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크루즈 선상에서
전날에 먹었던 피자 식탐을 말하는 것이다.
“하하, 피자? 에이 그건 간식용이지.”
결국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가게 되었다.
주문방식이 특이했는데, 주문서에 원하는 요리를 체크 하는 식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크루즈 내부를 둘러보았다.
내부에는 두 개의 풀장이 있었고, 선미 쪽에는 벌써 수영을 즐기는 손님들도 있었다.
최고층인 12층에는 농구장과 야외 헬스장도 있었으며, 미니 골프장 스카이 코트라는 것도 있었다.
스카이 코트는 장비를 착용하고, 아슬아슬한 줄로 된 나무판들을 딛고 코스를 도는 건데 스릴은 있어 보인다.
하늘을 걷는 그런 기분을 느끼는 코스 같았다.
홈통 미끄럼틀도 두 개나 있었는데, 그걸 타려고 줄이 늘어져 있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로비를 보니, 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한가득하다.
10층엔 뷔페가 있었는데, 이곳의 피자 코너는 24시간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객실로 돌아가니, 위탁 수하물이 도착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짐을 찾고 올라오니, 출항 전에 하는 30분간의 안전교육이 있다는 방송으로 인해 다시 내려갔지만.
객실 내에 비치된 구명조끼의 사용 방법이 주된 교육이었다.
출항 시간이 다 되어 바다를 보고 있는데, 반대편으로 다른 크루즈선인 카니발 윈즈가 지나가고 있었다.
서로에게 반갑다고 손을 흔들어 대는 것이, 웃기면서도 재미는 있었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드디어 배가 출발하였다.
환영을 위한 쇼도 있었고, 가수의 흥겨운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카지노를 발견하였다.
미국에선 카지노가 오락 문화 개념이어서인지, 절반 정도만 사람이 앉아 있었고 가족들도 종종 보였다.
태월 가족도 흥미를 느껴 부부가 100불씩 칩과 교환해서 들어갔다.
미성년자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태월은 오락실로 올라갔다.
1시간 정도 놀고 있으려니, 민희와 승철이 오락실로 돌아왔다.
“엄마, 아빠! 많이 따셨어요?”
“호호호, 엄마는 거의 본전 했는데, 네 아빠는 꽝이란다.”
“윽, 하여간 오늘 운발이 나를 빗겨 가더라. 내 옆 테이블 사람이 행운의 잭팟을 터드렸다니까. 내가 거길 앉아야 했는데….
한 번 더 도전하자고, 빙고 게임도 하던데 그리로 고고.”
아쉬워하는 승철을 달랠 겸, 가족은 그곳으로 갔다.
“캣맘! 다음은 피플 플레져! 네, 다음은 대디 조크스, 아 거기 꼬마? 가족들과 왔나요?
오우! 당첨자 나왔습니다. 이리 나오세요.”
운이 좋게도 태월이 빙고 당첨이 되자, 다들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사회자가 티켓을 꺼내 당첨 상품을 알리고, 태월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시 빙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짠! 이거 두 분이 쓰시면 되겠다.
커플 마사지 2시간 이용권!”
“호호, 우리 아들 덕에 호강을 다 하네.”
“아이고, 나도 한 칸만 맞으면 당첨이었는데.”
“호호호, 그래도 우리 아들이 맞췄으니, 된 거잖아? 우리 식사하러 가야지?”
크루즈를 예약할 당시, 저녁 식사 같은 경우는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을 택해야 했는데.
태월의 가족은 6시로 잡아놨었다.
이번엔 뷔페를 택했고, 각자의 취향대로 골라 접시에 담았다.
식사가 끝나자, 후식을 먹으러 갔는데 그곳에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 바라고 부르는 곳인데,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같은 것이 있었을 뿐.
몇 가지를 골라 먹고 있었는데, 태월의 시선이 자꾸 피아노로 향하는 것을 민희가 발견했다.
“아들? 피아노는 왜 자꾸 쳐다봐?
칠 줄도 모르잖아? 아니면 연주가 듣고 싶어서야?”
“음, 음음. 저 피아노 조금은 쳐요.
컴퓨터에 게임처럼 연습하는 프로그램도 있거든요?”
“에이, 그건 연습일 뿐, 진짜 피아노랑 아주 다르지 않을까? 그래도 해보고 싶어?”
태월이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가 직원을 호출한다.
“캔 마이 선 플레이 더 피애노우?”
“어브 코스, 에니원 캔 두 잇!”
민희가 짧은 영어 실력을 겨우 구사하여, 직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 짧은 영어에도 승철은 아내가 대단하다는 듯, 엄지를 치켜준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와 닿은 태월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한국에서 영혼결혼식을 했던, 노총각 봉창식의 재능이다.
-띠로로로롱 띠로롱...
맑고 경쾌한 반주가, 태월의 손을 타고 흘러나왔다.
클레멘티 소나티네 6번 작품번호 36-1악장 Allegro Con Spirito다.
-딩딩딩 따 딩딩...
뒤이어 통통 튀는 36-2악장 Allegretto Spiritoso가 이어진다.
-딩뎅등 딩뎅등 딩뎅등 딩뎅등 타앙...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월광 소나타가 그 뒤를 따랐다.
16세 제자였던 줄리에타 귀챠르디 백작 영애에게 바친 그 곡이다.
1악장-Adagio Sostenuto
2악장-Allegretto
3악장-Presto Agitato
느린 악장으로 시작하여 자유롭고 서정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 반대가 되는 격정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원곡의 연주였다.
그러나 조금 다른 게 있었다.
태월은 만월의 정기와 월령주의 영기로 태어나지 않았던가.
그가 치는 월광 소나타는 흔히 듣던 피아노곡과 매우 달랐다.
격정적인 분위기에서 애절함과 그리움이 끼어들었다.
건반을 치고 있는 태월 자신도 모르는 일이고.
그 곡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디저트를 먹던 사람들이 기립해서 환호와 감탄을 섞어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민희와 승철도 입을 벌리고 엉겁결에 손뼉을 치고 있긴 했지만.
자신들의 아이가 배우지 않은 피아노를 친다는 게 놀라웠다.
한술 더 떠 그 실력이란 것이, 사람들이 환호하고 기립박수 시킬 정도라는 것이다.
“아들? 진짜 컴퓨터로 연습해서 이 정도라고?
호호호, 믿기지 않네. 미술에 이어 음악까지? 아! 우리 아들은 천재 예술가였어.”
민희가 하트를 뿅뿅 아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야! 아빠도 너무 놀랐다. 당장 한국 가면, 피아노를 한 대 사줘야겠다. 제일 좋은 놈으로.”
“어머? 여보 돈이 많은가 보네?
스타인웨이가 최고 명품이라더라.
옆 동 아줌마가 스타인웨이 가정용 피아노를 딸에게 사줬던데?”
“그까짓 거 가정용이 얼마나 하겠어?”
“호호호, 오천만 원이라던데?”
“헉! 무, 무슨 피아노 가격이 집 한 채 값이야? 아, 그러면, 갑부가 된 엄마가 아빠 대신 사주는 거로!”
“어머, 역시 당신은 박력이 있어!”
“어험, 나야 박력 빼면 시체지!”
“순간적으로, 뒤로 빠지는 박력이 철철 넘쳐!”
“크음. 내가 돈이….”
“알았어! 비록 진짜 엄마 돈은 아니지만, 이럴 땐 팍팍 써야지!”
피아노는 연주회용 그랜드피아노와 가정용 업라이트 피아노 두 가지가 있다.
스타인웨이는 주로 그랜드피아노 생산이 많고, 가정용은 가격으로 인해 수요가 많지 않았다.
다른 브랜드의 그랜드피아노의 가격과 비슷한, 가정용 피아노를 구매하는 층은 드물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정용으론 두 가지 모델만 소량 생산하고 있다.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수는 1만2,000여 개, 얼마나 정교하겠는가?
게다가 한 대를 만드는 데 2년이나 걸린다.
“안녕하십니까? 이 크루즈의 공연팀을 맡은 팀장 헤럴드입니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호호,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시간이 된다면, 저희 공연에서 하루 5곡 정도만 연주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헤럴드의 말을 들은 민희는 태월에게 시선을 준다.
“아들, 어때? 배에서 특별히 할 것도 없는데, 도전해 보는 것이?”
민희는 아들의 실력이 전문가에게도 인정을 받자, 기분이 상승했고 재밌는 추억도 될 것 같아서 권하는 것이다.
엄마까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묻자,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 내일부터 저녁 8시에 열리는, 공연 시간에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페이는….”
“저, 페이는 다이아몬드 카드 사용자가 누리는 혜택이면 어떻습니까? 돈은 그리 안 필요하거든요.”
헤럴드는 가능하리라 봤다.
약간의 편법이 필요하긴 했지만, 어차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지 않은가.
“하하하, 좋습니다. 위에 허락을 꼭 받아내겠습니다. 그럼 오늘 좋은 시간 되십시오.”
이 크루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요가를 배우는 것부터 해서, 춤을 배우는 강습 그리고 요리나 그림을 배우는 거까지.
고객들을 위해 다양함으로 지루해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밤 10시가 넘자 태월의 가족은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쉬려는데 벨이 울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승철이 나가보니, 꽃바구니와 과일 바구니 그리고 와인 한 병.
후식을 겸한 간단한 안주와 케이크도 왜건에 실려있었다.
“어? 이런 걸 시킨 적이 없는데요?
호실을 잘못 보신 거 아녀요?”
뒤따라 나온 태월이 영어로 물은 것이다.
“다이아몬드 카드 고객에게 나가는 일일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아, 그게 이거군요. 감사합니다.”
민희가 5불의 팁을 건네자 그는 돌아갔다.
“어머머! 꼭 귀빈 대접 제대로 받는 기분인데? 호호호! 당신, 지금 손에 든 거 내려놔요! 이런 건 사진을 찍어, 일단 남겨야 해.”
“......”
다음 날 저녁 공연에 태월의 연주가 펼쳐졌고, 공연에 보러왔던 많은 사람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부러운 시선을 한껏 받은 민희와 승철은, 그 시선을 부담 없이 즐겼다.
‘얘가 바로 우리 아들이다’라는 뽐냄으로.
두 번째 기항지인 그랜드 케이맨 섬에 도착했다.
대서양 카리브해에 위치하는 영국령 케이맨 제도의 3개의 섬 중에서 제일 큰 섬이다.
태월이 얻게 된 바하마 제도와 비슷한, 조세 피난처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인구는 오만 명 정도고, 중심도시는 서쪽 해안에 위치한 조지 타운이다.
섬에는 세븐 마일 비치를 포함하여 많은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
섬 주변의 바다는 스쿠버 다이빙과 스노클링, 낚시, 수영 등의 해양 스포츠로 유명하다.
“두 번째 기항지인 그랜드케이맨섬 조지타운 항구입니다.
이곳에서 5시간의 여유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저녁 5시까지는 돌아오셔야 합니다.”
방송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우와 여기가 카리브해라는 것 아냐?
진짜 풍광 하나는 좋네. 눈으로만 봐도 환상적이야. 그런데 저기 바다 위를 잔뜩 다니는 건 보트 아냐?”
“아빠, 누가 저 보트 이야길 하던데, 저게 수상택시래요. 관광객들이 다른 섬으로 갈 때, 저걸 타고 간다고 해요.”
“호호, 우리도 저걸 타고 옆 섬도 가봐야겠다.
시간 여유가 많으니, 신나게 놀아줘야지.”
줄을 서서 10분쯤 지나니, 비로소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아 역시 바다 위보단, 땅 위가 마음이 편해.
여보, 어디부터 갈까?”
“음, 여기 유명한 곳이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식물공원과 국립 박물관이 유명하다던데 거기는 마지막쯤에 가보기로 하고.
옆에 섬부터 가볼까요? 수상택시를 타고 휙!
어때, 아들?”
“네, 좋아요. 보트는 처음 타보겠네요.”
“헐, 육지에 발을 이제 내디뎠는데 또 배야?”
“그럼, 당신만 여기 남아요!”
“헉! 아냐 나도 옆 섬에 가보고 싶었어! 자자, 가자고 렛츠고! 어, 어? 그런데, 저기 저 아줌마 왜 저래?”
승철의 말에 민희와 태월이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웬 여자 하나가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헉! 저, 저거 물귀신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