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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303화 (303/314)

303화.

노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탁자를 후려쳤다.

제법 두툼한 탁자이건만 노인의 주먹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망할 놈! 섬서에서도 뒷북을 쳤으면 그냥 돌아올 것이지! 왜 사천으로 내려가서 자리를 비워! 무림맹주란 놈이!”

“고정하십시오, 아버님. 맹주님께서도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겁니다.”

“이유는 무슨! 제 이름 알리는 것에 급급한 놈이 무슨 맹주라고!”

노인은 무엄하게도 맹주를 이웃사촌 부르듯 너무도 쉽게 언급했다.

하지만 결코 무엄하지는 않았다.

노인이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인 검왕(劍王) 남궁무백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검왕 남궁무백은 무림맹주인 십절무왕 모용묵과 연배는 물론 배경 그리고 무위에서 전혀 꿇리지 않았다.

때문에 십절무왕이 무림맹주라고 해서 검왕이 조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게 바로 남궁세가의 자랑이자 자부심이기도 했다.

“…개방의 장왕께서 개방의 고수들과 합류하신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홍 선배가? 으음…….”

개방의 태상호법인 장왕 홍무개의 합류 소식에도 검왕의 안색은 펴지지 않았다.

검왕과 장왕. 화경고수 둘이나 있음에도 안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지금 남궁세가는 검왕과 장왕, 두 화경고수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 직면했다.

“사마 늙은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움직인 거야!”

검왕이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안휘성. 정확히는 남궁세가를 향해 대군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사마성, 천사교주가 있었다.

그렇다. 천사교주가 천사교 고수들을 이끌고 남궁세가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천사교주인 천사존은 명실상부한 사파제일고수.

삼제(三帝)조차 아래로 보는 일존(一尊)이었다.

팔왕(八王)이라는 검왕과 장왕이라도 천사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막아낼 가망성이 없었다.

유일하게 천사존을 제압할 수 있는 존재는 일성(一聖), 성승 료굉대사뿐이었다.

료굉대사를 제외하고 단독으로 천사존을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 무림의 오랜 정설이었다.

“성승 어른이 두려워서 지금까지 야욕을 대놓고 드러내지 못한 자가…….”

같은 사파사세조차 아래로 보는 오만한 천사존이 대놓고 세를 넓히지 않은 것은 그조차 성승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그런 천사존이 드디어 움직였다.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설마 그 미친 늙은이가 감히 성승 어른을 넘어설 수 있다고 착각이라도 했단 말인가!”

착각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정녕 성승을 넘어섰다면 중원무림으로서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검왕의 곁에 있던 그의 아들이자 가주인 남궁영호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유 서방이 돕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성승께서 오실 수 없다면… 검신에게라도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버님.”

“검신 말인가…….”

남궁영호는 부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장왕 홍무개의 경우는 검왕보다 무림 선배이니 자존심이 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검신은 다르다.

동배도 아니고 손자뻘인 검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검왕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었다.

“검신이 아무리 사망도제를 무찔렀다고 하지만 그 역시 몸이 멀쩡할 리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본가가 위험하다고 한들 그런 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느냐?”

“그렇긴 하지만…….”

심연 속에서 살수천자의 가르침을 받고, 천요후의 정기까지 흡수하면서 삼제의 경지를 넘어선 검신(劍神)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사망도제가 만만해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와의 격전에서 검신 역시 부상을 입었다.

다만 사망도제와 일전을 치른 것치곤 부상이 심각하진 않았다.

그러한 사실까진 모르는 검왕으로서는 검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니 검왕은 십절무왕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실력을 완전히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팔왕의 셋이라면 천사존이라도 부담을 가지게 될 테니까.

“배, 백부님!!”

“남궁영우, 이 녀석! 본가의 장로라는 녀석이 왜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

섬전검뢰(閃電劍雷) 남궁영우는 남궁세가의 장로이자 쾌검의 달인이었지만, 검왕에게는 아직도 철부지 조카로만 보이는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영우는 움찔했으나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먼저란 생각이 들었다.

“백부님 화를 내시더라도 우선은 제 말부터 들어주십시오!”

“…? 말해보거라.”

“권왕께서 황보세가 고수들을 이끌고 본가로 오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가주직을 넘겨주지 않았을 뿐 황보세가는 현재 소가주인 황보관영이 이끌고 있었다.

권왕은 세가의 후기지수들을 가르치며 반 은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검왕은 권왕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도 못했다.

그런 권왕이 부탁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주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검왕과 장왕 그리고 권왕이라면 상대가 천사존이라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동시에 왠지 모를 답답함이 있었다.

‘아무리 사마 늙은이라도…….’

* * *

“교주님, 개방의 장왕에 이어서 황보세가의 권왕까지 안휘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천의 무리가 절강의 끝자락이자 안휘의 경계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천사교의 고수들이었다.

정확히는 천사교와 그 휘하에 있는 절강 사파고수들이었다.

고작 일천으로 안휘무림을 무너트린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안휘무림인은 못해도 3~4만. 게다가 개방과 황보세가의 고수들까지 합류한다면 아무리 천사존이 직접 무리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일천은 너무 적었다.

하지만 일천 중 무려 이백 명이 절정고수라면 상황이 다르다.

게다가 강소의 뇌전궁과 강서의 등왕각 고수들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뇌전궁과 등왕각은 강소와 강서무림을 대표하는 사파세력이었다.

그들이 움직이면 강서와 강서무림의 사파고수들 역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일천이었지만, 곧 그 몇 배의 고수들이 모이게 될 것이다.

물론 숫자로는 여전히 열세였다.

“크크크…! 같잖은 것들이… 주제도 모르는군.”

검왕만 아니라 장왕과 권왕까지 상대해야 하지만 천사존은 오히려 가소롭게만 보았다.

분명 화경고수인 그들은 강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천사경을 대성한 자신은 이미 격이 다르다.

때문에 그들을 쉽게 죽일 수 있었다.

그들만 죽이면 3~4만이 아니라 10만이라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천사존은 정예 일천만 추렸다.

적은 수로 안휘무림을 굴복시켜야 자신의 위상이 더 높아질 터였다.

“그런데… 등왕각주와 뇌전궁주가 조금 늦는군.”

“그, 그러게 말입니다. 일정이 빠듯한 만큼 조금 늦는 것 같습니다. 교주님.”

곧 절강과 안휘의 경계에 도달한다.

그런데도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등왕각주와 뇌전궁주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강서와 강소성에서 움직이는 만큼 그들이 늦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안휘정벌은 갑작스럽게 정해진 만큼 그들 역시 준비할 시간이 빠듯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고려할 천사교주가 아니었다.

덕분에 그의 심기가 그리 편치는 않았다.

그로 인해 소교주인 사마염과 천사교 수뇌들은 교주의 눈치를 보며 속으로 등왕각주와 뇌전궁주를 욕했다.

교주가 발작하면 곤욕을 치르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교주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젠장. 이러다가 정파 놈들과 싸우기도 전에 송장 치우는 것 아니야?’

천사교주도 생각이 있다면 정파와 싸우기 전에 아군을 죽여서 사기를 꺾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워낙 오만한 천사교주였기에 그를 상식만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그때 천사교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허~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가 움직였단 말이지?”

* * *

“젠장. 줄을 잘못 잡은 것 아니야?”

절강과 안휘성의 경계로 향하고 있는 천사교의 무리를 멀리서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노구의 몸임에도 상당히 매력적인 사내였다.

그런 그의 손에는 두툼한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천사교의 무리. 정확히는 천사교주를 떠올리며 갈등하는 눈치였다.

“이제라도… 합류해?”

“뭘 이제 와서 그딴 소리야? 천하의 도괴가 이리도 줏대가 없다니…….”

노도객의 정체는 바로 뇌전궁주인 도괴였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천사교주의 밀사에게 천사존의 뜻을 따르겠다고 전했다.

뇌전궁주이자 무림오괴의 도괴였지만, 천사교주이자 일존 천사존의 뜻을 거스를 힘이 없었다.

무엇보다 천사존은 사파제일고수로서 도괴는 그가 천하를 일통할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럼에도 결국 천사교와 합류하지 않았다.

검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랄하고 있네. 그럼 창괴 네놈은 나와 다르단 말이더냐!”

“뇌전궁주란 놈이 지랄이 뭐냐? 지랄이? 그리고 난 네놈과 달리 줏대 없이 휘둘리지 않는다.”

도괴에게 말을 건 자는 창괴, 등왕각주였다.

천사교주와 손을 잡았다는 뇌전궁주에 이어서 등왕각주마저 그와 손을 끊고 합류하지 않은 것이다.

창괴를 보며 도괴는 코웃음을 쳤다.

“염병할. 줏대 있는 놈이 등왕육객(滕王六客)을 데려왔냐?”

“흠흠… 녀석들은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 아니더냐.”

등왕각은 무림문파가 아니었다.

허나 웬만한 무림문파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서무림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각주인 창괴가 무림오괴이기 때문이었지만, 온전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등왕각에 신세를 지고 있는 식객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뛰어난 고수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여섯 고수들은 격이 다르다.

등왕육객, 그들은 당장이라도 일파를 세울 수 있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등왕육객과 창괴는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창괴와 등왕육객이라면 등왕각의 7할에 가까운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즉, 여차하면 천사교 무리에 합류하겠다는 얕은 수작이었다.

그걸 아는 도괴가 비웃는 것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는 너는, 뇌전칠도(雷電七刀)를 데려왔잖아!”

“나는 너처럼 줏대 있다고 하지는 않았는데?”

등왕육객이 등왕각의 식객이자 창괴의 의형제라면, 뇌전칠도는 도괴의 제자에 가까운 수하들이었다.

뇌전칠도를 대동한 도괴 역시 창괴와 생각이 다르지 않은 셈이었다.

“잘났다. 자식아! 그래서 어쩔 거야?”

“글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은?”

“검괴 놈 말대로 성승이 나타나지 않으면 우린 엿 되는 거야.”

그들이 이곳에 나타났음에도 천사교의 무리에 합류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성승이 움직였다는 검괴의 말 때문이었다.

천사존이 일존(一尊)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아직 일성(一聖) 성승을 넘어섰다고 확실할 수 없었다.

기세 좋게 천사교와 합류했다가 성승에게 패배라도 한다면 그들의 입장 역시 좋을게 없었다.

“…만약 성승이 나타나지 않으면? 후… 그런데 교주께서 정말 성승이 움직일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그 말은…….”

“교주가 성승까지 쓰러트린다면… 우린 끝이야. 끝…….”

“젠장!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도괴는 머리가 아파왔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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