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문신의 또 다른 능력 발견
항구 건너편 쪽에서 적의를 가진 시선이 느껴진 것이다.
어딘가 숨어서 지켜보는 것인지, 아직은 그 실체 파악이 안 되고 있다.
‘뭐지? 사람은 아니니 귀신 중 하나 같은데, 그 집하장에 있다던 세 명 중 하나일까?
비슷한 수준이라면 내가 해치운 것을 모를 텐데? 부모님이 있어서 곤란하네….
일단은 숨은 곳을 지금 찾을 수는 없으니, 식사 후에 다시 상황을 봐야겠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월트 디즈니 월드에서 귀기를 느낀 후부터, 염주 알을 가지고 다닌다는 거.’
태월에겐 나름 든든한 무기였다.
“오, 이거 나름대로 맛은 있는데? 이거 이름이 바깔라오 카르파쵸라 이거지? 한국에서도 팔려나? 아, 이태원 가면, 있을지 모르겠네.
그런데 당신은 그거 먹을 만해?”
“어! 생선가스 맛이야! 그런데 양이 너무 적어. 태월아? 아빠랑 피자 먹을까? 이탈리아 피자 맛도 좀 보자.”
“크, 그러세요, 하나 시킬게요.”
피자는 결국 태월과 민희가 한 조각씩 먹고, 나머지 여섯 조각은 승철이 다 먹었다.
‘저쪽에 있는 야자나무 숲에서 보내는 시선 같은데….’
미국 최고의 휴양지답게 파는 옷들도 화려했다. 조민희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쇼윈도에 걸린 옷을 구경 중이다.
승철은 민희와 옷을 사러 몇 번 다녀온 후부턴, 질색하는 장소이긴 하다.
그렇지만 미국 마이애미까지 와서, 아내의 부탁을 뿌리칠 자신이 없었다.
“엄마? 전 저기 아이스크림 집에 가서 먹고 있을게요. 한 시간 정도면 다 되죠?”
“하핫, 한 시간? 네 엄마는 최소 두 시간이야!”
“이익, 구경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남자가 쪼잔하게. 하여간 아들 두 시간 후에, 그리로 갈게.”
8살 어린 아들이긴 하지만, 민희는 태월이 또래에 비해 똑똑하고 현명해서 문제는 없을 거라 봤다.
부모님하고 헤어져 야자 숲 쪽으로 걸어갔다.
주변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척, 딴짓을 하면서 말이다.
‘응? 내 뒤쪽이네. 사람 없는 곳으로 유인해야겠어. 눈에 띄어 좋을 일은 없지.’
품속에 있는 염주 알을 만지작거리며, 인적이 뜸한 항구 뒤쪽으로 걸었다.
다행히 느껴지는 건 한 놈이었다.
가다 보니 막힌 벽이 나왔다.
바로 뒤돌아서며, 한 손은 여전히 품속에 있다.
의외로 젊어 보이는 당찬 남자 귀신이었다.
뭐랄까 폭주족 느낌?
“오? 물귀신이 너무 물에서 멀어진 거 아닌가?”
“꼬마, 네놈은 누구지? 어떻게 우릴 볼 수 있는 거냐? 그리고 네놈에게서 동료의 기운이 느껴져. 일행에게선 그런 기운이 안 나오던데.
단독으로 벌인 짓인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조금 흥분했는지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 전에 해치운 둘과는 격이 달랐다.
“흠, 서로 하나씩 물을까? 그게 공평하잖아.”
“크르르, 좋아, 어차피 네놈은 곧 죽을 놈이니, 묻는 건 알려주도록 하지.”
“아이고 무서워라. 그런데 너 혹시? 그들이 말한 대장인 거 같은데. 여객선을 침몰시키려는 이유가 대체 뭐야? 원한이 있나?”
“헐! 진짜 그 둘을 만났군.
그래 내가 그 대장이 맞다. 여객선 침몰이야, 많이 죽여놔야 쓸만한 부하들이 생길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살아서 낄낄대는 것들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자 이제 내가 묻지. 그럼, 넌 혼자 벌인 일인가?”
“혼자 했지. 누가 도와줄 리도 없잖아?
배를 침몰시킬 계획이면, 어디로 가는 여객선이지?”
“내일 카리브해로 가는 배라고 들었다.
배를 고르라고 시킨 것은 맞지만, 아직 그들과 만나기 전이라 몇 시 배인지는 모른다.
꼬마? 넌 무슨 능력으로 그들을 없앤 거지?”
무척이나 궁금한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대장 귀신이다.
거리가 있어서 문신을 쓰기는 애매했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인데, 영혼 에너지가 발전할수록 문신 사용 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금은 대략 4m 정도였다.
‘헉! 이놈들이 우리가 탈 크루즈를 목표로 했을 가능성이 크네? 낼 출발하는 카리브 항해 배는 달랑 두 척인데.’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거든? 직접 알려줄게!”
품속에 있던 염주 알을 귀신에게 투구하듯이, 2개를 연속으로 던졌다.
‘헉! 피하다니….’
임기응변이 좋은지 아니면 기감이 좋은지, 눈치를 채고 몸을 뒤틀어 피한다.
그리고는 땅을 박차더니 거리를 좁히고는, 어느새 늘어난 손톱으로 태월을 할퀴고 있었다.
태월 또한 무의식적으로 몸에 익은 택견과 수박이 튀어나왔다.
아슬아슬하게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에 태월의 옷 일부가 잘려 나갔다.
사실 공방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것이, 귀신의 공격을 마냥 피하고 있는 중이며, 반격을 해봐도 귀신에겐 그리 타격이 없다.
‘헛, 이놈 보통 놈이 아니네.
밀교의 주박법을 써봐야겠어. 이거라도 통해야 할 텐데….’
내박인으로 공간에 묶이는 주문을 외웠다.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귀신의 공세를 피하면서 내뱉는 주문이다.
가만히 서서 할 시간도 없었다.
완전하진 않지만, 귀신의 민첩한 몸이 순간적으로 느려졌다.
이제 공격하자. 팔목에서 영혼 에너지가 출렁거린다.
“암 크링크링! 암 크링크링! 암 크링크링!”
영혼 에너지가 검의 형태를 만들어주더니, 느려진 귀신을 사정없이 공격했다.
더욱 집중하자, 칼의 날이 더 날카로워진다.
베어진 귀신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러면서도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저놈이 도망갔다간 부모님이 위험해!’
전법륜인을 써서, 내박인으로 묶인 상태에서 무력화를 시켜야 했다.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내박인을 한 번 더 주문을 외치면, 그게 전법륜인이 된다.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자 이제 한 번 더 굳히기!
외오고인을 외쳐 악령을 완전히 포위한다.
“나먁 사라바타 갸테이약 사라바 보테이뱍 사라바 타타라셍타 마카로샤텐 갸키사라바 타타라셍타 갸키 사라바 비키남 훔 트라타 캄 맘!”
악령을 조여 짓누른다.
제천구칙인의 주문을 읊었다.
“암 크리 훔 캭 훔!”
외박인을 써서 성불을 시도할 순 있지만, 붉은 악령에겐 의미가 없는 일이다.
팔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가랏!”
쉬 이익! 끄아아악! 까아아아악! 이야야야악!
도깨비의 커진 입에 반쯤 들어간 상태인데도, 도망가려 몸부림친다.
여기저기에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상태서도 격렬한 저항을 한다.
더 빨리 보내려고 영혼 에너지가 작동 중인 왼팔로 귀신의 등을 밀어 때렸다.
-퍼퍽!
‘어? 내 공격이 먹히잖아?’
바로 전까지 공격했을 때와는, 느껴지는 반응이 전혀 달랐다.
‘이 팔? 혹시 영혼 에너지를 이용해야, 혼령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거 아닐까?’
왼팔 주먹만 에너지로 감싸고, 수박을 펼쳐보았다. 손으로 등판을 치고, 팔꿈치로 옆구릴 찍으며 바로 어깨로 치받아 버렸다.
어찌 보면 수박은 품새와 형이 없어, 막싸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각각의 동작이 녹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숙련되어 저절로 몸이 움직일 정도가 되면, 모든 동작이 다 공격이 된다.
왼 주먹에서 출발해 어깨에도 영혼 에너지를 두르니, 다른 부위에도 가능할 듯싶다.
결국 오른손까지도 이동이 되고 있다.
‘헉! 나 이걸 왜 몰랐을까?’
그 후부터 일방적 타격이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타격이 강한 택견의 솟구쳐 차기에 힘을 모았다.
허벅지가 가슴에 닿을 정도로 최대한 점프를 해서, 상단 돌려차기인 후려차기를 했다.
아직 8살의 몸이라서 키가 작다 보니, 목을 차진 못하고 등뼈 쪽을 엎어 차버렸다.
그렇게 30초 정도가 지나자, 저항하던 귀신의 몸은 완전히 입속으로 사라졌다.
-꿀꺽! 크르르….
팔이 뻐근해지고 있었는데, 전과는 다른 결과가 하나 더 생겼다.
순간 문신에서 푸른빛이 순간 뿜어져 나오더니, 바로 사라졌다.
‘응? 뭐지?’
팔 안쪽을 자세히 살펴본다.
‘어? 도깨비 송곳니 하나가 진한 푸른색이네.
이거 영혼 에너지가 더 모일수록, 송곳니들이 푸른색으로 바뀌는 건가? 뭐가 달라지지?’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산에서 비탈을 따라 바이크로 내달리다가 산 아래에서 멈추었다.
폭주족이나 입을 만한 가죽 재킷에 사방에 징이 박혀 있다.
멈춰서 엔진에선 열기가 솟구쳐 아지랑이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흔히 보는 바이크와 달리 딱딱해 보이는 타이어로 트레드가 유난히 많아 보였다.
포장도로에서 타는 온로드용이 아니라, 비포장도로나 산길에서 타는 산악 바이크인 오프로드용인 것이다.
대기하고 있던 지인에게 바이크를 넘기더니, 그가 타고 온 스포츠카를 자신이 몰았다.
그는 달리는 것이 좋은지, 아무도 없는 새벽 도로를 빛처럼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레이싱 경기장이었다.
그곳에서도 위험을 즐기는 듯, 고난도의 레이싱 기술을 거리낌 없이 발휘했다.
급감속에서 앞뒤 균형을 잡아주는 더블클러치를 하고, 추월을 위해 쉬프트 다운 가속으로 힐엔 토를 구사한다.
쉬프트 다운과 브레이킹은 호흡하듯이 자연스레 동시에 이뤄졌다.
그의 연습을 구경하던 팬들이 환호하자, 한 손을 들어 답례한다.
시크한 척하지만 입가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반응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그 얼굴은 태월의 얼굴이었다.
‘아, 이 능력은 내 취향이 아니네. 하긴, 전에는 현대무용 재능도 넘어왔으니….’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40분이 지났을 뿐이다.
‘그 세 귀신도 처리해야겠어. 여객선을 침몰시킬 생각 따위를 하다니. 특별한 원한 때문이 아니란 게 더 악랄하네.’
왔던 길을 돌아가던 중에 순찰 중인 경비원을 만나, 폐선 집하장 위치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하니, 친절히도 가르쳐주었다.
해가 지기 전인데도 이곳의 분위기는, 죽은 자의 도시 같았다.
‘이놈들이 폐선 중 하나에 모여 있을 것 같은데? 셋을 동시에 처리하는 게 가능하려나? 일단 하나씩 유인해봐야겠어. 괜히 귀신 잡자고 모험할 필요는 없잖아.’
“아빠! 어디 있어요? 안에 있나요?”
몇 번을 소리치면서 돌아다니다, 사방을 둘러보는 척하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크크, 어리석은 놈이 하나 있었네.’
한 놈이 만만한 먹잇감을 발견했다고 여겼는지, 태월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붙는다.
이럴 땐 신속 처리!
“가랏!”
-쉬 아악! 꺽! 꺼어억!
전과는 음향 자체가 다르다.
왼팔이 불끈거렸다.
한 번 더 아버지를 찾아온 아이 흉내를 내며 소리치고 다녔다.
역시나 패턴이 같다.
-쉬 아악! 꺽! 커커컥!
그놈이 나왔던 폐선도 발견해서 곧바로 쳐들어갔다.
동료들이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 이상하게 여기던 차에, 꼬마가 들이닥치니 눈을 껌뻑대고 있었다.
“가랏!”
-쉬아악! 커어어억! 끄륵!
-꿀꺽! 꺼어억!
이번엔 문신이 트림까지 해댔다.
왼팔 전체가 불끈댄다.
그런데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더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 누군가가 또 있었다.
“어? 넌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