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다정마녀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했다.
사해련의 같은 호법임에도 음양색불은 다정마녀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다.
쾅!!
“이 미친년아! 그만하자고!!”
“색불, 너 같은 쓰레기는 진즉에 죽이고 싶었다. 그 더러운 목숨, 그만 죽어라!”
음양색불과 같은 색마는 모든 여인의 공적이었다.
때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놔두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진즉에 죽였을 것인데,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다정마녀에게서 타협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음양색불은 더 이상 피하지만 않았다.
“오냐, 미친년아! 본불이 누구인지 알려주마!”
“죽어라!”
밀리고 있으나 음양색불 역시 사해련의 호법이었다.
그리고 색의 대가인 음양색불에게 상대가 여인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방도가 없지 않았다.
음양색불은 일신의 절학을 퍼부었다.
“색수인(色手印)!”
“절기조차 지저분하구나!”
음양사(陰陽寺)는 천축 소뢰음사의 파계승이 세운 사교집단이었다.
소뢰음사의 절학에 색공이 가미되면서 음양사의 절기는 무척이나 괴이했다.
특히 여인을 농락하는데 탁월했다.
다정마녀 역시 여인의 몸인 만큼 음양색불과는 상성이 좋지 못했다.
‘흐흐흐… 순진한 년…….’
다정마녀의 무위는 인정했으나 그녀가 세상물정은 어둡다고 판단했다.
그에 반해 음양색불은 야비하고 더러운 짓 따위는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자였다.
그는 음양사의 절학으로 다정마녀의 시선을 끄는 사이 음약을 풀었다.
음약은 독이 아니다. 때문에 고수라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날뛸수록 약효가 빨리 돈다.
다정마녀를 굴복시키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슬슬 반응을 보일 때가 되었는데…….’
여인 수십 명을 굴복시킬 수 있는 양을 풀었음에도 다정마녀로부터 그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자 음양색불은 당혹스러웠다.
그런 음양색불을 향해 다정마녀가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너같은 더러운 놈을 상대하면서 본녀가 아무런 준비도 안 했을 것 같아?”
“뭐, 뭐라고? 젠장!”
다정마녀는 음양색불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여인이 아니었다.
그의 생각쯤은 얼마든지 예상하고 있었다.
덕분에 음양색불의 수작은 다정마녀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죽어라!”
* * *
“흐흐흐… 꼴이 말이 아니군.”
혁련휘는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적천우를 찾아왔다.
상황은 무척 싱겁게 되었다.
적천우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도주를 시도했으나 예상치 못한 야차도귀의 배신으로 제압되었다.
주군인 적천우가 제압되자, 그를 따르는 몇 안 되는 혈룡대원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인주희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개 같은… 큭!”
“감히!”
“아아~ 되었네, 야차도귀.”
혁련휘를 발견한 적천우는 눈이 뒤집어졌다.
허나 야차도귀로 인해 발악조차 할 수 없었다.
조부에 이어서 자신을 호위하겠다던 야차도귀의 배신은 적천우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왜 그렇게 명을 재촉하나. 안 그런가, 추공.”
“…….”
“물론입니다. 주군!”
“맹광, 아무 때나 나대지 말고 입 다물어.”
“조, 존명…….”
치욕스러운 모습으로 제압된 적천우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추공을 보며 혁련휘는 조롱했다.
허나 눈치 없는 맹광은 옛 주인에 대한 충정 따윈 기억조차 없는지 혁련휘에게 아부를 떨려다가 오히려 욕만 먹고 말았다.
“살고 싶나, 적천우. …내 발을 핥으면… 생각해보마.”
“아, 안 됩니다! 주… 컥!”
“감히 어디서 끼어들어!”
몰락한 적천우를 끝까지 따르던 두 조장은 절규했으나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적천우는 생기 없는 눈으로 혁련휘를 바라봤다.
그런 그를 보며 혁련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나만 죽여라. 그리고 부디… 저들에겐 자비를 베풀… 큭!”
“새끼…! 그건 내가 결정해. 끝까지 자신이 잘난 줄 알아!”
좋아졌던 기분이 다시 더러워졌는지 혁련휘는 똥 씹은 표정이었다.
그로 인해 자비를 베풀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모두 죽여! 날 따르지 않은 놈들 따위 필요 없다!”
“존명!”
혁련휘의 명에 그를 따르는 혈룡대가 움직였다.
혈룡대 전체의 6할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적천우를 따르는 인물은 혈룡대에서 2할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결과는 이미 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 죽어… 컥!”
“미, 미친 배신이냐!”
“난 처음부터 놈을 따른 적이 없다!”
“병신, 그러니 네가 안 되는 거야! 추공!”
적천우를 따르는 혈룡대는 예상치 못한 추공의 배신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왼팔까지 스스로 베면서 주인을 바꾼 추공이었다.
주인을 배신했다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결국 대세를 따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추공의 배신은 당혹스러웠다.
허나 맹광은 혁련휘에게 점수를 딸 기회로 여겼다.
“죽어라!”
“쓰레기… 방해하지 마라.”
같은 조장이라도 맹광은 추공보다 약했다.
허나 스스로 팔을 베면서 그의 가치는 상당히 떨어졌다.
그렇기에 맹광은 어렵지 않게 추공을 벨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에 불과했다.
한쪽 팔을 잃었음에도 추공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번뇌와 함께 팔을 베어버렸기에 더욱 강해져 있었다.
“미, 미친… 도, 도와주십시오!”
“저런 등신…! 장극! 처리해! 다들 뭐하느냐!”
“며, 명!”
호기롭게 나섰다가 추공에게 쩔쩔매는 맹광을 보며 혁련휘는 짜증이 났는지 자신의 오른팔인 장극을 보냈다.
맹광이야 어차피 정리할 자였지만, 아직은 수하인데 배신자에게 당하면 자신의 체면이 상하기 때문이다.
추공의 배신은 예상치 못했으나 대세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여전히 혁련휘가 절대적으로 우세를 점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꼬여만 갔다.
“본대의 수장은 적천우 대주님이시다! 상관에게 하극상을 벌인 저 버러지들을 멸하라!”
“존명!”
“네년, 정말 죽고 싶구나!!”
침묵하던 문인주희가 휘하 혈룡대원들을 이끌고 적천우에게 붙어버렸다.
적천우의 추한 최후를 보여주어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던 혁련휘로서는 문인주희를 더 이상 살려줄 생각이 없어졌다.
“…총명한 줄 알았는데 저렇게 멍청할 줄이야. 됐다. 나도 너 같은 멍청한 년은 이제 사양이다. 야차도귀, 저년에게 현실을 알려주게.”
“…야차도대는 본 대주를 따르라.”
“명!”
야차도대는 대주인 야차도귀를 따라서 칼을 쥐었다.
수라검대와 함께 혈천삼십육대의 수위를 차지하는 야차도대의 기세는 너무도 강렬했다.
혈룡대의 6할에 이어서 야차도대까지 합류한 이상 저들의 저항은 발악에 불과했다.
“대세를 알면서 따르지 않은 네놈들이 등신이니, 날 원망하지… 컥!”
“미친! 우리가 아니라 저놈들… 으아악!!”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야차도대의 칼이 문인주희의 수하들이 아닌 혁련휘의 수하들을 베기 시작했다.
야차도대는 결코 혈룡대의 밑이 아니었다.
아군일 때는 매우 든든했지만, 적일 때는 무서운 자들이었다.
그런 야차도대의 배신에 혁련휘의 수하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뭐, 뭐야! 야차도귀! 미쳤어!”
“미친 것은 바로 네놈이다, 혁련휘. 주제도 모르는 놈아.”
“너, 너……!”
조금 전까지만 비루한 개의 모습이었던 적천우가 지금은 강자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그제야 혁련휘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귀 대주께선 내 청에 의해서 너희 조손의 명을 받는 척했을 뿐이다.”
“이, 이런 개 같은!”
재수 없는 적천우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에 혁련휘는 눈이 뒤집어졌다.
결국 그는 검을 뽑아들었다.
혁련휘에게서 풍기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오호? 무위를 속이고 있었단 말이지?”
“적천우…! 헛된 꿈을 모조리 부숴주마!”
혁련휘에게서 풍기는 기세는 결코 적천우에게 밀리지 않았다.
혁련중광은 혈천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하는 혁련휘에게 손을 쓰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진즉에 초절정고수로 만들어 주었다.
쾅! 콰쾅!!
초절정고수인 두 사람의 격돌로 한창 싸우고 있던 양측의 싸움은 잠시 중단되었다.
강기와 강기가 충돌하자 강렬한 기파가 퍼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망도제와 환마에 의해 강제로 벽을 깼다고 해도 초절정고수는 역시 달랐다.
혈룡대원들의 싸움과는 격이 달랐다.
게다가 두 사람은 사망도제와 환마의 후예.
그들의 손에서 무림최고의 절학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환마의 절학답군.”
“건방진 새끼!”
누구 하나 쉽게 승기를 잡지 못한 채 호각지세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하수처럼 대하는 적천우를 보며 혁련휘는 더욱 분노했다.
그는 적천우에게 알게 모르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호법의 장손이자 혈룡대의 부대주.
혁련휘도 어느 하나 빠지는 점이 없었다.
허나 적천우는 부천주의 손자이자 혈룡대주로, 혁련휘보다 약간 우세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굴욕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도발 아닌 도발에도 쉽게 흥분하고 말았다.
쾅! 쾅! 콰쾅!
두 사람의 무위는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쉽게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큰 차이가 없을 뿐 분명 무위의 차이가 있었다.
“사망천하(死亡天下)!”
“또 그 수법이냐!”
사망도법 최강의 절초인 사망진천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망천하는 적천우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초였다.
혁련휘는 사망천하가 적천우의 한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적천우의 한계가 사망천하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망도법에 한해서라는 사실을.
콰쾅!!
“우웩!! …숨… 더냐!”
“쿨럭… 후…! 뭐라고?”
피를 토하는 혁련휘만큼은 아니지만, 적천우 역시 피가 섞인 기침을 했다.
허나 누가 봐도 승자는 적천우였다.
혁련휘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가증…스러운 놈, 실력…을 숨기고…….”
“멍청한 놈… 실력의 삼푼을 숨기는 것은 당연한 상식 아니더냐? 누가 제 실력을 모두 드러내?”
적천우는 혁련휘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적천우의 삼푼은 바로 불사마공이었다.
사망도제의 사후 북천적가의 비고에서 불사마공을 익히게 되었다.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성취는 높지 않으나 비장의 패로써 손색이 없었다.
“이제 그만 죽어라.”
“나, 날 죽이면 조부께서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혁련휘의 말에 적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협박이 먹혔다고 생각한 혁련휘는 안도할 수 있었다.
‘조금만 버티자, 마옹이 지원군을 이끌고 올 때까지만…….’
진뢰궁귀의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만, 흑천마옹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실제로 기습이 유효했는지 흑천마옹이 상당히 우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적천우는 그의 생각이 훤히 보였다.
“마옹 봉공을 기대하나 본데, …그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 없다.”
“조, 조부님께서…….”
“그게 두려웠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미친!”
조부의 이름까지 먹히지 않는 이상 혁련휘로서는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진짜 최악은 아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