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땅에 욕심을 내기 시작한 태월
정암이란 노인은 태월의 말에 깜짝 놀랐다.
7살 어린애가 땅을 사달라고 한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꼬마 천재는 땅이 왜 필요한 건가?”
“건곤암 아래 땅 5만 평도 샀거든요?
그냥 땅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요.
또 제가 땅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스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고요.
그래서 며칠 풍수지리 기초도 배운걸요.”
“하하, 뭐, 땅이든 돈이든 다를 바가 없긴 하네. 나야 결국 같은 조건이니, 그리하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나요?”
“벽사 의미로는 호랑이와 매가 많이 쓰인다더군. 그게 아니면 십장생도도 좋고.”
“음, 안 그려 봤지만, 연습 좀 해보고 할래요.
오래 건강하게 사시라고 십장생도로 할게요.
적호도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긴 할 텐데, 보람은 있을 것 같아요.
며칠 후면 제가 서울로 가야 하는데, 시간상 서울에서 그리도록 할게요.”
“하하, 그런데 적호도는 한 마리인데. 열 가지나 집어넣으려면, 꽤 수고스럽겠어.
그래만 준다면 바랄 게 없네.
여긴 내 명함일세. 완성되면 꼭 연락을 주게나.”
태월은 이번 십장생도를 경면주사와 함께 일반 물감으로 같이 그릴 생각이었다.
경면주사도 몇 가지 색이 있으니 그것도 포함하고.
알음알음 소문이 났는지, 적호도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덕분에 요즘 도명스님은 암자에 자주 나오게 되었다.
귀신과 관련되어 기사를 할 때보다 적성이 맞는지, 꽤 열심이었다.
***
드디어 일 년여의 암자 생활을 마치고 서울 압구정 집으로 가게 되었다.
아빠인 박승철과 엄마인 조민희가 노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적호도를 구경했다.
“이야, 이걸 우리 아들이 그렸다고?
큰스님에게 그림까지 배웠나 보네?”
조민희의 말에 박승철은 무슨 소리냔 식으로 말을 받았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큰스님이 오히려 내게 묻던데? 집에서 그림 그리는 걸 가르쳤었냐고.
알고 보니 우리 아들이 천재였다나 봐.
독학이란다.”
“어머 어머? 진짜? 우리 아들이 특별하긴 하지만, 우와 이런 그림이라니? 그림에 우리 아들 이름도 있네. 태월! 유명한 화가의 호 같아.”
“하하, 날 닮아 우리 애가 천재인가 보네.”
조민희는 박승철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되묻는다.
“호호호, 여보! 당신의 어떤 게 천재인데?”
“어? 나도 어릴 때 천재 났다고 소리 들었거든? 발차기를 기가 막히게 했다니까!”
“호호, 나도 그 소린 어머니께 듣긴 했어.
그거 때문에 동네 사람들 장독 깬 것도 물어줬다 하긴 하더라. 사고도 많이 쳤다며?
그건 천재가 아니라, 천재지변 아냐?”
이 주에 한 번씩은 주말마다 들르기로 약속하고는, 정들었던 건곤암을 뒤로했다.
“아들? 집에 오니 어때?”
“응, 좋아요. 절도 편하지만, 여기는 또 다른 의미로 아늑해요.”
태월은 입학선물로 받은 것들을 꺼내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거 아빠 드리면 어떨까요?”
“어? 컴퓨터 교환권? 상품권은 들어봤지만, 교환권도 있나 보네? 가격은 안 쓰여 있고, 주문 시 최신형?”
“음, 컴퓨터를 미리 사두면 그것도 구형이 되니, 필요할 때 사라고 하더라고요.”
“아빠는 컴퓨터를 회원 관리용 외엔 안 써.
이건 네 걸로 꼭 사도록 해.
엄마는 회사서 지급하는 노트북을 쓰는지라, 굳이 필요치 않고.
호호, 그런데 젤 비싼 걸로 사면 되겠네?”
제품 브랜드만 있지, 모델명도 기재 되어 있지 않은 것이긴 했다.
조민희는 다른 상자를 열어, 그 속에서 다양한 미술용품들을 꺼내놓고 있다.
이것은 건곤암 노스님의 입학선물이다.
“이거 엄마가 관리하실래요?”
태월은 통장을 내밀었다.
통장을 열어보고는 눈을 껌뻑이는 엄마 조민희다.
“아빠에게 듣긴 했지만, 다시 봐도 황당한 금액이네.
그것도 10억이었는데, 세금으로 2억5천이나 냈다고? 아파트 두 채 값을 세금으로 냈네.”
“스님 할아버지로 명의가 되어서, 어쩔 수 없나 봐요.”
“응? 어차피 아들에게 우리가 주려 해도, 증여세나 상속세로 나가는 건 같아.
차라리 금액이 더 커지기 전에, 이렇게 미리 주는 게 낫긴 해.
그리고 엄마, 아빠는 아들에게 생긴 돈은 넘보지 않기로 했어.
호호, 덕분에 장가갈 때 아들 집 안 사줘도 되니, 앞만 보고 일만 하는 개미가 되지 않아도 되잖아.
그것만 해도 부담 팍 덜었다.”
결국 통장 관리는 태월에게 맡겼다.
대신, 큰돈을 쓸 때는 꼭 상의하기로 약속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천재라고 하니 그게 낫다고 여기는 조민희다.
“여기 아파트가 가격이 많이 올랐어요?”
“응? 우리가 워낙 싸게 사긴 했지만, 그동안 세 배나 올랐지. 왜 아파트라도 사놓게?”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우리 암자에 도명스님이라고 있거든요. 그 삼촌 말로는 통장에 이렇게 돈을 놔두는 건 바보라고 하더라고요.
부동산은 사두면 가격은 안 내려가고, 오르기만 한다고.”
“호호, 스님이 속세의 일도 잘 아시네?
그건 맞아. 한국은 아직까진 부동산 불패야.
문제 되는 건, 대출받아서 이자 감당 못 해 망하는 것일 뿐.
부동산에 관심이 있으면, 사촌오빠 소개해 줄까? 강남에서 부동산을 하잖니.”
태월은 지금까지, 엄마의 직계가족 외엔 친척들은 잘 몰랐다.
돌이나 백일 때 봤을 수도 있지만, 그걸 기억할 수 있는 아기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최근까지도 암자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태월은 조민희와 함께 외삼촌이란 분을 만나러 갔다.
“외삼촌! 안녕하세요?”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하하, 첫돌 때 보고 지금 보니 전혀 모르겠는데? 절에 가서 휴양한다고 하더니, 몸은 좀 좋아진 거야?”
“아, 아주 건강해졌습니다.”
귀신 들렸다는 소문 때문에 휴양 보낸 것으로 둘러댄 조민희였다.
“오빠? 우리 아들이 운이 좋아 돈이 좀 생겼어. 그걸로 땅을 좀 살까 하는데?”
“응? 그거야 민희가 사면 되는데, 왜 아들을?”
“호호, 울 아들 명의로 돈이 생긴 거야.”
“아니, 무슨 그런 황당한 소리야? 미성년자에게 돈 주려면, 증여세가 얼만지나 알아?”
“호호호, 증여세만 25% 정도 냈나 보더라.”
“호, 금액이 안 크니, 그럴 수 있겠네.”
금액이 많을수록, 증여세는 폭탄이 된다.
10%도 있고 40%도 있는 식이다.
“안 크다니? 증여세만 해도 아파트 두 채 값이야.”
“엉? 헐, 미쳤구나, 아니 그걸 증여세로 내다니. 편법 좀 쓰지, 그랬어.”
“호호, 지금이야 문제없겠지만, 훗날 어떤 문제로 자국이 남을진 모르잖아. 아들을 위해 이게 더 속 편하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여 주는 조민희의 사촌인 조석호다.
“그래서 예산은 최대 얼만데?”
“7억5천!”
“헐? 그럼 세금으로 2억5천? 진짜 아파트 두 채네. 그런데 어떤 분이 그런 돈을 어린아이에게 준 거야? 좀 황당하네.”
“나도 자세히는 모르고, 절에 계신 큰스님 아시는 분인가 봐. 아들에게 그림을 선물로 줬는데. 외국에 10억에 팔렸대.”
아직도 10억에 팔린 것으로만 아는 박승철 부부다. 큰스님이 의미 없어 굳이 말하지 않았고, 아들은 큰스님의 몫이라 여겨 말하지 않은 것이다.
비록 그게 유산에 의해 되받긴 하지만, 어린 태월은 그리 깊게 여기진 않았다.
“금액이 그 정도면 덩치가 있는 땅도 가능하겠는데? 지금 그 덩치로 나온 건, 도산대로 쪽 땅들과 삼성동 쪽인데….”
“삼성동이면 삼성그룹이 있는 곳인가요?”
어린 조카의 말에 웃음을 머금는 조석호다.
“그 회사와는 한문이 다르단다. 3년 전에 개통된 2호선 삼성역 쪽에 한국전력 사옥이 3달 전에 준공했거든.
4년 전에 토지개발공사로부터, 떠맡다시피 억지로 사게 된 땅에 지은 거야.
83년에 평당 9만 원에 샀지 아마.
그 맞은편이 코엑스야.
내가 보기엔 아직도 저평가되어, 거기가 전망이 크다고 여겨.”
“그럼 젤 좋은 게 삼성역 출입구 근처네요?
평당 얼마 정도 할까요?”
“하하, 그렇긴 하지. 강남이 많이 올랐다고 해도, 내가 보기엔 아직도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고 생각해.
지금 그쪽은 한전의 영향으로 그 당시보다 거의 두 배 이상 올랐다고 보면 돼.
아마 올 하반기가 되면 엄청나게 뛸 거 같거든.
지금은 돈들이 거의 강남역 쪽에 집중되는 형세긴 하지만.”
조석호는 서류를 가져와서 이것저것 살피기 시작했다.
“아, 여기 있네! 이걸 추천하마.
역 입구 쪽이고. 평당 25만 원이야.
내가 아는 지인의 당숙의 땅인데, 미국으로 이민 가려나 보더라.
일단 돌지 않은 땅이야.
원래 시세는 30은 줘야 하는데, 25도 가능할 거라고 봐. 올 하반기만 되도 두 배는 뛸걸?
나야 돈이 없어서 살 엄두도 안 나지만.”
의미가 이해되지 않아 묻는 태월이다.
“외삼촌? 돌지 않은 땅이 무슨 말이에요?”
“하하, 말 그대로야.
업자들이 아직 이 물건이 나온 걸 모르고 나만 아는 상태야.
후배가 일단 믿고 팔아 달라고 나에게만 알렸거든. 보자, 2,700평이야. 25씩만 잡아도 6억7천5백이네. 등기와 세금까지 하면 7억은 되겠네.”
“오빠? 한전이란 곳은 사옥 땅이 몇 평인데?”
“거긴, 엄청나게 크지. 무려 2만4천 평이야.
그렇다 해도, 삼성역하고 가까운 곳은 이 땅이 갑이지!”
“흠, 외삼촌! 거기 지금 가볼 수 있나요?”
태월은 그 땅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보고 싶은 거였다. 올라도 은행 이자보다 두 배 정도 많으면 된다 싶은 생각이고.
“오, 그래 지금 가보자. 가서 점심도 먹고.”
조석호의 차에 조민희와 태월이 함께 탔다.
한국전력 근처로 왔을 때, 건너편에 보이는 KOEX(훗날 COEX) 건물을 보던 태월의 입이 절로 열렸다.
“코리안 엑시비션 센터.”
“어? 우리 조카 발음 좋은데? 벌써 영어까지 해? 민희야, 조기 영재교육 중이냐?”
“엉? 아, 아니야. 영어 가르친 적 없거든!
절에서 영어 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영어에 태월은 당황했지만, 다행히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아 안심이다.
‘아, 이거 은근히 신경 쓰이네, 영어만 보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니, 연습이 필요하겠어.’
차에서 내려 조석호가 알려준 땅을 가만히 쳐다보는 태월이다.
외삼촌에게 받은 주변 지도도 펼쳐본다.
그사이 외삼촌은 옆에서 새로 떼어온 지적도를 보고 있다.
‘한강과 탄천 그리고 양재천이 모인 것이니.
재물의 흐름이 있다는 삼수합지(三水合地)의 명당이네?
게다가 대모산에서 내려오는 용맥의 끝자락에 위치해, 기운이 모인다는 계수즉지(界水則止)고. 무엇보다 땅이 기운이 좋아.’
태월이 아직까진 풍수지리의 대가는 절대 아니다.
단지 명당과 흉당의 계보만 며칠간 배웠는데, 큰스님은 모르지만 그걸 통째로 외운 것이다.
“외삼촌! 여기 땅에 오니 기분이 좋아요.
여길 사도록 할게요.”
“아, 잠깐! 이거 재확인이 필요하겠는데?
이런, 실수할 뻔했네. 하나가 빠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