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능력 흡수? 그리고 큰돈을 벌다
탑차 조수석엔 송구스럽게도 노스님이 타시고, 태월은 도명스님의 차에 올랐다.
그 초대형 그림은 건곤암의 제일 큰 부처님을 모신 뒤편의 벽에 기대어졌다.
건곤암에도 몇 개의 탱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어? 왜 저 그림의 구도와 지워진 선들과 색감들이 선명히 떠오르지? 다시 채워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응? 구도? 색감? 그건 또 뭐지? 내가 저리 어려운 말을 안다고? 나 이제 일곱 살인데?’
화가 아저씨를 떠나보내고, 태월은 그림에 대해 알 수 없는 능력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스님의 인맥으로 경매회사에서 직원과 감정사가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의뢰한 물건을 보려고 한숨에 달려왔습니다.”
“허허, 이리로 오십시오. 놔둘 장소가 없다 보니 본당에 기대어 뒀습니다. 거기 감정사분도 함께 오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부처님이 모셔진 옆쪽으로 기대져 있는 200호의 그림은 대작 향기를 물씬 풍겼다.
감정사는 중간중간 탄성까지 보태며, 자세히도 살피고 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감정사가 일어서며 직원에게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큰스님, 필요한 절차이기에 묻습니다.
이 그림은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습니까?”
“뭐, 별다른 거나 있소이까?
암자에 기증된 것이고, 받았소이다.
이런 작은 암자에서는 기증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아, 아닙니다. 저희야 출처를 알고 있어야 하기에 물은 것입니다.”
“그럼 그건 되었고. 그림의 진위는 어찌 됩니까? 당사자에게 받은 것이라, 의심은 하지 않습니다만.”
“진위는 100%의 확신은 아니나, 95% 정도는 사실일 거라 판단합니다.
단지 그 전의 전시회에서도 보이지 않던 작품이라 100%라 못 박지 못한 것이고요.”
“흠, 내가 알기론 그 화백이 죽기 얼마 전에 완성했기에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흠, 그거라면 돌아가신 화백분에겐 안된 일이지만, 경매에서는 오히려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최홍수 화백이 이 정도 크기의 작품을 완성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스님은 감정사의 말에 더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또한 화풍을 보면 맞기는 맞는데, 그려도 너무 대단하게 그려낸 대작입니다.
모사가 솜씨가 저 정도면, 굳이 모사로 밥 벌어먹진 않았을 것이고요.
오히려 이런 모사가 솜씨라면, 그가 생전 최홍수 화백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란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모사라고 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국 진품이란 소리를 돌려 말한 것이다.
경매는 보름 후에 하는 걸로 결정되었고, 대략 추정가는 10억 내외였다.
생전이라면 5억 정도라 판단했을 그림이 유작이며 가장 최근 미공개 작품이란 것.
그런 호재로 두 배 낙찰을 예상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유족들의 연락은 없었다.
뭐라도 딴지를 걸어서 이득을 취하려 했을 법한데도 말이다.
훗날 알게 된 내용인데, 경매로 최고가를 기록한다면 다른 작품들도 뛴다는 걸 안 것이다. 팔고 남아 친척 집에 보관 중이던, 작품 몇 개를 그들은 회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유권한도 없는 데다가, 종교 쪽하고 근거도 없이 싸워서 이기긴 힘들다는 걸 안 거다.
며칠 후 승용차가 오더니, 두 사람이 내렸다.
한 사람은 법당 옆으로 가서 공터를 측정하고,
다른 한 사람은 법당 안으로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갔다.
“스님 할아버지? 이 선물이 제 것이라고요? 전 거절했는데요? 그리고 이미 그림까지 받았잖아요.”
노스님은 태월이를 앞에 앉히더니 빙그레 웃어준다.
“그건, 성불한 그 화가가 선물한 거고, 이건 그 딸을 고쳐준 것에 대한 보답 아니냐.
행한 일에 그 가치만큼 보상받는 것은 정당한 권리란다.
작은 일을 하고, 큰 것을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으냐.
그들에게 이 정도의 선물은 그냥 인사 정도야. 그리고 우리 절도 네 덕에 시주를 하나 받았단다.”
태월이가 받은 것은, 입학 때 쓸 책가방과 학용품 세트 그리고 컴퓨터 교환권이었다.
접객당 옆으로 새로운 건물이 올라오고 있다.
기존의 접객당은 사실 방이 세 개짜리였는데, 두 칸은 노스님과 태월이 쓰고 있다.
나머지 한 칸만 실제 접객 용도인 셈이다.
그걸 따로 짓는 것이다.
그래서 세 달간은 조금 시끄럽지만 감수해야 했다.
낮엔 산 중턱 공터로 가서 수박과 각희를 수련하고, 밤에는 노스님과 법문 공부를 했다.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났을 때, 경매회사에서 노스님에게 연락을 취하고는 찾아왔다.
“허허, 수고들 했습니다.”
“큰스님, 수고는요. 저희가 원래 하는 일입니다. 그림 크기도 크기지만, 작품성이 대단하다고 다들 호평입니다. 역작이라고들 합니다.
국내 그림 애호가들만 참여했다면, 저희 예측으로만 끝났을 터인데.
운이 좋게도 외국 고객 간 경쟁으로 호재가 되어 꽤 잘 나왔습니다.
국내 화가로서도 드문 일일 정도지요.
관련 서류와 낙찰서는 여기 있습니다.”
직원이 내미는 서류를 받아 들고는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이 당시엔 미술품 경매에 세금도 붙지 않았기에 특별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그들이 돌아가자 노스님은 산에서 내려오던 태월을 방으로 불렀다.
“오늘도 열심히 했나 보다. 옷이 다 젖었어.
그래도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하여라.”
“네, 저는 건강해서 감기 구경도 못했는걸요.”
“허허, 네 몸이 그렇긴 하지.
오늘 부른 건 다른 게 아니라, 그림이 팔렸단다. 외국인이 비싸게 샀다고 하더라.”
“아하, 비싸면 좋은 거네요.”
“20억이란다. 팔긴 팔았는데, 이걸 어찌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구나.
너는 미성년자라서 어려울 거고.
아는 세무사에게 물으니 20억 증여는 너무 과한 세금이 적용된다더구나.
일단 10억을 네게 증여해주마. 아마 세금이 꽤 나올 거야. 그래도 그게 훗날 문제가 안 될 것 같구나.
남은 10억 부분은 네가 원하는 것을 사고자 할 때, 대신 내가 사주도록 하마.
남으면 상속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20억요? 그게 얼마 정도 되는 건가요?
아파트 하나 사나요?”
“그, 글쎄다. 아파트는 몇 채는 넘게 살 거 같은데. 나도 아파트 가격을 모르니….
성불한 자가 널 위해 남긴 건데, 본인을 위해 쓰도록 해라.”
“에이, 가족이 남인가요? 그리고 스님 할아버지? 여기 암자 터가 몇 평쯤 돼요?”
“갑자기 웬 절터? 암자 주변까지 소유 땅이 아마 5천 평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와, 부자네요?”
“허허, 여긴 산이라서 평지랑 가격이 다르단다. 쓸모가 적고 사용 제한이 많아서 싸거든.”
“얼만데요?”
“아, 꼬맹이가 오늘따라 뭘 그리 궁금해?
글쎄 올랐다고 해도 평당 만 원도 안 될 거 같던데.
왜 어디 가서 땅이라도 잔뜩 사려고?”
“아니요. 1억이 스무 개면 20억이고.
그럼 1억만 해도 음…. 우와 만 평은 사네요?”
“녀석, 그리 좋으냐?”
“이런 산을 사서, 뭘 하려고? 앞으로 평평한 땅을 사야지.”
“에이 상관없어요. 암자 아래쪽 땅들을 사주세요. 만 평만요. 팔당호도 보이고 여기 기운이 좋은 것 같아요.”
“이곳 주변이 그렇긴 하지.
백제 시대 때 검단 선사가 머물렀다 해서 검단산 아니더냐. 그리고 풍수지리로 봐도 명당이긴 하단다.”
“그럼 제가 어리니까, 제 이름으론 안 되고 스님 할아버지 이름으로 사주세요.”
“허허, 고약한 꼬맹이를 봤나. 그래서 언제 찾아가려고?”
“한 30년쯤요?”
“헐, 내가 이승을 떠난 후에 찾아간단 소리구나. 그런데 그렇게 길게 잡을 필요 없단다.
인간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아.
아직은 내가 정정하다 해도 글쎄다, 10년 정도만 더 지내도 장수했다고 할걸?”
실제로 노스님의 나이가 벌써 90을 넘겼다.
겉으로만 70쯤으로 보일 뿐이다.
사실 태월이 땅 욕심이 있어서 이런 대화를 한 게 아니다.
암자에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잔머리를 쓴 것이고, 바른대로 말하면 절대 받지 않으실 노스님이다.
그리고 노스님 자체도 돈 욕심이 그리 없는 터이다.
노스님은 머리를 굴리는 태월을 보며 피식 웃는다.
‘꼬맹아, 7살 나이로 잔머리 굴리면, 다 산 노인네가 모를 줄 알았더냐? 뭐 그렇다고 해도, 이곳의 땅이 양기가 대단하지.
달의 음기를 과하게 지닌 꼬맹이에게 보약 같은 곳이긴 하네.
남자애가 양의 기운은 적고 음의 기운이 과하니,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태월이가 간도 작구나. 만 평이 뭐냐? 한 삼만 평은 해야지.”
“조, 좋아요! 아. 아니, 스님 할아버지! 삼만 평은 뭐예요? 오, 오만 평으로 할게요!”
“허허, 널 보니 황소 보고 놀란 개구리가 자기 배에 바람 잔뜩 넣고 뻗대는 거 같구나.
하여간 알았다. 널 위해서도 좋은 곳으로 사보도록 하마.”
노스님은 태월의 아버지에게 연락하여 내려오게 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 전후 사정을 알리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스님과 함께 간 아들이 어떤 이에게 그림을 받았는데, 명의는 스님 이름으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경매에 넘겨 20억을 받았고, 절반인 10억을 아들에게 증여할 거란 소리다.
그리고 최대한 절약한 증여세가, 2억5천 정도란 소리에 또 한 번 황당해했다.
결국 부모가 받아도 증여세를 내야 하고, 훗날 또 아들에게 물려줄 때 또 세금을 내야 하니.
노스님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는 박승철이다.
“그럼, 제가 뭐부터 해야 할까요?”
박승철은 아들을 데리고 가까운 은행에 갔다. 보호자에 관련된 서류를 제출하고 아들 명의의 통장을 개설했다.
노스님은 10억을 그날 오후에 태월에게 증여했다.
그리고 세금으로 내고 나니 통장엔 7억5천이 남았다.
“하하하, 세상에 부모보다 더 부자인 아들이 탄생하다니!”
“아빠! 받고 싶은 선물 없어?”
“으하하, 음?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비싼 한우나 한번 먹을까?”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하남시의 고깃집에서 비싼 한우를 대접받았다.
“크크, 아들? 너 승복을 벗으니 문제는 안 되지만. 그래도 머리 때문에 사미승인지 알 건데, 스님이 고기 먹어도 되나?”
“아빠? 저 스님 아니거든요?
그리고 불교에서도 스님이 병이 들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다섯 가지 깨끗한 고기는 먹을 수 있대요. 오정육이라고 해서 다섯 가지에 해당하지 않으면, 먹어도 된다고 하던데요?”
“엥? 첨 듣는데?”
“내 눈으로 직접 죽이는 것을 보지 않은 불견살, 내 귀로 죽어 가는 울부짖음을 듣지 않은 불문살, 나를 위하여 잡지 않은 불위아살, 새나 짐승 따위가 수명이 다하여 죽은 자살, 매나 솔개 따위가 먹다 남은 조잔육.
요렇게 가능하대요!”
7살 같지 않게 이상한 걸 외우고 있다 싶다.
“헐! 너 그런 거까지 외우고 다니냐?
큰스님에게 들으니, 너 불경도 많이 외운다며?
그거 글이 길던데 그걸 어찌 다 외워?”
“흐흐, 처음엔 어렵더니, 어느 순간부터 잘 외워지더라고요.
법문 공부로 뜻을 알면서 외우니, 더 빠른 것 같아요.”
승철은 아들이 법문 공부까지 했다고 하기에,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뭐? 나중에 불, 불교대학이라도 가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