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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39화 (39/250)

39화. 갈비찜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

청와대에서 걸려온 전화로 인해, 태월은 한국예술협회 협회장을 만나러 갔다.

“안녕하세요. 협회장님!”

“하하, 태월 군, 어서 와요. 며칠 후에 올 거 같더니, 일찍 왔네요.”

“아,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요.”

“하하, 일단 앉아요. 저번처럼 주스?”

“네, 흐흐.”

주스와 커피를 한 잔 타와서는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여직원이 있는데도, 직접 타주는 걸 즐기는 윤지훈이다.

“이제 이야기를 해봐요.”

“어제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집에 전화 받는 사람이 없으니, 어머니께 연락하려고 회사로 했나 보더라고요.

훈장 이야길 하면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꼭 들어가야 하나요?”

“서훈을 청와대에서 이야길 해요? 문화훈장은 문교부 장관이 수여하게 되어 있는데?

대통령 각하께서…. 에이, 우리끼리 있는데 각하는 무슨. 하여간 대통령과 관련된 훈장 중에 문화예술과 관련이….

아, 조금이나마 연관을 짓는다면, 국민훈장이긴 한데….”

“문화훈장이랑 다른 건가 봐요?”

“국민훈장이라고 하여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서 공적을 세워야 주는 훈장이지요.

국민의 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긴 해요.”

“응? 문화와 예술은 들어가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보통 우리 쪽은 문화훈장을 최고의 명예로 보는 거였는데.

지금 대통령이 사실 막무가내잖아요? 귀에 걸면 귀걸이인….

태월 군? 어디 가서 내가 이런 말 했다고 하지 말아요.”

막상 말을 하고 나니, 신경 쓰였는지 목소리를 낮춘다.

“흐흐. 제가 이야기할 데가 어디 있다고요.”

“어차피 준다는데 굳이 안 받겠다고 버텨도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특히 이번 청와대는요.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겠지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태월이다.

“뭐, 인심 쓰듯이 석류장이나 목련장쯤 줄 수도 있긴 하네요.”

“응? 무슨 된장이나 장조림 이름 같아요.”

“하하하! 국민훈장 등급이 5등급인데, 1등급인 무궁화장부터 모란장, 동백장, 목련장, 석류장으로 이어지지요.”

학살을 자행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평가받을, 대통령이라 생각하는 윤지훈이다. 군사정권의 주역이지 않은가.

괜히 그런 대통령에게, 훈장 거부라는 빌미를 줬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했다.

그래서 태월을 잘 다독이려는 것이다.

“문교부든 청와대든 일단 준다는 것은 다 받아요. 거절하면 아주 피곤한 일들이 부모님에게 생길 수도 있어요.

이 시대 정부는 그런 게 겸양이 아니라, 시건방지다고 평가해버리거든요.”

“네, 그렇게 할게요.”

“하다못해 상을 받아도 순서대로 받아야 할 거예요. 대통령, 문교부 장관, 우리 협회.

쓸데없는 권위를 내세우는 군사정권이니….”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이는 태월이다.

“온 김에 점심 먹으러 갈까요? 요 앞에 태월 군이 좋아할 만한 초밥집이 있거든요.”

“네, 흐흐.”

태월의 식성까지 파악하고 있는 윤지훈이다.

***

결국, 조민희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했다.

방문 예정 명단에 올라와 있었기에,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쳤다.

부속실에서 경호실로, 경호실에서 다시 청와대 외곽경비를 담당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30경비단에 연락이 이어지는 통과 절차다.

1984년에 수도경비사령부에서 수도방위사령부로 증·창설된 탓에 더욱 삼엄하였다.

비서실 직원을 따라 들어간 곳에서는 6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

점심 식사 초대라는 명목으로 온 것이기에, 둘은 비서실 직원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아아, 오느라고 수고했어요. 갈비탕 괜찮지요? 갈비찜도 있으니, 그거로 합시다.”

“네, 네….”

이 대머리 대통령은 외골수 군인 출신으로 육식을 좋아하는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갈비탕, 갈비찜, 갈비구이, 소고기 편육, 양지머리를 주로 즐긴다.

‘갈비찜은 아무도 안 먹네? 8살에 맞게 열심히 먹어줘야지.’

조민희는 갑자기 아들이 갈비탕을 먹다 말고, 갈비찜을 개인 접시에 옮겨 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장내 분위기가 경직되어 그러잖아도 좌불안석인데, 아들은 잘도 먹는다.

조민희가 태월에게 살짝 눈치를 주자, 배시시 웃기만 하고 입에 묻혀가며 하나를 더 뜯고 있다.

“하하하, 태월 군은 갈비를 엄청나게 좋아하나 보네요. 나랑 취향이 같은 걸 보니, 공감대가 생겨서 기분이 아주 좋아요.

어이 김 비서관? 여기 두 분이 나가실 때, 갈비 상자 좀 넉넉히 챙겨주도록 해.”

“네! 각하!”

“그리고 거기 문교부 장관! 금관 문화훈장이라고 했지? 그거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줘야 하니, 날짜 잘 잡아. 명색이 이태리 예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는데! 그것도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로 처음이라며? 국민훈장 동백장을 주려 했는데. 무궁화장으로 바꿔야겠어.

그 정도로 나라를 빛냈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더구나 나랑 식성도 같잖아!”

“네! 각하! 그리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갈비찜 열심히 먹었더니, 훈장 등급이 바뀌었다.

장 차관급 몇몇은 황당해했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간 큰 위인은 없었다.

“아유, 아들은 간도 크다. 거기서 갈비찜을 덥석덥석, 그렇게 맛있었어?”

“뭐, 어때? 나라도 먹어야지. 음식 버리면 안 되잖아. 그런데 갈비 상자라는 게 저렇게 커?”

갈비 두 상자를 차에 싣고 있는걸, 구경 중인 태월이다.

올 때는 택시로 왔지만, 갈 때는 청와대 차량으로 가게 되었다.

일주일 후에 기사를 둘 예정이라, 택시 탈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조민희가 사업에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 집안일도 소홀히 돼서 시간제 가정부도 두었다.

일주일 후, 태월은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 받고, 다음 날은 금관 문화훈장을 문교부 장관에게서 받았다.

또 다음 날은 한국예술협회 협회장상을 받았고.

개학이 되자 학교에서는 교장에게서 표창장이란 이름으로 학교장상을 받았다.

그래서 박승철이 상복이 터진, 아들에게 별명을 하나 지어 주었다.

상상 초월이 아닌 상상 태월로….

***

주말이 되자 건곤암으로 안부 인사차 갔다.

오랜만에 뵙는 것이기도 했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허허, 안 보는 사이에 키도 이만큼이나 컸구나. 그래 외국에서 볼만한 것이 많더냐?”

“볼 것은 많은데, 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부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비엔날레에서의 그랑프리를 받은 것. 그리고 그림 두 점을 크리스티 경매에 올려 돈을 벌게 된 이야기도 했다.

“허허, 그림에 기운을 넣는 게 더욱 발전했구나. 앞으로 계속 그림에 매진할 생각이냐?”

“아뇨, 그림은 당분간 쉬고, 다른 걸 배워보고 싶어요.”

“응? 어떤 걸?”

“풍수지리를 배울 수 있을까요?”

“아니, 그건 왜 또?”

“흐흐, 나중에 다시 그림 그릴 때 써먹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들더라고요.

그리고 좋은 땅을 고를 때도 필요하잖아요.”

태월의 모친이 부동산 개발 쪽 회사를 차려, 사업한다는 이야긴 듣긴 했던 터였다.

“풍수지리를 단순하게 묫자리나 집터를 잘 보는, 학문으로만 생각해선 안 돼.

그 근원은 음양오행에 있어.

정 배우고 싶으면 음양오행으로 기반을 다지도록 해라. 나머진 다 따라가게 돼 있어.”

“지관이란 게 땅의 길흉을 보는 게 아닌가요?”

조선 시대 관직의 이름인 지관(地官)은 국가 기술직 공무원 시험을 치른 영재들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양반들이 궁여지책으로 지관이 되기도 했다.

서얼 향사 지방 향반 등 지금으로 따지면, 공무원 1급으로의 신분 상승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3년에 한 번 시험을 쳐서 단 2명만이 선발됐다. 이들의 나이는 평균 16~19세였다.

기록상 최연소 합격자는 11세로 나온다.

오늘날 풍수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뭔가 어울리지도 않고 어색하다.

기술은 대를 이어 교육되고 유산으로 대물림된다. 이들의 소속은 음양과, 즉 운과다.

“그건 고려나 조선에서 과거를 통해, 풍수사에게 관직을 내려서 지관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엄밀히 말하면 풍수사라고 해야겠지.”

“풍수사요? 그런 분들이 있었나요?”

“고려 수도였던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 그 장소를 잡아준 분이 무학대사이셨지.”

“아, 들어봤어요. 왕십리 이야기도.”

“그 외에도 조선 건국 주역인 정도전과 임진왜란의 승병과 ‘서산대사 비결’로 유명하신 서산대사 휴정.

그리고 명종 때 ‘남사고 비결’을 남긴 남사고, 그리고 재상으로 추앙받던 맹사성.

토정비결을 남긴 이지함 그리고 정두경, 성유정, 윤참의, 박상의 등이 학자이며, 풍수사였지. 스님과 유학자들을 망라한 풍수사가 많았단다.”

“토정비결은 들어봤는데, 서산대사 비결과 남사고 비결은 뭔가요?”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라고 봐야겠지.

깊이 들어가면 좀 다르긴 해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단다.”

“그럼, 이제부터 스님 할아버지가 음양오행 가르쳐 주실 거죠?”

“나야 너에게 기초는 가르쳤지 않느냐?

그리고 정 배우고프면, 달통한 분에게 배우려무나. 난 음양오행의 공부가 깊지 않단다.”

“그, 그럼 누구에게?”

“허허, 녀석, 내가 소개를 해주마. 잘 말해 줄 터이니, 찾아가면 박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공부가 쉽지는 않을 거야. 느긋하게 배우도록 해라.”

“학교에 다녀야 해서 주말만 배울 수 있는데, 혹시 지방에 계시거나 하진 않나요?”

“원래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긴 하는데, 요즘 아들이 사고 쳐서, 교육한다고 서울에 있어.”

“흐흐, 아들이 개구쟁이인가 봐요?”

“음, 좀 그렇긴 하지.”

“아들이 중학생쯤?”

“엉? 아닌데, 지금 아들이 환갑이야.”

“네??”

일요일 아침에 그 풍수사 할아버지가 있다는 신림동으로 갔다.

태월은 경호원 겸 기사인 최석준과 함께 신림동 언덕에 있는 난곡마을인 판자촌으로 왔다.

최석준은 원래 박승철의 태권도 제자였는데, 경호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다가 모함을 받고 퇴직당했었다.

철부지 아가씨를 경호하는 일이었는데, 난잡한 행동을 말리다가 오히려 성추행으로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그 철부지 아가씨는 불편해진 경호원을 그런 식으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충격을 받고 두문불출한다는 제자 이야기를 들은, 조민희가 직접 가서 다독여 데려온 것이다.

“어? 여기쯤인 거 같은데?”

메모지를 확인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최석준이다.

“형? 빨간 대문집이라고 했어요.”

“어, 그럼, 저기 저 집인가 보네.”

붉은 페인트칠이 반쯤 벗겨진 철 대문이, 녹물 자국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초인종도 보이질 않아, 최석준이 그 문을 두드리며 목소릴 높였다.

-탕탕탕! 탕탕!

“안에 계십니까? 누구 안 계세요?”

안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문 위로 양동이가 솟아올랐다.

-촤아악!

“헉! 이런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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