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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7화 (7/250)

7화. 적안귀와 원귀

화들짝 놀라는 승철을 보고 태월이 웃는다.

“아니요. 스님 할아버지도 내가 갈 길은 아니라고 하던데요?”

“어휴, 다, 다행이다. 울 아들이 스님이 되고 싶어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네.”

“그리고 비밀인데요. 스님 할아버지는 성경 같은 것이나, 다른 종교 경전도 종종 보세요.”

“허얼! 진짜 특이한 분이시다.”

“세속오계를 만든 원광법사도 유교, 불교, 도교를 다 공부했다던데요?”

박승철은 아들이 별걸 다 아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빡빡 밀어놓은 아들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보면서, 괜히 흐뭇한 아빠 승철이었다.

“그런데, 이야! 아들이 장가 밑천까지 다 마련해놨으니, 일찍 결혼해도 되겠어?

나랑 엄마는 아들 장가갈 집 안 사놔도 되니, 팍팍 쓰고 살아야겠다.”

승철은 말은 저리해도 함부로 돈 쓰는 걸 못하는 사람이다.

그냥 아들 앞에서 호기를 부려보는 것일 뿐.

“엄마는 다음 주에 오신다고 했죠?”

“응, 네 외할머니 생신이라, 친정집에 오랜만에 내려가는 거지.”

태월도 외할머니를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이곳에 있느라 자주 보진 못했다.

그러나 학교 다니게 되면, 아마 종종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태월이 가면 ‘우리 똥강아지’ 하며 버선발로 뛰어나오던 외할머니가 문득 보고 싶기도 했다.

아버지인 승철은 주말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그리고 암자에서 열흘 정도 지났을 때, 노스님이 태월을 불렀다.

“원래 주변엔 개인 사유지가 최대 삼만 평의 땅이 전부였다.

그래서 삼만 평 이야기했던 것인데, 네가 원한다고 하니 산 입구까지 전부 사게 되었단다.

그래서 오만 평쯤 되었지. 아래로 갈수록 더 가격이 비싸다 보니 7억 정도 들었단다.”

“우와 그럼, 암자가 엄청나게 커지겠는데요?”

“후후, 그럴 일은 없단다. 내년에 학교에 가더라도, 이곳엔 자주 시간 내서 오너라.

네 사주도 그렇고, 또 귀기까지 예민하다 보니 몸에 음기가 과하다.

어찌 사느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일단은 네 성장기에는 신체의 균형이 중요해. 이곳만큼 양의 기운이 넘치는 곳은 드물어. 그래서 내가 무리하게 아래까지 산 것이다.”

“아, 꼭 명심할게요.”

“그리고 이 땅은 내가 유언장을 미리 써서, 황 변호사에게 맡겼단다. 그리 알고 있도록 해라.”

황 변호사는 가끔 절에 들르는 큰스님의 조카였다.

학창 시절에 스님이 되려 한 적도 있다는, 진중한 성격의 중년 아저씨다.

***

가을을 넘어 겨울이 왔고.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태월은 귀신과 연관된 독경은 대부분 익히고 외웠으며, 택견과 수박에 어느 정도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고무적인 것은, 그림을 제법 잘 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암자에 있던 그림인 빛바랜 탱화와 불화를 채워 보겠다고 나서니, 노스님이 허허 웃으며 해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채워 놓고 보니, 부처의 일대기가 새로 그린 그림처럼 채색이 돼버렸다.

“허허, 꼬맹이가 제법일세. 그림은 언제 배웠느냐?”

“특별히 배운 적은 없고요, 그냥 이렇게 그리면 될 것 같아 그린 건데요.”

사실은 그 성불한 중년 화가에게 받은 능력이지만, 아직은 불확실하여 얼버무렸다.

그리고 제대로 기초부터 배워보고, 어느 정도의 재능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색에 대해 인지하는 능력이 달라진 것은 스스로 깨닫고 있었긴 했지만.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노스님이 어딜 갔다 온다며 태월을 불렀다.

“지금 가려는 곳은 연립주택인데, 매년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종의 흉가라고 하더구나. 다녀올 테니, 암자를 잘 지키고 있거라.”

“연립주택이 뭔가요?”

“아, 4층 이하의 작은 아파트 형태를 뜻하는 말일걸?”

“귀신의 짓일까요?”

“글쎄, 일단 가봐야 알 수 있겠지. 넌 귀신이 무섭진 않니?”

“사람도 다 다르듯이 귀신도 다 다르지 않을까요? 아직은 주변에 무서운 귀신은 못 봤어요. 그리고 사람을 직접 해치지 못한다면서요?”

“일반적으로야 그렇긴 하지만, 악령이라고 말하는 그런 귀신도 있지 않겠니?

우리 불교 쪽은 제거가 아니라, 성불로 유도하는 구병시식 방식이니.

가톨릭의 퇴마의식과는 방향이 다른 것이지.”

“그럼 스님 할아버지는 그런 악령을 접한 적이 있나요?”

“뭐 나야 너와 다르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성불로의 설득은 실패한 적도 좀 되지.”

“무당은 어떤가요?”

“진짜 무당이라. 글쎄, 아직 초혼이 가능한 진짜 무녀는, 요즘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본 적은 없다고 하지만, 노스님의 머리엔 사제의 제자인 설희의 모친이 떠오른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사제를 통해 간간이 듣긴 했었다.

“아, 저도 가면 안 되나요? 무서운 귀신이면 뒤로 물러나 있을게요.”

“흠, 뭐 너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혹시 악령이라면 아직 어린 네가 놀라지나 않을지 걱정이구나.

그럼 일단 같이 가서 상황 보고 정하도록 하자. 챙겨 나오너라.”

태월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앞의 두 건의 예로 볼 때 대처를 잘하리라 봤다.

이럴 때는 과거에 가톨릭 신부와 퇴마의식을 할 때보다 더 믿음직해 보이는 꼬맹이다.

한 시간 정도를 가니 서울 외곽이다.

도명스님은 오늘도 운전기사로 불려 나왔다.

그러나 자신은 귀신이니 악령이니 하는 것들에 기피증을 가지고 있기에, 들어갈 생각은 안 한다.

연립주택의 경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꾸벅 인사를 올린다.

“주민들은 오늘 다 자리를 비웠습니다.

큰스님의 이야긴 많이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일이 발생했던 집과 제일 많이 발생했던 집을 안내해 주세요.”

“두 곳이 같습니다. 지하 1층 104호입니다.

여, 여기 키가 있습니다.”

경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104호라고 쓰인 집의 현관문이 나왔다.

앞서 안내하는 경비의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자네는 이제 올라가도록 하게. 필요하면 그때 부르겠네.”

“네, 네, 잘 부, 부탁드립니다.”

-찰칵!

-끼이익!

비워진 지 오래됐는지 문 열리는 소리도 고약했다.

플래시를 비춰 문 옆의 스위치부터 켰다.

-딸깍! 딸깍!

“응? 안 켜지는데, 고장이 난 건가?

몇 개의 귀기가 있는 것 같은데, 점점 다가오는군. 내가 느낀다는 것은 사특한 악귀.

잠시, 뒤로 물러나거라.”

태월의 눈에도 3명의 귀신이 보이긴 했다.

그런데 전에 보던 귀신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셋 다 눈이 붉은 적안귀였다.

“스님 할아버지. 붉은 눈 귀신 셋입니다.

12시, 2시, 4시 방향에서 오고 있습니다.”

노스님은 몸을 그 방향으로 튼 뒤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갈!!

-옴 소마니 소마니 훔 하리한나 하리한나 훔 하리한나 바나야 훔 아나야 혹 바아밤 바아라 훔 바탁!

노스님의 입에서 항마진언이 쏟아져 나온다.

셋 중 작은 체구의 귀신만 잠시 흔들거렸을 뿐, 나머지 둘은 오히려 손톱을 세우고 치켜든다.

이대로는 안 될 듯하여, 태월이 주머니를 꺼내 염주 알을 손에 쥐었다.

그 순간 푸른 빛이 왼 손목에서 일순 나와 염주에 스며들었다.

‘응? 뭐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래 생각할 시간도 없었기에, 일단은 제일 먼저 앞서 달려오는 귀신에게 힘껏 던졌다.

-쉬 이익! 크엉! 쉬 이익! 크아앙!

두 개를 연속해서 던지자, 몸이 흔들리면서 괴성을 지른다.

‘헛, 전에는 잡귀도 그냥 아파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악귀인데도 크게 비명을 지르는구나. 영혼에서 받은 그 푸른빛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7개를 던지자 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키이악! 끄르륵! 끄르륵!

뒤따라오던 적안귀가 태월을 노려봤다.

하나를 더 꺼내 쓰러진 적안귀에게 던졌다.

-키...어! 끄르륵르륵!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더니 몸이 멈췄다.

그 귀신은 곧이어 붉은빛으로 치솟아 올라, 빛 가닥 하나를 태월에게 주고는 사라졌다.

뒤따라오던 적안귀가 다른 곳으로 몸을 돌리려 하자, 태월은 그 귀신에게도 염주를 던졌다.

-쉬 이익! 키아악! 쉬이익! 키아악!

맞는 순간부터 그 귀신은 발을 떼지 못했다.

손에 염주 알을 들고 던지지 않고 상황을 지켜봤다.

역시나 발버둥칠 뿐, 도망가지는 못했다.

‘어? 이거 속박기능도 있나 보네?’

나머지를 몇 개 더 던져 그 귀신을 같은 방식으로 소멸시켰다.

역시나 붉은빛 하나가 왼 손목으로 쏘아져 들어왔다.

항마진언에 반응했던 그 체구 작은 귀신만 우두커니 서서 혼자 같은 말을 되뇌고 있었다.

“나는 죄가 없어. 나는 억울해 죄가 없어….”

태월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서며, 그 귀신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누구지? 왜 이런 데서 이러는 거야?”

“너, 너 너! 내 말이 들려?”

“그래, 잘 들린다. 왜 사람들을 죽이지?”

“아, 아니야. 내가 죽인 게 아니라 이들이 죽였어. 그리고 나, 나는 사람에게…. 죽은 것이고.”

“사람? 누가 널 죽여서 귀신이 되었단 소리야?”

“그, 그래. 9년 전에 날 죽이고, 벽 속에 파묻었어. 차가운 시멘트벽 속에….

그래서 억울해서 소리를 치는데, 이들이 나타났어. 그때부터야, 내 원한을 이용해 자신들이 사람들을 죽여 나갔어.”

“널 누가 죽인 거고? 왜 죽인 거지?”

“최, 최영호라는 놈이야. 한때 애인이었는데, 날 속였어. 내 돈을 갚는다고 불러내더니, 날 여기서 목 졸라 죽였어.

난 재미교포였어. 한국에 할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그놈을 알게 됐어.

여자가 생긴 것도 모르고 큰돈을 빌려줬거든. 너무 억울해.”

노스님은 귀기가 약해지자, 그 염주 알에 소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항마진언에 뭐가 걸린 것 같았지만, 그 귀신과 대화하는 것 같아 가만히 지켜봤다.

“그 억울함을 풀어주면, 성불할 거야?”

“으응, 당, 당연하지! 나도 이곳이 지긋지긋해.

한만 풀면 바로 떠나고 싶어.”

“그럼 약속할게. 네 원한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풀어줄게.”

“조, 좋아. 불러줄 테니 적어. 그리고 나도 알아봤는데, 그놈이 잡히면 현장 재연을 위해 오게 된다더라. 그것만 확인되면 그때 나도 성불할게.”

“뭐, 나도 TV 드라마 보니, 그런 게 있긴 하더라. 알았어. 꼭 잡아보자.”

태월은 뒤에 멘 작은 배낭에서 볼펜을 꺼내, 그녀가 알려주는 대로 꼬박꼬박 적었다.

비록 글씨는 서툴지만, 빠짐없이 적긴 했다.

그녀의 이름과 생년월일, 과거 전화번호.

그리고 그놈의 이름과 생년월일, 전화번호.

벽 속에 같이 묻은 살인 도구인 넥타이와 위 속에 남아 있다는 그 남자의 깨진 손톱.

흐느끼는 그녀를 그대로 두고 태월은 노스님에게 상황을 전부 이야기했다.

연신 불호를 되뇌는 노스님이다.

당분간 이곳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겨주고, 태월과 노스님은 밖으로 나왔다.

“이 일은 경찰보다는 검찰이 빠를 것이야.

잠시, 기다리거라.”

저장된 전화번호를 찾아 걸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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