고 놀라자, 민희가 눈을 흘긴다.
“아, 그럼, 어릴 때 귀신이 보인다고 그러던 게, 그거와 관련 있는 거냐?”
“네, 엄밀히 말하면, 영혼을 볼 수 있고, 귀신과도 대화할 수 있어요. 제가 배운 적은 없는데, 태어나면서 원래 있었던 능력 같아요.
그리고 저와 같은 능력이 있는 또래도 최근에 봤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니긴 해요.”
“그, 그럼 그림이 특이해진 이유가?”
승철은 여전히 귀신이 무서운 거다.
“그 그림에 순수한 영혼의 에너지를 실어서요. 그래서 보는 사람들의 영혼이 정화되는 기분을 가지게 되는 거고요.”
“그, 그럼 좋은 거잖아? 성령의 느낌 그런 거겠네.”
좋게 해석해보는 승철이다.
“음, 똑같지는 않지만, 영혼을 맑게 해주는 거로 보면 비슷하긴 해요.”
“아, 난 또 괜히 긴장했네.”
“호호호, 네 아빠 왜 이러니. 진짜. 덩치는 산만해서. 그래서 저 상자들은 어떻게 된 건데?”
“요번에 석준이 형이랑 동굴 견학 갔었잖아요? 거기서 착한 귀신을 만났어요.
일제 치하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거기서 몰살당했다고 해요.”
“이야, 말로만 듣던 그런 거네? 그 귀신 너무 불쌍하네. 그래서 어찌 되었어?”
“그 일본군에게 복수는 했기에 원귀는 아니었어요. 단지 그 묻힌 동료들 유골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당연히 그 정도는 땅의 주인으로서 해줘야지. 그런데 그거랑 저 상자는 무슨 연관이?”
“당신? 자꾸 추임새 넣을래요? 그냥 아들이 말하게 둬요.”
“아, 알았어. 궁금하니 그렇지.”
“그 보상으로 받은 선물이에요.”
“어머, 무슨 선물이 저리 많아? 저게 뭔데?”
“금괴예요. 133냥짜리가 8개가 들어간 금괴 상자예요. 상자 100개예요”.
“어머 어머! 그럼 저게 133냥짜리 금괴가 800개라는 소리잖아?”
박승철은 133냥이란 게 얼마만큼인지 헷갈려서, 자기 목걸이를 만지작댄다.
동네 건달처럼 창피하게 순금 1냥짜리 목걸이나 차고 다니냐고, 민희에게 놀림 받던 그 목걸이를.
그걸 본 민희가 깔깔 웃는다.
“호호호, 뭐 생각하는지 알겠다.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그 목걸이로 따지면, 십만육천사백 개야.”
“허 억! 시, 십만….”
하늘의 별을 세고 있는 승철을 놔두고, 민희는 아들이 보여주는 금괴를 구경했다.
“어머? 이거 중국 건가 봐? 한문으로 쓰여있네. 일백삼십삼 냥 광서 십칠 년.”
“청나라 금괴예요. 한국에서 착취한 게 아니라, 중국 걸 수탈했나 봐요.”
“어머, 그럼 다 우리 거겠네?”
“확실한 건 더 알아봐야죠.”
“그리고 당신! 혹여 이 방에서 금괴 하나라도 가지고 나갔다간, 우리 가족 위험할 수 있어요. 그런 정도는 알고 있겠지요?”
“어 어, 절, 절대 안 가지고 나갈게.”
금괴는 태월이 작업실로 쓰던 그 방에 다 넣었다.
작업실은 그 집에서 제일 공간이 컸고, 하중을 분산할 요량으로 벽 쪽으로만 둘렀다.
아파트 하중은 이 당시 1㎡당 300kg이다.
“나 출근할 때마다 이 방에 들러서, 황금의 기운을 받고 나가야겠다. 호호호, 이 방을 엘도라도라고 칭하노라….”
방으로 돌아온 태월은 컴퓨터로 노닥거리고 있는 아카를 빤히 보았다.
“왜? 왜 보는 거야?”
“많이 똑똑해진 거야?”
“그, 그럼! 이 회선이 너무 느려서 문제지만.
뭐 알고 싶은 거라도 있어?”
“전부터 생각난 건데, 그 해파리에게서 받은 에너지야 너에게 갔지만. 그 영혼들의 재능은 어디로 간 거야?”
“재능? 이게 재능인지 몰라도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넘어왔어. 그래서 그걸 뼈대로 이 세계에 적응 중인데? 그러면 안 돼?”
“아니 그냥 궁금했던 것일 뿐이야.”
가만 생각하니 막 태어난 아카가 논리적인 게 이상하긴 했었다.
“저 작업실에 금괴들이 있거든? 그거 소유권 좀 확인해 줄 수 있어?”
“중국 청나라 거고 한국 소유 물건은 아니야.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아카에게 금괴에 대한 이야길 자세히 해줬다.
컴퓨터 회선을 통해 소유권 관련과 판례들을 알아보면 되겠다 싶었다.
두 시간 후에 알려준 아카의 정보는.
“땅의 소유주와 소유 권한자가 다르면 분배하는 식이고, 이 경우는 다른 거야.”
“어떤?”
“일단 국보급 문화재나 그런 건 전부 국가 소유가 되고, 보상비만 조금 받는 식이야.
그 외 보물은 발굴자가 일정 기간 공고를 하고,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일 년간 기다려야 해. 그리고 안 나타나면 발굴자와 땅 주인이 반반씩 나눈다고 하네. 그런데 일제 치하 때 수탈된 보물은 적산 처리되어, 국가에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해.”
“그럼 이건 괜찮겠네?”
“청나라 거라니까, 상관없다고 보는 게 정설이야.”
“그런데 이거 신고해서 세금 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건 매장물이라고 해서 기타소득으로 잡히는데, 필요경비율이 80%를 적용받을 때, 남은 20%를 소득으로 보고 이 소득 20%에서 원천징수 20%(지방세 10% 포함 시 22%)를 매기니….”
“그래서 얼마가 되는데? 결국 기타소득으로 4.4%가 원천징수 된다는 거지?”
“응, 머리가 나쁘지 않구나?”
“얼씨구, 이제 그런 말도 할 줄 아네?”
“그래서 저 금괴 시가가 얼만데?”
“1냥에 약 40만 원 정도 하던데. 그럼 저 금괴 하나가 5,300만 원 잡으면 돼. 800개면.”
“424억이네. 세금이 18억6천5백6십만 원.”
“법인세로 나중에 환급 좀 받으면 많이 줄어들 거야. 또 없어?”
태월은 똘똘해진 아카를 보며, 피식 한 번 웃어주고는 품에서 가죽 지도를 꺼내줬다.
“이거 또 다른 보물 지도 같은데, 한번 조사 좀 해줘. 제대로 해주면, 더 큰 컴퓨터를 사줄게.”
“오, 진짜지? 알았어. 삭삭 훑어 주겠어.”
태월은 어디서 배운 말투인지 궁금하긴 했다.
“그래, 아카 수고했다.”
에너지를 둘러서 아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줬다.
태월은 다음 날 조민희에게 연락해서 금괴를 출자금으로 내놓았다.
세금 관련은 잘 알아서 처리한다고 했다.
그리고 필요경비율에 해당하는 일부 금액만 지원받았다.
25명의 장례식도 치러야 하고, 그 외 필요해질 곳도 있기 때문이다.
최석준의 아파트는 발굴 보상 일부 지분으로 대처했다.
아파트 키를 받은 날 최석준은 세상을 얻은 것처럼 타잔 소리를 내다가, 민원 신고를 받은 경찰들에 의해 파출소로 가게 되었다.
“스님 할아버지? 그럼 화장해서 봉안묘로 하는 게 더 적합하다 이거죠?”
“그들이 그 동굴 지하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 게 양지바른 곳이지. 하나하나 땅속에 일일이 묘를 만드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럼, 그 산의 좋은 자리에 아담한 납골당 하나 만들면 되겠네요?”
“그래, 그러자꾸나. 지금 내려갈까? 비록 영혼들은 이미 천도했다지만, 장례 절차는 밟아줘야지.”
“네, 석준이 형이 인부들을 시켜 준비를 관에 다 넣었을 거예요.”
군청에는 이미 유골 신고를 했고, 그들도 무난한 처리를 원했다.
장례는 3일간 치러졌으며, 그들을 위해 햇빛 잘 드는 곳에 납골당을 세웠다.
***
그리고 보름 후 설희에게서 삐삐번호를 알려주는 연락이 왔다.
집은 홍대 쪽 단독주택을 샀다고 했다.
3월이 되자, 태월은 바로 6학년으로 2개 학년을 월반했다.
3학년 때 전국 학생 수학 경시대회와 영어 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실력을 입증하였다.
그래서 2개 학년 월반임에도 의구심을 갖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반년이나 더 남은 88올림픽이지만, 나라 안이 벌써 달아올라 있었다.
태월에게도 봉화 주자 권유가 들어왔으나, 체육인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
내년 4월에는 중졸 검정고시를 치르고, 8월에 고졸 검정고시를 볼 생각인 태월이다.
그래서 요즘은 수업 시간에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야! 너 이제 10살이라며?”
“왜요?”
“너, 수업 시간에 중학교 교과서 보던데? 그렇게 잘났어? 영재 학굘 가지, 여긴 왜 있냐?”
키가 170은 되어 보이고 씨름 선수 같은 녀석이다. 월반하는 날부터 태월을 아니꼽게 보는, 일그러진 반항아다.
자기 딴에는 학교짱이라고 생각하는지, 똘마니들을 좀 데리고 다닌다.
지금도 뒤에는 추종자 둘이 서 있다.
“국민학교는 검정고시가 없잖아요?”
“뭐? 하핫, 이 병아리 좀 보게나. 너 선생들이 감싸주니 뵈는 게 없지?”
“지금 보이니까 대화하고 있는 거잖아요?”
“오, 내가 보이긴 보이나 보네? 그래서 뭐로 보이는데?”
대화의 끝은 나지 않을 듯했다.
의도적으로 시비를 걸러 온 상대인데, 좋게 말한다고 ‘네, 네’ 하고 돌아갈 리도 없고.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상대다.
“하룻강아지?”
“뭐? 이런 신발눔이….”
오른손 주먹이 태월을 향해 날아온다.
태월은 왼손바닥으로 책상을 짚어 그 반동으로 몸을 띄운 후, 오른발로 하룻강아지의 좌측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퍽!
그 상태서 오른발을 역으로 돌려차 발꿈치로 우측에 있던 똘마니의 등을 찍어 버렸다.
똘마니의 등을 누른 오른발을 지지대로 삼아 몸을 치솟게 한 후, 왼발바닥으로 좌측 똘마니의 가슴을 차버렸다.
설명은 길었지만, 2~3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퍽! 촥! -콰다당! 쿵 쿠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