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귀신의 재능이 이동된다고?
태월의 뜬금없는 궁금증에 다들 황당해지는 순간이다.
“풉! 나도 성분은 모르지만, 도금 따위는 아니야.”
태월은 종을 흔들어봤다.
-틱! 틱틱!
“응? 소리가 왜 이래?”
“그냥 흔들면 다 그런 소리가 나와.
이리 줘봐. 그만한 힘이 필요해.”
-딩! 딩딩!
“나도 이 정도 소리밖에는 안 돼.”
설희에게서 영혼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 그걸 실어야 하는 거구나. 내가 해볼게.”
-뎅~! 데에엥~! 데에엥~!
“허, 소리가 범종의 크기만 하구나. 어찌 그리 작은 것에, 그리 큰 소리가 날꼬.”
“맑고 깊으면서도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 드네? 설희 모친이 흔들어봤는데, 이 정도까지는 안 되던데. 딱 태월이가 임자일세.”
태월은 신비한 음을 내는, 이 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영혼을 깨끗하게 씻겨주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태월은 조민희에게 연락하여, 다음 날 12호용 벽조목 액자를 차편으로 배송받았다.
“이 액자에 넣어야 어울리거든.”
“응응, 액자도 이쁘네. 우리 집에도 벽조목이 좀 있는데, 이렇게 액자로 만들 생각은 전혀 못 했네. 하여간 선물 고마워.”
“응, 나도 이 종 고마워. 잘 쓸게. 아 그리고 스님 할아버지가 허락은 하셨어.”
“엇, 정말? 진짜? 진짜지? 꼭 보고 싶었는데.”
쉽게 허락하진 않았고, 태월이 조르니 할 수 없이 수락했을 뿐이다.
며칠간 둘은 검단산에 같이 올라가기도 하고, 홍무경에게서 배운 택견과 수박을 함께 수련하기도 했다.
그 둘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던 노스님이 홍무경에게 넌지시 묻는다.
“사제? 저 둘이 좀 닮지 않았나?”
“네, 저도 처음에 닮았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라고요. 사주가 같으면 그렇기도 하나요?”
“글쎄, 남남인데 같은 사주인 사람을 보진 못해서, 뭐라 단정 지을 수 없군.”
홍무경은 별생각 없었지만, 노스님은 몇 번인가 갸웃거리고 있었다.
더구나 귀신의 성불을 시키러 간다는데, 무서워하기는커녕 꼭 보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느낌상으론 설희도 귀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귀신을 볼 수가 없다면, 성불을 보고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사주도 같고 둘 다 귀신을 본다고?’
노스님의 의문을 가지는 시각에, 태월과 설희는 학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월반을 해서 3학년이라고? 그럼 겨울 지나면 4학년 되는 거야?”
“그렇긴 한데 6학년으로 바로 갈까 해.”
“학교에서 그렇게 해준다고?”
“증명은 해야 하니 경시대회를 치렀어. 아직 결과는 안 나왔지만, 잘될 거야.”
“음, 나도 월반을 해야 했나?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따로 있어?”
“대학가기 전까지 시간을 벌려고 그래.
중고등학교도 검정고시를 치르려고.
학교 다니면서 뭘 따로 하기가 힘들더라.
벌어 놓은 시간에 많은 걸 배워보려고….”
“아, 나도 그럼 그렇게 해야겠다. 나도 학교생활이 심심했거든….”
태월의 그럴듯한 말 때문에, 설희의 학창 시절은 추억이 없게 될지도.
79년생 검정고시 출신 둘이 추가되었다고 서로 낄낄대고 웃는다.
그렇게 서로의 벽은 허물어져 갔다.
그리고 이틀 후 드디어 귀신의 성불을 시키러 떠나게 되었다.
***
“허, 이런 낭패가 다 있나? 그동안 악귀들이 붙어 버렸구나. 설희를 잘 보호해라.”
“네, 염려 마세요. 악령이 아닌 다음에야 악귀들 정도는 제게 위협이 되진 않아요.”
“너야 안심하지만, 설희가 있으니 그래도 조심하거라. 방심이 제일 큰 적이다.”
말하는 사이에도 악귀 둘이 더 추가되어, 총 다섯의 악귀가 폐교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녀 혼성의 악귀 다섯이다.
이 폐교된 학교는 농업계 고등학교로서, 80년대 들어 대졸자 우대 풍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해지면서 쇠락을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사립학교였던 탓에, 모기업의 재정적 사정으로 빠르게 폐교 조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폐교 후 일 년간 방치되어있는 사이에, 인근 불량 학생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로 인해 범죄의 장소로도 이용되기도 했고.
그런데 그런 불량 학생들조차도, 어느 순간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도 생겼고, 그곳에 있던 애들이 사라져 찾지 못한 경우도 나왔다.
재단에서 부랴부랴 그 폐교의 땅을 팔려고 해봤지만, 관심 있던 사람들마저 고개를 돌렸다.
이에 고양 군청에서는 재단에 시설 철거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네! 일단 악귀들은 제가 막을 테니, 성불부터 시키죠.”
-갈(喝)!!
노스님은 소리를 질러 주변에 붙은 악귀들의 행동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사이에 태월이 악귀들에게 향하면서 항마진언을 읊조렸다.
“옴 소마니 소마니 훔 하리한나 하리한나 훔 하리한나 바나야 훔 아나야 혹 바아밤 바아라 훔 바탁!”
성불해야 하는 여의사 귀신에게는, 노스님이 접근하여 광명진언을 꺼낸다.
“옴 아모카 바이로자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태월은 염주 알을 꺼내 그들에게 던지고 나서,
바로 접근하고 밀교 주술 주박법을 펼쳤다.
그들을 묶어서 움직임을 봉쇄하는, 내박인!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칼의 모양을 만들어 그들을 가르는, 도인!
“암 크링크링! 암 크링크링! 암 크링크링!”
움직이지 못하게 악령의 무력화, 전법륜인!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완전 포위하여 봉쇄한다. 외오고인!
“나먁 사라바타 갸테이약 사라바 보테이뱍 사라바 타타라셍타 마카로샤텐 갸키사라바 타타라셍타 갸키 사라바 비키남 훔 트라타 캄 맘!”
천신의 힘을 빌려 악령을 조인다. 제척구칙인!
“암 크리 훔 캭 훔! 암 크리 훔 캭 훔!”
악령을 가둔 후 성불을 유도한다. 외박인!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이런 정도의 악귀는 문신을 써도 된다.
그러나 영매술사인 설희에게 공부가 되라고, 이런 복잡한 짓을 하는 태월이었다.
다섯의 악귀들이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있자, 호기심에 이끌린 설희가 자신도 모르게 다가와 버렸다.
악귀 하나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그녀를 향해 세워진 손톱을 휘두른다.
“피해!”
순간적으로 설희를 안고 바닥을 구르며, 그 악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꺼져!”
평소엔 가랏! 하고 외치던 태월이지만, 별 차이 없는 일이다.
그와 중에 다른 놈들에게도 손을 뻗는다.
-쉬 아악! 쉬아악! 커억! 꺼륵! 컥! 끄륵! 켁!
-꿀꺽! 꺼어억!
노스님의 성불도 거의 동시에 끝이 났고, 빛줄기들이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있었다.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 나선 곳이 보건소였다.
남들처럼 종합병원 같은 곳을 가진 못했지만, 이곳에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이곳에서 주민들에게 진료도 하고, 때론 간호사처럼 예방 주사를 놓기도 했다.
외과 쪽이 아니라 가정의학과를 전공 한지라,
환자들의 잡다한 가정사까지 듣게 되기도 했다. 주민들이 삶은 옥수수나 감자를 들고 올 때도 있었고 말이다. 순박한 이들이 좋았다.
오늘은 잔치가 있었는지, 잡채도 가져다주었다. 그걸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니 맛이 있다. 환히 웃는 그녀의 미소가 점점 태월의 미소로 바뀌었다.
‘헛, 성불한 분이 의사라고 하더니, 의학 지식이 들어오네. 진료까지는 내가 아직 못하겠지만, 지식만 해도 방대하네.
그런데 참 안타까운 일이야. 동네 양아치들이 퇴근하는 그녀를 납치하다니…. 증거는 찾았으니, 스님 할아버지가 이번에도 그 검사 아저씨를 통하겠지.’
주변을 살피려는데, 바닥에 누운 상태였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도 설희를 껴안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노스님이 피식 웃는다.
사실 귀신의 재능과 기억이 들어올 때는 그게 길어 보이지만, 타인이 볼 때는 잠깐 사이다.
“또 그 재능인지 뭔지가 들어 온가 보구나?
그런데 설희는 왜 저리 누워 안 일어나는 거냐? 어디 다친 건가?”
“네? 그, 글쎄요.”
태월이 일어나서 옆으로 누운 설희를 살핀다. 코에 손을 대어보니, 숨도 잘 쉬고 멀쩡해 보였다.
‘어? 이거 그 여의사 영향인가? 그런데 나머지 악귀들 재능은 왜 하나도 안 들어왔지? 다 재능 꽝들인가?’
혼자 생각하는 사이에 설희가 멀쩡히 일어서고 있다.
“아휴, 너 아까처럼 그리 행동하면 큰일 나.
갑자기 다가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아픈 데는 없어?”
“아,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움직여졌어.”
“악귀의 할큄 한 번에 네 영혼이 상처 입을 수도 있어. 비록 그 정도에 큰 상처까지야 아니지만, 하여간 담부턴 그러지 말아.”
“허허, 다친 데 없으니 다행이구나. 잠시 저 뒤를 둘러보고 올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
노스님이 학교 뒤쪽으로 걸어가자, 설희가 눈치를 보더니 이야길 한다.
“응, 알았어. 방심하지 않을게.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 꿈같은 걸 꾸었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내 얼굴로 변했어.”
“어어? 그거 재능 흡수하는 과정이거든?”
“응? 그게 이렇게 여러 개가 된다고?”
“헐, 하나가 아니었어?”
“응, 4명이 연속으로 나오던데?”
“너, 재능을 전에도 얻었을 거 아냐?”
“아니, 나 처음이야. 재능이 그리 쉽게 얻어질 리가 없잖아. 우리 엄마도 30년간 해서 3개 얻었다던데?”
“헐, 난 쉽던데? 아 그리고 이건 악귀들 재능이야.”
“잉? 악귀도 재능을 준다고? 아 그래서 4개나…. 나 에너지도 받았거든? 그럼 이게 악귀 거네? 응? 그런데 순수한 기운이던데?”
“잠시만 생각 좀 해볼게. 나도 뒤죽박죽이야.”
노스님이 되돌아오자, 차를 타고 건곤암으로 향했다.
설희는 4명의 기억과 재능을 한 번에 받아서인지,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그래서 뇌가 쉬고 싶어서, 잠이 들게 된 것이다.
태월은 오는 내내 오늘의 현상을 분석해보느라 말이 없었다.
노스님은 태월이 재능을 되새기느라, 조용하다고 여기고 있었고.
‘재능이 전이된 걸로 보면, 유일한 가능성은 신체접촉인데? 악귀의 에너지가 깨끗하게 바뀐 거면, 도깨비 문신의 작용일 거고.
그럼 도깨비가 먹은 후에 걸러져서, 내 몸을 타고 설희에게로 재능과 에너지가 함께 갔다는 거잖아. 아 이런 식으로도 가능하구나.’
사실 태월의 추측은 반만 맞았다.
신체접촉 상태라서 전이된 건 맞지만, 태월과 설희가 같은 쌍둥이라서 그런 것이다.
영혼의 배열이 비슷하다 보니, 영혼 에너지가 부족한 쪽을 채우려 넘어간 것이다.
그 에너지를 따라 그 재능도 같이 간 거고.
세 시간 정도가 지나 건곤암에 도착했다.
자고 있던 설희를 태월이 깨웠다.
“다 왔어! 숙소에 들어가 더 자!”
“아하 함, 잘 잤다. 지금 자면 밤에 못 자.”
차에서 내린 설희는 기지개를 한 번 더 켠다.
“그런데, 그 원인은 알아냈어?”
“대충은….”
태월은 오늘 자신이 분석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 문신이란 게 진짜 특별한 거구나.”
“그런데 무슨 재능들이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