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33화 (33/250)

33화. 로마를 거쳐 베네치아로

아카가 몸에서 가느다란 선을 만들어 내더니, 컴퓨터 본체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아카? 지금 뭘 하는 거야? 그러면 망가져. 키보드라는 자판을 써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야 하는 거라니까. 회선에 등록된 정보를 가져오려면 그렇게 해야 해.”

“그렇게 하면 정보를 얻는 데 너무 오래 걸려.

일단 컴퓨터를 알고 나서 할게. 금방 똑똑해질 테니 기대해줘.”

“어휴, 고집쟁이 아가네. 알았어. 망가지면 새로 사지 뭐. 아니면 아카가 가지고 놀게 하나 사줄까?”

“응응, 일단 컴퓨터가 뭔지 알고 나면, 필요한 건 그때 말해줄게.”

저러다 감전 사고나 나지 않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영체가 감전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태월은 재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고스트버스터즈가 생각났다.

음의 에너지를 가진 유령을 양의 에너지빔을 발사해서 꼼짝 못 하게 하는….

‘흐음, 뭐. 전기는 음과 양이 모두 있으니, 상관없으려나.’

***

오늘은 국세청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 민희와 태월이다.

아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꼭 같이 가보고 싶다길래 견학 삼아 데리고 가는 것이다.

며칠 전에 미국 플로리다주 복권 소득에 관해 세금과 관련해서 보자고 연락이 왔었다.

“안녕하십니까? 국제 거래 조사국 조사관 최형수입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젊어 보이는데 엄청 높은 분이시네요?”

“흠흠, 어쨌든 미국에서 보낸 서류를 잘 검토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인데 소득에 대해선 세금을 내야 하는 게 원칙입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최형수 조사관의 말에, 조민희는 생각해왔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아들 박태월이 엄마를 슬쩍 쿡 찌르며, 쪽지를 준다.

민망해할 만도 한데 조민희는 그걸 읽다시피 했다.

“한미조세조약에 따라 ‘국가에 따른 차별은 없다.’라는, 제7조 무차별 1항이? 타방 체약국의 거주자인 일방 체약국의 시민은, 동 타방 체약국 내에서, 동 타방 체약국의 시민이 부담하는 것보다 더 많은 조세를 부담하지 아니한다!”

“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어찌 보면 일반인이 보기엔 헷갈리는 내용인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 이미 37%의 세금을 내고 왔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최고 세율을 적용할 테니 42%가 되잖아요? 그러니 무차별 협약에 의거 둘 중 낮은 세금만 내면 된다는 뜻이라고 변!호!사! 분께 들었습니다만? 뭐가 잘못되었나요? 미국 플로리다주에 다시 항의해야 하나요? 거기서 그것만 내면 한미 조약에 따라 더는 안 내도 된다고 안내장까지 받았거든요!

이런 경우 미국대사관에 가서 항의해야 하는 것 맞죠?”

“험험….”

“아, 그 미국에서 그에 관련된 서한을 보낸다고 했는데, 혹시 안 받으신 건가요?

아 안 받으셨구나. 아무래도 대사관에 가서 강하게 항의 좀 하고 올게요.

나머지 대화는 이틀 후 다시 하죠!”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는 조민희를 조사관이 말린다.

“잠, 잠시만요. 협조문은 받았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이런 전례가 없습니다.

한 번도 한국인이 미국 복권에 큰 금액으로 당첨된 역사가 없었거든요. 선례가 없다 보니, 의견도 분분하고요.”

“조사관님? 당첨금 수령 할 때.

미국 돈이 한국으로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래도 양심상 한국인이라 거절했어요.

결국 제가 한국에서 이 달러를 쓰게 될 것인데, 한국 정부 입장에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계속 이러면 미국에서 당첨되는 분들은 다 미국 시민이 될걸요? 어느 게 더 국가적 손해가 되는 건가요? 나라를 위한다면, 멀리 보세요.”

쪽지의 메모를 보고 처음엔 따라만 읽던 조민희는, 그제야 준비했던 내용이 다 떠올랐는지 열변을 토했다.

대한민국 아줌마 화이팅!

“대신, 다른 방식으로 세금을 내도록 할게요.

일단 아들에게 증여를 19억9천9백만 원을 할게요. 국가에 내는 세금은 그 정도면 되죠?”

“하하, 뭐, 감사히 받겠습니다.

세금 관련 강사를 뛰셔도 되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처리하는 걸로 하고, 이제 가면 되나요?”

결국 추가 5%를 내야 할지도 모를 세금 7억은 아들의 증여세 6억으로 대치되었다.

결국 55억에서 35억은 조민희에게, 세금 정산 후 남은 14억은 태월에게 넘어갔다.

국세청을 나오면서, 태월은 엄마를 향해 엄지척해준다.

“우와 엄마! 국회의원 나가봐도 되겠어!”

“호호, 그래도 아들이 그 쪽지 안 줬으면, 어버버하다가 7억 날릴 뻔했잖니. 우리 아들도 엄지척!”

“이제 그 돈으로 뭐 할 거예요?”

“엥, 그게 무슨 소리니? 이게 아들 돈인데 내가 잘 보관. 아, 아니지. 잘 늘려야지!

그 사촌 오빠 말인데, 개인은 이래저래 세금이 과중하다고 법인을 세우라던데. 미성년자도 지분을 가질 수가 있다더라.”

가족 증명서와 보호자 인감 그리고 잔고 통장만 있으면, 미성년자도 법인의 등기 이사가 될 수 있긴 하다.

“하여간 그건 엄마가 더 알아보시고 결정하세요. 이제 밥 먹으러 가요!”

“호호, 알았어? 그럼 오늘 아들이 좋아하는 일식집으로 갈까?”

“네! 전에 그 집으로 가요.”

“호호, 좋아. 자 출발!”

아카가 태월의 컴퓨터를 가지고 일주일을 지내더니, 모니터 화면에 컴퓨터 모델이 띄워져 있다.

‘Compag DeskPro 386’

“응? 아카 이게 뭐야?”

“응응, 내가 쓸 컴퓨터야. 이거 사준다고 했잖아. 왜, 안 돼?”

“아, 아니. 당연히 사줘야지.”

“응응. 요번에 컴팩이란 회사서 만든 거야.

32bit 사양으로, 대형 컴퓨터인 메인프레임에 버금가는 속도를 자랑한다고 써놨어.”

“아하, 컴팩의 신제품인가 보네. 하하, 알았어! 오늘 주문해줄게!”

“두 대를 사줘야 해! 왜 안 돼? 돈 없어?”

“헐, 아, 아니, 꼭 사줄게!”

이틀 후 컴퓨터 두 대가 도착하자, 민희는 갸웃거렸다.

“한 대를 설치하는 줄 알았는데 두 대네?

방이 좁지 않겠어? 우리 아들이 천재라서, 컴퓨터 3대가 필요할 수야 있지만….”

민희가 생각해도 과한 듯했지만, 굳이 말리진 않았다.

똑똑한 아들이 이러는 것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아카는 그날부터, 컴퓨터에서 살다시피 하며 지냈다.

어떤 날은, 세 대를 연결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기도 했지만, 뭐 하냐고 물어도 공부 중이라고만 한다. 태월은 그러려니 했다.

***

“외삼촌 안녕하세요?”

“하하, 어서 와라. 안 보는 사이에 키도 좀 컸구나. 이번에 그림 대회 때문에 이탈리아에 간다며? 이야, 우리 집안에서 대단한 화가가 나오려나 보네. 하여간 축하하고. 이리로 앉아.”

“엄마는 아직 안 오셨어요?”

“응 곧 올 거야. 여기 사무실에 놓아둘 꽃 사러 갔거든. 하다 보니 법무사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다 하네. 하여간 법인 등록은 일단 마쳤고, 땅 보러 가야지. 일단 위치를 보도록 해.”

외삼촌이 말한 일은 국세청에 갔을 때 조민희가 꺼냈던 법인 설립에 관한 것이다.

‘TW 투자&개발’로 조민희가 대표가 되었다.

자본금은 조민희 29억에 박태월의 20억, 외삼촌 조석호가 1억. 합쳐 50억의 회사가 설립되었다.

주식 지분은 조민희 53%, 박태월 40%, 박승철 5%, 조석호 2%다.

증여받은 14억에 통장에서 6억을 합친 게 20억이다. 이제 태월의 통장 잔고는 5천만 원 정도 남은 셈이다.

그리고 여기 사무실은 외삼촌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 건물인데, 3층짜리를 회사 이름으로 2억에 산 것이다.

부동산은 1층이고, 2층과 3층이 TW 투자&개발이다.

그날 10억을 들여 잠실 쪽 아파트들을 사들이고, 20억을 들여 그쪽 방향 택지를 샀다.

외삼촌이 오랫동안 노리던 땅이었다.

여전히 자금이 부족하여 포기하려던 차에, 이번에 회사를 만들며 매입한 것이다.

외삼촌은 그 틈에 붙어 있는 땅을 개인적으로 1억에 매입하였다.

회사에 2억짜리 건물을 팔고, 그 돈으로 1억의 지분과 잠실 땅 1억을 사버린 조석호다.

***

8월 초가 되자, 베니스 비엔날레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2년마다 6월에서 9월까지 열리는데, 태월의 작품과 관련하여 정해진 날짜가 8월 초였다.

“여보? 잘 다녀와! 태월이도 잘하고. 에이, 내가 데려다준다고 해도 그러네.”

“그냥 택시가 편해서 그래. 당신도 오늘 체육관 심사 있는 날이잖아.”

“뭐, 그렇긴 한데….”

“당신? 우리 없다고 또 밤새 술 마시러 다니고 그러면 안 돼! 종종 전화로 확인할 거야.

차라리 늦을 거면, 집으로 데리고 와서 마셔!”

“오오! 정말? 그래도 돼?”

“대신 어지럽히면, 알지? 그리고 아들 방에는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해.”

조민희가 작은 주먹을 들어 흔든다.

“아빠! 잘 다녀올게요.”

“아들, 파이팅! 잘하고 와!”

“크, 이미 작품은 냈는데, 제가 할 건 특별히 없어요. 집 잘 보고 계세요.”

“아들! 그만 가자. 택시 기다린다.”

사실 태월은 한 작가당 두 작품을 출품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 더 출품한다 해도, 자신이 출품한 그림을 믿지 못할 수도 있기에, 사람들이 있는 데서 그려 보일 생각이다.

그래서 가방엔 경면주사들도 챙겨놨다.

다른 화구들은 그곳에서 살 계획이고.

김포공항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직항로는 없다.

비행기로 가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인데, 로마나 혹은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베네치아로 가야 한다.

김포공항에서 출발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그 후 한 시간을 기다려 갈아타고, 베네치아의 북쪽 마르코 폴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총 19시간의 지루한 여정이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베네토주의 주도로서 이탈리아의 북부에 위치한 도시다.

특산물로는 유리 공예품과 축제 가면이 있다.

“아들! 힘들었지? 이거 미국 여행보다 더 힘드네. 여긴 왜 직항로가 없냐고!”

“아, 전 괜찮아요. 미국 갈 때도 그리 힘들진 않았거든요. 시간도 그리 차이 안 나고요.”

“어머, 우리 아들 너무 씩씩하고 듬직한데?”

한국은 국가관을 베니스 비엔날레에 개관도 못 한지라, 마중 나올 관계자도 없었다.

“일단 예약해 놓은 숙소로 가자.”

베네치아의 전 지역에서 개최되는 베니스 비엔날레인지라 지역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성수기라 그런지 방들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미 5월에 예약해 놓은 터라, 시설 좋은 곳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힘들었지? 타고 온 게 비행기라는 거야.-

아카가 텔레파시에도 반응이 없다. 이 방에 들어올 때만 해도 주변에서 서성거렸었는데.

-대체, 어디서 뭘 해?-

-어? 옆 방인데, 웬 아저씨가 여자를 죽이려고 해, 여자가 소리를 질러.-

-헉? 옆방, 어디? 왼쪽?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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