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2화 (2/250)

2화. 탈영병의 선물

박승철은 강남구 신사동 아파트 단지 맞은편에서 71년부터 30살의 나이로 태권도장을 하고 있었다.

70년대 초반까지도 이곳의 절반쯤은 논과 밭이었기에 아파트를 제외하곤 땅이 그리 비싸진 않았다,

아파트 열기가 치솟다가 74년 9월이 되자 공급과잉과 양도소득세 신설 발표로 오히려 분양가 근처까지 하락했다.

그가 결혼하게 된 것도 이때쯤이어서, 대출을 받아 32평 아파트까지 살 수 있었는데, 1년 전 가격보다 반값에 불과했다.

평당 50만 원 하던 것이 25만 원으로 곤두박질치는 시기였다.

다음 해부터 오르기 시작한 부동산의 열기로 승철 자신은 운발이 좋은 사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 운발로 올해는 기존 아파트를 처분하고, 40평대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에 분양 당첨되어 이사했다.

당연히 태권도장도 팔고 그리로 옮겼고.

그러나 결혼 5년 차가 되면서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집안이 종손까지는 아니어도 손이 귀했고, 형까지 딸만 낳자, 둘째인 승철까지 닦달받는 중이었다.

그래서 인공수정도 몇 번 시도해봤으나, 다 허사였기에 입양까지 생각했었다.

절에도 다니며 절도 많이 했었다.

더구나 인공수정을 마지막으로 한 게 올여름이었는데, 그때는 운이 좋아 착상까지 성공했었고.

그래서 여름 휴가 때, 고향 집에서 설레발친 게 문제였다.

사촌이 ‘여자가 문제 있어서 아이가 안 들어서냐’는 이야길 하는 바람에 자존심상 임신 6주 차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운도 1달 만에 끝이 났다.

하지만 실망하실 부모님에겐 차마 알리진 못해 시간만 지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추석 모임 때 아내도 헐렁한 옷을 입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갓난아이를 입양해야 할 상황인데, 한국은 그게 까다로워 쉽지도 않았다.

“험험, 우리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이런 산에 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겠어?

산에 버려진 고양이 소리거나 바람 소리 아닐까?”

승철은 민희가 아이를 너무 원하다 보니 잘못 들었을 거라 여기지만, 자신 또한 들리긴 했었다.

어른들의 성화에 바람이나 쐬려고 산에 오른 것인데, 길을 헤매고 있다.

고향인지라 이 산을 모르는 것이 아닌 데도, 오늘은 유난히 이상하다.

그러던 차에 들려온 아기 울음소리, 민희가 그때부터 저리 예민하게 구는 것이다.

눈물이 흘러 앞이 흐릿해지고 지쳐있던 여인은 잠시 남은 힘을 끌어내었다.

이젠, 선택해야 했다.

둘 다 죽든가, 하나라도 살리든가.

‘아, 방법이 없는 건가….

내 상태로는 둘까진 보호하며 그를 기다리진 못해.

그리고 호족의 영매술은 여아에게로 이어져 왔으니, 딸을 보호해야 해.

그게 우리 일족의 염원을 이루는 길이야.

아들아 정말로 미안해, 엄마가 어깨가 무겁고 이제 한계도 왔어.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따뜻하게 보호해줄 사람이겠지.’

이 날씨에선 갓난아이가 버티질 못한다.

아무리 푸른 구슬을 먹었다 해도 당장 아이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기에.

또한 벌써 와서 기다렸어야 할 그도 나타나지 않으니.

자신이 최대로 버텨서 움직인다 해도 아기 둘은 불가능했다.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녀였다.

‘생생상제의 그도 이곳을 오지 못하나 보다.

그가 오면 더 좋겠지만, 큰 의미가 있을까?

호족의 염원은 이미 이어졌으니...

그럼, 인간 세상의 다음 인연으로 가자.’

젖을 빨고 있다 잠든 첫째 아이를 조심스레 떼어내 속치마를 벗어 아이를 감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눕히고는 나무 뒤로 몸을 숨기는데 울고 있는 것인지 어깨를 떨며 입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무와 하나가 되듯이 흐릿해졌다.

“어? 저, 저기 봐봐!

하얀 천에 감싸진 거! 저거 아기 맞지?”

민희의 높아진 목소리 톤에, 승철도 급해져 한발 가까이 먼저 다가섰다.

“헉, 갓난아이야. 어, 어떻게 여기서….”

“오빠!! 뭐 해? 얼른 옷을 벗어서 애를 감싸 안아야지!

왜, 이리 굼떠! 나와 봐봐, 내가 할게!”

“그, 그래. 일, 일단 빨리 내려가자.

이, 이러다 아기가 큰일 나겠어.

자세한 이야긴 나중에 하고. 서, 서두르자.”

달은 밝았지만 어두운 밤이라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진 못하였다.

그럴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승철은 아내가 건네주는 옷에 감싸인 아이를 꼭 안고서 달리듯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무 뒤에서 그녀가 은신을 풀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슬픈 눈으로 쳐다본다.

그녀의 시야는 눈물로 인해 앞이 점점 흐려져 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리에 남은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남은 기운을 짜낸 술법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십여 분 후, 창백한 얼굴색을 가진 귀기 어린 사내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아뿔싸 늦었네? 저승사자들을 완전히 따돌리느라, 너무 시간을 지체했어.

아오! 스승 때문에 이게 무슨 탈영병 신세냐!

빨리 전해주고 100년간 숨어 살면 되겠지.

그나저나 흔적이라도 찾아야 할 텐데….’

나무 뒤로 돌아갔으나, 이쪽의 흔적은 너무 미약했다. 그나마 반대쪽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리로 소리 없이 쏘아져 갔다.

***

승철이 아까 전까지만 해도 길을 헤맸던 곳인데도, 지금은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고 선명했다.

이 어두운 밤에서도 오랫동안 다녔던 이 산길이 집 근처 골목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가까이 걸려 내려와 들어간 곳은 집이 아니라 차 안이었다

-케르륵! 케르릉!

시동 걸고 히터를 틀어 실내온도를 최대로 빠르게 올렸다.

“왜 집에 바로 안 가고 여기로 오자고 한 거야?”

“오빠! 생각 좀 하고 살자.

지금 얘를 이대로 데려가서 뭐라고 설명할래? 그리고 갓난아이가 집 안도 아니고 산꼭대기에 버려져 있었다면, 누가 믿어?

그리고 내 욕심이지만, 이건 하늘이 우리를 어여삐 여겨 아이를 준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그게 설명이 안 되잖아?”

민희의 눈에 약간의 광기가 번뜩이는 것을 보곤 승철은 열려던 입을 닫았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게 평화라는 것을 그는 아는 것이고, 설득할 수 없음도 안다.

승철이 반박도 없이 가만히 있자, 잠시 숨을 고르던 민희가 아이의 코에 손을 갖다 대 본다.

“얘가 중간에 잠깐 깨더니, 이런 상황에서도 잘 자네? 순한 것 같아 다행이야.

그리고 오빠! 이대로 서울 가자.

애를 위해선 우리 집으로 바로 가는 게 맞아.”

민희의 이야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승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를 민희가 키울 마음이라면, 문제가 없어야 했다.

괜히 주워온 애로 낙인찍히는 삶을, 그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민희의 바람대로 승철은 기어를 조작하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릉! 부릉! 부우웅!

차는 경주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했다.

야간 통행 금지 시절이지만, 응급 상황에서는 예외도 있었다.

막 태어난 아이를 보여주자, 그대로 통과된다.

박승철은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기에, 낼 아침 전화를 드리려다가 그래도 걸었다.

지금이라도 걸지 않으면 모친이 밤새 잠도 안 자고 설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간이휴게소에서 잠시 내린 승철은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여, 여보시오!”

잠이 들다 깬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저예요. 승철이.”

“아니, 네가 이 시간에 아직도 안 들어오고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냐? 그것도 혼자도 아니고.

아침에 차례 지내는데, 빨랑 안 오고 뭐 하냐?”

“아, 어머니. 저 지금 서울로 가는 길이에요.

아내가 배가 아프다 해서 아무래도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어? 아니, 며, 며느리가 얼마나 아프길래?

그리고 경주에도 큰 병원 있는데, 서, 서울은 왜 가!”

“아니요, 명절이라 경주에는 당직 인턴 외엔 없을 거예요. 아내가 가는 곳은 담당과장도 출근하는지라, 거기에 가는 중입니다.

급하게 아픈 건 아니고요. 계속 살살 아파져 온다기에 혹시나 해서 가는 것입니다.

손자가 건강해야 할 것 아닙니까?”

“손자? 손자라고? 너 그걸 어뜨캐 아냐? 딸인지 아들인지?”

순간 자신이 생각 없이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잘 쓰지 않던 잔머리를 굴려야 했다.

“아, 그, 그 의사분이 잘 아는 분이라 살짝 말씀해주셨어요, 고, 고추!가 살짝 보였다고 하던데요.”

“아이고, 시상에 그랴그랴, 얼른 가보니라!

아침 되면 연락 꼭 혀라! 내가 네 아비한테는 대신 잘 말할 테니 걱정을 말고. 어여 드가.”

“네, 어머니. 아침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푹 쉬셔요.”

전화를 끊고는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참 다사다난한 하루라는 생각이 들고, 꿈꾸는 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손바닥으로 자기 볼을 한 대 쳐봤더니, 피우던 담배가 튀어 나가버렸다.

‘헐! 그래도 아프긴 아픈 거 보니. 꿈은 아닌가 보네.’

땅에 떨어진 담배를 다시 주우려는데. 밖에 있던 차에서 차 문이 열리더니 민희가 나온다.

쪼르르 달려오더니 냅다 담배를 발로 찼다.

“오빠! 여기서 뭐 해? 담배 냄새가 막 태어난 갓난아기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해?

애를 저대로 놔두면 큰일이 나! 얼른 씻기고 뭘 좀 먹여야 할 거 아냐!”

승철은 민희의 날 선 타박에 뒷머리를 긁적댔다.

민희는 간이휴게소에 들어가 살짝 데워진 우유를 한 병 들고나왔다.

어디서 난 건지 공갈 젖꼭지를 들고 흔들어 댔다.

‘조민희, 참 재주도 좋은 여자다.

그럼, 나는 역시나 운발 좋은 남자네.

마누라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고.’

조민희가 차 밖으로 나간 그사이에, 삼기산에서 사라졌던 귀기 어린 그 사내가 차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를 보며 씨익 웃어주는, 귀기 어린 그는 저승의 그 탈영병이었다.

‘아기 안녕? 생생상제의 연은 이로써 끝이야.

이거 먹고 떨어져라. 이걸 위해 승진을 포기하고, 보직만 수백 년간 수십 번을 넘게 바꿨다. 알긴 아냐? 보물창고 보직 빈자리가 이렇게 들어가기 빡셀 줄이야.’

품에서 5cm 폭의 푸른 빛이 나는 팔찌를 꺼내더니, 아기의 왼팔에 채운다.

그 팔찌는 아이의 체형에 맞춰 줄어들더니, 투명하게 변하며 사라졌다.

‘너, 땡잡은 줄 알아. 염라국에 있는 2개의 시크릿 보물 중 하나다.

그 팔찌의 비밀은 나도 일부밖에 모르지만, 그것만 해도 특급 비밀로 취급된 거다.

저승에서도 한 분만 아시는 것인데. 염라대왕도 모를 걸 아마? 난 간다. 빠이빠이!’

그리고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박승철은 차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시동을 걸고 바로 출발했다.

조민희는 우유부터 먹인다고 부산을 떨었고.

압구정 아파트에 도착하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따듯한 물을 욕조에 받아놓고, 아이를 안고 민희가 들어갔다.

어머어머를 연발하고 있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열어보니, 아기의 몸에 분비물들이 많았다.

아이는 울고 있고, 아내는 다독이며 조심스레 아이의 몸을 씻기고 있었다.

-응애앵! 응애앵!

“이 아이 태어나자마자 우리에게 온 건가 봐.

탯줄도 자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말이야.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산꼭대기에서 애를 낳다니….”

“무슨 깊은 사연이 있었나 보네.

날씨도 그런데 거기서 애를 낳을 수밖에 없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