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아기 영령 ‘아카’
빛이 터져 나온 자리엔,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푸른빛 생명체가 있었다.
아니 생명체라고 할 수 있나?
사람 몸에 작은 날개가 달린 천사 같기도 하고, 판타지에 나온다는 정령 같기도 하다.
그때 조민희가 유영해서 다가온다.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태인지라, 수신호로 가자고 한다.
가만히 보니 조민희는 그 푸른빛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태월은 조민희를 따라 움직이자, 그 생명체도 따라온다.
‘이 생명체는 뭐지? 영혼 에너지가 묵주와 만나서 이렇게 된 거 같은데? 넌 대체 뭐니?’
아무런 생각도 없이 궁금해, 혼자 중얼거려보는 태월이다.
‘우우웅, 난 누구? 넌 누구? 여긴 어디?’
‘헉! 텔레파시로 소, 소통된다고?’
그리고 보니 그 사제도, 해파리와 텔레파시 소통이 된다고 했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 주체가 결국 해파리가 아니라, 그 능력의 원천이 영혼의 에너지였단 소리다.
‘넌 어떤 존재지? 혼령? 영혼? 정령?’
‘그, 그건 나도 몰라.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긴 하는데, 잠시 정리 좀 해볼게.’
스쿠버 다이빙 강습이 끝나고도 그 생명체는 조용했다.
역시나 그 어떤 사람도 이 생명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태월의 가족이 크루즈로 돌아가자, 그 생명체도 따라왔다.
피아노 공연도 따라와서, 선율에 따라 몸을 움직여 보기도 한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그때서야 소통을 해왔다.
‘아카식 레코드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신의 의지와 영혼이 합쳐지며 새로 태어났어. 영혼들의 생전 기록으로 분석해보니, 인간으로 따졌을 때 난 아기래.’
신의 의지란 게 성물인 그 묵주 같았다.
아카식 레코드는 전 우주의 기록을 담은 의식의 집합체로, 보통은 인간의 무의식 속 아주 깊은 곳에 잠자고 있다고 한다.
아카식 레코드를 발견한 것은, 미국의 잠자는 현인 에드가 케이시(1877~1945)다.
그는 수면 중에 그 속으로 들어가, 과거와 미래의 모든 기록을 읽을 수 있었다.
케이시는 과거의 사건을 증명하거나, 미래 예지를 모두 적중시켰다.
전설의 대륙인 아틀란티스나 무대륙의 존재에 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했다.
‘아카식 레코드란 건 또 뭘까? 처음 듣는데.’
‘아, 아카식 레코드는….’
‘잠, 잠깐! 이거 소통 외에도 내 생각을 다 읽게 되는 거 아냐? 이러면 혼자 생각을 전혀 못 하는 거잖아? 이거 문제 있는데? 그냥 대화로 하는 게 낫겠다.’
‘아, 그게 불편한 거구나. 그럼 방법이 있어.
의식의 소통 채널을 추가로 만들면 되지.
내가 보내는 의식 채널을 수락해봐.’
-이거로 하면 되겠어. 내 말이 들려?-
-어? 이렇게? 와, 좀 느낌이 다르네.
네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이건 일대일 채널이야. 어떤 누구도 알 수가 없어. 설혹 더 격이 높은 존재일지라도.-
-그럼 나 혼자 하는 생각은 넌 이제 모르는 거네?-
-응, 그렇지. 이제 다른 문제는 없지?-
-그, 그래. 그런데 널 뭐라고 불러야 해?-
-나? 난 아기라니까. 아직 이름이 없어. 이름부터 지어줘. 그래야 그 순간부터 우주에 내 존재가 인식돼. 하나의 고유명사를 가진, 의미 있는 새로운 존재가 되는 거야.-
아기라고 하니 어울려 보이긴 했다.
-아카식 레코드와도 연관이 있다고 했으니, 아카라고 부를게.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아카’야-
존재의 이름을 만들어주자.
아카의 몸이 부르르 떨더니, ‘확!’ 하고 순간 강한 빛을 내 뿜었다.
그리고 몸에 비해 작았던 날개가, 몸 크기에 맞게 커졌다.
-아, 난 이제 ‘아카’야! 넌 이제 나의 아빠야.-
-컥! 나도 이제 8살인데, 뭔 아빠?-
-응, 의미가 그렇단 소리야. 그리고 나 이제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었는데.
난 자연에서 태어난 정령 같은 게 아니야.
영혼의 샘에서 탄생한, 격을 가진 영령이래.-
태월과 아카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들, 혼자서 멍하니 뭐 해? 불러도 대답도 없고. 여기 또 서비스가 왔어.
다이아몬드 회원은 진짜 서비스가 좋네.
출출할 테니 이리 와서 먹자.”
“네, 오늘은 열대 과일들이네요? 초코케이크도 있고, 꽤 맛있어 보여요.”
“당신? 와인 좀 그만 먹어요.”
“아, 이건 도수가 약해서 괜찮다니까.
요거 딱 한 잔만 더 하고 그만할게.”
“알았어요. 딱 그 잔만. 몰래 마시기만 해봐.”
-나 구경 다녀올게.-
아카는 배 내부를 구경하러 간다며, 바로 나갔다.
이제 배는 멕시코 코즈멜을 돌아, 원래 있던 마이애미로 선회했다.
그렇게 6박 7일의 다사다난했던, 카리브해 크루즈 여행은 끝이 났다.
마이애미로 돌아오자, 태월은 제일 먼저 큰 서점부터 찾았다.
‘History of coins around the world’라는 책과 klause 사의 ‘Standard Catalog of World Coins’라는 두 권의 책을 살 수 있었다.
책에는 다양한 주화들이 사진과 함께 실려있었고, 탄생 배경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어? 1787년 주화가 콜롬비아 것이 아니네?”
1787년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의 이웃에 살던 이프레임 브레이셔가 제작한 금화.
그 당시에는 15달러의 가치가 있었다고 쓰여있었다.
1979년에 72만5천 달러에 뉴욕 사업가에게 경매로 낙찰되었다고 나오는데, 1986년 환율로는 6억5천만 원 정도다. 7년 전의 경매가였다.
더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개인업자가 화폐도 제작할 수 있는 건가?’
태월은 의문이 들었다.
미국 정부에서만 돈을 발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실제 미국 정부의 조폐국은 주화만 발행할 권한이 있다.
달러 지폐는 ‘미연방 준비은행’에서 발행하는데, 이곳은 미 정부 산하의 국가기관이 아니다.
6개 은행이 지분 53%를 보유한 민간기업이, 미연방 준비은행의 실체다.
남북전쟁 당시 전쟁 수행자금을 대면서, 로스차일드 가문을 포함한 6개의 가문이 달러 발행 권한을 획득했다.
미국 정부가 달러를 요구할 때, 국채를 발행해서 미연방 준비은행에 주면 그곳에서 달러를 찍어주는 방식이다.
교과서 등을 보면 1861년에 발발한 남북전쟁을 ‘노예 해방 전쟁’으로 기술한 책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호관세를 계속 유지하려는 미합중국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남부의 11개 주가 독립하려 한 전쟁이었다.
단지 북부에선 대외적인 명분이 필요했고, 그게 우리가 아는 노예 해방 전쟁이었다.
주화 하나의 경매가에 눈이 뚱그레지는 태월이다.
“와우, 하나에 6억5천만 원이라니 대단하네.
그 귀신이 금화의 정체를 알았었나 보네.
엄마가 또 놀라겠어. 크크.
그럼 1933년에 만든 이 금화는 그보단 적겠네. 자 이것도 살펴볼까.”
-6억5천만 원이 큰 금액이야?-
아카는 태월의 혼잣말은 듣지 못하지만, 밖으로 내는 말은 들을 수 있다.
“그럼, 엄청나게 큰돈이지.”
-한국에 가면, 컴퓨터라는 것에 접속하게 해줘. 이 세상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알았어! 내 컴퓨터가 있으니 그걸 써!”
-응, 나 똑똑해질게.-
아카의 아기 같은 몸을 쓱쓱 쓰다듬어 줬다.
영혼 에너지를 다룰 줄 알면서, 영체에도 접촉할 수 있게 된 탓이다.
두 번째 금화에 대한 내용은 첫 번째 금화보다 상세했다.
금화의 앞면엔 자유의 여신상과 미국 국회의사당, 미합중국의 주를 상징하는 48개의 별이 새겨졌다.
뒷면엔 양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독수리를 배치했다.
미국에서 1933년 마지막으로 발행된 ‘불운’의 금화 ‘더블이글’은 액면가 20달러다.
1933년 미국 경제 악화로 금의 가치가 폭등하자 이 금화의 유통은 되지 않았다.
1850년 최초로 발행돼 20달러로 사용된 더블이글은 금본위제와 함께 83년간 유통됐지만, 1933년 대공황과 함께 발행이 중단됐다.
정부에서 발행한 금화를 전부 녹여버렸다.
그리고 일부 불법 유출이 되었던, 1933년 금화들은 시중에서 발견되는 즉시 압수된다.
동전 수집가 사이에서 1933년 더블이글은 손에 넣기 불가능한 희귀 금화로 알려졌다.
이때 만들어진 더블이글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보내진 2점을 제외하곤, 모두 소각돼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법 유출된 3개의 금화가 귀신에게서 발견된 것이다.
“아니, 이 금화도 혹시 압수되는 거 아냐?”
더 알아보고 압수될 것 같으면, 공개 안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책에는 골동품 경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세계 2대 경매회사가 전부 영국기업이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였다.
“영국기업이면, 굳이 미국서 경매 안 하면 그만 아닌가? 다른 나라에서 해도 되겠네.
급한 것은 아니니, 천천히 알아보지 뭐.
골동품은 나라에 세금을 안 낸다니, 그게 신기하네.”
이 당시 한국에서도 100년이 넘은 걸 골동품의 기준으로 보며, 이때까지도 세금이 제로였다.
국회에서도 비자금 용도로 골동품이 거래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누군가 발의를 하더라도, 그들도 당사자들이기에 제한조치는 통과되지 않았다.
태월 가족은 마이애미를 출발, 존 F. 케네디(JFK)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공항으로 돌아왔다.
“아유, 미국에서 잘 놀고 온 건 좋은데,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어.”
“나도 힘들었어, 이번엔.”
“어머머, 힘들기는? 10시간이 넘도록 코 골며 자놓고는.”
“너, 너무 오래 자다 보니, 힘이 들긴 했어.”
“어휴, 아들! 얼른 나가자! 네 아빠랑 오래 대화하다간, 겉늙어질 거 같아.”
“엄마, 그거 제가 들게요.”
승철의 양손은 이미 한가득했기에, 태월이 민희의 짐을 들어주려 한 것이다.
“호호, 고맙긴 한데, 아직 이 정도는 거뜬하거든? 너에게 짐 맡겼다간, 아동학대 부모로 오해받기 딱 맞아. 빨리 나가기나 하자.
집에서 오랜만에 생각 없이 푹 쉬어야겠다.”
그런데 빨리 집에 가야 하는 일정에 지장이 생겼다.
태월이 가져온 금화 3개에 대해, 세관에서 세금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100년 이상 된 골동품으로 인정받으면, 세금이 없긴 합니다. 그런데 연도가 하나는 맞는데, 이 미국 금화는 1933년이네요? 이건 연도가 안 돼서 세금을 내야 합니다.”
다행히 감정사까진 동원되는 일이 없어서, 1933년 금화의 실제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금화를 통화가치로만 계산되어 내게 되었다.
그래 봤자 20달러짜리 3개라서, 60달러에 대한 세금을 내 봤자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여행자 및 승무원 휴대품 통관에 관한 고시 제3-5조 규정에 따라서, 여행자 1인당 US $400을 면제받는다. 그런데 승철과 민희 것만 해도 한참 초과한 상태다.
그래서 초과분에 대해서는 20%의 간이세율을 적용받았다.
이런 해프닝을 뒤로하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헉! 지, 지금, 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