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2화 (12/250)

12화. 그림을 휘감는 영혼 에너지

조석호의 오버하는 말에 황준현은 주변의 동정을 살폈다.

“아, 진짜! 남들이 오해하겠어요?

제가 그 여자를 건든 것도 아니고, 스토커인 여자를 피해 간 것일 뿐인데.

꼭 내가 사고 친 거처럼 말하면, 어떻게 해요?”

두 선후배 간에 정담을 나누던 중에, 기다리던 땅 주인이 식당에 들어섰다.

지루해하던 태월에겐 반가운 일이었다.

“당숙! 오시느라 힘드셨죠?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 가지고 올 건 다 가지고 오셨고요?”

“험험, 힘든 게 문제야? 빨리 나도 미국 가야지! 보자, 이분들인가?”

“아, 당숙! 여기는 제 선배 되는 분이고요. 이쪽은 그 사촌 가족들이라네요.”

“아이고, 다들 반갑습니다. 후딱 치르고 갑시다. 길게 말해 뭐하겠습니까? 꼬마도 힘들었지? 어른들 세계가 이렇게 지루하게 가거든.”

당숙이라 불리는 최석환은, 금방 미국으로 갈 수 있을 듯하여 기분이 좋아 보였다.

준비해온 서류들을 앞으로 내민다.

“흠, 이 등기필증이 제일 중요하죠. 문제는 없네요. 그리고 이게 그 도로와 옆의 80평 땅 등기필증이네요.”

조석호가 꼼꼼히 서류들을 하나하나 살핀 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인중개사 직업답게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세밀히 작성했다.

매도인 최석환은 인감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매수인란에는 조민희가 법정 보호자 이름을 적어 날인하고, 매수인으로 박태월을 적었다.

“어? 이 꼬마가 사는 거라고? 이거 세무서에서 조사 나오겠는데? 아무리 급해도, 난 편법은 좀 그렇네만?”

“하하, 걱정을 마십시오. 어르신!

우리 조카가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에 그 정도 돈은 있습니다.

증여세까지 왕창 내고서 합법적으로 물려받은 돈이거든요. 그러니 법정 보호자의 동의만 있으면 땅 사고파는 데는 문제 없습니다.”

조석호의 말에 황준현과 최석환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태월이 자신의 통장을 내밀자, 조석호의 말에도 반신반의하던 최석환이 통장 잔고를 본 후에야 끄덕였다.

“허허, 꼬마 부자였구먼, 이 땅에서 돈을 더 왕창 벌어 대대손손 번창하시게!”

“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세요.”

“허허, 그래 그 말 들으니 꼭 오래 살 거 같네그려.”

차를 타고 거래 은행에 들러 이체를 시키고 나서야, 모든 서류가 넘어왔다.

매매 계약 후 소유권리 이전 등기 과정을 거쳤고, 인지세와 취득세, 지방교육세, 농어촌특별세도 납부했다.

등기필증도 받았고, 다른 절차들은 전부 조석호가 조민희랑 처리했다.

처음으로 박태월의 이름으로 땅이 생긴 것이다.

***

입학까지는 일주일이 남았는데, 그동안 정암 할아버지에게 줄 그림 준비를 했다.

십장생들의 자료를 모았으며, 부적의 도안들도 참조용으로 꼼꼼히 챙겼다.

중국부터 시작해서 일본, 한국의 과거 그림들도 같이 눈에 익혔다.

그리고 부족한 기초를 미술 학원에서 사흘간 배웠는데, 진짜 필요한 기초만 배운 것이다.

십장생 그리는 연습도 같이했기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

‘일단 뼈대는 한국 화풍으로 가고….’

조선 성종 때의 성현이란 문신이 새해 송축과 재앙을 막는 그림을 하사받은 뒤, 시를 지어 허백당집이란 책에 남겨 놓았다.

『해달은 늘 비춰 주고 산천은 변함이 없네. 송죽은 눈 서리를 업신여기고, 거북과 학은 장수로 태어났네. 흰 사슴은 그 모습 어찌 그리 깨끗한고. 붉은 불로초는 잎이 더욱 기이하네. 십장생의 뜻이 하도 깊으니, 은혜를 입었네.』

시 한 수를 놓고 화폭에 담기로 하였다.

자정이 넘어가자, 몸을 씻고 마음을 바르게 하였다.

화폭 크기는 2m*1m다.

준비해놨던 재료들을 가지고, 그려나갔다.

해가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되고.

바위틈에서 소나무와 대나무가 자라나고, 물가에서 거북과 학이 깨어났다.

꽃사슴이 고고한 달을 응시할 때, 붉은 불로초는 만월의 빛을 품으며 기이한 꽃을 피운다.

구름은 안개처럼 변해 간간이 이들을 감아 돌아다녔다.

자정부터 그려나간 그림은 아침 6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무려 6시간 동안 몰아에 빠져 붓만 놀린 것이다.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을 때, 왼 손목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 빛은 그림 속으로 파고들더니, 곧바로 흩어졌다.

부적 그린 방식으로 사특함을 제거하는 벽사와 안녕을 위해 천수경을 독송했다.

그 후, 반야심경의 독송 260자를 읊었다.

입에서 나온 천수경의 독송은 그림에 닿으면서, 그림 속에 스며있던 푸른빛과 어울려 춤을 추었다.

그 후 반야심경의 독송이 하늘에서 내려오자, 푸른빛은 지혜의 빛으로 변해 화폭을 휘감아 돌았다.

번뇌가 사라지고 해탈의 미소가 거북과 학과 사슴의 입가에서 피어났다.

이 기이한 광경을 처음 보게 된 태월은 스스로 격정에 휩싸였다.

마음이 일고 생각이 깨어나며. 뇌의 영역이 확장되어갔다.

그런 현상이 생기자, 변화가 생겼다.

왼 손목에 숨겨져 있던 팔찌가 기이한 문양들을 드러내며, 왼 팔목에 문신이 그려졌다.

팔목 안쪽에서 손바닥 쪽으로, 도깨비 얼굴 가면이 해학적으로 귀엽게 그려진 것이다.

어찌 보면 치우천황의 벽사 의미를 가진 도깨비 형상과 유사했다.

별다른 게 있다면, 입이 아귀처럼 크다는 것이다.

그래도 익살스러운 장난꾸러기 모양이라, 8살이 된 태월과도 잘 어울려 보인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머릿속에 들어있는 처음 보는 이 진언은 또 뭐고? 내 팔목에 있는 이 문신을 또 뭐람?”

자신이 그린 그림과 팔찌가 삼킨 푸른빛 영혼 에너지가 교감을 해버리면서, 태월의 영혼이 한 단계 성장해 버렸다.

그에 따라 뇌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출생 때 생모가 전해준 영매술 진언이 예상보다 빨리 드러나 버린 것이다.

손으로 문신을 박박 문질러 봐도 지워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아직은 알 수가 없네. 때가 되면 이유를 알게 되겠지. 일단 너무 피곤하니 자야겠다.”

표구사에 완성이 되었다고 연락부터 했다.

특별 주문해 놓은 30년 된 벼락 맞은 나무 액자가 있다. 그 속에 담길 것이다.

방문 밖에다가는 ‘우유 한 잔 마시고 잠을 자는 중이니, 깨우지 마세요. 점심때 기상 예정.’이라고 써놨다.

자고 일어나니, 그림은 다 말라 있었고 어머니는 외출 중이었다.

그림이 생각과는 달리, 빨리 건조되어 있었다.

표구사에 완성이 되었다고 연락부터 했다.

특별 주문해 놓은 30년 된 벼락 맞은 나무 액자가 있다. 그 속에 담길 것이다.

식탁에 다가가 차려 놓은 점심을 후다닥 먹는 태월이다.

-띠리링! 띠리링!

“안녕하세요. 정암 할아버지.

그림은 완성되었어요. 아 여기요? 네 여긴 압구정 XX 아파트예요. 네, 네, 비서분이 정문으로 오시면 제가 나갈게요. 네, 곧 뵙겠습니다.”

표구사에도 연락하니, 아파트 정문으로 소형 화물차가 올 거라 한다.

정암 할아버지가 보낸 차가 도착했다.

김 비서란 분이 뒷좌석 문을 열어주자, 폴짝 올라타는 태월이다.

앞 좌석 조수석에 김 비서가 탔고.

이태원의 고급 주택들이 모여 있는 한 곳으로 차가 도착했다.

대문은 자동 시스템인지 차가 다가서자, 문이 옆으로 스르르 열렸다.

‘우와! 여긴 대체 몇 평이야? TV에서나 보던 부잣집이네.’

넓은 정원을 지나니 현관문이 보이고 그 앞에 정암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엄청나게 크네요?”

“하하, 마음에 드니? 이 집이라도 줄까?”

“헛, 그럴 리가요. 식구들은 없나 봐요?”

“그럼, 이 시간에는 일하는 사람들만 있어.

다들 자기 일 보러 나갔지. 날도 추운데 안으로 들어와!”

몇 번 통화했더니, 친해졌다고 그 후부터 말을 편하게 하는 정암 할아버지다.

뒤를 따라 김 비서가 그림을 나르고 있다.

거실에 들어서자 깔끔한 동양적 분위기를 내는 인테리어로 가득 차 있었다.

“김 비서? 일단 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다 보고 나면 저기 벽에 걸어야 하니, 집사에게 일러 치수 재서 딱 맞게 장석 위치를 맞추라고 해.”

“네, 회장님!”

긴 테이블 위에 액자가 올라서고 감쌌던 보자기가 풀렸다.

“하아, 잠시, 잠시만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말게. 내가 5분간 그림 속에 들어가 보겠네.”

한눈에 봐도 시선을 다 뺏어 올 정도다.

그러나 숨어있는 신비를 찾으려면,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정암 할아버지는 5분을 지나 10분이나 돼서야 시선을 거뒀다.

“허, 거참, 내가 이런 걸 받을 자격이 되나 모르겠네? 이거 적호도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데? 그 짧은 사이에 꼬마 천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아, 뭐 집중 많이 했거든요.

시간도 두 배 이상 걸렸고요. 저도 만들고 나서 알았어요. 특별한 조화가 생겼다는 것을요.”

“흠, 바로 그거야. 적호도는 단지 사특한 것을 없애고, 마음을 정갈히 하는 기운이 담겼지.

그런데 이건, 그 적호도의 효능에 번민과 걱정, 불안 등을 사라지게 해.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며, 모르고 지나갔던 진리를 깨우치게 해주는 느낌이야.

큰스님이 가끔 말하던 그 반야심경을 들은 느낌, 바로 해탈과 열반….”

정암 할아버지는 자신의 심정을 열변 토하듯이 했다.

괜히 민망하긴 했지만, 자신이 보았던 신비가 있는지라 의연해지려 마음을 세웠다.

“정암 할아버지가 바로 보셨네요.

이 속에 십장생의 의미와 함께,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담았습니다.”

“오호, 내가 바로 보았군, 그런데….

꼬마 천재가 안 보던 사이에 어른이 된 느낌이 드는 건 왜지?”

“글쎄요. 이 그림을 그렸더니, 영혼이 커진 것 같았어요. 그거 때문인가 보죠.”

사실대로 말한 것이었고, 정암 할아버지는 이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서 뭔가 성숙했구나, 하고 단순히 생각했다.

“흠, 이제 가치에 맞게 내가 그림값을 치를 차례군. 적호도 수준으로 내가 준비했었는데, 다른 걸 줘야겠어.”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허허, 그림의 가치는 그에 걸맞게 해야 비로소 빛을 발하네. 아무 말 말게.”

집 전화기를 들더니 누군가에게 전화한다.

“어? 박 변. 그 금고에 있던 것 중에 임자를 정하지 못한 젤 아래 서류 있지? 그걸 가져오게. 증여할 생각이니, 필요한 서류를 다 준비해서 바로 가져오게.”

전화를 끊고는 다시 그림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이 있음에도 그림에만 빠진 것이다.

집사가 벽에 걸 준비를 다 마쳤는지, 김 비서를 쳐다봤다.

“흠흠, 저기 회, 회장님!”

“어? 아, 내가 천재 꼬마를 깜빡했네.”

“아, 그게 아니라 그림 걸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어? 그럼 조심해서 둘이 같이 걸게.”

“네, 회장님. 조심히 다르겠습니다.”

거실 전면에 가로 2m, 세로 1m짜리 큰 그림이 걸렸다.

“이게 걸리니 갑자기 거실 전체가 무릉도원이 된 것 같아. 아주 좋네, 아주 좋아. 하하하.

김 비서도 가까이 가서 봐봐.”

“네, 회장님!”

김 비서도 한참을 바라보더니, 감탄했다.

그런데 갑자기 킁킁거리는 소리를 냈다.

“자네? 왜 그림 앞에서 비염 앓는 소리를 내나? 어디 아파?”

“아, 아닙니다. 그, 그런데 여기 이름은 모르지만, 약초같이 생긴 풀에 꽃이 피었잖습니까? 여기서 기, 기이한 향이 납니다.”

“이상한 소릴 하네? 자네, 어디 진짜 아픈 거 아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