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도깨비 문신의 위력
태월은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옆구리를 콕 찌르며, 윙크한다.
그리고 하얀 커튼이 열린 창 바람에 날리는 걸 보고, 장난을 해본 것이다.
“호호호, 이미 다 알고 사려는 건데, 뭐가 걱정이에요? 안심하세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 귀신만 없으면 괜찮네요? 다른 집 구조적 문제는 없는 건가요?
괜찮으면 오늘 바로 계약 완료할 수도 있어요.”
“하하, 뭐 아들이 매도용 대리인 위임장으로 인감 가지고 오는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지요.
아 그리고 여기는!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고! 결로도 없고, 비 새는 데도 없어요!
그리고 창문들 봐봐, 전면은 통창으로 도산공원이 다 보이잖아요.
이중창에다 밖에선 이 통창 안이 안 보여요!”
신나서 설명하는 부동산 사장의 말에 태월이 한마디를 던진다.
“귀신!”
“음, 단지 귀신 어쩌고가 문제지요.”
벗겨져 숱도 없는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는 태양부동산 사장이다.
2층을 지나 다락방이란 데를 가봤다.
‘흠, 여긴 지하실보단 약하지만, 귀기가 있네. 같이 처리해야겠어.
그건 그렇고 여기에 대형 TV를 설치하고.
영화 관람실을 만들면 좋겠는데?’
천장은 조금 낮았지만, 바닥 평수가 있다 보니 상당히 넓어 50평 가까이 되어 보인다.
그 낮다는 천장도 1, 2층에 비해 낮다는 것일 뿐, 보통 주택의 층고인 2.4m는 된다.
이 주택은 외형상 지붕이 넓게 펼쳐진 2층 주택이고, 다락방인 3층은 밖에선 창문이 달린 벽으로만 인식되었다.
정상적 집이고 굳이 허물지 않고 주택으로만 따진다면.
땅값으로 30만 잡으면 4천이지만, 건축비로는 2억 정도가 소요된 집이었다.
그걸 지금 태월이가 평당 10만 원으로, 128평을 사려는 것이다. 결국 약 1,300만 원이다.
높은 건물을 올리려 했던, 허물 단독주택이기에 집값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귀신만 소멸시키면, 완전 거저인 거다.
소유주의 아들이 부동산에 도착했다.
바로 그 자리서 전액 완불 계약을 하겠다는 말에 환하게 웃는다.
조민희가 아들 통장을 가지고 가서, 자금 이체를 하고 왔다.
등기권리증이 태월에게로 넘어왔다.
“하하, 시원섭섭하네요.
그래도 저희가 많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지금 평당 35는 넘어가는….”
“에이, 김 서방! 자네 아버지가 15에 샀어.
1,920만 원에 산 걸 귀신이 나오니, 1,280에 판 거 아냐? 그 정도면 액땜 잘한 거지 뭘.”
“아, 아니! 그런 걸 이런 데서, 말해도 돼요?”
“뭘 놀래? 이미 다 알고 사는 건데.”
떨떠름한 표정이 돼 버린, 전 소유주 아들.
기분이 언짢았는지, 문을 쾅 닫고 떠났다.
“아이고 속이 시원하다!
아 글쎄, 저 김 서방 저 자식은 얼마나 올 때마다 유세를 떨었는지.
저기에 아파트를 올린다나 뭐라나.
그러다 아마, 귀신보고 제일 먼저 놀라 도망갔지? 하여간 동네가 뒤숭숭해서 민원도 많았는데, 잘 해결되길 바랍니다.”
“아휴,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자 이거로 대포 한잔하세요.”
봉투에 빳빳한 만 원짜리 10장을 넣은 것이다.
부동산중개료와는 별도로 준 것이니, 태양 부동산 사장의 입은 쭉 벌어진다.
“아, 그런데 아까 많이 놀랐습니다.
아드님 돈으로 집을 사다니….”
“호호, 그래도 편법은 아니에요. 증여세를 지금까지 4억이나 냈는걸요.”
10억 증여에 강남역 땅까지 하면, 그 정도는 되긴 했다.
“헉! 대, 대단하시네요.”
“하여간, 오늘처럼 흉가가 나오면, 저에게 연락해주세요.”
“네,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현관문 키 3개를 주면서 넙죽 허리를 숙이는 부동산 아저씨다.
밖으로 나와 조민희와 아들 박태월은 오붓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아들? 엄마랑 왜 같이 안 들어가고?”
“아, 책방에 잠시 들르려고요. 집하고 거리도 멀진 않으니, 금방 들어갈게요.”
“알았어!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아들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고 조민희는 먼저 나섰다.
엄마에게 받은 키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귀신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전 층에 불을 다 켜고는, 지하로 곧장 내려갔다.
밤이 되니 이제 활동을 하려는지, 버젓이 중앙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50대의 비쩍 마른 사내였는데, 눈이 빨갛다.
“아저씨? 여기 남의 집에서 뭐 해?”
-크륵!
“헛! 네놈은 누구냐? 내가 보인다고? 그건 내가 원할 때나 가능한 일인데?”
“뭐 꼬락서니가 볼품도 없는데, 뭘 대단하다고. 아저씨! 방세 낼 돈도 없지?”
“어, 어디서 쥐, 방울만 한 놈이, 어른 앞에서 입을 터는 거야?
그러잖아도 사람이 필요했는데, 싱싱한 놈이 굴러왔구나.”
“나 이 집 새로운 주인이거든? 오늘부터 넌 불법 거주자야!”
악귀가 손을 쳐드니 손톱이 솟아오른다.
“그딴 건 깎고 다녀!”
품에서 재빠르게 염주 알을 꺼내 연속으로 3개를 던졌다.
-쉬 이익! 쉭! 쉭!
-컥! 큭! 크으.
귀신의 몸이 순간 굳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에게 내달렸다.
결계 진언을 먼저 펼쳐 그를 묶었다.
“옴 마니미나예 다라다라 훔 훔 사바하!”
부적을 인중혈에 붙이고, 바로 머리 뒤 풍부혈에도 붙였다.
귀신 앞에 서서 대불정능엄신주를 읊었다.
귀신의 항복을 받아 내는 주문이다.
“타다타 옴 아나레 아나레 비사다 비사다 바이라바지라타레 반다반다 반다네반다네 바이라바
지라파네 파트 훔 브룸 파트 스바하 나무 스타타가타야 수가타야 아르하테 삼먁삼붇다야 사
단투 반트라 파다 스바하!”
품에서 염주 하나를 꺼내 귀신의 입에 밀어 넣고, 턱을 위로 탁! 쳐버렸다.
-끄르륵! 끄으으!
“하, 이거 너무 약한데? 그래도 밀린 월세는 받아야지! 마지막이다!”
광명진언으로 끝을 맺는다!
“옴 아모카 바이로자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캬아아아….
자신도 모르게 왼손을 들어 그 귀신을 가리켰다.
그 순간 팔 안쪽의 도깨비 문신에서, 커다란 아귀 같은 입이 튀어나오더니 귀신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런데 흉악하게 보이진 않고, 귀여웠다.
우유 한 잔 마시는 아이처럼 깔끔하게 꿀꺽했다.
-꿀꺽! 캬 아아악!
귀신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소멸하였다.
‘붉은빛으로 물들더니, 하늘로 치솟는’ 일 따위는, 아예 생기지도 않은 것이다.
“나 원 참, 아니 이게 다! 뭐야?
악귀는 성불이고 뭐고 필요 없는 거야?”
그 순간 왼손 팔이 살짝 진동하더니,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웬 낯선 사내가 도마 위에서 칼질을 번개처럼 하고 있었다.
점점 그 사내의 얼굴이 태월의 얼굴로 바뀌었다.
“응? 아, 또 뭐지? 잠깐 꿈이라도 꾼 건가? 그건 그렇고, 내가 그 칼질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은 또 뭐람?”
부적과 진언 없이도 도깨비 입 하나로 악귀 소멸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 사항도 살짝 생겼다.
아직은 정확한 것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곧바로 위로 올라가며 훑어 나갔다.
3층 다락방 전까지는 별다른 게 없었다.
숨 한 번 내쉬고는 3층 문을 열었다.
‘이번엔 할머니 귀신인가?’
웬 노파가 뻘건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생략하고 왼팔을 쭉 내밀었다.
“가라!”
도깨비 입이 확장되며, 그 노파 귀신은 소리 지를 사이도 없이 그냥 삼켜졌다.
-꿀꺽!
-꺼어억!
“헐! 이렇게 간단하다고?
아니 그런데, 웬 트림이야? 아니, 대체 뭐야?”
꿀꺽 삼키고 나서 잘 먹었다는 듯이 트림 소리까지 냈다.
다시 팔에 진동이 온다.
약간 어지러운 머릿속으로, 웬 아주머니가 천을 염색한다.
여러 가지 안료와 천연 염색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색감의 천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의 얼굴이 태월의 얼굴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면, 천 염색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이건 또 뭐야? 칼질에 이어 염색?
아무래도 악귀들의 생전 재능 같은데?”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제일 정신 없는 밤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손에 왜 책이 없어?”
“찾던 책이 다 팔려서 예약만 하고 왔어요.
아 그리고 낼 오전에 스님 할아버지가 오셔서 귀신들 없애주기로 했어요.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그리고 스님 할아버지가 다녀가면, 제가 그 집을 밝게 꾸며 볼게요.”
“오! 정말 잘되었네. 이거 호박이 넝쿨 채 굴러오나 봐.”
그때 씻고 나오던 박승철이 아내의 말을 듣고는 좋아한다.
“하하! 내가 호박죽 좋아하는 거, 어찌 알고? 낼 아침에 먹을 수 있는 거야?”
“엥? 이 양반이 뒷말만 들었네?
이번 호박은 신데렐라 마차 만들 거라서, 당신 건 없어요!”
“......?”
다음 날 학교에 가니, 뒤에서 그때 그 애들이 또 떠들고 있었다.
“어떤 바보가 또 그 집을 새로 샀다나 봐.”
“아하하, 바보 맞네. 이번엔 얼마나 가려나?”
‘그 바보가 나다, 이것들아!’
수업을 마치고 그 집에 다시 갔다.
오늘은 조민희가 대리인으로서 부동산 등기절차를 하러 다녔다.
이미 경험이 있던 차라, 번거롭긴 해도 잘 처리하였다.
금액도 많지 않았기에, 세금 비용도 그리 나오지 않았고.
단지 이리 큰 부동산이 너무 싸지 않느냐고 담당 직원이 의심하던 차였다.
다행히 옆에 있던 직원이 그 주소를 보더니, 귓속말한다.
“하하, 그 집이군요. 어쨌든 잘 처리됐습니다.”
“네, 수고들 하세요.”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조민희다.
-띠리링! 띠링!
“아, 스님 할아버지? 잘 계셨지요? 네, 네.
다른 일이 아니라 실은 ......”
전날에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알려주니, 너털웃음을 보내는 노스님이다.
그런데 거기서 사람이 살지 않으면, 다시 폐가가 되지 않느냐는 소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귀신이 나오던 집에 누가 임대를 하러 오겠는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 끙끙대자, 다 방법이 있다며 주말에 보자고 하셨다.
토요일 점심때가 되자, 노스님이 젊은 스님들 10명을 데리고 알려준 집으로 왔다.
“오! 집이 좋구나. 이렇게 좋은 집을 그리 싸게 살 수 있다니. 넌 재물복이 타고났나 보다.
아니지, 스스로 만든 건가? 어쨌든 제대로 해보자고.”
“뭘 하시려고요?”
“네가 귀신 없앤걸. 누가 알겠어?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귀신이 있다고 믿겠지.
그러니 신나게 연기를 피워야지.
두 시간 동안 단체 독송 몇 번 하고, 천도재 비스름하게 해보자.
그러고 나면 소문이 날 것이야. 아, 귀신을 없앴다고 하는 그런 소문!”
“아하하, 그러고 보니, 필요하네요.”
“소멸이니 의미가 없긴 해도, 그들로 인해 생사람도 죽어 나갔었다며? 그 넋이라도 기리면 되지 않겠어?”
“네, 스님 할아버지 말씀이 맞네요.”
거창하게 집 전면에 염색된 넓은 천들을 늘어뜨리고, 야외 테이블 위에 흰 천을 깔고 제사음식을 늘어놓았다.
미리 준비까지 해온 탓에, 잘 짜인 시나리오가 되었다.
조민희는 멋모르고 불려 나와서, 축원을 비는 일까지 했다.
-삐요! 삐요! 삐요!
경찰 사이렌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