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마이애미 항구의 물귀신
놀이기구 한 군데에서, 잠시 흐릿한 음기를 느꼈다. 그러나 사람들이 워낙 많아 그걸 추적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시간이 났다면 둘러보았겠지만, 가족과 온 상황이라 자리 이탈은 하지 못했다.
더구나 시간도 빠듯하여 탐색도 어려울 듯했다.
민희는 자신의 소원대로 마이애미에 갔다.
아, 뜨거운 태양이여!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 노래를 부르고 나갔던 그녀가, 한 시간도 못 견디고 돌아왔다. 반쯤 마미치킨이 되어 있었다.
결국 해가 진 후에, 해변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덥고 기후는 최악이었다.
“아들? 여기 마이애미에 크루즈 항구가 있더라? 카리브해 코스가 제일 인기가 많은가 보던데. 제일 짧은 게 3박 4일이래.”
“왜? 타고 싶으세요?”
“예약해야 한다는데, 그래도 이 시기에 마이애미는 텅텅 비어서, 바로도 가능할 거라고 여기 프런트에서 알려주더라.”
“엄마 이제 돈 많잖아요? 시간 될 때 가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 식구들이 여행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이럴 때 가보는 거죠.
그리고 항공권도 편도로 온 것이라, 출항 시간엔 부담이 없잖아요.”
“호호! 역시 우리 아들이야.
그런데 엄마가 돈이 많은 건 아니지. 내가 보관하고 있을 뿐이고.
엄마 아빠는 큰돈이 그리 필요 없어. 이렇게 아들이 여행 보내주는 정도면 딱 적당해.
음, 그래도 요번에 한국 갈 때 면세점에 들러 명품 가방은 하나 사야겠어. 이 정도는 괜찮지?”
“하하, 그럼요, 이왕 사는 거 아빠 지갑도 하나 사세요. 저번에 보니 좀 낡았더라고요.”
“오케이! 접수!”
박승철이 화장실 간 사이에 모자간에 나누는 대화였다.
가끔 조민희는 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중, 고등학생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가질 때가 있다.
쓰는 용어부터 하는 행동까지 너무 흐트러짐이 없어서, 응석도 부리는 아들이 때론 보고 싶기도 했다.
국민학교 입학 전후로 더 그런 면이 보인다.
“어? 크루즈 여행? 아하하. 뭐 나야 며칠 정도면, 김 사범에게 부탁하면 되거든. 뭐, 그쯤이야.”
화장실에 다녀온 박승철에게 조민희가 의향을 물은 것이다.
크루즈 항구로 가서 배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마이애미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들르는 기항지는 키웨스트(플로리다), 그랜드케이맨섬, 코즈멜(멕시코) 총 세 곳이다.
이틀의 Sea Day(기항하지 않고 항해만 하는 날)가 있는 6박 7일 일정의 크루즈였다.
출항 시간은 오후 4시였는데, 실제로 탑승권에 기재되어 있는 승선 시간은 오후 1시에서 3시로 되어 있었다.
그전에 승선에 필요한 절차와 수화물을 크루즈 선에 위탁해야 하기에, 필요한 준비시간이다.
“아, 그럼 오늘은 여기 항구 구경이나 좀 하다가, 점심 먹으러 가면 되겠어.
내일은 12시쯤 나오면 딱 맞을 거 같은데.”
“여기는 해변보다 덜 더운 것 같아요.”
“으아, 그러게. 해변에서 나 바비큐 될 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응, 간 김에 세수도 하고 와. 날이 어지간해야지.”
크루즈 항구에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오는 중에, 부두 쪽에서 음기가 가득한 귀신 하나를 발견했다.
육지보다 바다나 하천은 음기가 더 강하기에, 물귀신은 조심해야 한다.
‘혼자려나? 느껴지는 것으로 봐선 내가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거 같긴 한데, 여럿이면 고민을 해봐야 하는데….’
그 귀신을 못 본 척하면서 근처로 걸어 가봤다.
‘응? 혼자가 아니네? 그런데 저놈들 뭐 하는 거야? 난간에 기댄 여자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난감하네. 일단은 눈앞에 닥친 위험을 낮춰야겠어.’
남녀 혼성 귀신이었다.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갈색 머리 백인이었다. 주근깨도 살짝 보이는 게, TV에서 종종 보게 되는 전형적인 백인 여자였다.
가까이 다가가 말부터 걸었다.
“저기, 이 크루즈 오늘 출발하는 배인가요?”
“어머, 동양인 꼬마 같은데 영어 엄청, 잘하네? 혼자 온 거야?”
“아니요. 부모님하고 왔죠. 여기는 위험하니 저 위로 가요. 작년에 이 자리서 사람이 빠져 죽었다던데요?”
선의의 거짓말 중이다.
“으악! 진, 진짜?”
“네, 그러니 물과 좀 떨어지세요.”
“어! 어, 나 그만 들어가 봐야겠다. 괜히 무서워지네. 어쨌든 고맙다. 좋은 여행 보내!”
손을 흔들어주며 떠나가자, 여자 귀신이 째려본다.
항구 뒤편으로 자리를 옮기니, 노리던 먹잇감을 놓쳐서인지 분풀이를 하러 오는 것 같다.
다행히 남자 귀신은 다른 먹잇감을 구하러 위쪽으로 더 올라갔다.
빨간 눈의 여자 귀신이 태월에 가까이 다가올 때, 바로 뒤돌아서 팔을 내밀었다.
“가라!”
-쉬이 익! 까악! 크크크윽.
한국에서 보던 육지 악귀보단 더 조금 더 버티는가 싶더니, 그대로 문신에 삼켜졌다.
팔목이 뻐근한 게 영혼의 에너지가 늘어난 느낌이다.
동료의 비명 소릴 들었는지, 이쪽으로 남자 귀신이 두리번대며 다가온다.
그러다 태월을 보곤 갸웃거렸다.
소리 난 곳엔, 이상한 느낌의 꼬마 하나만 있어서다.
주변 기척을 탐지하더니, 일체의 기감에 동료가 잡히지 않자.
성큼 한 발을 내디딘다.
여자보다는 강해 보이긴 하는데, 이 정도면 무리 없어 보였다.
“이봐? 아저씨? 아줌마 찾는 중이야?”
“헉! 너 내가 보이냐?”
“주먹코에 눈이 빨간 상태잖아. 그런데 이런 데 여름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거 아냐?”
“뭐? 그게 무슨 상관이지?”
“루돌프 사슴이면 겨울이 성수기잖아? 여름에 누가 산타를 찾아? 그리고 혹시 동료 더 있는 거 아냐? 힘이 약해서 동료들에게 내쳐진 것 같은데? 보약 좀 먹지 그래?”
“으…. 이 꼬맹이가! 너 여기 있던 한나, 어디 갔냐? 너 혹시?”
“그건 조금 이따가 말해줄게. 동료들에게 안 알려도 돼?”
“하하? 동료? 그딴 놈들이 무슨 동료야? 지하 창고에서 탁상공론이나 하고, 음모나 꾸미는 것들이. 귀신은 자고로 직접 행동을 해야지.”
“아, 시설 좋은 곳에서 지내는 거에 시샘을 느꼈구나?”
“야! 폐선박 집하장인데, 뭘 시샘을 해?
게다가 달랑 3명뿐이고. 대장이 출타 중이라.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머저리뿐이야.
여객선 하나를 통째로 침몰시킬 방법 따위나 생각하는 망상가들이라고!”
‘헉? 설마, 우리 배가 대상이 되는 거 아냐?’
생각보다 말이 많고 입이 싼 귀신이었다.
정보를 알아냈으니 이젠 보내야지.
팔을 치켜올리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린다.
멍청하긴 도망갔어야지.
“가라!”
-쉬 이익! 컥! 이... 꼬….
여자 귀신 하나를 삼켰더니 기운이 늘어서인지, 남자 귀신의 반항은 약했다.
손목이 한 번 더 뻐근했다.
중년 남자 하나가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영어로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 것 같은데, 태월에겐 생소한 발음이다.
학생들의 교과서엔 Spanish이라고 제목이 적혀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과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그 발음으로.
그 식사 중인 남자의 얼굴이, 점점 태월로 변해갔다.
‘아, 의외로 약하네. 부모님이 찾으시겠네.
일단은 돌아가자. 여기 마이애미가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다더니, 그 언어 쓰는 사람들이 좀 되나 보네.
그런데 그 여자는 별다른 능력이 없었나?
그게 아니면 무작위인가?’
에스파냐어(스페인어)는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등과 함께 로망스 계열에 속하는 언어이다.
공식 언어로는 약 5억의 인구가 스페인 및 라틴 아메리카 지역 중 브라질과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들을 제외한, 20여 개국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만도 5천만 명 이상이,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있다고 한다.
언어 인구로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다수의 국가가, 중남미를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자 기업 진출과 새 시장 개척지로 보는 추세다.
미국 대학생들의 선호하는 외국어로서 프랑스어나 중국어를 넘어 스페인어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인다.
“아들, 왜 이리 늦었어? 아들이 좋아하는 해산물 먹으러 갈 거야. 항구에서 먹는 해산물이 원래 제맛이지 않겠어? 그런데 네 아빠도, 화장실 간다고 나가더니 아직 안 오네. 둘이 안 마주쳤어?”
양반은 못 되는지, 시커먼 안경 하나를 끼고 어슬렁거리며 오고 있었다.
“여보! 이 선글라스 어때? 하하, 오다가 좌판에서 팔기에, 하나 샀는데. 마도로스 같지 않아?”
“어머? 당신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아요!”
“하하하! 그렇지? 내가 이거 끼고 오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더라고.”
“당신? 왜 쳐다보는지 몰라?
그거 끼니 ‘뽕’에 삼돌로 나오는 이대군.
‘마님! 아니,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어어억!’
그런데 그거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당신 지퍼 열렸어! 아, 창피해….”
조민희의 흉내가 꽤 그럴싸하다.
작년에 개봉된 영화, ‘뽕’의 남주인공 변강쇠 이미지인 삼돌을 흉내 낸다.
아내의 지적에 주변을 슬쩍 둘러보곤, 잽싸게 바지 지퍼를 올린다.
“흠흠….”
지중해 해산물 요리 전문 식당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직 손님은 많지 않아서 항구가 보이는 창가 쪽으로 앉을 수 있었다.
점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준 걸 보는데, 몇 가지 메뉴는 영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로 쓰여있다.
“어머, 이 요리 사진 보니, 꼭 생선조림 같네?”
태월이 그 사진 아래에 나온 메뉴 이름을 보니, 바깔라오라고 쓰여 있고 요리 설명이 쓰여 있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서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은 요리라고 하네요.
우리 말로 하면 염장 건조한 대구?
그 생선 살을 그대로 이용하는 요리를 카르파쵸라 한대요.
얇게 슬라이스한 재료에 올리브 오일, 레몬즙, 식초 등과 후추 등의 향신료를 뿌리고, 루꼴라 등의 야채를 얹어 한 요리라고 쓰여있네요.
정식 요리 이름은 바깔라오 카르파쵸네요.”
“응? 이거 영어가 아닌데 어떻게 읽었어?”
“아, 그, 그냥요. 원, 원래 알파벳이 다 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쉽게 익혔어요.”
“그럼, 이게 어느 나라 글인데?”
“스페인어요.”
“우와 우리 아들 이제 3개 국어 하는 거야?
호호, 그런데 이 요리는 영어로 적혔는데, 이거 내가 아는 먹어본 요리네. 피쉬 앤 칩스!”
민희의 이야기를 듣던 승철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 그거 꼭 생선전이나 생선가스같이 생겼구먼? 나 전 좋아하는데, 그거 시켜야겠다.”
사실 다른 요리는 복잡해 보여서, 망신 안 당하려고 그걸 시키는 박승철이다.
“흠, 그럼 난 이 대구찜 시킬게. 바깔로 카르파….”
“그럼 전 요거 할게요. 해산물 파스타!
이탈리아 맛이 궁금했거든요. 주문은 제가 할게요.”
점원이 다가오자 세 가지 요리를 시켰다.
“바깔라오 카르파쵸하고 피스앤칩스, 그리고 해산물 파스타 중 두 번째 것으로 주세요.”
주문한 후, 창밖에 비친 항구를 보고 있을 때, 머리가 쭈뼛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