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5화 (15/250)

15화. 귀신 나오는 집을 사자

놀라움도 잠시, 말이 빨라지는 노스님이다.

“대체 이게 뭐야? 웬 도깨비? 입이 엄청, 크네? 이게 왜 생겼냐? 문신으로 새긴 것 같지는 않은데?”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성불할 때 생기는 그 푸른빛을 몇 번 받았더니, 이게 어느 날 생겼어요.”

“푸른빛이라니? 그 성불시키면 생긴다던 그거? ”

노스님은 전에 한 번 들었던 것이지만, 더 이야기해 보라며 재촉한다.

“언제부턴가 성불을 시키면, 그 푸른빛에서 한 줄기 정도가 저에게 오는 건 아시죠?.”

“크음, 그건 들었었지. 혹시 소멸시키면 온다던 그 붉은빛으론 아직 아픈 데 없고?”

“네,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나도 처음 그 이야길 듣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자료도 찾아봤지만,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지, 뭐라고 조언해 줄 게 없구나.

성불이든 소멸이든 너에게 업장이 생기는 것이니, 억울한 일은 없게 하여라.”

“네, 스님 할아버지.”

건곤암에 잠시 들러, 놔뒀던 짐을 챙기는 중이었다.

여주에서 하남 그리고 서울로 8살의 태월에겐 바쁜 하루였다.

태월이 사는 아파트 정문 앞으로 차가 도착하자, 노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맛난 고기 많이 드시고, 자주 안부 전화할게요. 도명스님도 감사합니다.”

“어허, 냉면이라니까?”

“그래, 태월이도 학교 잘 다니고.”

노스님과 도명스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집으로 도도도 뛰어갔다.

“큰스님! 저럴 때 보면 딱 8살이 맞는데, 그렇죠?”

“그러게, 저러다 또래 친구나 제대로 사귈는지. 그게 걱정이구나. 이제 출발하거라.

늦으면 또 벌금 내야 한다.”

아빠의 서재로 쓰던 방이 지금은 태월의 그림 작업실로 바뀌었다.

유 회장에게 그림값으로 강남역 땅이 생기자, 책도 잘 안 읽는 서재가 무슨 필요냐며 아들의 작업실로 바꿔준 조민희다.

백팩만 휙 던지고 씻지도 않은 채, 작업실부터 들어왔다,

아까부터 머리에 떠오른 단청의 색들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색들이 살아나 작업실을 놀이터로 만들었다.

그렇게 그림에 관련된 두 번째 재능이 태월에게 자리 잡았다.

태월의 4월 학교생활은 겉돌기는 했다.

그러나 오히려 자유롭다, 여기는 자신의 만족감으로 별다른 일이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5월에 있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낼 작품을 구상하는 것으로도 머릿속이 바빴다.

“야? 그거 들었어? 태식이 옆집 산 사람이 또 집을 내놨대. 벌써 몇 번째냐?”

“귀, 귀신이 있다며?”

“그 커다란 집은 지은 지도 오래되었다더라. 해방 전에 지은 거라던데?”

“태식이는 무섭다며 이사 가자 하는데, 아빠가 지금 팔면 아깝다며 버틴다더라.”

옆에서 떠드는 애들의 귀신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 태월이다.

떠드는 두 애들 쪽으로 고개 돌리며 묻는다.

“그 태식이란 애는 어디 사는데?”

있는 둥 마는 둥 하던 반 친구가 자신들에게 묻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사는 집도 모르면서, 떠든 거야?”

“모, 모르긴 누가 모른다고 그래.

집 주소도 아는데….”

“그래? 주소나 제대로 외우기는 하고?”

“강남구 신사동 6xx-x, 도산공원 근처야!”

“우와? 너 엄청 머리 좋은데? 그런데 너 이름이 뭐니?”

“......”

대답도 없는 이름 모를 애를 잠시 보다가, 연필로 불러준 주소를 몰래 메모했다.

3시쯤에 수업이 끝나자, 집에 들러 염주 알과 전에 그려놓았던 부적을 두 장 챙긴다.

그리고 무명의 반 친구가 알려준 주소로 걸어갔다.

도산공원은 1973년 도산 안창호의 애국정신과 교육 정신을 기리고자 조성된 공원으로 면적은 9만 평이 넘는다.

주소로 보니 도산공원을 낀 주택이었다.

130평 가까이 되어 보이는 2층 주택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귀기가 좀 있는데? 일단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은데….’

당장은 방법이 없자, 아군인 엄마를 동원하기로 했다.

-띠리링! 띠리링!

“어, 엄마? 어디야? 친구 만나 점심 먹고 쉬는 중이라고? 그럼 지금은 안 바쁘지? 어, 여기 도산공원인데 주소는 신사동 6xx-x. 올 수 있어? 응, 엄마랑 데이트도 해야지.”

30분 정도 지나자 조민희가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올! 우리 엄마 어디 가면 아가씨 소리 듣겠네?”

“나, 아가씨 맞거든? 애 딸린 아가씨!”

“네, 네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이 집 들어가 봤으면 하는데? 아마 집 내놓은 것 같더라고.”

“아니 집은 또 왜?”

“앞이 큰 공원이니 경치도 좋고, 나중에 쓸모 많을 것 같아서….

당장 살지 안 살지는 몰라, 일단 안을 보고 싶어서 그래.”

“국민학교 1학년 치고는, 별난 건 알고 있지?”

“헤헤, 난 땅이 좋다니까!”

이상하게 아들은 땅에 집착을 보이긴 했다.

또래 애들의 놀잇거리엔 그리 관심도 없어, 가끔은 그게 안타깝기도 했지만.

특별한 애라서 그런가 하고, 나름대로 위안 삼고 있었다.

또 애가 고집이 상당해서, 여기서 설득도 어렵다는 걸 알기에 하자는 대로 한다.

큰스님 이야기론 땅의 기운을 볼 줄 안다고 하니, 또 돈이 될만한 곳을 찾은 건가 보다 하고 여긴다.

“엄마? 놀라진 마시고 잘 들으세요.

그 집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라 아주 싸게 나왔어요.”

“헉! 너 그런 집을 왜 사니?”

“스님 할아버지가 웬만한 귀신 다 성불시키는 건 아시죠?”

“그, 그거야 나도 들어서 잘 알지.

오! 그럼 집 싸게 사서, 큰스님에게 부탁해서 귀신은 내쫓는다? 그럼 괜찮긴 하겠네?”

“그, 그럼요! 가서 팍팍! 깎아보자고요.”

“호호! 알았어. 팍! 팍!”

집과 제일 가까운 부동산부터 들렀다.

“어서 오세요. 집 보러 오셨나요?”

“네, 이야기 듣기론, 요 앞 6xx-x가 나왔다면서요? 이 부동산에서 매물 가지고 있나요?”

“아, 그 귀, 아 아닙니다.”

“귀? 그게 뭐죠?”

“귀한 집이라고요. 급매라서 아주 싸게 나왔습니다. 시세의 반값도 안 되지요.”

“에이, 귀한 집이 아니라, 귀신 나오잖아요.

다 알고 왔어요. 솔직히 다 털어놓고 시작할까요? 그래야 신뢰가 생기고, 가격만 맞는다면 바로 살 거 아녜요.”

“아, 이, 이런.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귀신 어쩌고는 맞습니다. 저는 안 겪어봐서 모르는데, 사는 사람들은 경험하나 보더라고요.”

“죽어 나간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네, 뭐….”

조민희는 후려칠 생각에 미끼를 걸고, 낚싯대를 던졌다.

“그럼 지금 그 집 소유한 사람도 엄! 청! 싸게 샀겠네요?”

“아, 그, 그렇긴 한데…. 산 가격에 팔려고 내놓은 거라.”

“고장 난 차를 실수로 산 후에, 산 가격에 팔면 누가 사나요?”

태월은 엄마 조민희의 입담에 나이스! 를 속으로 외쳤다.

“음, 이쪽 땅 시세가 지금도 오르는 중인데, 평당 30은 벌써 넘겼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얼마에 샀는데요? 우리한테 다 털어놔요! 안 그럼 다른 부동산 가서 친절하게 살 거예요. 설마 이곳 한 군데에 내놓은 건 아닐 거고.”

태양 부동산 사장이 생각하기에, 이 동네엔 이미 소문이 났다.

외지인 외엔 팔 방법이 없는 매물이긴 했다.

자기가 못 팔아도 다른 곳에서 팔면, 말짱 도루묵인 매물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다 꺼내놓고, 결론을 내는 게 낫다 싶었다.

“네, 좋습니다! 지금 주인은 평당 절반인 15에 샀지요. 엄청 저렴하니, 생각도 없이 덜컥 산 경우죠. 원래 사려고 했던 강남역 땅에는 돈이 부족해서, 지금 급매로 생각 중이긴 합니다.

그 집에서 좀 살다가 때 되면 거길 허물 생각이었죠.

그래서 집값은 포함 안 된 순수 땅값입니다.

그러니 다들 미쳐서 달려들었던 것이죠.”

“좋아요. 마음에 드네요.

어차피 구전이 생기려면, 이 땅이 팔려야지요?

자신도 절반에 샀으니, 저도 15의 절반에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한 논리로 치고 들어오는 조민희에게, 부동산 사장은 이게 뭔가 싶었다.

“헉! 무슨 계산법이 그렇습니까?

그 집이 급매라도, 아는 사람은 절대 안 사긴 하죠. 하나, 그 약점을 쓴다 해도 10일 겁니다.”

“좋아요! 화끈하게 10으로 하고, 그 소유주와 담판 보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태양 부동산 사장이다.

꽤 길게 통화를 하는지, 오래 걸렸다.

“아휴, 이 사람도 미련이 넘치네요.

어쨌든 담판은 성공했습니다.

단, 일시불로 이틀 내로 다 처리하는 걸로요. 가능하신가요?”

“그럼요! 그럼 일단 계약금을 걸고 내일 아침에 정식 처리하죠.”

계약금은 혹시 모를 변수를 생각해서 걸으려는 것이다.

“하하, 저야 계약이라도 해주신다니, 감사한 일입니다. 진짜 화통하시네요. 제가 다시 전화해서, 그 집 아들에게 인감도장을 가지고 오라 하겠습니다.”

“소유주는 지금 다른 곳에 있어 못 오고, 아들이 온다는 소린가요?”

“네! 어차피 낼 마무리되는 일이니, 상관없잖습니까? 문제 생기진 않습니다. 보증책임을 저희가 지는 것인데요.”

조민희는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빙긋이 웃는다.

“그럼, 아들 오기 전까지 그 집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그럼요. 그 귀신인지 뭔지는 저녁 이후에나 나온다고 하니, 낮에는 괜찮을 겁니다.

저도 두 번인가 대낮에 가니, 별로 이상한 것은 없더라고요. 진짜 귀신이 있기나 한 건지.”

태양 부동산 사장의 뒤를 따라 그 집에 들어섰다.

그의 말대로 낮에는 귀신이 잘 안 나오는 것은 통상 맞는 말이다.

음기가 차는 시간대가 활동하기 좋은 탓이다.

단지 악령 같은 경우는 예외지만.

그 정도의 귀기를 느끼진 않은 태월이다.

그리고 전보다 영혼 에너지가 더 많아져서, 조금 자신감도 있긴 했다.

“여기는 정확히 128평입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이고요. 주택 바닥 면적이 60평에 정원이 68평인 셈이죠. 그리고 다락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 여긴 지상 3층입니다.

아마 여길 오피스텔이나 단독 아파트를 지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일단, 지하부터 보고 다락방까지 가보죠.”

지하로 내려가니 한층 귀기가 더 느껴졌다.

불을 켜고 보면, 별다른 것은 없었지만.

과거보다 강해진 영혼 에너지 탓인지, 지금 숨어 있는 저 귀신은 만만해 보였다.

그러나 여기 이 자리서 설레발치고 싶진 않았기에, 태월은 그냥 넘겼다.

1층과 2층은 오래된 집치고는 단단해 보였다.

“아저씨? 여기 오래된 집인데, 무너지지 않을까요?”

“하하! 꼬마가 똘똘한데? 그런데 말이야.

이 집 지은 사람이 건축가였어.

자기가 살려고 만든 집이라 엄청 단단해.

자손들도 오래 살라고 제대로 지었다니까!”

태월이 부동산 사장의 말에 또 살짝 끼어든다.

“그런데 귀신이 나온 거잖아요?

후손들이 오히려 힘들었겠는데요?”

“음, 그러게 참 이상도 하지.

하여간 그 후로도 문제가 좀 있긴 했어.

그리고 지금 소유주도 여기 팽개치고 도망간 이유가, 가족들이 시름시름 아프고 악몽에 시달려서야. 아, 부동산업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아, 저기 휙 하얀 게 날리는데 귀신 아녀요?”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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