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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310화 (310/314)

310화.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절묘하게도 흑천마옹이 나타났다.

“…궁귀를 제압했습니다.”

“오! 마옹! 놈을 죽이시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던 혁련휘의 안색이 돌아왔다.

흑천마옹이 도착한 이상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끄는 건천각은 야차도대 이상의 강력한 집단이었다.

그리고 흑천마옹이 포섭한 육참도부와 다정마녀는 혈천에서도 흔치 않은 강자들이었다.

야차도귀가 배신했고, 적천우가 생각보다 강하다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러나 혁련휘는 곧 경악하고 말았다.

“…련주님. 놈을 어떻게 할까요?”

“수고하셨습니다, 봉공님. 저 쓰레기는 제가 처리하지요.”

“마…옹! 이 늙은이가 배신… 컥!”

“봉공은 너 같은 쓰레기가 모욕할 분이 아니다.”

야차도귀의 배신에 이어 흑천마옹의 배신은 혁련휘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가 흑천마옹을 모욕하려 하자 적천우는 과감하게 칼을 휘둘렀다.

혁련휘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설마 대호법의 손자를 죽이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하던 그의 수하들은 적천우의 과감한 결단에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

“배신자는 모두 죽여…라고 명하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지.”

적천우의 차가운 목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들었던 혈룡대의 변절자들은 그의 뒷말을 듣고 안도할 수 있었다.

“허나 용서할 생각도 없다. 모두 단전을 폐하라.”

“그, 그런!”

“차라리 죽여라! 무인에게 어찌 그런 잔혹한…….”

“잔혹? 감히 패자에 배신자이기도 한 너희 따위가!”

적천우의 분노에 가득 찬 언성에 혁련휘에게 붙었던 혈룡대원들은 움찔했다.

그들은 저항하려고 했으나 전력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결국 그들은 한순간 무인의 삶을 잃고 말았다.

허나 무인의 삶만 잃은 것이 아닌 자도 있었다.

“맹광…….”

“주, 주군. 용서… 컥!”

“그 더러운 입으로 날, 주군이라 칭하지 마라. …배신자여.”

맹광은 무인의 삶만이 아니라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배신자다운 처절한 최후였다.

맹광에게는 눈빛도 주지 않았던 적천우는 애잔한 눈으로 한 사내를 바라봤다.

왼팔이 허전한 추공이었다.

“미안하구나. 부족한 주군이라, 자넬…….”

“아닙니다. 주군. 속하가 선택한 일이었습니다. 주군께서 속하에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추공이 팔을 베고 혁련휘에게 굴복한 척한 것은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

혁련중광 조손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너무도 잔혹한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추공과 적천우만 알고 있었다.

그를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했던 적천우의 두 조장은 미안한 기색으로 추공을 바라봤다.

“왜 말하지 않았나… 우린…….”

“미안하네. 자네들을 믿지 못한 것이 아닐세. 적을 속이기 위해서 동료를 먼저 속이는 것이 병법 아닌가.”

적천우는 자신을 끝까지 믿고 따라준 진정한 수하들을 보며 결심했다.

이들을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대장로, 그 늙은이를 잘 부탁하오.’

혈천주의 정체

“뭐, 뭐라고! 그딴 개소리를 나보고 믿으란 말이더냐!!”

혁련중광은 버럭 화를 냈다.

그는 평범한 노인이 아닌 화경고수였다.

혁련중광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한 살기에 보고를 하던 수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혁련중광의 수하 중에 고수 아닌 자가 없고, 그 역시 나름 경지에 오른 자였다.

그러나 화경고수의 살기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하 한 명 죽는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 혁련중광이 아니었지만, 아직 들을 말이 남았기에 살기를 거두었다.

“자세히… 말해봐라.”

“헉… 헉……! 그, 그게…….”

간신히 호흡을 안정시킨 그는 사해련의 일을 설명했다.

혼세신마가 심은 진뢰궁귀 등을 제압한 후 사해련을 장악하는 계획이 실패한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혁련휘가 죽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 이유가 야차도귀와 흑천마옹의 배신이라는 점까지 밝혔다.

혁련중광은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분노를 터트렸다.

“이 애송이 놈이……!!”

“커억!”

챙그랑! 꽈지직!

가공한 혁련중광의 살기와 무형지기에 보고하던 자는 결국 심장이 터져서 죽고 말았다.

나름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자가 심장이 터져 죽음을 맞이했다.

혁련중광의 거처에 있던 고가의 도자기나 집기들 또한 버틸 리가 없었다.

사해련 장악을 실패한 것도 그를 분노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그를 더욱 대노하게 만든 것은 유일한 후계자인 혁련휘의 죽음이었다.

혁련세가의 멸문으로 혈족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그 중 종통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혁련중광이 다시 자식을 낳지 않는 이상은.

“찢어 죽여주마!!”

적천우를 죽인다고 해서 죽은 혁련휘가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으면 이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주화입마의 초기 증상이 나타났다.

“고수를 모두 집결시켜라!”

“명!”

혁련중광은 모두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자신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분노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대호법, 이 많은 고수를 이끌고 어딜 가시는 게요?”

혁련중광은 수백의 고수들을 이끌고 혈천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는 자신의 친위대인 환마검위대와 혈천삼십육대 중 삼대를 대동했다.

혁련중광이 자신의 영향력 하에 있는 고수들을 모두 소집했다면 배 이상 모을 수 있었으나 급히 집결시키느라 절반만 모이게 되었다.

허나 사해련을 쓸어버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애초 화경고수인 그가 나선 이상 머릿수는 무의미했다.

그러나 그들은 혈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로, 비키시오. 다녀올 곳이 있소.”

“같은 식구끼리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누가 감히 대호법인 혁련중광의 앞을 막을 수가 있겠는가.

허나 대장로인 혼세신마라면 상황이 다르다.

혁련중광은 혼세신마의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적천우가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렇다고 한들 혁련중광은 물러날 수 없었다.

혼세신마와 일전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같은 식구? 놈은 노부의 손자를 죽였소! 본가의 대를 끊었거늘! 대장로께선 이래도 나보고 참으라고 하시는 게요!”

“애초 시작은 대호법께서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오?”

“뭐, 뭐라고 하셨소!”

“대호법께서 사해련을 탐하기 위해 적 련주를 제거하려다가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니오?”

혁련중광이 복수를 하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해련이 그에게 넘어가는 것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혼세신마가 직접 나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뒤통수를 치려던 혁련중광을 복창 터지게 하는 것도, 직접 나선 이유 중 하나였다.

“대장로. 노부와 척을 지시겠단 말이시오!”

“그건 내가 할 말이외다. 대호법.”

이제 그 누구도 물러날 수 없었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었지만, 물러나는 순간 권좌를 상대에게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혁련중광의 곁에 수백이 있듯 혼세신마의 곁에도 수백의 고수들이 포진된 상황이었다.

이대로 충돌한다면 승리한다고 해도 혈천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고 만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두 절대고수의 사이에 끼어든 자가 있었다.

“이런, 이런…! 본천의 기둥이신 두 분께서 이러시면 정말로 곤란합니다.”

“…혈영수라? 건방진 새끼. 혈궁의 부궁주라고 대우 좀 해줬더니 겁대가리를 상실했더냐!”

“비켜라. 네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한껏 흥분한 혁련중광은 물론 혼세신마의 입에서도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혈영수라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아무리 혈궁의 부궁주라도 너무 오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누군가.

부천주인 사망도제의 사후 최고수들이었다.

혈영수라가 고수라고 하지만 그들과 비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이런 무모한 행동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는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이러시는 것은 곤란하다고…….”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 헉! 네, 네놈은 도대체 누구냐!”

“혀, 혈영수라가 아니란 말인가!”

마지막 경고에도 물러나지 않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혈영수라를 보며 혁련중광은 손을 쓰려 했다.

하지만 혁련중광은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혈영수라에게서 풍기는 절대적인 기운은 혁련중광은 물론 혼세신마까지 기겁하게 만들었다.

순간, 혈영수라에게서 거역할 수 없는 절대자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좌중을 장악했다.

“환마, 신마… 본좌가 곤란하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다. 당신…! 서, 설마!”

혈영수라의 진정한 정체를 눈치챘는지 두 사람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순간 붉은 피풍의(皮風衣)를 걸친 일백고수들이 혈영수라의 곁을 지켰다.

그들 중 절정지경에 오르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초절정고수로 추정되는 자도 여럿 있었다.

혈궁(血宮).

혈천주를 수호하는 최강의 호위들이었다.

혈궁이야말로 혈천 최강의 집단이란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었다.

혈뢰검마 대신 혈궁주가 된 검괴가 외쳤다.

“어느 안전이라고 뻣뻣이 서 있더냐! 모두 부복하라! 혈세혈세 혈혈세(血歲血歲 血血歲)!”

“혈세혈세 혈혈세(血歲血歲 血血歲)!!”

검괴가 부복하며 외치자 혈궁 고수들 역시 부복한 채 일제히 외쳤다.

혈궁 고수들을 보며 혈천의 모든 고수들은 경악했다.

이런 축원은 오직 한 사람만 들을 있었다.

“대장로 혼세신마, 혈천주님을 뵙습니다!”

“대…호법… 환마, 혈천주님을 뵙습니다.”

설마 했던 혈천의 고수들은 두 사람의 말에 곧장 부복한 후 절대복종의 예를 표했다.

순간 혈천에 속한 모든 인사들 역시 부복하며 절대복종의 예를 표했다.

천하의 주인인 황제를 향한 만백성의 극상의 예와 다를 바가 없었다.

혈궁의 부궁주인 혈영수라의 정체는 놀랍게도 신비에 쌓인 혈천주였다.

“실망스럽군. 본좌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나? 고작 중원 하나를 본좌에게 받치지 못하고 이렇게 자중지란이라니… 너무 실망스러워.”

고작 중원 하나?

오만해도 너무나 오만했다.

허나 이토록 오만한 말을 한 자가 혈천주라면 상황이 다르다.

무림의 살아 있는 전설 성승조차 숨죽이게 만든 괴물 중에 괴물이기 때문이다.

“부, 부끄럽사옵니다만… 부천주께서…….”

“부천주의 죽음은 이미 천기를 엿봐서 알고 있었다.”

사망도제의 죽음으로 대계에 변동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려던 혼세신마는 혈천주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처, 천기!’

‘도, 도대체 얼마나 괴물인 거야!’

화경고수인 자신들조차 천기를 엿보지 못한다.

그러나 혈천주는 아무렇지 않게 천기를 운운했다.

허세가 아니라면 그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괴물이란 뜻이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위엄을 생각하면 결코 허세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결국 후자란 뜻이었다.

“그럼에도 본좌는 기회를 주었다. 부천주가 없다고 해도 본천이니까. 허나 본좌를 실망만 시키는구나.”

움찔!

그저 나직하게 하는 말일 뿐이었지만, 수천의 고수들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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