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처녀 귀신을 찾아서...
가만히 눈을 뜨니, 몇 달 전까지 익숙했던 방이 보였다.
“헉, 나 기절했었나 보다.”
“허허, 몸은 괜찮느냐?”
“아 일시적으로 급하게 익히느라, 힘들었나 봐요.”
“밀교의 주박법이 원래는 밀교 수행법을 익힌 후에 하는 것이 순리인데.
그것을 생략하고 본신의 영혼 에너지로 하다 보니, 몸의 적응이 일시적으로 어긋나서다.
스스로 휴식을 원해서, 기절하게 된 것이니 문제는 없을 듯하구나.”
“네, 그러잖아도 몸은 아주 상쾌하네요.”
“그 밀교 사람들은 갔느니라. 한 번에 다 배우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더구나.
더구나 수행으로 다지지도 않은 사람이….”
냉정한 사람들이란 생각도 들었다.
감사의 인사라도 받고 갈 것이지.
“아빠에게도 연락드렸나요?”
“아니다, 기절한 건 이야기 안 했고, 저녁쯤에 오실 거라 하더구나.
몸 상태를 보니, 문제가 없기에 그리했다.”
“그건 잘하셨어요. 괜히 별일 아닌데, 걱정 끼치고 싶진 않아요.”
“아 참, 그 여주에 있는 그 절에서 연락이 왔었다.
다다음 주중에 네 집에 방문하겠다고 하더라.”
“응? 아니 왜요?”
“그림값이겠지 뭐. 그 구두쇠 주지가 인심 좀 쓰려나 본데, 굳이 거절하진 말고 받거라.”
“아, 저 5월 중순에 이탈리아 가게 되었어요.
베니스 비엔날레라고 2년마다 열리는 국제미술대전인데 거기에 요번에 새로 그린 그림을 출품하게 되었어요.”
“오! 그래 그건 잘했다.”
태월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여기 이것이 제가 그린 200호 그림이에요.”
“허, 이거 잠깐 보아도 대단하구나.
어찌 점점 그릴 때마다 진화하는 것 같구나?”
“문제가 있어요. 여기 황소 보이시죠?”
“그래, 소가 왜?”
“실제로 그림을 보게 되면, 황소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검은 소, 하얀 소로 보이는 사람도 절반이 넘어요.”
“응? 아니 무슨 그런 일이? 특별한 방식을 썼느냐?”
“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 영혼 에너지와 부적 방식에서 쓰는 독송 읊는 게 뭔가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소 색깔이 다르죠?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다, 원래 불교에서 소 색깔이 의미를 두긴 해. 검은 소는 삼독에 물들었다 하지.
삼독은 탐욕, 진에, 우치를 의미하는데.
풀어서 말하면 탐욕 되고 분노하고 번뇌하는 걸 말하지. 삼독은 깨달음을 방해하는 세 가지 요소를 뜻해.
그리고 하얀 소는 번뇌를 버린 해탈을 뜻해.”
“그것과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검은 소로 본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심하고 아픈 데가 있다고 해요. 그리고 황소로 보이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 정도고요.”
“표본이 많이 있어야 정확한 것을 알게 되겠구나. 예를 들어 암 환자나 그런 사람들….
그런데 그 이론이 맞는다면, 그림을 봐도 곧 닥칠 병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도 되는데….
쓰기에 따라 좋은 것일 수도 있겠어.
하여간, 그 영혼 에너지라는 것이 참 신비하긴 하구나.”
6시쯤 되자 박승철이 도착했고, 그길로 압구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 엄마는 어디 갔어요?”
“음, 사실은….”
“무슨 일인데요?”
“그것참, 차라리 잘된 일이긴 해.
네 엄마가 어제 아침에 건강검진 받으러 갔었잖아? 내시경에서 위암이 발견되었다더라.”
말로만 들어봤던, 암이란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태월이다.
“네? 위! 위암요?”
“하하, 걱정 안 해도 돼! 아주 초기라서 배 안 째고, 내시경 수술로 한다더라. 갈고리 같은 거로 훅하고 뗀다던데. 내일 오후에 할 거야.”
내시경이 뭔지는 태월도 모른다.
“내시경으로 그게 된대요?”
승철도 간단한 수술이라고 아들을 안심시키긴 하지만, 잘 모르는 수술이라 걱정되긴 했다.
“응, 그 수술법이 생소하긴 한데, 대학병원에서 담당과장이 경험이 좀 있다던데.
수술하고 며칠 후에 퇴원해도 된다는 거 보면, 큰 수술은 아닌 거잖아?”
“그렇긴 하네요.”
아들이 대견해 보여 어깨를 툭툭 쳐줬다.
“하여간 네 덕이다. 안 그러면 큰일 날 뻔한 거잖아?”
“낼 수술이면, 학교 조퇴하고 가면 되겠네.”
“에이 그러진 마. 오후 4시쯤이니 너 수업 마치고 와도 돼! 괜히 엄마 알면 잔소리한다.”
“네, 알았어요, 학교 끝나고 바로 가볼게요.”
병원의 냄새는 그 포르말린인가 하는 냄새가 나서, 그리 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우리 학교 생물 표본실에 있는 개구리 표본에 든 액체가 포르말린이라고 했는데. 냄새도 그렇고 왠지 거부감이 들어.’
포르말린은 메틸알코올을 산화시켜 물에 희석하면 포르말린이 되는데, 농촌에서 농약으로 많이 사용한다.
원래는 세령사라는 회사의 상품명이었으며, 방부제와 실내 소독용으로 병원에서는 쓰고 있다.
“저기, 조민희 환자분이 몇 호실인가요? 제가 아들이거든요.”
“아, 아빠도 아까 왔다 갔는데, 305호실이요.”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3층까지 걸어갔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한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엄마! 힘들었지?”
“호호, 어서 와! 힘들기는 하나도 안 힘들었다. 수면 주사 맞고, 막 잠든 것 같았는데.
다 끝났다고, 일어나라더라.
무슨 수술이 그런지 너무 신기하더라.”
“아프진 않았고요?”
“음, 약간 속이 쓰린 정도?
그게 전부야! 대학병원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내시경이란 수술 방식이 좋아서인지.
사실 속으로 많이 불안했었는데, 하고 나니 별일 아니네.”
“엄마가 밝고 건강해 보여서 좋아요.”
“이야, 그런데 네 그림 진짜 신기한 거 아니냐? 그림이 진찰도 해주다니. 호호호!”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주다 보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낼까지는 여기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를 해야 한다더라. 집에 가서 먹든가, 아니면 근처 식당가서 먹고 와.”
“아, 그럼 근처 식당에 가서 먹을게요.
집에 가도 아무도 없는데, 그게 낫겠어요.”
“엄마가 집에 없으니, 먹을 저녁도 없고. 아쉽지? 호호호.”
“네, 빨리 회복해서 집에 왔으면 좋겠어요.”
“얘는, 나 다 나은 거라 했거든? 어서 가서 맛있는 거로 사 먹어.”
그러면서 만 원짜리 한 장을 준다.
돈은 아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이럴 때 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다.
태월은 걸어 내려가려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기에 일단 탔다.
1층인 줄 알고 내렸는데, 지하 1층이었다.
당연히 1층을 누가 눌렀을 거라 여겼지만, 내릴 사람이 없었던 거다.
“응? 여긴 장례식장이랑 이어졌네?”
간간이 곡소리도 들리긴 하는데, 대학병원의 규율이 그런지 크게는 내지 않았다.
그런데 걷다 보니, 뭔가 보였다.
‘어? 저거 귀신 아냐? 악령은 아니네.’
사실 웬만한 악령은 이제 겁도 나지 않고, 오히려 먹어 치울 생각하는 태월이다.
귀신이 혼자 돌아다니더니, 사람 없는 구석으로 가는 게 보였다.
바로 따라갔다.
“아저씨! 여기서 뭐 해?”
“헉! 뭐, 뭐야?”
“귀신이 사람보고, 놀라면 어떡해요? 사람이 귀신보고, 놀라야지.”
앞에 있는 꼬마가 신기한, 귀신 오동현이다.
“그 말이 내 말이야. 왜 네가 안 놀라고 내가 놀라야 하냐?”
“그건 됐고요. 왜 하늘로 안 가고 여기 쏘다녀요? 뭐, 할 일이 있기라도 하나요?”
“음, 두 가지나 있거든? 알면 좀 도와줄 수는 있고?”
“네, 어차피 아저씨 도와줄 사람도 없잖아요?”
“음, 그건 그렇네. 한 가지를 도와주면, 다른 한 가지는 선물로 줄게. 너 진짜! 왕대박 난 거야!”
“차근차근 말해보세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야, 여기는 네가 이상하게 보일 테니까, 주차장으로 가자.”
한 층을 더 내려가니 주차장이었다.
“내가 왜 하늘로 안 가냐고 했지?
너무 억울해서야.”
“응? 원귀는 아닌 거 같은데요?”
“아, 누구에게 원한을 가진 건 아니야.
단지, 내가…. 으아 또 화나네.”
“릴랙스….”
“오, 너 영어도 혹시 좀 하냐?”
“네, 외국어는 영어밖에 몰라요.”
“하, 나 그 영어! 아니, 미국 때문에 죽은 거야!”
갑자기 왜 미국이 이 아저씨를 죽였단 말인가? 말의 앞뒤가 다 잘려있다.
멀뚱히 쳐다보자, 머리를 긁적인다.
“나, 올 초에 한 미국 플로리다주 복권 1등 당첨자야!”
미국은 연방에서 발행하는 것 외에도, 몇 개의 주에서도 발행하는 복권이 있었다.
“네? 왜 한국서 안 사고 미국 가서 샀어요?”
“무슨 소리야? 한국은 올림픽 복권 당첨금이 1억밖에 안 되잖아. 어딜 비교해?”
한국의 복권은 총판매액의 절반 정도만 복권 당첨액으로 정하지만, 미국은 전액을 당첨금으로 한다.
그래서 당첨자가 없는 경우 이월이 누적되는데, 그렇게 되면 금액이 엄청나게 불어난다.
“그, 그래서 얼만데요?”
“파 하하! 그전 당첨자가 두 번이나 없어서, 무려 1,650만 달러야!”
“음, 1,650만이면 그게 한국 돈으로?”
“지금 달러당 약 900원이니. 148억 정도! 대단하지?”
“그런데 왜 미국 안 가고, 죽은 건데요?”
“큭, 심장마비로….”
“헐? 설마 복권 당첨돼, 놀라서 죽었다고요?”
“확, 심장이 마구 뛰고, 열기가 머리 위로 딱 솟구치고…. 그리고 정신 차리니, 난 죽어 있더라.”
“그래서 그 돈을 못 쓰고 죽어서, 떠도는 거네요? 그건 해결해주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아, 그건 나도 알아. 귀신이 타서 쓸 수도 없는데, 아니 쓸 데도 없지만.
이제 그딴 건 신경 안 써! 다만, 큭…. 나 모태솔로야! 41살인데, 이게 믿어져?
죽어서까지 총각 귀신으로 마감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돼?”
“뭐, 안타깝긴 하네요. 그런데 총각 귀신 면하는 건, 처녀 귀신 만나서 영혼결혼식 하는 방법밖에는 없잖아요.”
“그, 그래. 바로 그거야! 나 그거 한번 해보고 싶어서, 몇 달째 떠돈다고!
어차피 복권이야 내가 못쓰니, 소원 풀어주는 보상으로 그걸 줄게.
어차피 안 찾으면, 미국만 좋은 거 아냐?
미국 복권 때문에 내가 죽었는데, 그 꼴을 못 보지!”
“어휴, 알았어요. 처녀 귀신 꼭 찾아내서 성불시켜 드릴게요.”
“그, 그래. 그런데, 나 얼굴 좀 따지거든?”
“헐! 모태솔로 될 만했네요. 그런데 귀신인데, 얼굴이 의미 있나요?”
“그거 따지다가 모솔 돼서, 미련이 남은 것이잖아! 그럼, 그걸 풀어야지. 인제 와서, 아무나 하고 막 하라고? 왜 이래? 나 비싼 남자야.”
별로 안 비싸 보이는, 그 총각 귀신을 성불시켜주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처녀 귀신들이 있을까?’
“시간이 조금은 걸릴 거예요. 딱 하고 나타날 리가 없잖아요?”
“그. 그래. 하여간 빨리 찾아줘! 난 여기서 지내고 있을게. 오래는 못 버텨. 두 달 내로 꼭 해줘.”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지하 1층을 벗어났다.
식당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딱히 떠오르는 장소가 없었다.
노스님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딱히 그게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TV 뉴스에 안타까운 소식이라며, 그 내용이 흘러나왔다.
밥은 먹다가 수저를 든 상태로 손이 멈춰졌다.
‘아, 저기, 바로 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