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미승으로 변신?
승철이 아기의 생모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갖자, 눈을 가늘게 뜨고 째려보는 민희다.
“아, 더는 그 여자는 신경 쓰지 않을래,
당신도 이제 신경, 꺼! 이제 이 아이는 우리 아가야. 절대 비밀이 새어 나가선 안 돼! 당신이 또 설레발쳐서 사고 치면, 당신하곤 이혼이야! 내가 낳은 거라고! 알았지?”
“아, 알았어! 나도 얘가 그런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싫거든. 그래 지금부터 당신이 낳은 우리 아기야!”
“오우! 케이! 고마워 당신! 그리고 소독약 좀 준비해줘!”
업둥이가 된 아이는 그렇게 첫날을 맞이했다.
아이의 출생신고는 해를 넘기지 않기로 했고, 출산 날짜는 그대로 했다.
신고 날짜와 출생일이 다른 경우가 흔했지만, 그날 한가위의 상황이 워낙 특별해서이기도 했다.
특별한 아이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아이 이름은 뭐로 지을까? 생각해 둔 거 있어?”
“태월이 어때? 클 태에 달 월, 박태월”
“아, 태몽도 그거니까? 음, 이름이 특이하고 발음도 좋네. 그럼 그러자. 우리 아이는 특별하니까.”
예를 들면 달의 아이 같다고나 할까?
부모님에게는 한가위 전날에 둥근 보름달이 뜨는 태몽을 꿨다며, 그 특별한 의미로 이름에 부여했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해서 아이의 이름은 박태월로 정해졌다.
아이는 위험하게 태어났지만 건강하게 잘 자랐다.
가끔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거나 옹알이를 하기도 했으나, 원래 아기는 그런 거겠지 하며 넘어갔다.
발육도 좋았고 말문을 연 것도 빨랐다.
뭐든 배우는 것도 빨라서 우리 아이가 천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아이의 첫돌 때나 생일엔 고향에서 일가친척들이 다 올라와서 축하해주는 분위기여서 아이는 사랑 속에서 커갔다.
부부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한 외모는 외탁이라고 우기는 아내에 의해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았다.
애가 너무 이쁘다고 다들 칭찬이 자자하고 아기 모델 하면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부부는 한사코 반대했다.
그런데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헛것이 보이는지 허공에다 대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게 눈에 띌 정도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줄어들었다.
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그런 부부에게 더 슬픈 이야길 꺼냈다.
“아이가 조현병과 공황장애를 겪는 상태로 보입니다.
이유는 아직 밝혀진 게 없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주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인지라 약 처방은 잠시 보류하겠습니다.”
황당한 의사의 말에 화를 내고 나온 부부는 며칠간 다른 병원에 들러 정밀검사와 상담까지 거쳤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같은 말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아이를 가지려고 들렀던 용한 무당집에도 찾아갔는데, 거긴 더 허망한 경우를 겪었다.
아이가 귀문이 열려 신기가 있고 접신도 가능한, 대단한 영매 체질이라고 굿을 받으라고 권했다.
그 소리에 화가 치솟은 민희는 삿대질하며 욕을 퍼부었고, 승철은 아내를 간신히 말려서야 그 집을 나왔다.
“신내림이라니! 우리 애가 무당짓을 할 애로 보이나, 저, 저 돌팔이!”
***
박승철에게는 태권도 스승이던 한대석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볼일이 있어 근처에 왔다가 제자인 승철의 집에 들렀다.
그에 승철은 무당집에 있었던 일을 터놓으며 의논을 하게 되었다.
한참을 생각에 잠기던 한대석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대석입니다. 찾아뵐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언제쯤 나십니까? 아, 그럼,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자신의 제자를 잠시 응시하고는 깊은숨을 내뱉었다.
“지금 통화한 사람은 나에겐 스승 같은 사형일세. 태권도라기보단 그 원류가 되는 수박과 각희 같은 전통 무술들에 능한 분이시지.”
“네? 무술 하시는 분은 왜요?”
“그분 때문이 아니라 사형이 모시는 큰스님이 계셔. 나도 몇 수 배우긴 했지만. 지금은 누굴 가르치진 않으셔. 뭘 배우란 소리가 아니야.”
목이 마른 것인지 물을 한 잔 더 따라 마시고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큰스님이 이런 쪽으로는 깊은 학문을 가지신 분이야. 그분에게 자네 아들을 보이는 게 낫겠어. 무당 따위에게 휩쓸리는 것보단 백배 낫지 않겠나?”
주말을 날로 잡아서 아이를 데리고 경기도 하남에 있는 검단산으로 갔다.
“아빠! 어디 가는데 산으로 올라가?”
“응, 우리 태월이가 아프니까 그거 고쳐줄 사람이 있다고 해서 가는 거야.”
“음, 나 안 아픈데?”
“휴, 그래, 아파서 가는 것이라기보단, 태월이가 더 건강하게 되려고 가는 거야.”
아버지의 허리 뒤로 반쯤 숨어 허공을 자주 보는 아이가 눈에 밟히는 노스님이다.
승철에게 아이의 사주를 묻고는 가만히 눈을 감아 생각에 빠졌다.
십 분쯤 지나자 눈을 뜬 노스님은 일어서 아이에게 다가가 잠시 눈을 맞춰보았다.
“아이야, 무엇이 보이느냐?”
“어? 제가 보는 걸 어찌 알아요? 다들 모르던데. 말하면 안 된다 했는데….”
“괜찮다,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그들을 천도시킬 생각도 없으니 말이다.”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노스님의 말에 영문을 알 수 없던 승철은 연유를 물으려 쳐다봤지만,
노스님은 별다른 말을 하진 않고 자신의 말만 하였다.
“이 아이는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는 게 몸에 좋을 것입니다.
그대로 두면 아이의 육신과 정신이 약해져서 큰 병으로 가게 됩니다.”
“아, 그러면 아이가 건강해질까요?
저도 조금 혼란스러웠거든요. 주변 사람들도 아들을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가 그치고 나면 그 땅은 더 생명이 깊어지니까요.”
역시나 아리송한 말을 남기는 노스님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남기고 아들을 돌아보았다.
“여기가 어떠냐? 마음이 불편한 것은 없어?”
“아빠, 여기 오니 마음이 좋아요. 잘 때 힘들었어요.”
“응, 그래, 그랬구나. 그럼 이 아빠가 엄마를 종종 데리고 올 테니 여기서 지내도록 하자.”
“네, 꼭 오셔야 해요.”
“그래, 꼭 그러마.”
어린 아들을 한 번 안아주는데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핑 돈다.
아들의 등을 몇 번 토닥이다가 일어서서, 다시 한번 노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길을 나섰다.
떠나는 아버지의 등을 한없이 보고만 있는, 일곱 살 아이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길 우연히라도 들었으리라.
***
작은 목판에 건곤암이라 쓰인, 허름한 암자가 있다.
그 옆으로 힘에 겨운 듯 물을 출렁이며, 물지게를 지고 가는 아이가 있었다.
일곱 살쯤은 되어 보이려나?
머리는 빡빡 밀어놓고 작고 낡은 승복을 걸친 모양새가 사미승처럼 보였다.
부엌과 가까운 마당 한편의 커다란 물항아리 안에, 물동이에 든 물을 바가지로 퍼담았다.
반쯤 남게 되자, 들어서 붓는다.
두 개의 물동이를 다 비우고 지게를 치웠다. 그리곤 물항아리 나무 뚜껑을 덮은 후에야, 쪽마루에 걸터앉아 팔다리를 두드리며 숨을 내쉰다.
“아, 오늘 물 긷는 걸 이제 다 했어.
그런데 스님 할아버지가 천수경 검사한다고 했는데, 반도 못 외운걸….
반야심경은 짧아서 좋았는데, 끄응.
아, 이걸 해내야지. 아자자!
이 지겨운 물동이 짓을 그만두고 바로 그걸 하는 거야!”
반야심경은 260자이기에 7살짜리도 가능한 것이다.
천수경은 경전으로서의 천수경이 있고, 독송용 천수경이 있다.
이 아이가 배우는 것은 전자지만, 외울 천수경은 후자였다.
그 후에는 금강경이라 했다.
천수경 절반만 외워도 그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영특한 것인데, 아이는 그것을 인지 못 하는 중이다.
‘다 외우고 나면, 물 긷는 건 이제 끝이라 좋기는 한데.
그 시간에 몸을 단련시켜야 한다니, 수박과 각희라고 했는데...’
노스님이라 칭하는 이는 스님이긴 해도, 다른 스님들이 알면 삿대질 당할지도 모른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접근성에서 편협성이 없는 사람이다.
유교나 도교의 책을 종종 보기도 하고, 가끔은 성경도 보기에 의아했던 아이는 이유를 물어봤었다.
“불교는 자기 구도의 종교란다.
신이 원래 없는데, 다른 신이 궁금하다고 무에 이상할 게 있느냐?”
“부처님은 신이 아닌가요?”
“우리보다 먼저 도에 다다른 분이며, 선각자이며 길을 안내하는 분이시지. 흔히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뜻과는 다르단다.
도에 이르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지 않느냐?”
아주 옛날 유교, 불교, 도교에 능했다는 원광법사가 떠오르는 스님이었다.
그런 스님에게 하루는 어떤 노인이 찾아왔다.
“사형, 잘 계셨습니까? 여전히 건강하시네요.”
“겉으로만 그럴 뿐이네. 그런데 사제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긴 한데, 꼭 뭔가에 눌린 느낌이 드는데? 번뇌라도 생겼는가?”
“하하, 아닙니다. 번뇌는요, 무슨...”
“그래? 그런데, 어쩐 일인가?”
“어린 제자를 들였다길래, 무슨 바람이 부셨나 해서, 지나가는 길에 들러봤습니다.”
“글쎄, 제자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뭐 배우고 있는 것은 맞네.
그러고 보니 사제에게 젖먹이 때부터 돌보던 어린 제자가 있었지 않나?”
문득 몇 해 전 기억이 떠올랐는지 노스님이 물었다.
“네, 선대의 약속이지요.
자질이 특출나서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런데 사형은 몸 쓰는 법을 근래에 안 하시지 않았습니까?”
“주로 법문을 가르치고 그것은 근본만 가르칠 생각이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재진이가 채워주면 되지 않겠나?”
“사형제 간에 배움이 생기니, 아까 그리 말씀하셨군요. 그래도 법문을 배운다니, 어찌 됐든 사형의 제자가 아니겠습니까?
온 김에 얼굴이나 보고 갈까 하는데...”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일면 참지 못하는 사제 홍무경이었다,
사형은 스님으로 있지만, 그는 법문보단 무예를 익히는 것에 더 심취해 무도가로 남았다.
아마 세월이 지나 이젠 법문도 제대로 기억 못 할 것이다.
사형의 뒤를 따라 홍무경은 작은 암자로 왔다.
안에서 금강경을 읽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린다.
“태월아! 잠시 나와 보거라.”
“네, 큰스님!”
“어? 쟤가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네요?”
“남들 눈이 있는데 절에서 스승이라 부르는 게 어울리겠느냐? 저 아이는 겉으로 보면 사미승이거든. 그렇게 부르라 시켰다.”
여닫이문이 열리고 8살 정도쯤 되는 아이가 섬돌에 놓인 하얀 고무신을 신었다.
합장하고 고개 숙이는 아이를 보노라니, 자기 제자와 언뜻 겹쳐 보였다.
‘또래 아이라서 비슷한 느낌인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이쪽은 내가 가르치는 박태월이고, 여기는 내 사제인 홍무경인데 너의 사숙이 되지.”
“안녕하세요. 사숙님!”
“어, 어 그래. 아주 귀엽고 총명하게 생겼구나. 그럼 벌써 천수경까지 떼었느냐?”
“네! 달달 외웠습니다.”
“녀석, 진짜 똘똘하네. 그런데 사형! 쟤 생년월일시가 어찌 됩니까? 설희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흠, 쟤 아비에게 듣기론 음력으로 기미년 팔월 보름 자시라고 하더군.”
“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