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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34화 (34/250)

34화. 제42회 베니스 비엔날레

어떤 남자가 여자를 죽이려 한다는 아카의 말에 왼쪽 객실 503호로 뛰어갔다.

프런트에 알려줘서 상황을 설명하고 여기까지 오게 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일단 문을 두드려 진행을 먼저 막아야겠다고 여긴 태월이다.

-딩동딩동! 딩동딩동! 쾅쾅쾅!

급하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두드리는 소리에 안쪽에서 누군가 빠르게 나오고 있었다.

문이 한 뼘쯤 열렸을 때, 태월은 수박의 기술을 사용하였다.

문 안쪽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을 옆으로 밀어치며, 자신의 몸을 문 안으로 욱여넣었다.

그리고 중심을 잃고 휘청대는 남자의 옆구리를 손바닥을 갈겨주고 방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여자가 침대보로 가슴만 가린 채, 눈을 커다랗게 뜨고 놀란 모습을 하고 있다.

“괜,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데는?”

“어? 무, 무슨? 그런데 너 누구니?”

“위험하대서 구해주러 온 것인데요?”

“뭐? 누, 누가 위험해?”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 아파라, 어이! 꼬마 너 어디 무술이라도 배웠냐? 그리고 뭘 하는 짓이지?”

태월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뒤돌아서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워워! 일단 꼬마야 진정해라. 릴랙스….

대체 무슨 일인데, 내 여자친구를 구하러 왔다는 소릴 해대는 거야?”

“여, 여자친구요?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남자가 여잘 죽이려 하는 것 같아 뛰어 들어온 건데요?”

“뭐? 하하하! 이봐 소피아! 그러게, 내가 소리 좀 줄이라고 진즉에 말했잖아.

오죽했으면 이 동양 꼬마가, 흥분해서 내뱉는 소리를 비명으로 알아들었겠어?”

“호호호, 내 목소리가 그 정도로 컸다고? 이 호텔 방음이 너무 엉터리 아냐? 아유, 창피해….”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게 된 태월은, TV 앞쪽에서 꼼지락거리는 아카를 째려보았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경우야? 누가 누굴 죽이고 있다고?-

-어, 어? 진짜로 올라타서 여자를 괴롭히고 있었다니까! 여자가 비명도 질렀었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PC통신 연결망으로 현재 기술이나 문화에 대해 배우긴 했다.

그래서 남녀의 육체적 교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태월은 아카가 단지 장난으로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을, 영혼의 교감으로 알 수 있었다.

참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태월인 것이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옆방 502호에 투숙하고 있는 박태월이라고 합니다.”

2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은 피식 웃음을 한 번 짓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하하, 뭐 우리 소피아의 잘못도 있긴 하니, 받아들일게. 난 제로미라고 하고, 저기는 내 여친은 소피아.”

태월은 두 사람에게 각각 고개를 한 번씩 숙여서 사과의 의미를 보냈다.

“뭐, 불청객이긴 하지만, 온 김에 음료수라도 한잔하고 가. 궁금한 것도 있고.”

“네, 감사합니다.”

태월에게는 주스를 한 잔 따라주고는, 제로미는 맥주를 한 병 꺼내 마셨다.

“꼬마? 아, 태월이라고 했지? 그 수법은 대체 뭐야? 순식간에 일어나서 지금도 어벙벙해.

언제부터 수련했길래 그 정도야?”

“코리아의 전통 무술 중 하나예요.

배운 것은 2년 정도 되었어요.”

“이야, 대단하네. 그런데 여기 베네치아는 무슨 일로 온 거지? 혼자 옆방에서 투숙? 나이가 많이 어려 보이는데?”

“아, 아뇨. 어머니랑 같이 왔어요. 여기 나이론 7살이고요. 비엔날레의 회화 부문 참가자예요.”

“뭐, 뭐? 그럼 네가 화가라고? 이야, 7살? 진짜 천재 화가네? 하하하 소피아 들었어? 7살이래. 아, 우리 소피아도 화가 지망생인데, 너무 차이가 나네.”

어느새 옷을 입고는, 태월의 옆자리에 앉는 소피아다.

“어머, 진짜? 그 나이에 나라의 대표로 나올 정도면 상당하단 건데. 멋지다.

그런데 그림의 제목은 뭐야?”

“아직도 가야 할 길. ‘I still have to go’.”

“와우, 제목 한번 심오하다.

I still have to go. 흠흠. 이거 꼭 찾아서 볼게. 꼬마 천재의 그림이 너무 기대되네.”

태월은 커플과 헤어져 방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민희는 아직도 씻는 중이라, 태월의 요란했던 해프닝을 알지 못했다.

아카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사방을 기웃대며 다닌다.

-아카? 그러고 보니, 넌 성별이 뭐야?-

남녀 관계에 대해 또 실수할까 봐, 알려주려는 생각에 물어보는 것이다.

-성별? 나 그 단어 알아. 그런데 나도 성별이 있나? 아직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카는 그냥 봐도 성별이 모호하긴 했다.

아기 천사를 그려놓은 걸 봐도, 성별이 구별되지 않긴 하잖아?

-어쨌든! 아까 그런 것은 남녀 서로가 사랑해서 교감하는 거야. 또 그런 일로 호들갑은 떨지 마. 다행히 사과를 받아줘서 문제없었지. 잘못하면 큰 문제 생겨.-

-음, 사랑과 교감, 알았어. 똑같은 일이면 모른 척하고 용서해 줄게.-

-응? 네가 뭘 용서하고 말고 할 게 어딨어? 둘이 좋아서 사랑하는 건데?-

-음, 알았어. 눈감아 줄게.-

정보에 대한 것은 컴퓨터로 잘 배울 수 있었겠지만, 감정에 관한 건 아직 이해 못 하는 아카다.

“아들? 이제 들어가 씻어.

다른 집 아들은 국민학교 들어가서도 엄마랑 같이 씻는데, 우리 아들은 별걸 다 부끄러워해. 너 6살까지 엄마랑 씻은 건 기억나니?

아들은 나에겐 여전히 귀여운 아기야.”

“그거야 엄마가 자꾸 간지럽히니 그렇게 된 거잖아요.”

씻으러 들어가는 아들을 보며 피식 웃는다.

1년 반이나 떨어져 있던 시기로 인해, 함께 씻는 것을 어색해하는 아들이 속상한 그녀다.

그래서 그런지 같이 잘 때면 더욱 껴안고 자게 된다.

엄마의 부산스러움에, 아침에 눈을 뜨게 된 태월은 이상한 걸 보게 되었다.

-아카? 너 왜, 내 배 위에 누워있냐?-

-응? 아기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냐?

태월도 어제 엄마랑 배 맞대고 자던데?

그런데 태월도 아기야?-

-진짜 아기가 아니라, 엄마 마음이 날 아기처럼 여긴단 의미야.-

“아들! 일어났어? 아침부터 서둘러야지. 너 오늘 한국 작가분들과 만나야 하는 거 아냐?”

“네, 씻고 나올게요.”

이탈리아 맛집이라고 프런트에서 알려준 식당을 찾아 아침 식사를 했다.

카르파초와 파스타를 먹었는데, 해산물의 천국이라는 이탈리아의 요리에 걸맞게 맛은 꽤 있었다.

벽화를 그린 집들도 꽤 있었는데,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린 그라피티들이 꽤 귀여웠다.

민희는 그 그림들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두 장소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국가관이 열리는 자르디니와 본 전시장인 아르세날레다.

물론 베네치아(베니스) 곳곳에서 연계전시가 다양하게 열리긴 한다.

한국은 국가관이 없으므로 자르디니는 패스했고, 아르세날레로 민희와 태월이 이동했다.

‘아르세날레 디 베네치아’

1104년에 지어진 비잔틴 양식의 조선소이다.

지금은 전시회나 문화 행사, 박람회 등이 열리는 곳이다.

성과 벽들이 예쁜 곳이지만, 전시 본관은 외형적으로 대형 공장이나 창고 같은 느낌을 줬다.

“하하, 어서 오게. 말로만 듣던 꼬마 천재!

나는 고영후야.”

“안녕하세요. 박태월입니다.”

“나도 만나서 반가워! 하동진이야.”

“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호호호, 전 태월이 엄마 조민희랍니다.”

“오, 천재 아들을 두실 만합니다. 미인이시네요. 오느라 엄청나게 고생하셨죠?”

“네, 너무 멀더라고요.”

“협회장님이 저희보고 안내를 잘해주라는데, 사실 한국 작가로는 이 비엔날레가 저희가 처음인 거거든요? 저희도 그래서 난감합니다.”

사실인지 뒷머리를 긁적대는 하동진 작가다.

“일단, 사무국에 들러야 해요. 제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자고 연락받았거든요.”

“아 거긴 우리가 알지. 두 분, 저 따라오세요.”

고영후 작가의 뒤를 따라 사무국이란 곳을 가게 되었다.

조민희와 박태월을 안내해 주고는, 근처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아, 어서 오세요. 딱 적당하게 시간에 맞춰 오셨네요. 사무국의 알베르토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박태월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보호자인 어머니 조민희고요.”

조민희는 알베르토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일단, 이리로 두 분 앉으세요.

차는 뭐로 드릴까요? 에스프레소, 라떼, 음료수들도 있습니다.”

“전 주스로 주시고요. 어머니에게는 바닐라라떼 한 잔 주세요.”

다른 직원이 가져온 주스와 라떼를 마시고 나자, 알베르토가 부른 용무를 꺼낸다.

“그림을 보고 다들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지더군요?

그 검은 소 말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황소냐 검은 소냐 말들이 많았습니다.

아, 그리고 하얀 소라고 하는 뜬금없는 사람도 있었고요.”

역시나 이곳에서도 그걸 발견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긴 했습니다.

소의 색은 3가지 유형으로 보입니다.

다만, 알베르토 씨처럼 검은 소로 보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몸에 아픈 곳이 있는 사람입니다. 병원을 갔다 오시는 거 추천해 드립니다.”

“어? 에이 설마 그 정도까지….”

“나중에 사실 확인해보시면 될 테지만, 저희 어머니도 검은 소로 보인다기에 검진을 받았거든요. 사실이었습니다.”

“응? 어떤 병이라도 나왔습니까?”

“초기 위암이 발견되었고, 다행히 일찍 알게 돼서 완치는 했습니다.”

“헉! 사실이라면, 꼭 시간 내서 검진받아봐야겠군요. 그건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예측했는지는 모르지만, 과연 7살의 나이로 이게 가능한지가.

저희가 해결되지 못한 숙제입니다.

연락은 못 받았겠지만, 본선 진출은 이미 확정된 상태입니다.

다만, 확인 작업은 거쳐야 한다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본선 확정까진 몰랐지만, 역시나 태월의 예상대로였다.

“제가 듣기로는 작품이 두 개까지 가능하다고 연락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증명도 할 겸, 현장에서 바로 그려서 제출하는 거로 하지요.

문제가 될까요?”

“하하! 현장에서요? 그게 가능합니까? 쓱쓱 그려내는 스케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뭐! 좋습니다. 작가 본인이 그렇게 증명하겠다면, 저희야 더할 나위 없죠.”

알베르토는 책상 위 전화기를 들더니, 윗선에 허락을 받는지 통화가 길었다.

“하하, 그렇게 해주겠답니다.

단 두 번째 그려질 그 작품은 판을 좀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비엔날레에 화제가 될만한 소재가 아니겠습니까? 7살의 천재 화가! 현장 작화!

오픈된 장소에서의 집중이 가능한가요?

사실 처음 있는 예외적인 방식이라. 이 정도는 해줘야 혜택이니 뭐니, 말들이 없을 겁니다.”

“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 9시부터 작업하겠습니다. 장소는 미리 볼 수 있을까요?”

“네, 당연하지요. 아 그리고 혹시나 묻는데, 화구와 재료들은 챙겨왔나요? 없으시면 저희가 그걸 최고급으로 공급해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빅 이벤트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가실 때,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건 좋네요? 마침 오늘 사러 가려 했거든요. 감사히 쓰겠습니다.”

가방에서 미리 적어둔 구매 예정 품목들을 영어로 옮기고, 그것을 알베르토에게 넘겼다.

그리고 그를 따라 내일 있을 현장을 확인하러 갔다.

“헙! 설마, 여기서 그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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