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절에 웬 귀신이?
정암 할아버지라 불리는 유 회장은 비서의 이상한 말에 통박을 줬다.
“응? 무슨 소리야? 물감 냄새겠지?”
“아, 아닙니다. 제가 코가 예민하거든요.
진짜로 꽃 향이 납니다. 화학적이진 않은 자연의 향요.”
그 말에 유 회장이 그림 앞으로 다가가 그 불로초 앞에서 냄새를 맡아본다.
“어? 정말이네. 자네 코처럼 예민하진 않지만, 확실히 나긴 나네.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의 향이야. 몸에 기운도 더 나는 것 같고.”
“아, 저도 그런 걸 느꼈습니다.”
“꼬마 천재? 저 풀을 꽃가루나 그런 거로 그렸나? 왜 꽃 향이 나지?”
“경면주사와 물감으로만 그렸습니다.”
“그럼, 그림 속에 깨달음이 생겨 만다라 꽃이 피어났나 보네.”
만다라라는 탱화 속의 모양과는 달랐지만, 유 회장은 같은 역할이리라 생각했다.
박 변호사라는 분이 도착했다.
서류 가방에서 등기필증과 몇 가지 계약서를 꺼내더니, 태월 앞에 내놓는다.
“박 변, 세금 관련은 어찌 되나?”
“무상양도라면 현행법상 양도세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받는 사람은 증여세를 내야 합니다.
그리고 매매라고 본다면, 현금 거래가 아니기에 쌍방 증여로 해야 합니다. 서로 증여세를 내게 됩니다.”
“뭐, 복잡해 보여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네, 회장님. 미성년자란 것이, 걸리긴 해도. 법정 보호자가 있으니, 문제는 없습니다.
잘 처리하겠습니다.”
“아, 박 변은 이래서 좋아, 시원시원하잖아.
하여간 꼬마 천재가 증여세 나오면, 법적으로 문제없게끔 해. 그림값으로 부동산에 현금까지 합쳐서 준 걸로 하면 되잖아?”
“그 현금으로 증여세까지 내면 됩니다.
그런데 더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
“응? 좋은 방법 있으면 말해보게.”
“회장님이 현금으로 그림을 사고, 꼬마 천재가 그 현금으로 부동산을 사면 되잖습니까?”
“취득세가 많이 나올 텐데?”
“그거야 회장님이 산 가격으로 팔아야지요.
그러면 회장님은 양도세가 없는 거고, 증여받는 꼬마 천재도 증여세가 줄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증여세에 등기세 예측해서 그 돈까지 주면 되겠군. 그리고 오천 정도 따로 더 주게.”
“네, 회장님 그래도 되긴 합니다.
그리고 강남역의 주변 땅들은 하루하루 시세가 오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세가 얼마라고 딱히 규정하기 힘든 경우죠. 운이 좋으면 싸게 사는 거고, 정보가 부족하면 비싸게 사는 그런 실정입니다. 불법이지 않은 한도 내에서 해결해보겠습니다.”
박 변호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벽에 걸린 그림을 턱으로 가리킨다.
“자네도 꼬마 천재가 그린 그림이, 이 정도 가치가 있을까 의구심 들지? 저기 가서 5분만 집중해서 보고와!”
박 변호사는 5분 정도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제가 봐도 빠져드네요. 가치 판단은 당사자가 하는 것이니, 회장님에게는 이 정도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 역시 박 변이야. 꼬마 천재에게 그 부동산에 관해 설명해주고, 저녁에 집도 방문해서 처리해. 압구정이야.”
유 회장은 그림에 다시 심취하였고, 박 변호사는 서재로 태월을 데리고 갔다.
“박유철 변호사라고 해요. 회장님이 저렇게 들뜬 것은, 십여 년 만에 첨 보는 것 같네요.”
“네 안녕하세요. 박태월입니다.”
“오, 같은 박 씨구먼. 태월 군에게 넘기려는 이 부동산은 원래 상속 때 쓰려고 놔둔 것인데, 임자가 정해지지 않았었다네.”
“아하, 네….”
“강남역에 있는 빈 땅인데 3년 전에 평당 30에 샀으니, 그나마 가격이 저렴할 때였지.
650평인데 약 2억에 산 것이라네.
그때가 지하철 2호선이 완공되기 전이었지.
얼마 전에 시세를 보니 평당 100은 넘겼던데.
거의 최소 7억 정도는 갈 걸세.
그림값으로 4억을 주면, 그 돈 중에서 2억으로 이 땅을 사면 되네.
나머지 시세 차익이 5억쯤 되니, 증여세와 등기 비용하고 이것저것 하면, 1억5천 정도면 될 걸세. 그 부분 처리도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네에, 그래도 오천만 원이 남는데요?”
“하하, 그건 뭐, 알아서 쓰게. 유 회장님이 그 정도는 따로 주라고 했으니, 셈을 이렇게 하면 적당할 걸세. 부모님은 몇 시쯤 오시는가?”
“어머니는 아마 오셨을 거예요.”
“그럼 지금 같이 가볼까? 처리는 빠르게 해야 서로 편하다네.”
박 변호사와 밖으로 나오니, 유 회장은 지인들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얼핏 들으니 집에 좋은 일이 있으니, 방문하라는 그런 전화였다.
“회장님! 이제 압구정으로 가보겠습니다.”
“오, 그래. 일 말끔하게 처리해주게.
꼬마 천재? 자주 연락하자고.”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유 회장은 태월을 대문 앞까지 바래다줬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박 변호사와 함께 압구정으로 이동을 했다.
조민희는 아들이 그린 그림을, 유 회장이란 분이 4억에 샀다는 소리에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얘는 암자에서도 그러더니, 엄마 아빠가 평생 벌어야 할 돈을 한 방에 쑥쑥 뽑네?
그런데 박 변호사님, 그 땅이 어디에 있는 건데요?”
태월의 두 번째 땅 650평이 강남역에 생겨났다.
***
태월이 다닐 학교는 집하고 제일 가까운 구정 국민학교다.
설립된 지 이제 10년이 막 넘어가는 곳이고, 역사가 길지가 않아 명문이란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다.
강남이 한창 뜨면서부터, 명문이라고 불리는 학교들이 이전해 오는 시대였다.
입학식이라서 다들 부모님 손을 잡고 오는 86학년도였다.
교장의 신입생 축하 연설 후에 이어지는 재학생 대표의 환영 연설, 그 후 신입생 대표의 화답 연설. 별다를 게 없는 그런 입학식 말이다.
“엄마? 집에서 공부하면 안 될까? 난 국민학교 공부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네가 선행 공부해서 수업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또래 친구들은 사귀어야 할 거 아냐?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잖아.”
영혼의 확장이 되어서인지. 또래들을 보는 관점이, 중고등학생이 국민학생 보는 시선이 되었다.
그러다 대한 일보의 신문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대한민국 미술대전이었다.
한국화/양화/판화/조각/서예 5개 부문이었다.
올해부터 공예 부문은 대한민국 공예대전으로 분리되고, 그 자리에 판화 부문이 들어왔다.
시상은 부문별 대상과 우수상이 있었다.
날짜도 적당해서 4월 초로 나와 있었고.
작년까지는 반관반민 기구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과도기적으로 주관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한국미술협회에서 주관한다. 7~8월에 열리던 것이, 올해는 5월에 열린다는 사설이 첨부돼 있었다.
이 내용 중에 태월은 착각한 게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나중에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1학년 정도의 수업내용은, 태월에겐 관심 밖의 얕은 지식이었다.
처음엔 태월의 수업 태도를 지적하던 선생들도 질문의 답에 막힘이 없자, 그러려니 하고 포기했다.
월반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고.
***
4월 초가 되자, 주말이 되었다,
건곤암 노스님에게서 연락이 와서 도명스님이 압구정까지 데리러 왔다.
“스님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니, 별일 없으신데? 그냥 전보다 손님들이 더 늘어난 정도?”
건곤암에 도착하자, 노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태월을 반겼다.
“허허, 이제 머리도 자라서 몰라보겠는데?”
“스님 할아버지? 아픈 데 없이 잘 계셨지요?”
“그럼 그럼. 잘 지냈지. 들어간 학교서 친구는 좀 사귀었어?”
“흐, 네에….”
말끝을 흐리는 걸 보고, 노스님은 이미 예측했다는 듯이 싱긋 웃었다.
“뭐 조바심낼 일은 아닌 거지. 다 연이 이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야.
하여간 오느라 고생했다. 따라오너라.”
새로 지은 접객당은 말끔하고 편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다.
냉장고와 TV까지 있는 건 의외였지만.
태월이 주변을 둘러보자, 멋쩍은 표정의 노스님이 피식 웃는다.
“여기 암자도 속세에 물들어가고 있나 봐.
벌써 절에 저런 걸 시주하는 보살들이 생긴 거 보면. 정성이 있는데 거부하기도 뭐해서 들였다. 좀 보기 그렇지?”
“흐흐, 전 좋은데요? 자기 구도인 소승 불교도 좋지만, 중생 구도인 대승 불교도 좋다고 봐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 좋아요.”
“허허, 다 그 그림 때문 아니겠느냐?
그런데 정암이 하도 와보라 해서 갔더니, 십장생도가 열반이더구나.
그 짧은 사이에 그 정도의 발전이 있다니 대단하구나.”
“에이, 그냥 그날 흥이 돋았나 봐요.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다른 일이 있는 건가요?”
“오늘 오라고 한 것은, 아는 절에 탱화가 빛바래서 새로 그리려 널 초대한 거다.
역사적 탱화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겠지만.
20여 년 전 미완성 탱화로, 애매한 상태였거든.
그러다 우리 암자의 탱화가 채워지고, 적호도의 느낌이 벽사 기운을 담고 있으니.
그걸 알아본 돌중 하나가 너에게 도움을 청한 거다. 탱화를 그릴 수 있겠느냐?”
마침, 대한민국 미술대전 한국화 부문에 어떤 분야로 정할지가 고민이었는데, 그중에 탱화도 있긴 했었다.
“일단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말하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러자꾸나. 마침 그 절의 식구 하나가 여기 와 있으니, 다섯 시쯤에 가보도록 하자.”
홍명 스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의 차에 노스님과 태월은 올라탔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의 여주 봉미산에 도착했다.
신륵사라는 절이었다.
이 절은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하기는 하나, 그걸 증명할 근거는 없는 상태란다.
“20여 년 전에 새로 지은 건물이 있었는데, 그걸 그리던 화공이 완성을 못 했다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마쳤다네.”
태월의 눈에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찰 건물이 보였고, 그곳엔 어설프게 마무리한 빛바랜 벽화가 있었다.
“어떠냐? 해볼 수 있겠느냐? 다 지우고 새로 그려도 되고, 뼈대를 두고 채워도 된다고 하더구나.”
“음, 새로 그리려면 적어도 4시간은 걸리겠는데요? 그럼,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그려야겠어요.”
“손님방은 2개 마련해 놓겠습니다.”
“허허, 아닐세 번거롭게 무슨, 하나만 마련하게. 오늘은 태월이와 한방에서 자겠네.”
오랜만에 다른 절의 암자 음식을 먹어보는 저녁 시간을 가졌다.
맛이 괜찮아 조금 과식을 한 태월이다.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나섰다.
오래된 절인지라 탱화들도 많았기에 볼 것은 다양했다.
한두 시간 정도를 돌고 나니 달까지 훤했다.
탱화를 그려야 할, 그 건물 쪽으로 이동했는데 뭔가 달랐다.
초저녁엔 안 보이던 귀신 영감이 빛바랜 탱화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다.
‘어? 절에 무슨 귀신이? 그런데 나쁜 기운까지는 아닌 걸 보니, 다행히 악귀는 아니야.’
태월이 오는 게 보였는지 영감 귀신이 고개를 돌려 힐끗 본다.
눈이 붉지 않은 게, 태월의 느낌처럼 악귀가 아니었다.
태월도 그가 그리 무섭지는 않기에 시선을 마주치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 너 혹시 내가 보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