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풍수사 스승이 생기다
양동이 물이 최석준을 덮쳤다.
태월도 옆에 서 있던 관계로 소량이긴 하지만, 왼팔 옷이 젖었다.
“여기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또 쳐왔냐?”
“이보시오! 집 찾아온 사람에게 이게 무슨 행패요?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런 허드렛물을 끼얹는 거요?”
“으잉? 어제 온 그 종자들이 아니야?”
노화된 대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며, 6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고개를 내민다.
“아니,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그러니까 하는 말이 아닙니까? 초면에 이게 무슨 황당한 경우입니까?”
“아, 진, 진짜 미안혀! 어제 그 잡놈들인 줄 알고 그랬네. 잠, 잠깐만 기다려 수건이라도 좀 가지고 나올 테니까.”
“그건 조금 이따 하시고, 여기 황서윤이란 분이 계십니까?”
“으잉? 청년이 우리 아버지를 어찌 알아?”
“아, 바로 찾아오긴 찾아왔네요.”
그 아들이란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최석준이, 옆에 있는 태월을 쳐다본다.
“아저씨, 제가 그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건곤암 큰스님이 소개해 주셨거든요.”
“헐! 그, 그 큰스님? 아니 그분은 왜.”
“할아버지는 어디 나가셨나요?”
꼬맹이가 대답은 안 하고 자신의 아버지만 찾는다. 괘씸한 생각에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불퉁하게 답한다.
“저 아래 대폿집에서 술 한 잔 드시고 오려나 보네. 근디 꼬맹이가 어른이 묻는 말엔 답을 안 하고, 지 용건만 말하네?”
“아, 죄송합니다. 큰스님이 편지를 써주면서, 직접 전해주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셔서요.
큰스님이 그리하라시길래….”
큰스님 이야기가 다시 나오자, 더 따지진 못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럼, 여기서 좀 기다려. 한 삼십 분쯤이면 올라오실 거여. 청년도 들어오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마당에 허름한 평상이 펼쳐져 있다.
집은 오래되어 판잣집까지는 아니지만, 시멘트로 여기저기 보수하듯이 발라져 있다.
그런 집이 옆에 한 채 더 있는 걸 보니,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 같았다.
지붕은 낡은 회색 슬레이트로 씌워져 있다.
군데군데 슬레이트 조각이 얹혀 있는 것으로 보아, 저런 식으로 보수를 해온 것 같았다.
석면 덩어리라는 불리는 그 슬레이트를….
최석호는 한쪽 손에 들었던 쇼핑백을 평상 위에 올려놓고는, 겉에 묻은 물을 털었다.
그 아저씨가 수건을 가져다주자, 최석호는 남방을 훌러덩 벗고는 몸을 닦았다.
남방은 마당 수돗가에서, 대충 물에 몇 번 복작거리다 건져 쥐어짰다.
그걸 탈탈 털고는 빨랫줄에 넌다.
8월 말의 대낮이라 햇빛만으로도 금방 마를 것이다.
아저씨는 그 광경을 조금 지켜보더니, 안으로 들어가 반팔 티셔츠 하나를 꺼내온다.
“이거 보기엔 이래도, 어제 빨래해놓은 것이라 깨끗은 할 거여. 마를 때까지 이거라도 입게.
그래도 그게 비싼 거여. 나이키라고 아남?”
그런데 마크가 조잡하고 영문자 하나가 다른, 오리지널 시장표 짝퉁이다.
“아저씨? 이건 나이키가 아니라 나이스인데요? NICE.”
“흠흠, 뭘 또 그리 세세히 따져. 나이키라고 생각하고 입으면 되는 거지.”
빨래가 거의 말라갈 무렵, 기다리고 있던 황서윤이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얼굴이 불그스레한 게, 낮술 한잔 걸친 듯했다.
“아버지? 여기 손님들 오셨네요. 건곤암 큰스님이 보냈다고 하던데.”
“응? 그 양반이 웬일이지? 손님을 보내게.”
“안녕하세요. 박태월입니다.”
“아하, 자네가 그 꼬마 화가군. 건곤암 적호도는 잘 봤네. 묘한 기운이 어려있더군. 아주 놀랐었지.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태월아? 난 여기 평상에 있을게.”
“아, 그러실래요? 그럼 들어갔다 올게요.”
방 안으로 들어오니 전체적으로 썰렁한 게, 이불 한 채와 좌식 서탁 하나가 전부였다.
그걸 살피는 태월을 보고는 빙그레 웃는다.
“깔끔하지? 여기가 내 집도 아닌데, 다른 게 있을 이유가 있나? 그래 여기는 어쩐 일인고?
화공에게 내가 뭘 해줄 일도 없을 터인데.”
태월은 품에서 황색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잠시 겉봉을 쳐다만 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편지를 꺼내 읽는다.
“옛날에 박치곤이와 함께 어울려 선인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닐 때가 있었지.
그때 지나가는 말로, 후에 내가 가진 것을 전해줄 이가 내 옆에 없다면….
그에게 그 적임자를 구해봐 달란 소린 했었지. 아니, 그렇다고 그때가 언젠데, 인제 와서 이 봉투를 내밀어?”
“저, 저기 박치곤이란 분이 누군데요?”
“헐, 네 스승이 자기 함자도 안 가르쳐주더냐? 하긴, 스님이 속세의 이름을 남겨 뭐할꼬.”
“아, 그래도 알게 됐으니 좋아요.”
태월의 말에 피식 웃어준다.
“네게 음양오행의 공부를 전하라고 하는데, 어린 나이라서 잘 따라올지 모르겠구나.”
“흐흐, 열심히 할게요. 이제 절을 하면 되나요?”
“응? 그걸 왜?”
“스님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라던데요?”
“헐, 완전히 내 코를 꿰겠단 심보군.”
수락의 말도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태월은 넙죽 절을 아홉 번이나 해버렸다.
“헐, 요즘 누가 구배지례를 한다고? 그 땡중에 그 제자네.”
풍수사 황서윤은 얼떨결에 꼬마 제자를 들이게 되었다.
“그런데 네 일행인 듯한 청년은 왜 빨래를 해서 널어놨느냐?”
“아, 물벼락 맞았거든요. 그 아저씨한테서.”
“엥? 아니, 그놈은 왜 그랬는데?”
자신이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자, 황서윤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끌끌 찬다.
“그런데 지붕을 보니 많이 낡아, 비 오면 새겠던데 괜찮나요?”
“저런 지붕은 고쳐도 몸에 안 좋아. 완전히 뜯어서 없애 버려야지. 아니지, 집이 문제가 아니라, 저놈의 정신머리를 뜯어고쳐야지.”
“크크, 스님 할아버지가 스승님이 개구쟁이 고치러 갔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허 참, 별걸 다 이야길 했군. 이 집도 집이지만, 저 옆집에 혹이 하나 더 있어. 말년에 이 무슨….”
답답해서 낮술을 한 듯 보였다.
태월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문을 열고 최석준에게 눈짓을 보냈다.
평상 위에 놓여있던 쇼핑백을 들고는, 태월에게 가져다준다.
“저 이거 약주인데, 안동소주거든요.”
“응? 내가 그 술을 좋아하는진 어찌 알고?”
태월이 일어나서 방 한쪽에 놓여있던 서탁을 가운데로 옮긴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쇼핑백에서 술과 모둠전을 꺼내서 올린다.
“허허, 인제 보니 그 땡중이 알려준 거군.
내가 좋아하는 안주까지 맞춘 거 보니.”
땡중 타령을 하면서도, 태월이 차리는 술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설마, 한 병만 가져온 것은 아니겠지?”
“두 병인데요?”
“허허, 고놈 참, 하는 짓이 마음에 드는군. 자, 한 잔 따라봐라.”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고, 두 병째 술을 반쯤 마셨을 때 취하셨는지 사연을 이야기했다.
어린 태월에게 이야길 한다기보다는, 넋두리 같은 혼잣말을 했다.
아들이 있는 이 집은 원래 아들의 친구가 가지고 있던 집이라고 했다.
그 친구가 장사를 시작했는데, 돈이 더 필요하다며 집을 담보로 아들에게 빌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 연락도 없이 사라졌고, 이 집을 떠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집 주인이 사채까지 빌려 쓴 거란다. 그래서 그 사채업자 직원들이 들락댄 거고.
아직 명의를 아들 이름으로 바꾸지 않았기에, 그 사채업자들이 이 집에 권리행사를 하려 한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옆집의 혹은 뭔데요?”
“허허, 옆집에 혼자 사는 청상과부가 하나 있는데, 아들놈이 여길 못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거더라고. 정분이 났더라.
그런데 또 떠나는 거도 쉽지 않아. 알고 보니 아들놈이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친구에게 빌려준 거더라.
내가 갚아주려고, 선산이라도 담보 잡으려는데. 은행에서 며칠 늦어지고 있네.
나도 이참에 여기다가 집을 사서 정착할까 해. 다녀볼 곳은 다 다녔고, 얻을 건 더 없으니.”
도시 쪽 임야를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임야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여기 지붕이 석면 덩어리라 건강에 안 좋다면서요?”
“대신 여기는 지세가 좋아. 그래서 싹 허물고 제대로 지으면 괜찮기도 해. 물론 차가 제대로 못 들어오니 집짓기야 쉽지 않겠지만. 정 안되면 지붕만이라도 다 바꿔야지.”
“올라오다 보니 빈집들도 있던데요?”
“이 집 뒤쪽도 빈집이 두 개야. 옆집까지 해서 젤 오래된 집들이 붙어 있는 셈이지.
뒷집들 옆으로 그나마 길이 있는데. 그 집들을 지어야 이 집을 손댈 수 있어.
이 집 혼자선 뭘 하질 못해, 여긴 맹지잖아.
뒷집을 누가 사서 새로 짓든가 해야 하는데, 여기 판자촌에 그럴 여력이 누가 있겠어.”
“뒷집 뒤가 관악산이라서 공기는 좋겠어요.
옆길로 가면 산 말고 뭐가 나오나요?”
“그길로 가면 15년 전에 개교한 난곡국민학교가 있지.”
명당이라 불리는 관악산이길래, 관심이 더 커지는 태월이다.
“여기 땅값이 비싼가요?”
“그럴 리가 있나? 여기 난곡마을은 서울에서도 젤 저렴한 곳 중 하나일걸?
너 그런데 왜 그리 땅에 관심이 많냐?”
“저 땅도 좀 가지고 있거든요. 그림 팔아서 좀 샀어요. 여주 신륵사 주지 스님에게도 받은 3만 평도 있고요. 강남역, 삼성동, 잠실 쪽에도 그림 팔아서 샀거든요. 그리고 엄마가 부동산 개발회사를 하고 있거든요.”
“하하, 그랬구나. 신륵사 이야긴 나도 들었다. 건곤암에도 있다던데?”
“아, 네. 뭐 그건….”
“이곳 난곡마을의 땅을 좀 사서 꾸며 보려고?
뭐 나쁘진 않은 것 같구나. 여긴 이대로는 주거 환경들이 너무 열악해. 진짜 땅 주인들은 다른 데서 살고.”
음양오행에 관한 대화는 하나도 없고, 부동산 이야기만 오고 가는 사제 간이다.
땅의 지세를 이야기 한 것이니,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 관악산에는 수십 개의 작은 암자들이 산재해 있어. 종파를 가진 곳도 있지만, 개인 사찰이거나 기도원 같은 곳도 있거든.
몇 년 전에도 매매가 있던 걸 보니, 거래가 가능한가 보더구나. 사놓으면 일반 부동산 오르는 것에야 미치지 못하겠지만. 정신 수양하는 데는 좋지 않겠어?”
“흐흐, 그건 생각지도 못한 거네요.
와 굉장히 좋을 것 같긴 해요.”
신림동을 뒤로하고 태월은 집으로 돌아왔다.
조민희에게 자신에게 남은 돈 5천만 원으로 관악산 암자를 사보겠다 했다.
“거기가 명당이라 하니, 휴식처로 쓰려고. 별장식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흠, 뭐 돈이야 안 되겠지만, 나쁘진 않아 보이네. 어차피 네 돈이니, 네가 알아서 해.”
“엄마, 땡큐!”
생각보단, 그리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곡마을의 투자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다.
적극적으로 시장 검토를 해보겠다는, 긍정적 답변도 들었다.
며칠이 지나 하교 후에,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부동산에서 온 전화였다.
“암자가 나왔다고요? 기도원은 아니고요? 크기가 얼마나 하길래 가격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