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영혼결혼식 준비, 합이 셋!
태월이가 놀란 그 뉴스 화면에선, 그을린 건물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젯밤, 잠실 신천역 새마을 시장 인근 유흥업소에서 불이 나 4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소방관계자에 따르면 주인과 손님들은 전부 피신했지만, 업소에서 고용한 7명의 여종업원 중 4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4명은 한 방에 갇혀 있었으며, 사망원인은 질식사로 결론 지었습니다.
이에 따라 업주를 일단 체포하고, 여종업원들을 대상으로 대면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기에 처녀 귀신이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네?’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병원에 다시 들르니 태월의 아버지가 와 있다.
엄마 조민희는 저녁 먹고는 졸려서인지 자고 있었다.
“어? 아들 밥은 맛난 거 먹었어?”
“네, 오늘 아빠가 계시니, 전 내일 다시 올게요. 숙제도 해야 할 게 있고요.”
“어, 그래 내가 사모님은 잘 보살피고 있으마. 문단속 꼼꼼하게 살피고 거실 불은 켜놓고.”
“크, 알았어요. 전 좀 늦게 집에 갈 거 같아요. 서점에도 들러야 하거든요.”
“그래, 조심히 잘 다녀오너라.”
택시를 타고 신천역의 새마을 시장으로 향했다.
“아저씨, 새마을 시장엔 유흥업소가 많나요?”
“그럼! 그곳이 아직 개발이 제대로 안 돼 그렇지, 그 일대에서 유일하게 도시 계획상 상업지역이라고 하더라.
상업지구면 당연히 유흥 시설 허가 난 곳이 많은 법이지.
아, 나도 돈 좀 모았으면, 그 시장 건물 좀 사놓을 건데. 몇 년만 지나도 팍팍 오를 거야.
상업지구가 어디 흔한가?”
“강남구가 더 낫지 않나요?”
“아 거긴 이미 팍 오른 거잖아.
그리고 이쪽 잠실은 아직 가격 자체가 오르지 않았어. 오죽했으면 잠실 1주공 13평 아파트 시세가 1,300만 원이야. 전세가가 1,200이거든? 전세 안고 100만 원만 줘도 아파트가 생겨!”
“어? 그렇게 좋은 걸 왜 안 사는데요?”
“경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니.
굳이 이쪽 변두리 아파트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본거지.
그런데 몇 년 후면 팍 오를 거라는 소문이 돌긴 해. 그래서 나도 대출받아서, 1주공을 사볼까 생각 중이고.”
“하하! 네….”
“그러고 보니 내가 꼬마랑 대화하는데 별소릴 다 했네. 하여간 저 앞 보이지? 저기가 새마을 시장이야. 여기서 내리면 될 거야.”
“네, 오늘 대박 나세요!”
“하하. 고마워, 꼬마 손님!”
새마을 시장 앞 노점에서, 핫도그를 하나 먹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저씨? 여기 어제 불났다고 뉴스에 나오던데, 설마 시장 안은 아니죠?”
“어, 너도 뉴스를 봤구나. 여기 골목 돌아가면 이발소 옆 건물 지하에, 노란 띠를 쳐놓은 불타 그을린 건물이 보일 거야. 거기 지하야.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 업주 패거리들이 인상이 더럽더니만, 결국 애들이 착취당했어.”
핫도그값을 계산하고 알려준 곳으로 가니, 노란 폴리스 라인이 처져있다.
다행히 경찰은 지하에 있는지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영안실을 찾아가 봐야 하려나?’
자신의 육신 곁에 있을 수도 있고, 죽었던 장소에 있을 수도 있었다.
기웃대고 있는데, 계단 아래로 여자 귀신 하나가 고개를 쏙 내민다.
“어? 거, 거기 누나! 잠깐만요.”
“응? 설마, 나? 내, 내가 보여?”
“네, 아주 잘 보여요. 게다가 이렇게 말도 할 수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 눈에 띄니, 요기 골목으로 가서 대화할 수 있죠?”
여자 귀신이 고개를 끄덕인다.
“야, 너 되게 신기하다? 귀신이 안 무서우냐?
난 내가 귀신 된 걸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
그나마 하루가 지나니, 지금 이 정도지.”
유흥업소 아가씨로 일할 만하다는 평가를 줘도, 충분하고도 오히려 넘칠 미모였다.
“다른 분들은 어디 있는데요?”
“친구가 여기 하나 있고, 나머지 둘은 영안실에 있을걸?”
“그런데 왜 따로 있어요? 원귀는 아닌 거 같은데….”
“업주에게 원한이야 있긴 하지만, 이미 잡혀 벌을 받을 거 아니냐. 내가 못난 년이지, 다 끝났는데 원망해서 뭐 해?
단지 미련이 남아서 있는 거지, 내 친구도 나랑 비슷한 처지고.
그 영안실에 있는 것들은, 어찌 보면 도긴개긴이야.”
“왜요? 같은 피해자 아녀요?”
“죽었으니 피해자긴 한데….
마이낑 당겨서 여기저기 순진한 업주들 물 먹인 애들이야. 여기 사장 같은 인간에게나 물 먹일 것이지.”
“응? 마이낑이 뭐예요?”
“아, 너는 어려서 모르겠구나. 선수금이란 뜻의 일본식 은어야. 선불 받아먹고 튀는 거지.”
“와, 달라고 하면 막 주긴 하나 봐요?”
“주로 업주에게 ‘전에 일하던 가게에 빚이 있는데, 갚아주면 일하겠다.’ 혹은 ‘생활비를 빌려달라’는 명목으로 돈을 받아냈거든.
그걸 몇 번씩 반복하다가 이 작자들에게 걸린 거지. 우리와 같은 방에 갇혀 버린 거고.”
“누나는 왜 갇힌 건데요?”
“처음엔 술만 따라주기만 해도 된다기에, 일하게 된 거거든? 그래도 만지는 것까진 참고 견뎠어. 그런데 2차를 가라는 거야.
응? 넌 모르겠구나. 성관계를 강요했어.
그래서 거부했어, 당장 그만두겠다고 하니.
쇠사슬로 묶고 우릴 가둔 거야.”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쇠사슬로 묶였다는 보도는 없었다.
“원한은 잊었다면서, 왜 미련이 남은 건데요?”
“엄마가 아프셔서, 수술을 해야 해.
아빠는 없으니, 내가 해줘야 할 거 아냐.”
“그럼 그 수술을 못 해드려서, 못 떠나고 있는 거네요? 엄마가 걱정돼서?”
“응….”
그 수술비가 얼마일지는 몰라도, 자신이라면 가능한 금액이리라 생각 들었다.
또, 총각 귀신이 준다는 복권도 있지 않은가.
“혹시, 결혼하셨어요?”
“아, 아니. 내 처지에 무슨 결혼?”
“혹시 그 수술비를 내주는 총각 귀신이 있다면, 영혼결혼식 가능할까요?”
“호호, 너 너무 웃기다. 그런 말이야 들어봤지만, 갑자기 귀신이 무슨 결혼이야? 지금 웃기려고 농담하는 거지?”
“아, 아닌데요? 진짜예요. 그 수술비는 그 총각 귀신에게 받아서 해줄 수 있거든요.”
“진짜? 나야 귀신인데. 죽어서 이런 상태서 엄마가 수술만 할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약속하는 거예요? 귀신의 약속은, 맹약 같은 거거든요.”
“그래. 그런데 수술비가 꽤 비싼데?”
“얼마길래요?”
“천삼백만 원이라더라.”
“에이, 얼마 안 되네요?”
“어머, 얘 좀 봐. 내가 아는 애가 이번에 9급 공무원에 들어갔거든? 월급이 14만 원이야.
악착같이 모아도 거의 10년이나 걸려!”
태월은 생각도 못 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림값을 억대로 팔다 보니, 돈에 대한 걸 숫자로만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헐, 공무원 초봉이 14만 원이라고? 그럼 1억은 대체 얼마나 큰 거야?’
잠시 말이 없자, 눈치를 보는 여자 귀신이다.
“하하, 걱정은 마세요. 그 총각 귀신 아저씨 아니래도, 제가 꽤 부자거든요?
안 되면 제 돈으로라도 해드릴게요.
그럼, 이참에 바로 가볼까요?”
“아, 아저씨? 총각이라며?”
“하하, 41살이지만 총각 맞아요. 자기 입으론 눈이 높아 못 갔다는데, 뻥인 거 같고요. 모태솔로예요. 그럼 이제 같이 가는 거죠?”
“그, 그게. 내 친구 혼자 남는데….”
“아, 친구분도 뭐가 사연이 있나 보네요.
여기 오라고 하시면 안 돼요?”
“응, 바로 데려올게. 어디 가면 안 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5분도 안 돼, 새로운 귀신을 데리고 왔다.
“이야기는 대충 들으셨죠?”
“응, 현지가 잘되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누나는 어떤 아쉬움이 있는데요?”
“음, 나도 현지랑 비슷하긴 해.
단지 울 엄마는 아프진 않고, 힘드실 뿐이야.
작년 말에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남동생 하나를 데리고 여인숙을 전전해.
난 월세 보증금이라도 좀 마련해볼까 하고 친구 따라 여기 온 거고.”
“미, 미안해 지숙아….”
“휴, 그게 어디 네 탓이니? 세상이 이런걸.
아, 나도 돈 많은 총각 귀신이 있으면 좋겠다. 그깟 결혼 정도야. 뭐.”
듣고 보니 사정이 친구 둘 다 딱하긴 했다.
새삼스레 자신의 부모님이 고맙다는 생각이 듬뿍 들었다.
그리고 끼리끼리 논다더니, 지숙이란 여자분도 인물이 반반했다.
뭐 둘이 그렇다 보니, 업소 사장이 안 놓치려 가뒀겠지만.
‘어차피 둘 다 성불시키는 게, 좋은 일이긴 하잖아? 그 안 비싸 보이는 총각 귀신만 호강하겠네. 복권도 준다는데, 인심 써야지.
서로 다 좋은 일이잖아? 그런데 영혼결혼식은 일부다처제가 문제 되려나?’
“잠시, 전화 한 통 할게요.”
-띠리링! 띠리링!
“스님 할아버지? 혹, 혹시요.
영혼결혼식을 시킬 때. 총각 귀신 하나에 처녀 귀신 둘이면 문제가 되나요?
아, 아니요. 둘이 친구인데, 성불을 같이 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아, 그럼 문제는 없네요? 네, 네. 들어가세요.”
전화 통화 내용을 들어서인지, 둘이 뻘쭘해하고 있다.
“아, 그렇게 하면 두 분이 불편해지나요?”
“호호, 그건 아니고, 영혼결혼식에 그렇게 한다는 걸, 첨 들어 봐서….”
“음, 난 찬성! 이왕이면 친구랑 같이 성불하면, 좋을 것 같아. 그 노총각 귀신? 외모 따진다며? 나 이리됐지만, 25살에 키 168에 34 25 34에 이대 나온 여자야!”
“큭, 나도 25살 키 167에 35 26 34에 숙대 나온 여자야!”
“아이참, 둘이 지금 뭐 해요.”
셋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숙에게는 택시 기사에게 들었던, 그 아파트를 사주기로 했다.
주공1단지 13평. 더 큰 평수를 사주려 했으나, 지숙은 거부했다. 그 정도가 적당하단다.
그리고 공로가 큰 현지에게는 엄마의 수술비인 1,300만 원.
그리고 지숙의 모친과 잘 지내라는 의미로 현지 어머니에게도 같은 단지 13평을 사준다.
월세를 살고 있다는데, 그 정도는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새마을 시장에서 식당을, 둘이 같이하며 의지하도록 했다.
30평 정도의 가게를 태월이 매입하기로 했다.
두 여자의 모친은 집만 해도, 자금 증명을 하기가 벅찬 상태다.
거기다 상가까지 매입했다간, 문제 소지가 커질 것이다.
보증금은 50만 원에 월세는 최저인 5만 원으로 했다.
그리고 두 분에게는 똑같이 죽은 딸들이 남긴 돈이라는 명목으로 500만 원씩 주기로 했고.
태월은 상가매입 외에 5천만 원 정도를 일단 지출하게 되었다.
집은 닷새 만에 나란히 붙은 두 채를 샀고.
새마을 시장의 점포는 입구 쪽을 우선 매입하였는데, 평당 평균 잡아 25만 원에 10곳을 사들였다.
70평짜리 1곳, 30평짜리 1개와 20평짜리 3곳 그리고 10평짜리 5곳을 사들였다.
보름이 소모된 일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총 210평을 사들여 5천2백만 원을 지출했다.
이로써 1억이 넘는 돈이 나간 것이다.
강남 도곡동에 있는 병원과 이곳과는 거리에 문제가 좀 있었다.
아직 혼령이 힘이 없는 상태기에, 중간 정도 지점에서 셋을 모이게 해야 한다.
대치동과 잠실 사이의, 잠실 쪽 작은 하천인 탄천이 적당했다.
드디어, 총각 귀신을 다시 만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