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생생상제가 깃든 암자
회사에서도 부동산 관련 전담 직원이 있었지만, 주로 강남 쪽에 집중하는 중이다.
관악산 암자는 개인용도로 구매하는 일이기도 했고, 회사 업무권역과는 차이가 있기에 손을 빌리진 않았다.
또 이런 일은 알음알음해서 소문나지 않게 거래가 되기에, 주변 부동산을 이용한 것이다.
“스승님 위치는 어때요?”
“흠, 좋구나. 서울 안에서 이런 자리는 찾기 어렵지. 관악산이 큰불의 기운을 가진 태조산이라고 할 수 있어.
우면산에서 강남으로 내려온 용맥의 기운이 역삼동과 학동을 지나기에, 거기서 몸을 틀어 잠원과 반포로 이어지지.
논현동 일대가 삼태기 공간이 되는 것이고.
그런 온화한 기운을 가진 우면산의 아버지 격이 관악산이야.”
“큰불의 기운이라면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조선 시대에 경복궁을 지을 때 이곳 관악산을 두려워했지. 큰불의 기운이 경복궁을 태울 것이라는. 그래서 경복궁 앞에 물의 기운을 가진 해태 조각상 둘을 만들어, 관악산을 노려보게 만든 것이지.”
”“그럼, 여기에 해태상이라도 있어야겠네요?”
“허허,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암자 주인에게, 이 땅의 과거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겠느냐?”
“흐흐, 다른 이야기보다 아이에게, 잠은 잘 오느냐 물은 것이 제일 기억이 나요.”
“이곳 암자는 특히나 암벽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바위는 불이요 기가 세서 예술가들이 살면 좋아. 그런데 저기 암자 가운데 우물이 있더구나. 그곳에서 나오는 물맛을 보니, 상큼하고 달아. 그리고 맑고 시원하더구나.
불과 물은 상극이라고는 하나, 비등할 때나 쓰는 말이고. 이곳은 부족한 것을 채워준 격이라, 오히려 더 좋다고 할 수 있어.”
“그럼 물의 기운이 강한 곳은 어떤가요?”
“물은 재물 격이라, 불의 화를 가둬서 재물을 보전하게 하지. 재벌이 나올 수 있는 터라고 볼 수 있어. 그러나 물의 기운만 있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야. 오히려 수맥이 흐르는 집터를 피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그럼 이곳이 관악산에서는 최고 좋은가요?”
“글쎄 어느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불기운이 강한 관악산에서 사람이 살 자리는 연주암이 유일하다고 하고. 그곳에 절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의상대사의 식견도 있긴 하겠지.
그러나 내 공부법으로는 그들과 다르다.
저기 경복궁 창건 때도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었어.
왜 같은 풍수사인데 생각이 다르겠느냐?
결국 정도전이 불의 기운을 막는 한강을 내세워, 이성계가 그의 손을 들어줬지만.
무학대사나 정도전은 관악산 전체의 형세로만, 왕성 터를 생각했을 뿐이야.
관악산 주봉에 위치한 연주암은 불의 기운을 피한 형세야. 그러나 이 암자의 터는 드물게도, 불 속에서도 물의 기운이 상극으로 가지 않고 조화를 택했어.
생생상제(生生相濟)의 묘리가 담긴 곳이야.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독특한 명당이 돼 버린 거지.”
생생상제는 삼기산의 신과 원광 대사가 맺은 약속이다. 또한 태월이 태어날 때, 생모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태월의 팔에 있는 문신도, 그것과 연관이 있다. 저승의 염라국에서 탈영한, 창고병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태월의 스승이 된, 풍수사 황서윤의 입에서 그 말이 다시 나오고 있다.
“아, 생생상제? 영원토록 서로를 구제한다는 의미네요? 뭔가 마음으로 ‘쿵’ 하고 와닿으면서, 영혼의 울림이 느껴져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그러냐? 하여간, 여긴 그런 묘리가 있는 담긴 땅이야.”
“가격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는데, 더 대화하고 올게요. 둘러보고 계세요.”
“그래,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면, 구매하는 게 나을 거야. 암자가 매물로 나오는 경우도 드물거든. 게다가 이 땅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없는 듯해.”
“네.”
태월은 부동산업자와 암자의 주지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갔다.
“어떻게 잘 돌아보았습니까?”
“네. 대략은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여기를 휴양 터 삼아 쓸려고 하는데, 주변시세보다 가격이 조금 비싼 듯해요.”
태월의 말에 암자의 주지가 나선다.
“그건 불상들하고 불교용품들 가격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의 이야기를 듣던, 부동산업자가 끼어들었다.
“주지 스님? 그럼 이 불구들 값을 빼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 넓혀서 가시려는 곳에도 이것들이 필요할 테고요.”
“거의 땅에 박혀 있는 것들이야, 가져갈 수는 없는 일이고. 사실 그것들이 오랜 세월 이곳에 있어서, 옳다구나 싶어 계약한 것입니다.
그럼 불상들하고 대웅전 안에 있는 것들만 가져가면 되긴 합니다.”
“그럼 얼마로 계산하면 될까요?”
“흠, 그럼 이 땅이 1천 평은 족히 되니, 평당 4만 7천 원에 하지요. 6천 원씩 빼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가져갈 수 있는 것만 가져갈 테니, 혹여 남기고 가는 게 있더라고 알아서 처리하셔야 합니다. 손이 부족해서지요.”
5천만 원이 있는데, 등록세 등등을 하고 중개료까지 내면 너무 간당간당했다.
“저기, 4만 5천 원엔 안 될까요? 일시불로 오늘 한 번에 드릴게요.”
한 번에 처리해준다니, 눈을 반짝 빛내는 암자 주지다.
“그 정도는 곤란하고요. 그럼 4만 6천에 해드리지요. 나중에 아시겠지만,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마음이 편안한 곳입니다.”
“음,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고, 바로 내려가시죠? 어머니에게도 시간 맞춰 오시게 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한 번에 계약이 바로 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부동산업자는 함박웃음이다.
이 산길을 왔다 갔다 반복하는 것도, 60이 넘는 그에겐 고역이지 않은가.
5,300만 원을 요구하던 암자를 4,600만 원에 사들이게 되었다.
관악산 아래 신림동 복덕방에서, 조민희의 참석 아래 계약은 일사천리로 끝내 버렸다.
계약서와 등기필증을 손에 쥔 태월은, 삼성동 땅을 샀을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아들이 갑자기 풍수지리인지를 배운다고 귀찮게 했다면서요? 애가 땅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더니 재미가 붙었나 봐요. 아이가 아직 어리니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괜찮습니다. 늘그막에 귀여운 제자도 얻어서 나쁘지 않네요.”
“건곤암 큰스님하고 막역한 지우라고 하시던데, 그래서인지 두 분 분위기가 비슷하세요.”
“음, 그런 땡…. 아, 허허 뭐 그리 볼 수도 있긴 하죠.”
땡중이라고 하려다가, 급히 말을 멈추는 풍수사 황서윤이다.
주말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태월은 관악산에 올랐다.
조민희도 계약할 때만 있었지, 이곳에 실제로 오는 것은 처음이다.
“오, 태월아, 이곳 풍광이 엄청 좋은데? 사방이 암벽으로 둘러 처졌고, 앞도 탁 트였고.”
“호호호, 난 그것도 좋지만, 여긴 이상하게 편안하고 기분이 좋네. 산이라서 그런가? 엄마가 동네 친구들하고 자주 와야겠다.”
“엄마! 저기 우물 보이죠? 거기 물맛이 엄청 좋아요.”
“어머? 그래? 물맛을 어디 시식해 볼까나.”
우물로 이동한 가족들은 한 바가지의 물을 돌려 마셨다.
“키야! 진짜 이거 기가 막히네?”
“어머, 진짜 시원하고 상큼해. 단맛도 나고.”
“다음엔 물통을 가져와서 담아가야겠어.”
물을 한 번 더 마시며, 담소도 나눴다.
“엄마? 저 이번에 배당금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얼마 정도 돼요?”
“응? 많이는 아직 안 나오지, 투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아마 4천 조금 안 될걸?”
“그럼 그걸로 암자 입구 쪽 땅을 사야겠어요.
여기는 대지라서 비싸지만, 입구 아래쪽은 그냥 임야라서 안 비싸다 하더라고요.”
“여기 관악산이 국유지 아냐?”
“거의 국유지긴 해도, 요 앞에 땅은 사유지라고, 저번 그 복덕방 아저씨가 말하더라고요.
지목도 임야치곤 작아서 사려는 사람도 없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암자에서 무단으로 텃밭처럼 썼다더라고요.”
태월이가 산 암자 터는 뒤쪽과 좌·우측이 전부 바위다.
그리고 탁 트인 앞쪽이 남쪽을 보고 있는지라, 그쪽으로 난 땅을 말하는 것이다.
며칠 뒤 그 땅 4천 평은 평당 8천 원에, 3,200만 원에 배당금으로 사 올 수 있었다.
등기까지 마치니 태월의 수중엔 3백만 원이 남았다.
“그런데 여기 창고에 잡다한 것이, 진짜 많네요? 삼십 년이 있었다더니, 그동안 교체된 걸 여기다 두었나 봐요.”
“허허, 뭐 세월의 흔적이 많긴 해도, 그 나름 꾸미는 재료로는 손색이 없지 않냐.”
스승과 함께 이 암자에서 공부할 계획이다.
앞으로 여기 암자는 시간 나는 대로, 손 볼 생각이다. 그래서 창고도 확인해보는 중이고.
큰 전각 하나와 그보다 작은 전각 한 개, 그리고 객방 네 개와 창고 두 개였다.
그리고 암자였던지라, 곳곳에 석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객방 중 제일 큰 방을 공부방으로 만드는 중이다.
건물이 오래된지라 땅값만 계산되어, 그나마 저렴하게 매입이 된 것은 태월에겐 행운이다.
태월은 새로 지을 생각은 없었고, 그 오래된 건물을 보수해서 유지할 생각이긴 하다.
난곡마을의 그 오래된 뒷집 두 채는, 비어있던 터라 저렴하게 매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집들도 추가로 협상하여, 적당한 값에 셈을 치렀다.
황서윤은 자기 아들과 정분이 난, 그 옆집 아낙과 동거를 허락해줬다.
그래서 주거공간을 합치기로 함에 따라, TW 투자&개발에 매입된 주택과 맞물려 신축공사를 하기로 합의를 본다.
건축비용을 회사에서 무이자 장기 분할로 해주려 했으나, 황서윤은 부담이 된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선산의 담보가 은행에서 통과되어, 그 돈으로 전부 해결할 수 있게 되어서다.
총 10채가 된 땅에 5층짜리 저층 아파트를 짓기로 하였다.
그나마 뒷집 매입이 완료되어, 옆길 도로를 쓸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들? 이참에 작은 건설사 하나를 매입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네? 그걸 왜요?”
“작게는 주택들도 짓고, 크게는 연립이나 저층 아파트도 지을 일이 많을 텐데. 그리고 우리가 매입한 건물들도 자주 보수해야 하는데.
그 돈도 만만치 않거든.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가 보수도 하고.
또 직접 지으면, 그만큼 더 튼튼하고 남는 것도 많지 않겠어? 그렇게 경험 쌓으면 더 큰 일도 할 수 있는 거고.”
“세금 줄이려고 시작한 일이 커지네요? 지금 사업이 적성엔 맞으세요?”
“처음엔 자신이 없었고, 남들 하는 거를 지켜만 봤는데. 지금은 의욕이 넘쳐. 진작 뭐라도 해볼 걸 하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도 되더라.”
“그럼 해보세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오래 산다고 하더라고요.”
“호호호, 우리의 대주주가 승인했으니, 이제 한번 제대로 해봐야겠네. 그리 걱정하는 눈으로 볼 필요는 없어. 작은 건설사를 사들여서 키워나갈 생각이니까.”
“흐흐, 알았어요. 응원할게요.”
“자, 그럼 면접을 보러 갈까? 건설사 몇 군데와 만날 예정이야. 아들이 면접관이야!”
“네? 아니 그걸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