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판타지 아티스트
10분 정도를 쉬자, 체력이 많이 회복되었다.
투명해파리의 영혼 구슬을 흡수한 뒤로, 태월의 문신에 변화가 있었다.
도깨비의 송곳니 4개가 이제는 다 푸른색으로 변하면서, 악귀 흡수능력도 커졌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나 몸이 당장 느낀 건, 체력이 웬만하면 지치지 않는다는 것.
키가 10cm 정도 커졌고, 몸이 단단해졌다.
그런데 오늘은 몰입도가 과했는지, 체력이 2시간 만에 빠르게 방전된 것이다.
“아들. 이제 괜찮아?”
“응, 이젠 멀쩡해. 이제 나가서 남은 순서를 마쳐야겠어. 지금 나가는 거죠?”
“하하, 오늘 그림을 보는 눈이 한 단계 격상된 기분입니다. 일단은 나가도록 하죠.”
휴게실을 나와 공연장 단상 쪽으로 걸어가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전해졌다.
관객들을 향해 다시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또 박수가 쏟아진다.
사회를 맡은 알베르토가 박수 소리가 잦아지자, 마이크를 들었다.
“많은 관중 여러분! 내 옆에 있는 태월 군은 보시다시피 천재 화가입니다.
오늘 직접 보게 된 작화 공연이 어땠습니까?
만족하십니까?”
“네! 최고입니다!”
“미치겠어요!”
“그런데 제목이 뭡니까?”
“아 거기 CNN 기자분이군요. 저도 마침 그걸 물으려던 참입니다. 작가님! 이 그림의 제목이?”
“제목은 ‘엄마와 나 그리고 꿈’입니다.
번안 제목으로는 ‘Mom and I, and dream’입니다.”
“네? 아기와 고양이는 나와도 엄마는 안 나오잖습니까?”
“여기 있잖습니까?”
태월이 살구색 배경 바탕을 가리켰다.
“어? 저건 바닥이나 배경 아닙니까?”
“아닙니다. 엄마의 배 위에 아기와 새끼 고양이가 있는 상태입니다. 바닥이나 배경으로 보이는 부분이 엄마의 배 부분입니다.”
“헉! 전혀 생각 밖의 반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바닥이 진짜 맨살이 맞네요?
피부 결도 있고 굴곡도 있고요.
그리고 고양이와 아기 사이에 구멍이 뭔가 했더니 배꼽이네요?”
“네, 엄마 배 위에서 놀고 있습니다.”
“하하하, 갑자기 떠오르는 유명한 책이 있네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거기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같은 반전이네요.
어른들의 눈으로만 보니, 그게 배경이고 바닥이었네요. 여러분 그렇지 않나요?”
엄마의 배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 객석이 시끄러웠다.
“자 이제 기자분들 다섯 분만 선정해서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꼬마 천재분은 지금 많이 지쳤으니, 간략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림의 제목을 물었던 그 기자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CNN의 해리입니다. 그림 속 나비와 고양이는 어떤 의미입니까?”
“나비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의미고, 고양이는 자신도 날고 싶으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들입니다.”
“헉! 니르바나의 깨달음을 그림으로 그렸다는 거군요. 지금 7살 아닙니까?”
“제가 이거 외에도 같이 출품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이 ‘아직도 가야 할 길’입니다.
‘I still have to go’란 제목이죠.”
“자, CNN 기자님의 질문은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자 다음 분?”
안경 낀 여자분 하나가 손을 들고 있었다.
“네, 거기 푸른 안경테 끼신 분! 뉴욕타임스인가요?”
“감사합니다! 뉴욕타임스의 아멜라입니다.
고양이와 나비들의 색이 달라지는 것은, 어떤 현상입니까? 기술적 기교인가요?”
사회를 보던 알베르토가 그 말을 잠시 끊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질문이 이상합니다.
검은 고양이와 검은 나비가 왜 색이 변합니까? 다른 질문을 해주세요.”
“호호호! 사회자님? 잘못 판단은 사회자님이 하시네요. 여기 사람들의 45%가 얼룩 고양이로 보이고, 40%는 또 검은 고양이로 보이고. 나머지 15%가량은 하얀 고양이로 보이는데, 설마 모르셨나요?”
알베르토는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기도 전에 휴게실로 갔었기에, 그 상황을 알지 못했었다.
아멜라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고 있다.
그리고 먼저 제출한 작품에서, 소의 색깔이 그랬었기에 이해는 빠르게 되었다.
‘우연한 빛의 반사 같은 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제야 태월에게 특별한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림을 한 번 더 힐끗 쳐다보며, 일단 마이크를 태월에게 넘겼다.
“색의 파장 즉 에너지를 제가 잘 느낍니다.
그걸 그림에 담아 보려 했더니, 결과가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현상은 다른 작품인 ‘I still have to go’에도 나옵니다.
거긴 소의 색이 바뀝니다. 아 참고로 말씀드리면, 검은색으로 본 분들은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몸이 아픈 분입니다. 꼭 병원 가서 검진을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나머지 색은 건강한 분들입니다.”
“헛! 저도 검은색인데…. 그, 그걸 증명할 수 있나요?”
“저의 어머니도 검은색이었고, 그로 인해 바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진 결과 초기 위암이었습니다. 아 물론 지금은 수술로 완치되었습니다.”
객석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특히나 검은색으로 보였던 40%의 사람들에겐 심적 혼란이 더욱 컸다.
이때 기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든다.
“RAI TV의 사비나입니다. 제가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지금 객석에 계신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것이고요.
검은색으로 판단한 10명을 선별해서 병원에서 진단을 받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검사비는 저희 쪽에서 감당하겠습니다.”
RAI TV는 이탈리아 공영방송이다.
-짝짝짝짝! 짝짝!
여기저기서 환호와 박수가 나온다.
이에 더욱 힘을 얻은 사비나는, 알베르토와 눈을 맞추며 이제 어찌할 거냐 묻는다.
난감해진 알베르토가 원인을 만든 태월을 쳐다봤다.
태월은 고개를 끄덕여 도전을 받아들이는 형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알베르토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단 검은색으로 보인 분 중에서 아주 까맣게 보인 분들로 선정해야 합니다. 애매한 색은 스트레스 쪽일 수 있으니까요.”
사비나는 큰상관 없다고 여겨 받아들였다.
검사비가 좀 나온다고 해도, RAI TV가 가져올 이익은 훨씬 큰 것이다.
RAI TV의 카메라를 따라 십여 명의 기자들과 선정된 10명의 관객은, 방송국 버스를 타고 근처 종합병원으로 이동을 했다.
미리 연락을 해놨던 터라, 입원 후 금식부터 진행하였다.
내시경도 해야 하기에 꼭 필요한 조치였다.
혈액과 대소변을 채취하고, 8시간 금식 후엔 내시경을 진행했다.
1966년 미국의 Gwilym S. Lodwick이라는, 미주리대 의과대학 방사선과 의사가 있었다.
처음으로 흉부 X선 촬영 영상을 기반으로 한, 폐암 환자의 1년 후 생존 여부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이 당시엔 수작업으로 변수를 추출하고, 분석 통계처리를 하였기에 미진한 부분은 많았다.
1970, 80년대에 의료영상을 획득하는 장비인 CT(컴퓨터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 영상 시스템이 개발되어 임상에 사용되면서, 이를 이용한 컴퓨터 보조기술도 함께 진화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에도 유럽은, 내시경을 이용한 진단법이 보급되어 수술도 가능한 시기다.
종합병원답게 장비들은 갖춰져 있었고, 진단은 과장들로 이루어진 협력팀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스트레스일 가능성도 있기에, 정신의학과에서도 함께했다.
하나의 논쟁거리가 되어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이 방송은 실시간 중계되었다.
CNN, 뉴욕타임스 등이 앞장서서 홍보해준 결과다.
그림이 화면에 잡히고, 그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과 색에 대한 논란.
그리고 병원에서의 종합검진 등이 파장이 커짐에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논쟁이 이어졌다.
이 중에서 제일 신이 난 곳은 베니스 비엔날레 주최 측과 RAI TV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후 순위 수혜자는 CNN과 뉴욕타임스 그리고 이곳 종합병원이다.
카메라들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검진 결과가 나왔다.
각과 과장들이 카메라 앞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임시 협력팀의 발표 역할을 맡은 내과 과장 안토니오입니다.
10명의 환자 중 4명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이며, 탈모와 피부질환 그리고 소화기 질환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명의 간암 환자와 2명의 갑상선 저하증. 그리고 1명은 급성 폐결핵과 1명의 위암 환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1명은 AIDS입니다.”
검은색으로 봤던 사람 중에서, 제일 진한 색인 사람들을 데려왔기에 이런 상황이긴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70% 가까이는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림 하나로, 상대의 건강 상태를 안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 내용이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었기에, 시청자들에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다음 날부터 베네치아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베네치아 시민들도, 그 그림이 있다는 전시장으로 향한 것은 당연했었고.
특이한 건 그 당사자의 나라인 한국에선 큰 보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CNN 보도에서도 태월은 이름 대신, 동양에서 온 천재 화가 T.W. 라고만 나왔었다.
그리고 애칭을 Fantasy Artist라고 했고.
한국은 아시안게임이 9월부터 열리기에, 그쪽에 집중하는 탓도 있기는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사무국에서는 태월의 두 작품을 위해, 따로 200평 규모의 전시실 배치를 했다.
이유는 몰려오는 관람객들 때문에, 웬만한 장소로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마타리입니다. 오늘부터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알베르토 팀장님이 오늘부터 입원하게 되셨거든요.”
“네? 왜요?”
“그 검은색으로 본 분이잖습니까? 그러니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신장염이라 불리는 사구체신염이라는데, 면역기능에 이상으로 콩팥에 염증이 있다고 합니다.
일찍 발견되어 다행히 치유가 수월하다면서, 감사의 인사를 대신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하, 잘되었네요. 그럼 가볼까요?”
“오늘은 동쪽에서 열리는 공간예술 작품들로 안내를 하겠습니다.”
“호호호, 오늘도 마차를 타고 가나요?”
태월의 조민희와 함께 며칠째 비엔날레를 구경하러 다니고 있었다.
비엔날레 측에선 귀빈으로 여겨, 알베르토가 가이드를 했었다.
그리고 태월을 사람들이 유명세와 달리 몰라보는 것은, 그림과 병원에 초점을 맞춰서다.
물론 의도적으로 태월도 원했고, 알베르토도 나서서 시선을 돌려줬기 때문이고.
그래서 생방송 된 부분은 그림 두 점과 관객들 반응 그리고 병원뿐이다.
유럽 신문 한두 군데에, 그림 그리는 것이 나오긴 했어도 정면은 없었다.
그리고 질의 시간의 인터뷰 사진은 정보제공의 대가로 다 비공개로 돌렸었고.
일주일 후, 베니스 비엔날레 회화 부문 그랑프리상은 공동 수상작이 두 개 생겼다.
‘I still have to go’와 ‘Mom and I, and dream’였다.
트로피와 상장을 수여 받은 태월은 다음 날 베네치아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다.
그러나 일이 생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