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302화 (302/314)

302화.

“…이 늙은 중이 지금까지 모진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던 것은 혈살성을 견제하기 위함일세. 헌데 안타깝게도 혈살성이 깨어난 듯싶네.”

성승은 천기를 통해서 혈살성이 깨어났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직 혈살성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성승은 오랜 침묵을 깨고 장문인을 찾아왔다.

소림을 떠나기 위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혈살성이 깨어났으나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일세. 그렇다면 천무성에게도 시간이 있는 것이겠지…….”

범천대사는 스승인 공심대사에게 혈살성과 천무성에 대해서 약간 언질을 들은 바가 있었다.

의문이 드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나 범천대사는 묵묵히 료굉대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혈살성이 깨어난 지금 파군성이 움직이려고 하네.”

“…사조님께서 그 파군성 때문에 소림을 떠나시려는 것입니까? 천무성은 파군성을 막을 수 없습니까?”

“천무성은 혈살성을 막아야 하네. 파군성에 의해 그 빛이 약해진다면 종래에는 혈살성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별이 없네. 그렇기에 이 늙은 중이 미력하지만 파군성을 막아야 하네.”

“사조님. 도대체 그 파군성에 누굽니까? 소승이… 소림이 대신 막을 수가 없는 겁니까?”

범천대사는 안타까웠다.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 사조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사손인 범천대사를 보며 료굉대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이 늙은 중밖에 막을 수밖에 없네. 왜냐하면 파군성이…….”

* * *

“제 술도 받아주셔요, 궁주님.”

“저도…….”

아름다운 가인들은 앞을 다투어 노인에게 술을 건네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

비록 노구였지만, 건장한 체구와 중후한 인상이 여전히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노인의 신분이 대단했다.

“허허. 그대들의 술을 모두 받을 테니 걱정 말거라.”

노인은 매우 즐거워하며 가인들의 술을 받았다.

그렇게 한참 즐거워하던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가인들은 혹시 자신들이 실수를 한것이 있나 싶어서 당황했다.

“죽고 싶더냐. 감히 내 시간을 방해해.”

“…즐기시는데, 죄송합니다. 궁주님. …주군께서… 헉!”

노인은 자신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에 수하들을 주루 밖에 대기시켰다.

그렇다고 한들 노인의 수하들은 뛰어난 고수들이었다.

그들을 피해서 이곳까지 잠입했다는 것은 사내 역시 고수란 뜻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복하고 말았다.

“고, 고정하십시오 궁주님… 주, 주군께서 보내신…….”

사내는 괴로워하며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괴로워하는 사내는 안중에도 없었으나 그가 꺼낸 서신에는 관심이 있는지 노인은 곁에 있는 가인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녀들 중 한 여인이 사내의 서신을 노인에게 전했다.

서신을 읽던 노인의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 드디어 교주께서 결단을 내리셨군.”

서신을 읽은 노인은 평온한 말투와 달리 살짝 흥분해 있었다.

무림인으로서 피가 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주께는 이 도괴(刀怪)가 명을 따르겠다고 전하게.”

“감사합니다! 궁주님!”

태도가 확 바뀐 노인을 보며 사내는 안도했다.

그리곤 누가 붙잡을세라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내가 돌아간 것은 더 이상 안중에도 없는지 노인은 홀로 호승심을 불태웠다.

가인들은 괜한 호기심은 명을 재촉한다는 것을 알기에 궁금해도 모른 척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들도 더 이상 의연한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다.

“정파 놈들 깜짝 놀랄 것이다. 이 도괴가… 음… 누구냐!”

“…뇌전궁주, 실례를 하겠소.”

“꺄!”

호승심을 불태웠던 노인은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목소리에 좌편에 두었던 칼을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가인들도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노인이 휘두른 칼로 인해 발생한 도풍은 문을 무자비하게 베었다.

문의 잔재가 떨어지자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 사라진 사내가 아닌 복면을 쓴 정체불명의 괴한이었다.

복면인이 지척까지 접근했음에도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노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누구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나 도괴를 쉽게 본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진정하시지요, 뇌전궁주. 본인은 귀하와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놀랍게도 노인의 정체는 뇌전궁주(雷電宮主) 도괴였다.

정파 혹은 정파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칠인의 기인을 강호칠기라고 부른다면, 사파무림을 대표하는 절세고수 오인을 무림오괴라 부른다.

그는 그런 무림오괴 중 도괴이며, 사파사세를 제외하고 한 손에 꼽히는 거대사파인 뇌전궁(雷電宮)의 주인이기도 했다.

노인은 신산 제갈윤호, 장강어옹 규염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 강한 사파의 거두였다.

“건방진…! 언제까지 나 도괴 앞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나 보자!”

“궁주, 이러면 곤란합니다.”

“곤란? 언제까지 그렇게 건방을 떨 수 있나 보자!”

도괴는 노구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순식간에 복면인에게 접근한 도괴는 무지막지한 도기를 실은 칼로 그를 베었다.

챙!

“제법이구나. 허나!”

“…진정하시오, 궁주.”

도괴의 도기는 강력했지만, 복면인도 만만치 않았다.

복면인이 자신의 도기를 너무도 쉽게 막아냈으나 도괴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며 더 강력한 공격을 준비했다.

뇌전도법(雷電刀法). 뇌전궁주의 독문도법을 준비했다.

콰쾅! 쾅!

“네, 네놈… 설마!”

“이런! 역시 눈치채셨소?”

비록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무려 뇌전도법이었다.

그럼에도 복면인은 너무도 쉽게 막아냈다.

허나 도괴가 놀란 것은 복면인이 자신의 도법을 막아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복면인의 검법을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복면인은 도괴가 지신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복면을 벗었다.

복면 속 얼굴을 본 도괴는 예상했는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역시… 검괴(劍怪), 네놈이었군. 어울리지 않게 복면은 뭐냐?”

“아직 날 알아보면 안 되기 때문일세, 궁주. 아니, 도괴.”

놀랍게도 복면인은 뇌전궁주와 같은 무림오괴의 일인인 검괴였다.

다만 도괴와 달리 검괴의 내역에 대해서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무림오괴로 불릴 정도이니 검괴의 무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알아보면 안 된다? 무슨 개수작이냐!”

“개수작은 무슨. 주군의 명(命)일뿐일세.”

“주, 주군? 네놈이 누굴 모신단 말이더냐! 천하의 검괴가!”

도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림오괴 중 유일하게 어딘가에 속하지 않은 검괴에게 주군이 있다는 사실은 도괴를 경악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경악하는 도괴를 보며 검괴는 피식 웃었다.

“네놈도 천사교주의 명을 받지 않더냐?”

“헉! 그, 그걸 어떻게!”

도괴는 기겁했다.

자신이 천사교주의 비장의 패라는 사실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뇌전궁 고수들조차 모르는 사실을 검괴가 알고 있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천사존… 분명 대단한 강자이지. 허나 주군에 비할 바는 아닐세. …그분께서 자네를 원하시네. 영광으로 알게나.”

“미친!”

천사존이 누군가. 사파사세인 천사교주이며 사파제일고수이었다.

비록 성승이 살아 있으나 천사존이 천하일통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강함은 진짜였다.

그런 천사존를 아래로 깔아뭉개는 검괴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허나 천하의 검괴가 주군으로 모신다는 점 때문에 아예 무시할 수도 없었다.

“잘 생각하게. 성승이 소림을 떠났다고 하더군.”

“…!! 그게… 정말인가!”

경악하는 도괴를 보며 검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곧 알게 될 일을 왜 속이겠는가.”

* * *

“드, 등왕각주와 뇌전궁주라고요!”

예상치 못한 이름들이 언급되자 사마염은 경악했다.

사파사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사파무림에서 손꼽히는 거대문파인 뇌전궁주.

세력은 크지 않으나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가진 등왕각주(滕王閣主).

특히 뇌전궁주와 등왕각주는 무림오괴에 속하는 절세고수들이었다.

“그들이라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무, 물론입니다.

환희요후와 요도를 제거함으로서 소교주인 사마염의 위상이 올라갔다.

비록 그들을 제거한 것이 흉마라도 임무를 주도한 것은 사마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제거함으로 인해 천사교의 전력이 감소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천사교주는 예상치 못한 명을 내렸다.

“허나 안휘를 정벌하면 소림이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지 않았더냐. 이제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안휘정벌. 안휘성에는 오대세가의 수좌인 남궁세가가 있다.

그리고 남궁세가에는 검왕이 있다.

비록 천사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검왕과 남궁세가는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전력이 감소한 상황인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 상황에서 천사존은 예상치 못한 이름을 꺼냈다.

뇌전궁주 도괴와 등왕각주 창괴.

그들이라면 환희요후와 요도의 공백을 채우고도 남는다.

안휘정벌도 충분했다.

허나 문제는 안휘무림이나 검왕이 아니었다.

안휘는 하남의 바로 아래에 위치했다.

하남에는 무림맹, 개방 그리고 소림이 존재한다.

무림맹주를 위시한 무림맹 고수들이 상당히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개방은 구파일방의 하나인 만큼 만만치 않은 곳이었지만, 대업에 걸림돌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허나 소림은 다르다.

단일문파로서 사파사세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 바로 소림이었다.

비록 반야신승 공심대사의 죽음으로 전력이 줄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소림은 소림이었다.

무엇보다 소림에는 성승이 있지 않은가.

사파제일고수 천사존이 유일하게 넘어서지 못한 산.

안휘정벌은 침묵하고 있는 성승을 깨울 수 있었다.

사마염은 그것을 우려했다.

“때…라고 하시면… 설마 성승이 타계를…….”

“성승이 타계? 아니, 본좌의 천사경이 10성에 올랐다.”

“가, 감축드립니다! 교주님!”

사마염의 눈이 커졌다.

조부인 교주가 성승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천사경은 절대무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사경을 9성까지 익힌 것만으로도 천사존은 사파제일고수라 불렸다.

그런 9성과 10성은 고작 1성 차이였지만, 그 위력은 천지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10성을 다른 말로 대성(大成)이라고 한다.

천사경을 대성한 이상 그는 더 이상 성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천하는 이제… 나의 것이다! 하하하!!”

파안대소하는 천사교주를 보며 사마염은 고개를 숙였다.

‘젠장! 늙은이가 더 강해졌어. 아무리 발버둥질해도 늙은이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허나… 나에겐 젊음이 있다고…….’

* * *

“가주! 맹에서 지원을 보내준다고 하던가!”

“사해련의 일로 맹의 전력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라서…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아버님.”

쾅!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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