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화 (1/250)

1화. 추적과 탄생

프롤로그

삼국유사 권4의 ‘원광서학’에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주술에 관심이 많았던 원광이 30세가 되자, 삼기산에 들어가 수도할 때였다.

그곳에 있던 어떤 신의 소소한 부탁을 들어주었고, 그에 신이 권하는 대로 중국에 가서 불교와 유교를 익히고 왔다.

돌아온 원광은 삼기산의 신에게 가서 계를 받고, 생생상제(生生相濟 : 다시 태어나는 모든 세상에서 서로 구제함)의 약속을 맺는다.

원광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신에게 현신을 부탁하였다.

그날 밤을 같이 지냈으며, 아침이 되니 구름을 뚫고 하늘가에 닿게 되었다.

신은 마침내 덧없음을 느껴 몸을 버렸는데, 원광이 보니 중년의 여우였다.

얼마 후 신라 사량부에 사는 귀산과 추항이 원광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원광은 학문은 현묘의 도(道)인 풍류도를 좇아 익히고, 무술은 각희와 수박을 익히면 된다, 이르고 그들에게 세속오계를 가르쳤다.

그것이 화랑의 세속오계로 남아 원광법사는 속세에 머문다.

그런데 신이었던 3천 년 묵은 여우는 덧없음을 느껴 육신을 버리고 사라졌지만, 원광은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

1400년이 지난 1979년, 음력 8월 14일 늦은 밤.

경주 안강읍에 있는 무릉산에서, 호접(虎蝶)이 날고 칼이 살을 베며 피를 불렀다.

그런데 그날 인간 세상과 관계없는 저승의 염라국에서도, 보물창고를 지키던 병사 중 탈영병이 하나 생겼다.

하루 늦게 알게 된 당직 사령은 저승사자들을 대거 투입하여 뒤를 쫓는다.

프롤로그 End.

***

***

1화. 추적과 탄생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삼기산(금곡산;비장산) 금곡사에 원광법사의 승탑인, 금곡사지 원광법사 부도탑이라는 사리탑이 있다.

6·25 때 금곡사는 폐허가 되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7호로 지정된 부도탑만 남아 있는 것이다.

삼기산(524m)은 아직 그리 알려지지 않은 탓으로 주능선을 제외하면, 등산로가 제대로 없는 곳이다.

그 덕분에 인적이 없는 처녀지 같은 느낌의 청정함이 있고, 높이에 비해선 제법 깊은 심산유곡을 느끼게 해준다.

단지 정상만은 만만한 둔덕을 이루고 있어, 주 능선으로서는 적당한 곳이다.

늦은 밤 중턱 위로, 적색의 긴 옷을 입은 여인이 넘어질 듯 위태롭게 올라가고 있다.

자세히 보면 원래는 흰옷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왼쪽 어깨와 오른쪽 다리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붉게 물든 것이다.

게다가 배가 상당히 불러 있어, 누가 보아도 정상적으론 보이지 않았고, 만삭의 몸이란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헉! 헉! 헉...”

‘이치코 무녀들이 흑룡회와 결탁하여 닌자를 보낼 줄이야.

큰 사저와 막내 사저의 희생으로 이곳까지 왔는데, 둘째 사저와 넷째 사매는 무사히 그곳으로 갔을까?’

그녀의 큰 사저는 호접을 날려 상대를 격살하는, 독보적인 수리검 고수였다.

나비 형태의 독특한 표창인 이 호접은, 닌자들의 슈라켄보다 강력했다.

사매들을 보호하며 방어를 도외시한 채, 적 다섯의 생명을 한 번에 앗아버렸다.

그 틈에 사매들은 흩어지며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큰 사저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헉! 헉!

“큭, 다들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라!

둘째와 넷째는 그곳으로 가도록 하고!

셋째는 만월을 찾아가!!

그리고 막내는 셋째를 마지막까지 보호해!”

“큰 사저님!”

“큰 언니!! 제발!”

“너희가 미쳤구나? 천추의 한을 남길 셈이냐?

당장 떠나지 못해? 이것들이 지금 눈물 흘릴 시간이 어딨다고!!”

-쿨럭!

큰 사저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튀어나왔다.

“빠, 빠르게 떠나! 너희가 가야…. 내, 내가 안심하고 피할 것 아니냐….”

이미 몰려오고 있는 닌자들이 있기에, 큰 사저는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가 왔고, 부상도 심해 피하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그걸 알기에 발이 안 떨어지는 사매들에게, 피를 토하며 호통을 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는 기약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

“칙쇼!! 저기 임신 중인 여자가 우리가 찾는 목표다. 다들 저기에 집중해!!”

검은 무복의 닌자들이 조장의 말에 따라 선별추격을 시작했다.

“언, 언니!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남아요.

제가, 제가 막을 테니, 삼기산 쪽으로 타고 넘으세요.

그곳은 장로들이 펼쳐놓은 술법이 아직 남아 있어요.”

“아, 아니야. 아직 나도 힘을 쓸 수 있어!”

“언니? 큰 언니의 희생을 이대로 날릴 건가요? 냉철하기로 알려진 언니까지 왜 이래요?

지금 그리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잖아요.

체력을 유지하지 못하시면 모든 게 끝나요.”

“아, 알았어. 그, 그럼 갈게.

살, 살아서 꼭 만나!”

막내 사매의 염원과는 다르게 일부 닌자들은 셋째를 쫓았다.

그렇게 추격전은 피를 적셔가며 이어졌다.

그리고 삼기산 초입에서 그들은 그녀의 흔적을 놓쳐버렸다.

‘너희가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호족(狐族)의 정기를 기어이 끊으려 하는구나.

이곳 삼기산은 우리 조상의 얼이 남은 곳.

무릉산까지는 쫓아왔으나, 이곳만큼은 쉬이 범접지 못할지니.

이제 보름달만 자정을 넘긴다면, 술법 중 너희가 그리 탐내던 이 영매술만은 이어져 더 진화되리라.’

***

-샤샤샥!

-샤샤샤샥!

“칙쇼! 어떻게 되었나? 왜! 왜, 찾지 못하지?”

“무릉산에서 놓쳤는데, 그 후론 행방이 아주 묘연합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방향조차도 감지 못하는 중입니다.”

“빠가야로! 다른 술사들은 거의 처리했고. 아니, 설혹 남아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이 영매술사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로잡아야 해!

으아아!! 하루 동안, 호족 여우들에게 아홉 명의 조원을 잃었어!

이치코! 이치코들은 이럴 때, 다 어디로 간 거야?”

“미코들의 방해가 집요하게 이어져, 바로 오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추가 전력을 두 배로 늘리는 바람에, 오히려 밀리는 중입니다. 이치코의 절반이 희생되었습니다. 조장님!”

“그년들도 결국 노리는 것은 같아!!

어쨌든 다들 빠르게, 빠르게 움직여!

상처 입은 조센징 산모 하나 못 찾아서야, 어쩌겠다는 거야?

그년의 몸 상태에 상처까지 입었어!

이제, 일반인 수준도 되지 못하잖아!!”

주변에 그들 외에도 일곱 명의 닌자들이 있었으나, 입을 열 수 있는 이는 둘뿐이다.

일반 닌자는 어릴 때부터 혀를 반 제거해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닌자 조직이 부활한 것은 이제 100년이고, 그전 200년간은 암흑시대였다.

1901년 과거 일본 첩보 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던, 흑룡회의 탄생 이면에는 이 닌자 조직이 있었다.

일본의 무녀들은 정부 쪽의 무녀인 간나기(巫)계와 민간의 공수(口寄せ)계로 나뉘는데, 대표적인 집단이 간나기계의 이치코와 공수계의 미코다.

이들은 교토와 오사카가 주 활동지였다.

이들이 말하는 이치코와 미코는 지금 호족 하나를 경쟁하면서 뒤쫓는 중이다.

그 호족 영매술사를 잡으려면 이치코들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미코들이 방해하고 있으니 미칠 지경인 닌자들 조장, 이토 간세이다.

“조장님! 앞에 갑자기 안개가 덮쳐 옵니다.

미코의 일부가 이리로 바로 온 듯합니다.”

“칙쇼! 슈라켄과 쿠나이를 3시, 5시, 7시 방향으로 일제히 투척해!”

-쉐에엑! 쉬이익!

-커억!

“......”

일곱 명이 일제히 던진 42발의 슈라켄과 쿠나이에 걸리는 것은 한 명의 비명뿐이다.

꽤 수준 높은 무녀들이 왔다는 의미였다.

이토 간세이는 닌자검을 곧추세우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 옆엔 부조장이 사슬낫의 사슬 줄 반동을 이용해 빙빙 돌리며 기회를 엿봤다.

-푸욱! 퍼억!

“헉! 큭!”

바닥이 꺼지며 조원 하나가 끌려 들어갔다.

끌려 들어간 조원에게 나무뿌리 하나가 꿈틀거리더니 등을 꿰뚫었는데, 그 위치가 심장 쪽이다.

심장의 피를 빨아먹은 뿌리가 흉포하게 치솟아 오르더니, 남은 조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하아…, 하아….”

‘이, 이제 다 왔다.

저들끼리 다투느라 시간을 벌긴 했는데….

아, 아가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줘.’

삼기산 정상에는 어느새 자정을 막 넘긴 만월이 휘영청 빛을 뿌리고 있었다.

정상 바로 뒤편엔 오래된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곳엔 서낭당에서나 봄 직한 흰 천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그곳까지 기어가다시피 하는 그 만삭 여인의 뒤로는, 핏물뿐만 아니라 양수가 터져 땅을 적시며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나무에 몸을 겨우 기대곤 비스듬히 누었다.

만월의 빛을 최대한 받으며 반쯤 누운 산모는, 자신의 품속에서 오래되어 보이는 목곽을 꺼내 열었다.

-딸깍!

목곽 속에는 푸른빛이 일렁이는 호두알만 한 구슬이 있었는데, 그걸 머뭇거림 없이 입에 물더니 삼켰다.

‘아가, 천년의 영매력이 녹아든 월령주란다. 이것이 탯줄에 타고 들어가며 녹아들 거야.

십여 년 정도면, 아마 다 흡수되겠지?

영매술은 너에게 진언으로 남기마.

부디, 부디 못난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우리 호족의 염원을 포기할 수 없었단다.

‘생생상제(生生相濟)’

자정이 넘으면 약속했던 사람이 올 거야.

아가, 잘해주리라 믿어.’

“नमुविकिः स वृक्षो ज्ञानस्य यं वयं सर्वे सहिताः संवर्धयामः वृक्षो ज्ञानस्य य......”

산모가 읊는 진언이 파장을 타며 이어지자, 만월의 달빛이 그녀에게 모여들며 배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만월의 기운은 태아에게 남긴 구슬과 호응하고 있었다.

자궁이 열리고 선이 그어지고 있다.

그녀의 가쁜 호흡과 신음 속에도 진언은 계속되었고, 벌어진 다리 사이로는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면사로 인해 반만 보이고 있었는데, 드러난 두 눈과 이마로도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1500년간 이어진 호족의 구슬은 그만큼 긴 세월 동안 영력을 누적해왔고, 그 일부 효능만으로도 그녀를 빛나게 했다.

그녀 또한 자질이 되질 않아 이 구슬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30년이란 세월 동안 영기를 모으며, 그게 가능한 후손을 낳으려 애쓴 것이다.

긴 진언은 결국 끝이 났고, 기운 없는 손으로 손톱을 겨우 세워 탯줄을 끊어 묶는다.

아이의 엉덩이를 한 번 탁 때리니, 용케 바로 울며 입에 머금었던 토사물이 저절로 나왔다.

-응애앵! 응애앵!

울어 젖히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여인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아이를 꼭 안았다.

‘우리 아기가 효녀구나. 엄마 힘들까 봐, 도와주다니…. 그런데, 젖을 물려야 하는데….’

아이에게 젖을 먹이려고 안간힘을 쓴 덕에 간신히 물렸고.

아이는 본능적으로 힘을 다해 빨아 먹는다.

눈이 감기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춰본다.

‘어? 그, 그런데... 아, 아래가... 이상한데? 남, 남자아이잖아, 왜? 어, 어째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어버려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호족의 영매술사는 그 기운으로 인해 지금까지 여자아이만 잉태했었다.

그녀 또한 당연히 여아를 낳을 거라 생각했었고.

-꿈틀!

‘어? 배, 배 속에 또... 있다고? 쌍둥이? 이, 이번엔 여아겠지.’

기력이 다해가는 와중에도 뱃속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움직임은, 산모를 또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오는 가운데에도 두 번째 아이를 나오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출산에 의한 출혈과 부상으로 인한 상처들로 출혈이 과하게 겹쳐 산모의 목숨도 위태한 상태였다.

염원을 버릴 수 없기에 남은 영기까지 써가면서 아이를 유도해 나갔지만, 발부터 보였다.

급해진 산모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아기의 발을 빼내는 데 온 정신을 쏟았다.

발이 나오고 다리가 나오고 거꾸로 있던 머리까지 드러나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첫 번째 아이와는 아래가 달랐다.

‘아 아, 삼기신이시여... 호족을 버리지... 않으셨군요. 감, 감사... 합니다.’

그 와중에도 빠르게 목에 감긴 탯줄을 풀고, 아기의 입에 이물질을 빼내었다.

아픔도 잊었기에, 사경을 헤매는 몸이라곤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손놀림을 보였다.

숨이 미약해진 것인지 아기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거꾸로 들어 잡고, 두 번째 아기의 엉덩이를 손으로 때려 남은 이물질을 내뱉게 하였다.

-찰싹! 찰싹! 찰싹!

-응애앵! 응애앵!

급한 나머지 세 대씩이나 쳤더니, 아기가 아파서인지 울어댔다.

‘아, 사, 살았어. 아,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엄, 엄마가 너무 정신이... 지금 없어.’

둘째 아기도 꼭 잡아 안고 간신히 젖을 물렸다.

아기 둘이 한쪽씩 가슴을 본능적으로 빨고 있었다.

‘왜? 아직 안 오지... 혹, 그도 못 오는...

아, 자꾸 눈은 감기는데... 감기는데...

아가야, 사랑해…. 그리고 너무 미안해….’

막 눈이 감기려던 찰나에 풀잎 밟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렸다.

“오빠! 저쪽 맞지? 오빠도 들었잖아.

랜턴 좀 더 앞으로 비춰보라니까!

저쪽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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