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세 줄기 빛 속에서
총각 아저씨 귀신은 이십일 만에 봐서인지, 엄청나게 반가워한다.
“어이! 잘 알아보고 다니는 중이야? 그래도 중간중간에 진행 상황 좀 알려주고 그러지.”
“크, 저기 다 해결되었거든요?”
“응? 뭔 소리야? 설마, 내 짝을 구했다고?
혹시, 사, 사진 같은 거 없어?”
“아니 무슨 귀신이 사진을….
아, 보고프면 볼 수도 있긴 하지요.”
“오! 이거 화끈한데?”
“자자, 신상 나갑니다.
1번, 황현지 25살 167 35 26 34 숙대 졸업
2번, 오지숙 25살 168 34 25 35 이대 졸업
어때요? 그리고 이건 사진!”
두 여자의 모친에게서 얻어온 사진이다.
“오오오! 우와와! 와아아!”
“지금, 돼지 귀신 잡나요?”
“이거 팩트야? 이야, 이거 너무 이상형이네.
딱 바로 이런 여자들을 원했어!”
“나이 차이가 너무 나는 거 아니에요?”
“귀, 귀신에게 나이가, 중, 중요하나?
아, 그런데 고민이네. 이쪽이냐! 요쪽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잘 골라봐요!”
“그, 그래.”
주차장 구석에 박혀서, 태월이 바닥에 놔둔 사진을 보고 있는 총각 귀신이다.
의미도 없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왜 못 고르겠어요?”
“아, 양손의 떡이야….”
“크크. 좋아요! 의뢰 고객을 위해 내가 통 큰 서비스를 해드리죠! 그럼 둘 다 하세요.
신부는 둘입니다!!”
“으악! 진, 진짜? 그래도 돼?”
“특별 서비스입니다. 대신 뭐 또 줄 선물이 있으면, 주저 말고 팍 주세요.”
굽신굽신을 연발하다가, 만세삼창을 부르는 총각 귀신이다.
“태월 전하! 만만세! 만만세! 만만세!”
갑자기 태월이 나라를 세운 인물이 되었다.
사람들이 귀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다행이지, 개망신을 당할 뻔했다.
“복권은 내가 썼던 오피스텔 침대 틀 사이에 끼어 있어.
침대보만 갈았지, 매트리스를 그동안 안 바꿨더라고.
그저께도 확인하고 왔어. 게다가 그 집은 지금 비어있고.
사람이 죽었다고 소문나서 세입자가 오지 않나 봐.
오히려 다행이지만….
혹시 모르니 내가 그 복권을 구매하게 된 경로도 알려줄게.”
“그런데 뭐 하던 분이에요?”
“나? 나를 몰랐었어? 어라 난 알 줄 알았는데.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야. 너 TV 잘 안 보지?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비싼 남자라고.
딴 건 줄 게 없어. 가족들이 다 가져갔으니.”
“네, 잘….”
안 비싸던 남자에서 초큼! 비싸진 남자로 승진시켜 주기로 했다.
***
유성오피스텔 903호, 그곳을 가야 했다.
조민희는 이미 회복이 되어,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엄마! 오피스텔을 하나 보러 가죠?”
“응? 뭘 또 사려고?”
“전망이 좋다 해서 구경만 해보려고요. 다음에 우리가 땅을 사서 그런 건물 지을 때 참고하려고요. 올 때 맛난 점심도 먹고요.”
“뭐, 그런 거라면, 가보자. 나 이번엔 일식을 먹고 싶단다.”
“하하, 알았어요. 참치도 시킬게요.”
“호호호, 옷 갈아입고 오마.”
강남 신사동에 있는 유성 오피스텔로 갔다.
세 군데를 다니니, 그 오피스텔을 담당하는 부동산이 나왔다.
“비어있는 곳이 있나요?”
“아, 501호, 609호, 802호 그리고 903호요.”
“아, 그럼 맨 위층부터 보죠. 903호 갑시다.”
“아, 그, 그러시어요.”
어색해하는 중개사와 함께 903호로 갔다.
조민희는 아들의 눈짓에 화장실을 살핀다며, 중개사를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수도를 틀어서 수압 상태를 확인한다.
그사이 빠르게 침대 왼쪽 상부쯤 되는 곳을 훑었다.
몇 번 빠르게 반복하니, 종이 한 장이 드디어 나온다.
총각 귀신이 말하던 미국 복권이다.
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고 자크를 잠갔다.
“엄마? 화장실 잘 봤어?”
“그래, 이 정도면 나쁘진 않구나.
여긴 전망이 좋긴 하네요. 그런데. 다른 호실도 구조는 같나요?”
“아, 다 같은데 501호만 달라요.”
“그럼 다른 데는 볼 것이 없고, 501호만 가보죠.”
“네, 그리로 안내할게요.”
501호는 너무 작아 보인다며, 대충 훑어보고 나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강남역 쪽으로 걸어 이동했다.
“아들? 대체 903호에서 뭘 하길래 그런 거야?”
“아 화장실 물소리가 자는 곳까지 들리는지, 소음 테스트한 거예요.”
“아유, 싱겁기는? 살 것도 아니면서.”
“엄마! 이번 여름에 방학하면, 미국 플로리다로 가족 여행갈까요? 숙박 티켓이 생겼어요.”
“오! 마이애미! 해변의 천국!”
“네, 어쨌든 플로리다요.”
“응, 좋아, 아빠랑 상의해서 날짜 잡지 뭐.”
조민희는 모르지만, 마이애미의 성수기는 12월에서 3월까지다.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 그리고 여러 축제가 있는 시기다.
그리고 7월만 되어도 마이애미 해변은 오븐 속에 있는 것처럼 뜨겁거나, 그렇지 않으면 폭풍우가 온다.
덕분에 마이애미 물가가 제일 저렴할 때이기도 하다.
까맣게 타서 흑인이 되어 있을 엄마를 상상하곤 킥킥대며 웃음을 참는 중이다.
식사 후 서점을 간다며, 조민희와 헤어졌다.
이제 영혼결혼식을 진행해야 한다.
***
설레는지 아니면 기대 때문인지, 빨리 가자고 독촉하는 귀신을 데리고 탄천으로 향했다.
그를 탄천까지 안내한 후에, 타고 왔던 택시에 다시 올라 새마을 시장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꼬마가 엉뚱하다고 생각했을 뿐, 별달리 깊게 여기진 않았다.
목적지에 와서는 시장 상인에게 박스 두 개를 받더니, 차를 돌려 아까 그 자리로 가자고 한다.
물론 두 처녀 귀신과 합류한 상태지만.
‘아, 얘 대체 뭐야? 이놈 혹시 돈도 없는 거 아냐? 아 이상한 애네.’
“제가 앞으로 통학할 길이라서, 외우려는 거예요. 택시비는 있으니 걱정은 마세요.”
“그, 그럼. 미리 알아두는 것도 좋지.”
뭔가 허점이 있는 아이의 이야기지만, 돈을 준다는데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이제 귀신 셋이 다 모였다.
“자, 서로 인사하세요.”
“안녕하세요. 황현지예요.”
“안녕! 미스서울 오지숙. 168 34 25 34예요.”
“풉! 지숙아, 갑자기 미스코리아 나가니?”
“안, 안녕하세요. 봉창식입니다.”
“봉창 씨?”
“지숙아? 봉창 씨가 아니라 봉창식이라잖아. 너 또 웬 자다 봉창이니?”
“현지야? 봉창이라니? 네가 더 나빠!”
“받들 봉, 창 창, 쉴 식입니다.”
“어?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받들어 총! 쉬어!”
“얘 현지야? 너 틀렸어.
총검술이 아니라 창검술로 해야지.
받들어 창! 쉬어! 이거지….”
팔팔하고 통통 튀는 20대 아가씨 둘과 40대 아저씨는 이렇게 첫 만남을 하였다.
꼭 원조교제 분위기다.
신고 전화를 하려다 참아주는 태월이다.
“호호호, 미안해요. 둘이 일부러 그랬어요.
성격을 좀 알아보려고요. 화 안 나셨죠?”
“험험, 사, 사내대장부가 이런 일로 화, 화를 내다니요!”
“어머, 성격 좋으시다.”
영혼결혼식이란 걸, 본 적도 없던 태월은 스님 할아버지에게 물었었다.
영혼결혼식의 유형으로 무속형, 유교형, 불교형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영혼결혼식. 미혼으로 죽은 사람은 정상적인 조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조상이 되도록 행하는 법식이다.
이러한 행사는 산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존재의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영혼결혼식 때 영혼은 보이지 않으므로, 신랑 신부를 인형으로 대신한다.
그러나 태월에게는 그 귀신들이 다 보이는 상황이기에,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다만, 혼복을 입히지 못하기에, 손바닥 크기의 신부 인형 2개와 신랑 인형 1개를 가져왔다.
박스 하나를 개봉하니, 캠핑 장에서나 쓸 접이식 테이블과 텐트 하나가 나온다,
테이블을 펴고 그 위에 한지를 깔았다.
다른 상자를 열어 음식들을 종이 접시에 하나하나 올렸다.
간소한 제사상 같기도 하고, 결혼식 전통 소형 혼례상 같기도 하다.
상 앞뒤로는 인형들이 제 위치에 맞춰 올려졌다.
손가락만 한 기러기 목각은 세 마리를 올렸다.
하늘 쪽으로 절을 하고 기러기의 입을 서로 맞추는, 삼귀의례와 전안례를 끝냈다.
신부 큰절 두 번 하고, 신랑 큰절 한 번 하는 교배례를 한다.
합근례로 신부의 입에 술을 담고 그걸 마신다.
원래는 표주박으로 하는 것이지만, 형식만 따랐다.
신랑 신부의 맞절을 다시 하고, 부모와 하객들에게 인사하는 대신 하늘에 다시 절을 올렸다.
“세 분 하늘에서 잘살길 바랍니다.”
태월의 축원에 다들 고개를 숙인다.
“자 이제 영혼결혼식은 끝났습니다.
다음은, 두 시간의 신방을 차리겠습니다.”
상 옆쪽으로 등산 텐트를 하나치고는, 그들을 들어가게 했다.
텐트 안에는 양초 두 개를 켜주고.
의례를 위한 것이라 모든 것을 그대로 따르진 않았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즘, 셋의 얼굴은 한결 평안했다.
태월이 고개를 끄덕이자, 셋도 동시에 끄덕인다.
“모든 부정적인 악업의 진동을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으로 소멸하고.
빛의 상태로 변형시키어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힘으로,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시옵고.
깊은 죄업과 짙은 어두움이 마음을 덮고 있을지라도, 부처님의 광명 속에 들어 저절로 맑아지고 깨어나게 하시오며.
부처님의 법문 중에 믿음을 내어, 이 셋의 합혼을 축원하며 이승에서의 업장을 옹호하며 재앙을 소멸하고 천도하여 복을 누릴지어다.”
광명 진언의 독송을 우리말로 바꿔 전했다.
부디 그들의 천도에 밝음이 함께하길 빌며 합장을 해주었다.
“옴 아모카 바이로자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옴 아모카 바이로자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옴 아모카 바이로자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그리고 광명진언으로 말에 힘을 실어 보냈다.
셋은 환하게 웃으며, 푸른 빛무리로 변해 하늘로 치솟는다. 그리고 3가닥의 빛줄기가 태월에게 들어왔다.
***
남자 하나가 눈을 감은 채, 피아노 건반을 치고 있다.
때론 봄바람처럼, 때론 바다 위를 몰아치는 폭풍우처럼.
그러다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몇 번 흔든다.
그걸 아침부터 하더니, 점심쯤이 되고야 멈춘다.
그리고 컴퓨터로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 낸다.
식사하면서도 흥얼거리는 걸, 보이스 레코더로 녹음도 한다.
작곡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곡을 만들다가도.
장난스럽게 오선지에 악보도 그린다.
단3도, 장3도, 감4도, 완전5도 겨우 이걸로? 라고 중얼 대기도 한다.
기지개를 켜며, 환기를 시키려는지 거실 창을 활짝 연다.
석양의 노을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는데, 자세히 보니 태월의 얼굴이다.
숙명여대라고 써진 교문을 지나 어떤 여학생이 걷고 있다.
그 옆엔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왔다는 또래의 여학생이 일본어로 뭐라고 떠든다.
그에 화답하는 여학생도 능숙하다.
일본인이라 해도 믿을 원어민 발음으로 수다를 떨며, 어제 같이 본 영화에 대해 감상평을 한다.
앞에 있던 교환 여학생이 놀란 듯, 갑자기 눈을 크게 뜬다.
영화평을 하던 그녀의 얼굴이 남자의 얼굴로 변하기 때문이다.
태월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한쪽 다리가 마룻바닥을 떠나 자유로워진 상태의 ‘데가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여학생이 보인다.
이어서 한 발로 마루 위를 앞에서 뒤로, 때론 뒤에서 앞으로 반원을 그리며 ‘롱 드 잠브’를 한다.
다리를 공중으로 힘차게 차는 동작인 ‘그랑 바뜨망’으로 들어간다.
바닥을 쓸 듯이 탄듀를 거쳐 위로 찬다.
전면 거울에 얼굴이 슬쩍 보이는데, 여학생의 얼굴이 변해가고 있었다.
태월의 얼굴로.
“으악! 깜짝이야! 무, 무슨 일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