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314화 (314/314)

314화.

혈천의 혈겁을 막기 위해서 전 무림이 움직였다.

그러므로 이가장 역시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형님이 자리를 비우셨고 형수님들께서 홀몸이 아니신데 자네까지 장원을 비운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이가장 고수들을 이끄는 것은 검신 이현성의 의제인 초운비였다.

장주인 이현성이 소림의 청을 받고 나선 이후 연락이 끊겼고, 장주 부인들 역시 임신 혹은 막 출산을 한 상태였기에 이가장을 이끄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기에 이현성의 친제인 이현호까지도 참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초운비의 생각이었다.

초운비는 이현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우린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기러 가는 것이니, 그런 표정 짓지 말게.”

“형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살아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는 초운비나 듣는 이현호 모두…….

그러나 그런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이제 그만 출발하세나.”

“예, 호법님.”

이가장을 보호할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수들이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잔류한 이들은 이를 악물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세요.’

* * *

“아, 안 돼!”

천하는 피로 물들었다.

혈천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혼세신마는 지옥대제의 협력 하에 점창의 관일창왕과 만독궁의 독왕을 베었다.

그들의 죽음으로 운남무림과 남만무림까지 몰락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천웅창제를 베기 위해서 호남으로 향했다.

환마 역시, 무당의 양의검성과 남궁세가의 검왕을 베고 호북무림과 안휘무림을 무너트렸다.

지옥대제만큼은 아니었지만, 도괴와 창괴 등 혈궁에 의해 포섭된 협력자들 덕분에 한결 수월했다.

혼세신마와 환마가 무림을 휘젓고 있을 때, 혈천주는 하북성에 도착했다.

그런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어림군장를 필두로 일천 황실고수와 십만의 금군이었다.

“황제의 힘이 고작 이것뿐이던가.”

금의위, 동창, 도찰원, 구문제독부 그리고 어림군에서 차출한 일천 황실고수 중 고수 아닌 자가 없으며, 십만의 금군 역시 정예 군사들이었다.

무림맹 혹은 사파사세조차 휘청거리게 할 수 있는 강력한 군세였다.

하지만 혈천을 부술 수는 없었다.

혈궁과 사해련 그리고 점점 불어난 무림고수들조차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가벼운 손짓에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혈천주로 인해 황제의 군세는 몰살을 면치 못했다.

“실망스럽군.”

“황제폐하를 모독하지… 컥!”

소림과 이가장 등 무림고수들이 합류했으나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혈천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정확히는 혈천주가 대적불능의 괴물이었다.

그렇게 혈천을 막기 위해서 움직인 황실과 무림고수들이 무너졌다.

결국, 혈천은 더 이상 방해도 받지 않고 황도를 향해 진격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북부 총사령관인 용불군 대장군이 북부 정예군사를 이끌고 황실을 보호했다.

허나 그들이라고 해서 딱히 다를 바가 없었다.

오제에 버금가는 용불군 대장군 역시 혈천주를 막아낼 수 없었다.

최후의 보루였던 용불군 대장군의 죽음으로 더 이상 황제를 보호할 자가 없었다.

“숙부님, 꼭 이렇게 많은 피를 보셔야 했습니까? 황좌가 무엇이기에…….”

“황제여. 나 역시 그 말을 하고 싶구나… 황좌가 뭐기에 어린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차지하려고 했더냐. 네 조부는…….”

황좌에 앉아 있는 사내는 혈천주를 향해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

허나 혈천주에겐 가소로웠다.

자신은 그보다 더 어린 시절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땐 황좌를 지킬 힘이 없었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모든 것을 원 위치로 돌릴 때가 되었다.

“당장 널 죽이지는 않겠다. 잠시나마 죽음의 공포 속에 기다리고 있거라.”

“…….”

그렇게 황제는 강제로 유폐되었다.

허나 그건 잠시일 뿐이었다.

그의 목은 자신의 황제 즉위식 때, 벨 생각이었다.

“너무 아쉽군. 검신… 널 죽이면 갈증이 조금은 해소가 되려나?”

* * *

“…지루하군.”

혈천주 아니, 주윤문의 황제 즉위식은 무척이나 성대하게 치러졌다.

무림까지 굴복시킨 진정한 천하의 주인인 오직 주윤문이었다.

따라서 그 어떤 황제의 즉위식보다 성대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주윤문에게는 그저 지루할 뿐이었다.

그의 나직한 말에 주변 고관들은 움찔했다.

한순간 자신들의 목이 떨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슬슬 참수를 하지, 모두 데려와라.”

“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드나이다.”

참수(斬首).

성스러운 황제 즉위식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말이었지만, 누구의 명이라고 감히 거역할 수 있겠는가.

잠시 후, 수십여 명이 끌려왔다.

그들은 황족, 특히 3대 황제인 영락제의 피를 물려받은 자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황제 아니, 황제였던 선덕제 주첨기도 있었다.

영락제에게 한이 많은 주윤문은 그의 잔재를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숙부님.”

“네 조부였다면 달랐을 것 같더냐?”

“…….”

주윤문의 말에 주첨기는 입을 다물었다.

영락제 주체였다면 이들만이 아니라 연관된 모두를 죽였을 것이다.

그는 결코 후환을 남기는 성격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대답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주윤문은 차가운 선고를 내렸다.

“저자를 제외하고 모두 거행하라!”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드나이다!”

주윤문의 명이 떨어지자 군사들이 움직였다.

정확히는 군사의 복장을 한 혈궁의 고수들이었다.

시퍼런 칼을 쥐며 다가오는 그들을 보며 황족들은 사색이 되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폐, 폐하!”

평생 누리고만 살아왔던 황족들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으악!”

“사, 살려… 컥!”

그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으나 누구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어설픈 동정심을 가지기에 황실은 너무도 살벌한 곳이었다.

“소첩, 먼저 가서 기다리겠사옵니다. 폐하.”

“누가 폐하더냐!”

황후는 자신의 목에 칼이 겨누어졌음에도 한점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았다.

국모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황후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미안하오. 지아비가 부족해서 그댈 지켜주지 못했소.’

죽은 그녀를 지켜보는 주첨기의 마음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오직 주첨기만 남게 되었다.

주윤문의 손짓에 드디어 주첨기의 차례가 되었다.

혈궁 고수들은 칼을 번쩍 들었다.

“으아앙! 으아아앙!!”

멈칫!

갑자기 울려 퍼진 아기의 울음소리에 칼을 휘두르던 혈궁 고수들은 움찔했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다시 칼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만! 물러나라.”

혈궁 고수들은 주윤문의 명에 물러났다.

그는 주첨기보다 아기에게 더욱 관심을 보였다.

“이름이 이천악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이천악?

놀랍게도 울음을 터트린 아기는 바로 이현성의 아들인 이천악이었다.

주윤문의 물음에 대답한 여인은 이천악의 모친인 제갈현지였다. 주윤문의 명에 의해 이현성의 가족들이 끌려 온 상황이었다.

이가장 고수들이 저항했으나 안타깝게도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제갈현지와 문교교가 스스로 따라온 것이다.

“검신이 나타나서 내 지루함을 달래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타나지를 않는군. …그 아기를 벤다면 나타나려나?”

“다가오지 마!”

위대한 모성일까?

자식을 지키려는 제갈현지의 기백은 그 어떤 고수보다 강렬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주윤문은 실소했다.

“모자를 함께 베는 것이 낫겠다.”

순간 주윤문의 앞에 한 자루의 검이 떠올랐다.

제갈현지는 이천악을 꼬옥 안았다.

‘미안해요, 더 이상은 당신을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요.’

제갈현지의 눈물이 뚝 떨어지는 순간 검이 제갈현지와 이천악을 베었다.

서걱!

무언가 베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주윤문의 입꼬리가 올라왔다.

“진즉에 벨 걸 그랬나? 이렇게 나타난 것을 보면 말이야, 검신.”

“…미안하오.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기적이 벌어졌다.

제갈현지 모자를 베려던 검이 누군가에게 베였다.

수개월 전 자취를 감추었던 검신 이현성에 의해서.

“…아니에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저는 감사할 따름이에요.”

“사랑하오.”

이현성은 제갈현지와 이천악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때 주윤문이 분위기를 깼다.

“해후할 시간을 더 줘야 하나?”

“나머진 널 벤 후에 하면 된다.”

이현성은 주윤문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빠지직!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눈에 보일 정도로 불꽃이 튀겼다.

두 사람의 기세가 충돌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주윤문의 머리 위에 거대한 붉은 아수라가 떠 있었다.

“흐흐흐! 이 싸움이… 너무 기대가 되는군.”

#종장

“아가씨, 열 번째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올해로 열 살이 된 소녀를 축하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니 소녀는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뻤다.

그때 갑주를 입은 한 무리가 나타났다.

“황제 폐하께서 군주 마마의 생신을 축하하며 보내셨습니다.”

“폐하께서요!”

소녀는 놀랍게도 군주(郡主)의 신분이었다.

그것도 황제가 생일을 축하할 정도라면 그 위치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황제의 선물 역시 대단했다.

최고급 비단은 물론, 진귀한 보물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때 소녀의 어미로 보이는 여인이 대신 말했다.

“폐하께는 감사하다고 대신 전해주세요.”

“예, 왕비 마마.”

군사들은 형식이 아닌 존경 어린 눈으로 군례를 취한 후 돌아갔다.

황실만 아니라 무림과 상계 등 수많은 거물급 인사들이 소녀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한 소년의 선물을 가장 기쁘게 받아들었다.

“흠흠…! 축하해, 천혜야.”

“오빠!!”

투박한 목각인형이었다.

소녀가 받은 값비싼 보화에 비하면 전혀 가치가 없어 보였다.

허나 소년이 동생인 소녀에게 주기 위해서 직접 깎은 거라면 말이 다르다.

사이좋은 남매를 보며 두 여인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허나 곧 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오빠, 그런데 아빠는 언제 와? 천혜 열 살이 되면 오신다고 했잖아?”

“그, 그게…….”

소년은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소년 역시 부친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동생을 달래주기 위해서 한 말이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덕분에 흥겨웠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고 말았다.

“응? 응? 오빠~ 아빠 언제 와?”

“처, 천혜야, 그러니까…….”

당황하는 오빠를 보며 소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안 와? 천혜가 미워서?”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울먹이는 소녀를 보며 소년은 더욱 당황했다.

10년 전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그들 남매의 어머니들은 분명 살아계실 거라며, 언젠가 돌아오실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소년은 달랐다.

“치잇! 아빠! 죽었다고! 나타나지 않는 나쁜 아빠는 필요 없어!”

소년 역시 한때 눈물로 지새운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어른들의 말을 엿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소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사정이 있으셔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거라고.

하지만 소년은 아버지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동생에게까지 자신이 느낀 슬픔을 줄 수 없어, 고백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어, 어, 어!”

“처, 천악아! 천혜야!”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남매가 허공에 떠올랐다.

남매를 호위하던 고수들은 기겁하며 아이들을 붙잡으려 했다.

허나 남매들이 사라지는 것이 더 빨랐다.

그런 남매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 아저씨는 누구…세요!”

“네가… 천악이구나. 이 아저씨는…….”

소년은 긴장했다.

자신과 동생이 어떻게 그의 품에 안겼는지 알 수 없으나 자칫 동생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귀에 익은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 당신…! 살아계셨군요!”

“부인들… 늦어서 미안해. 그리고 아빠가 늦어서 미안해.”

사내의 말에 두 남매는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처음 본 아저씨.

허나 왠지 모르게 친숙한 얼굴.

그제야 알았다.

저 아저씨의 얼굴이 소년과 닮았다는 사실을.

“아, 아빠? 아빠!”

“그래. 아빠란다.”

사내는 바로 10년 전, 천하를 피로 물들게 만든 혈신(血神) 주윤문과 공멸한 검신(劍神) 이현성이었다.

두 남매는 그의 자식인 이천악과 이천혜였다.

이현성은 이천악과 달리 이천혜를 처음 봤으나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문교교의 딸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 이천악이 울음을 터트렸다.

“아니야! 우리 아빠는 죽었…! 죽었다고!!”

“오, 오빠… 아빠 아니야? 아, 아빠 죽었어? 으아앙!!”

이천악의 울음에 이천혜 역시 울음을 터트렸다.

두 아이의 울음이 이현성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아비 없이 지낸 시간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이현성은 그들을 다시 꼬옥 안아주었다.

“아빠가 미안해. 앞으로는 절대로 너희들 곁을 떠나지 않을게…….”

주윤문과 벌인 천외천의 싸움의 여파로 인해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서 10년의 시간을 홀로 견뎌야만 했던 검신 이현성.

드디어 가족들의 품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는 절대로…….’

<‘귀환살수’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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