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그 기운의 정체는 바로 마기(魔氣)였다.
혼세신마는 그 마기의 정체가 앙천독강임을 바로 알아봤다.
그럼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승심을 보이는 혼세신마를 보며 당자성이 도리어 당황했다.
‘내가 앙천독강을 익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젠장!’
앙천독강은 독마의 독문마공이자, 당자성의 마지막 한 수였다.
화경에 근접했다는 청해마왕도 결국 앙천독강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앙천독강을 운용했음을 알면서도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앙천독강의 위력을 알지 못하거나.
‘우드득…! 앙천독강을 감당할 자신이 있단 말이지.’
당자성은 이를 악물었다.
동귀어진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혼세신마를 죽여야 한다.
마교의 마학에 손을 댄 자신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혼자 죽지 않겠다!”
“주제도 모르고…….”
순간, 당자성의 무복이 강렬하게 흔들렸다.
두번의 기회 따윈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앙천독강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런 그를 보며 혼세신마는 검을 들었다.
마령검법(魔靈劍法).
천붕도법과 함께 그의 이대절학이었다.
하나하나가 절세절학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허나 마령검법과 천붕도법을 동시에 펼칠 때는 그 격이 달라진다.
그건 혼세신마를 혈천의 대장로로 만들어준 힘이기도 했다.
그는 마령검만을 쥐었다.
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이었다.
천하의 앙천독강을 상대로 너무도 오만했다.
허나 혼세신마는 오만할 자격이 있었다.
콰쾅―!!
혼세신마가 펼친 마령검법은 혼세교의 우사가 펼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허나 당자성의 앙천독강도 만만치 않았다.
마령검과 앙천독강의 충돌로 주변 일대가 녹거나 파괴되었다.
“퉤! 너무 여유를 부렸군. 독마의 앙천독강이거늘… 허나…….”
혼세신마는 앙천독강의 위력을 무시했다기보다 화경에 오르지 못한 당자성을 과소평가했다.
그 대가를 치르듯 그가 뱉은 침에 검은 피가 섞여 있었다.
마령검법만 펼친 대가였다. 허나 그뿐이었다.
“…사천을 굴복시킨 것을 생각하면 그리 비싼 대가는 아니지.”
“가, 가주께서……!”
“아, 안 돼!!”
격돌의 여파가 가라앉았을 때, 사천의 고수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사천무림의 마지막 자존심인 암군, 당자성의 육신이 절단된 모습이 보였다.
당자성의 따르던 이들이 절규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혼세신마는 차갑게 말했다.
“정리하라.”
“존명!”
혼세신마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혈천의 고수들은 빠르게 사천고수들을 베기 시작했다.
“괴, 괴물 같은 놈들!”
“죽어… 으아악!”
그건 싸움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학살에 불과했다.
결코 사천고수들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혈천의 고수들이 너무 강한 것일 뿐이었다.
허나 이건 혈천 행보의 시작에 불과했다.
최후의 결전
“허… 정말 그분이란 말인가. 어찌… 그분이…….”
황좌(皇座). 천하의 주인인 황제만을 위한 자리며, 오직 황제만이 앉을 수 있다.
그런 황좌에 앉은 사내의 입에서 그분이란 경칭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그분이 맞는가. 천위령주.”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부복한 채 대답을 피하는 천위령주를 보며 황제는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천위령주가 황제의 그림자라고 해도 그가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황족, 특히 ‘그분’이란 존재는 감히 천위령주가 직접 입에 담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천위령주로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한 셈이었다.
“건문제께서 살아계실 줄이야…….”
“…….”
건문제(建文帝) 주윤문.
명태조 홍무제의 손자로, 부친 대신 어린 나이로 황좌에 앉은 명의 2대 황제.
그러나 황좌를 오래 지키지 못하고 숙부인 연왕 주체에게 권력을 찬탈당한 비운의 황제이기도 했다.
연왕에 의해 황궁이 점거되자 건문제는 분신자살을 하고 말았다.
권력 찬탈에 성공한 연왕 주체는 스스로 명(明)의 3대 황제에 올랐다.
현 황제는 3대 황제 영락제의 손자로, 항렬 상 건문제와는 숙질지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혈궁이라고 했던가…? 그럼 그들이…….”
“신비각의 후예입니다.”
명태조 홍무제는 황제의 안위를 지킬 비밀위사들을 양성했다.
그들이 바로 신비각이었다.
홍무제의 사후 2대 황제인 건문제는 황좌와 함께 신비각 역시 물려받았다.
연왕이 황궁을 침범한 당시 건문제의 안위를 위해 가장 치열하게 싸운 존재들이기도 했다.
건문제의 죽음과 함께 신비각 역시 제거되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조금 달랐다.
건문제 아니, 주윤문과 신비각의 후예들은 혈궁이란 이름으로 버젓이 살아 있었다.
“죽은 그분의 시체는…….”
“당시 신비각주에겐 그분과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허…! 과연 충신이로군. 주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했단 말이 아니더냐.”
주군인 건문제를 살리기 위해 자식까지 희생시켰던 신비각주.
아무리 충심이 대단해도 자식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신비각주는 주군을 살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실행했다.
그러나 그의 충심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황실을 벗어난 신비각주는 몇 남지 않은 신비각 고수들을 이끌고 외부에서 양성된 황실 비밀세력들을 규합했다.
외부에 황실 비밀거점을 세운 것은 당대 황제만 한 것이 아니었다.
중원무림의 힘을 아는 황제는 대대로 그들을 견제한 방법을 강구해왔다.
신비각주 아니, 초대 혈궁주 검마는 황실 비밀세력을 규합해서 혈궁이란 새로운 비밀세력을 만들었다.
영락제가 권력 찬탈로 혼란스러운 정세를 정리하느라 외부에 신경 쓰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분 곁에 신비각이 있다고 한들, 고작 일 갑자 만에 혈천이란 거대한 세력을 만들 줄이야.”
“황실비고에서 사라진 보물들을 이용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폐하.”
검마는 혈궁만으론 주윤문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황실 제일고수답게 황실의 힘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혈천이란 암중세력을 만들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규합한 혈궁의 힘도 대문파를 능가했고, 무엇보다 황실을 빠져나올 당시 황실비고에서 많은 보물들을 빼돌린 덕분이었다.
황제만이 알고 있는 비밀통로가 황실비고와 연결되었기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혈궁은 때론 무력으로, 때론 황실비고에서 가져온 보물을 이용해서 무림세력을 끌어들였다.
허나 그 역시 한계가 있었다.
결국 검마는 최후 수단을 사용했다.
혈경(血鏡). 겉보기는 평범한 동경에 불과하지만, 실상은 혈교의 신물이었다.
혈경이 혈교의 신물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혈마의 절학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황실비고에 잠들어 있던 혈경을 앞세워 신분을 숨기고 있는 혈교의 후예들까지 포섭했다.
허나 황실을 의식한 나머지 세력들을 너무 키운 것이 문제였다.
당장이라도 폭발할지 모를 정도로 통제가 어려워졌다.
이때 문제를 해결한 인물이 바로 신비의 혈천주가 된 주윤문이었다.
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황좌의 주인이었던 인물이었다.
주윤문은 그들에게 천하일통이란 숙제를 던져주었다.
야망에 눈을 뜬 혈천은 나름의 질서와 규율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주윤문은 혈경에 숨겨진 혈마의 절학을 익혔다.
“그분 아니, 혈천주의 목적은 바로 이 황좌겠지.”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혈천주의 야망이 무림일통이라도 문제가 된다.
무림이란 황실도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세계였다.
그런 무림의 힘을 한 사람에게 쥐어주는 것은 위험했다.
그렇기에 황제는 무림의 힘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노력했다.
때론 사파무림을 은밀하게 지원해서 정파무림을 견제할 수 있게 했다.
사파사세의 탄생비화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중원무림을 혈천주가 일통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 혈천주의 야망이 중원무림에 그치지 않고 황좌까지 이어진다면, 중원무림에게만 맡기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금의위 도독, 제독동창, 도찰원주, 구문제독 그리고 어림군장을 소집하라!”
“존명!”
황제는 북방에 나가 있는 용불군 대장군을 제외한 황실 최고수들을 소집했다.
황실의 힘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진정한 황실의 힘을.
허나 황제 역시 알고 있었다.
그들만으론 벅차다는 사실을.
“태태감과 천 대장군만 변심하지 않았더라면…….”
* * *
“맹룡부주(猛龍府主)! 그대가 어찌 저들과 함께 있는 게요!”
청해성에서 내려온 무리에 의해 사천무림이 무너졌다.
놀랍게도 그들은 사해련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혈천(血天)이라고 밝혔다.
그로 인해 천하에 혈천의 존재가 알려졌다.
그들은 행보는 무척 무서웠다.
사천무림으로 그치지 않고, 운남과 호북으로 진격했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또 다른 무리가 감숙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바로 사해련이었다.
사망도제의 죽음으로 힘을 크게 잃은 그들이 다시 움직인 것이다.
“화 장문인, 수하가 주군을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오?”
“사해련에 짓밟힌 감숙무림이 어찌 사해련을 모실 수 있소! 그게 말이 된단 말이오!”
사해련에 의해 감숙무림이 무너졌다.
정확히는 청성파와 난주사가가 사라졌다.
혈풍을 일으킨 사해련이 물러난 후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된 감숙무림을 수습한 자들이 있었다.
맹룡도객을 위시한 감숙칠숙 중 살아남은 나머지 삼인이었다.
그늘이 필요했던 감숙무림은 그들 앞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일순간 하나의 세력이 탄생했다.
맹룡부(猛龍府), 맹룡도객을 중심으로 감숙무림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그런 맹룡부가 감숙을 침범한 사해련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류해서 섬서무림으로 진격했다.
“사해련? 화 장문인께서 오해를 하셨소. 나는 사해련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혈천주님을 모시는 것이오.”
“혀, 혈천주!”
화산 장문인 화천기는 물론, 사해련에 대적하기 위해서 모인 섬서무림의 명숙들은 경악했다.
설마 사해련조차 혈천의 일원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혈천주라니… 생각보다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해련이 혈천의 일원이라도 다를 게 없소! 천하를 위해… 헉! 유림주(楡林主), 이게 무슨 짓이오!”
“이런 아쉽군. 화산 장문인의 목숨이라면 주군께 받칠 좋은 선물이 되었을 텐데…….”
섬서 북부를 지배하는 유림주는 섬서에서 몇 없는 초절정고수였다.
그런 그가 화산 장문인을 기습한 것도 놀라운데, 혈천에 합류했다.
감숙 맹룡부주에 이어서 유림주조차 혈천의 수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운남의 지옥대제, 강소의 도괴 그리고 강서의 창괴만 혈천주에게 협조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혈천주에게 협조하게 되었다.
혈천주가 혈궁과 사해련만 대동한 이유였다.
천하 각지에서 고수 혹은 세력이 합류할 예정이니, 혈천 예하 세력들까지 이끌고 올 필요성이 없었다.
“련주, 주군을 언제까지 기다리게 하실 생각이오.”
혈천주의 목적지는 황제가 있는 북경이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