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 * *
이현성은 육신의 탈을 벗고 홀로 완성된 존재가 되어서 하늘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존재가 인세에서 막 사라지려고 할 때였다.
“아브…브브…….”
움찔.
육신의 탈을 벗어 승천하는 동안 만인의 희노애락을 봤음에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순간, 보이지 않는 벽이 그를 가로 막은 것처럼 더 이상 승천할 수 없었다.
그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우리 천악이가, 아빠가 보고 싶나보네요. 언니.”
“천악이 아빠가 보고 싶어요~? 곧 오실 거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움찔!
홀로 완성된 존재가 되어가면서 그 어떤 감정도, 집착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또다시 반응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무형의 손길이 승천하는 그의 한쪽 다리를 잡아버렸다.
“이놈들! 이래서 주군의 검이라고 할 수 있더냐!”
“장주님 덕분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테냐!”
또 따른 무형의 손길이 그의 반대편 다리를 붙잡았다.
“장주 어른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편식하면 안 된다.”
“이가 어른…….”
수많은 무형의 손길이 그의 전신을 붙잡고 지상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홀로 완성된 존재는 더 이상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그렇게 추락하고 말았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그를 원하는 수많은 자들의 염원이 이현성의 새로운 집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세상으로 추락할수록 더 많은 무형의 손길이 그를 끌어내렸다.
그렇게 지상에 도달한 홀로 완성된 존재는 다시 육신이란 그릇에 안착되었다.
결국은 홀로 완성된 존재가 되는데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순간, 그의 육신에서 인세의 빛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신비한 빛이 발산되었다.
이현성의 육신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그를 중심으로 빛의 기둥이 되어서 하늘과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이적에 소림의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불호를 읊어버렸다.
“헉! 아, 아미타불…….”
허나 모든 소림의 제자가 놀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빛을 보며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아미타불… 세존이시여, 천하를 굽어 살피소서.”
* * *
“무림맹에 심어둔 세작들이 색출되고 있었다니? 그게 무슨 일이오? 대호법.”
언중경을 시작으로 혈천, 정확히는 혁련중광이 심어둔 세작들이 하나둘씩 무림맹의 뇌옥에 갇히게 되었다.
무림맹의 권력구도가 오대세가에서 오대가문으로 넘어가면서 감찰단 역시, 황보세가에서 백리세가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서문경은 백리세가의 도움을 받아 세작들을 색출해냈다.
비록 허수아비 취급당했지만, 무림맹의 대군사였다.
따라서 그 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덕분에 혁련중광이 심어둔 세작들은 하나둘씩 잡혀 들어갔다.
혁련세가가 무너진 지금, 그들은 혁련중광의 중요한 패였다.
그게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는 혈천 내에서 혁련중광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좋은 건수를 놓칠 대장로가 아니었다.
“…….”
“허~ 대계가 눈앞에 있거늘… 어찌 이런 일이…….”
걱정하는 듯 은유적으로 압박하는 대장로를 보며 혁련중광은 그를 노려봤다.
허나 어떤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의 입장이 좋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대장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두 사람의 전력은 비등했다.
이번 일로 혁련중광의 입지가 줄어드는 만큼 대장로인 혼세신마의 입지가 커지게 된다.
그 격차가 조금만 더 커지게 된다면 혁련중광을 완전히 누르고 완벽하게 혈천의 이인자가 될 수 있었다.
오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혈천주를 생각하면 실질적인 일인자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록 천하일통의 시기가 조금 미루어질 수 있으나, 자신이 권좌에 앉는다면 언젠가 이루어질 일.
굳이 아쉬워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혁련중광을 누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대장로보다 혁련중광의 속을 뒤집는 자가 있었다.
“대장로님,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본천의 대계를 위해서 저희 사해련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 적 공자 아니, 적 련주… 잘 부탁하네!”
“맡겨만 주십시오!”
사해련주로서 혈천심삽세의 회동에 처음으로 참석한 적천우는 대장로에게 아부를 떨었다.
마치 새로운 권력의 중심이 그라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며 대호법은 속에서 천불이 났다.
‘저 쳐 죽일 애송이 놈이 감히…! 오냐, 그렇게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애당초 혁련중광은 적천우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다만, 혼세신마 때문에 사해련을 서서히 장악할 생각이었다.
이미 밑 작업은 끝냈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흑천마옹과 야차도귀를 통해서 사해련을 장악한 후, 혈룡대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혁련휘에게 넘겨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데,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나대는 적천우를 보니 그 시기를 앞당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썩어도 준치라고 사해련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저희 천씨세가 역시 대장로님을 보좌해서 본천의 대계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천씨세가는 혈천십삼세의 하나로 인정받았으나 가주인 천운성은 자격이 없었다.
사망도제의 죽음 이후, 혈천을 다독이는 차원에서 그에게도 회동에 참석할 자격을 주었다.
다만, 발언권은 불허했다.
그렇기에 입을 다문 채 지켜만 보던 천운성은 혈천십삼세 회동에 처음 참가한 적천우가 대장로에게 아부 떠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대장로를 향해 넙죽 엎드렸다.
애송이들이 앞 다투며 대장로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쓰니, 기존 혈천십삼세의 주인들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저희 철혈방이 빠질 수는 없지요.”
“본천은 하나외다.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안 그렇소?”
이미 승자가 혼세신마인 것처럼 그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로, 호법들을 보니 혁련중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결국 그는 또 다른 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오냐, 사해련부터 접수해서 아직 나 환마(幻魔)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마!’
* * *
“너무 빠른 것 같은데… 후… 조부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 …준비를 부탁드리겠소, 마옹.”
건천각의 권한을 이양 받은 흑천마옹은 혁련중광의 명으로 급히 사해련에 복귀했다.
아직 사해련의 권력을 혁련중광의 사람들이 완전히 장악한 상황은 아니었다.
혼세신마의 명을 받는 진뢰궁귀가 사해련 권력의 한 축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봉공인 진뢰궁귀는 사대호법 중 벽력마군과 음양색불을 포섭한 상태였다.
따라서 흑천마옹 없이 사해련을 장악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혁련중광은 건천각과 함께 흑천마옹을 사해련에 급히 복귀시킨 것이다.
“빠듯하긴 하지만 맡겨주십시오. 부대주.”
“마옹만 믿겠소.”
흑천마옹이 떠나자 혁련휘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부대주라고 부른 흑천마옹이 못마땅했다.
“건천각주가 되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개 주제에 말이야.”
흑천마옹은 사해련의 봉공이자 혈천의 건천각주였다.
그에 반해 혁련휘는 아직 혈룡대 부대주에 불과했다.
서열은 흑천마옹이 훨씬 앞선다.
그런 그를 상대로 혁련휘가 마옹이라고 부르니, 흑천마옹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허나 혁련휘의 입장은 또 달랐다.
자신은 혈천 대호법의 손자이자 실질적인 혈룡대의 수장이며 곧 사해련주가 될 몸이었다.
조부의 개가 된 자가 주제도 모르고 까부니 못마땅했다.
“추공, 야차도귀에게 내가 보자고 해.”
“…예, 부대주님.”
“저, 저놈이 미쳤나!”
“됐다, 맹광. 추공, 뭐하나? 야차도귀를 데려오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천우의 왼팔이었던 추공은 지금 혁련휘의 휘하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그의 뻣뻣함은 여전했다.
실력은 인정받지만, 혁련휘에게 신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추공처럼 한때 적천우를 따랐던 맹광은 언제 그를 따랐냐는 듯 완벽한 혁련휘의 개가 되었다.
지금도 혁련휘에게 부대주라고 부른 추공을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
누가 보면 뼛속까지 혁련휘의 심복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주군, 놈을 믿으십니까?”
“믿지 않는다. 허나 아직 쓸모가 있으니까… 그보다 맹광, 년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본대를 준비시켜라.”
“주군! 이 맹광에게 맡겨주십시오!”
맹광은 자신만만하여 혈룡대를 준비시키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를 혈룡대 조장들은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쓰레기 같은 놈… 장극, 이번 일이 끝나면 놈을 처리해라. 그년놈들만 처리하면 저런 쓰레기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존명!”
새로운 주인을 섬기기로 결정했음에도 옛 주인을 그리워하는 추공도 문제였지만, 박쥐처럼 쉽게 주인을 바꾸는 맹광은 더욱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맹광은 혈룡대 조장이자 절정고수였다.
그러므로 그냥 버리긴 아깝다.
허나 적천우와 문인주희만 처리하면 더 이상 걸림돌이 없어진다.
그럼 맹광과 같은 쓰레기는 필요 없었다.
그렇기에 그전까지만 부리고 버릴 생각이었다.
“…꼴도 보기 싫은 적가놈이 죽으면 네년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다.”
* * *
“미친! 이게 무슨 짓이오! 마옹!”
갑작스러운 기습에 진뢰궁귀는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그가 이끄는 진뢰궁수단은 원거리에선 최강이었지만, 근접전에서는 미흡했다.
그들 모두가 진뢰궁귀처럼 백병전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기습한 자들은 팔각 최강이란 건천각이었다.
진뢰궁수단이 밀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네. 허나 명이니 어쩔 수 없네. 항복한다면 자네의 목숨까진 취하진 않겠네.”
“우드득…! 지금 실수하는 것이오! 대호법께서 우리와 전쟁이라도 벌이잔 생각이 아니라면 그만 하시오!”
자신의 뒤에 혼세신마가 있듯 흑천마옹 역시 혁련중광을 따르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즉, 자신을 습격한 것이 혁련중광의 명령임을 모를 수 없었다.
이건 선전포고와 마찬가지였다.
혈천은 현재 대장로와 대호법으로 나뉜 상황이었다.
그 성세는 호각지세였지만, 대장로가 조금 더 우세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대로 전쟁이라도 벌인다면 결국 양 파벌 역시 무사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서로 견제하지만 직접적으로 물어뜯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진뢰궁귀를 공격한다는 것은 막장으로 가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뒷일을 걱정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닐세. 본옹은 명을 따를 뿐이네.”
“빌어먹을……!!”
두 사람은 사해련의 이대봉공이었다.
진뢰궁귀의 무위는 흑천마옹에 꿇리지는 않으나 지금 상황은 결코 긍정적이지 못했다.
수가 더 많음에도 쓰러지는 자는 진뢰궁수단이 더 많기 때문이다.
덕분에 진뢰궁귀는 조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상황은 그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나빴다.
이 싸움은 진뢰궁귀와 흑천마옹만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썩을…! 난 더 이상 싸울 생각이… 헉!”
음양색불은 사색이 되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