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음양쌍파의 피로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흉마는 요도를 죽이기 위해서 돌아왔다.
“나 요도 아니, 동영도왕(東瀛刀王)을 너무 쉽게 보는군!”
“그랬으면 좋겠어.”
누군가 그들의 싸움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는 바로 사마염이었다.
음양쌍파를 죽인 것은 흉마였지만, 환희루를 천사교에 귀속시킨 것은 바로 그였다.
그로 인해 사마염은 흉마보다 늦게 돌아오게 되었다.
‘…마교에서도 금지한 마공답군.’
흉마는 예상 이상으로 강했다.
그건 그가 익힌 마공 때문이었다.
만악흉마공(萬惡凶魔功).
마교 십팔진마의 마공은 아니었지만, 위력만 본다면 그에 견줄 만한 마공이었다.
허나 흉성의 지배를 받기에 마교에서도 연성이 금지되었다.
천마대전 후 만악흉마공을 입수했으나 천사경을 익힌 천사존의 눈에 차지는 않았다.
대신 재능이 출중한 호교사자에게 하사했다.
그게 실수였는지 그는 흉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천사존의 아들까지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렇게 흉마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천사경만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면…….’
사마염이 익힌 사라지존수는 천사경에 수록된 절학이었다.
천사교주만 익힐 수 있는 천사경의 절학답게 사라지존수도 강력했다.
하지만 천사경의 절학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른 절학들을 익혀야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천사경만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면 흉마보다 더 강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허나 교주는 손자인 자신에게도 사라지존수 이외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나도…….’
* * *
“…크윽!”
“끈질긴 년. 그만 좀 죽어라!”
흉마와 달리 사도와 괴검은 경공이 뛰어났다.
게다가 환희요후 역시 부상으로 인해 몸이 평소 같지 않았다.
결국 환희요후는 사도와 괴검의 추적을 떨쳐내지 못하고 따라잡히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자신의 눈도 못 쳐다볼 그들에게 농락당하니 환희요후는 수치스러웠다.
그녀는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네깟 것들이 감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도와 괴검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흉마에 의해서 한쪽 팔을 잃었음에도 자신들을 상대로 간신히나마 버티고 있었다.
부상을 입었다고 방심했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었다.
흉마에게 입은 부상으로 인해 환희요후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패가 당했다고 했을 때, 바로 피했어야 했거늘…….’
천패 구황은 혈천십삼세는 아니지만, 팔각의 수좌인 건천각주였다.
그런 그가 천웅창제와 검신의 격전에 휘말려서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은 진즉에 들었다.
그때만 해도 예감은 좋지 않았으나 설마라는 생각을 했다.
천웅창제가 그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증거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그녀도 천사교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혈천이 움직이고 있었다.
곧 혈천의 천하가 될 테니 자신 역시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빠졌다.
그게 실책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을 때, 몸을 뺐다면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이다!”
“헉!”
환희요후는 흉마에게 한쪽 팔을 잃으면서 몸의 균형이 미세하게 깨졌다.
사도와 괴검은 그로 인한 환희요후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푹!
“마, 망할…….”
“젠장… 컥!”
괴검의 검이 환희요후를 찔렀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 역시 환희요후에게 목을 내주고 말았다.
애초 괴검이 환희요후의 빈틈을 발견한 것 역시 그녀가 유도한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괴검의 죽음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사도 역시 환희요후의 제물이 되었다.
“우웩!!”
도박은 성공했다. 하지만 너무도 무모한 도박이었다.
괴검의 검은 그녀의 심장을 스쳤다.
심장이 완전히 베인 것은 아니었기에 절명은 피했으나 환희요후에게는 더 이상 버텨낼 체력이 없었다.
괴검과 사도를 죽였으나 그녀 역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나 더 최악은 환희요후를 향해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끝인가… 망할…….’
이제 움직일 힘도 없는 환희요후는 복면인이 지척까지 다가와서야 눈치채고 말았다.
아니, 진즉에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런…! 너무 늦었구려.”
복면인의 말투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사도와 괴검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일까?
복면인이 죽어가는 환희요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분께서 보내셨소. 허나 요후를 살릴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오.”
“…….”
환희요후는 복면인의 이어지는 말을 듣지 못하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복면인은 천사교의 고수가 아니었다.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환희요후는 복면인에 의해서 그곳에서 사라졌다.
북천적가
“허… 건천각주가 당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어.”
“이로써 사파사세에 심어둔 자들이 전부 당했구려.”
천사교에서 암약 중인 환희요후와 동영도왕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이 혈천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옥성의 독군, 천웅방의 천패에 이어서 천사교의 암약자들까지 제거되었다.
물론 혈천에서 심어둔 사파사세의 간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수뇌급이 아닌 말 그대로 간자일 뿐이었다.
혈천의 뜻대로 사파사세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북천적가의 대공자, 아니, 신임 가주가 사해련주가 될 겁니다. 사파사세 전부는 아닙니다.”
“그렇기는 하지. 허나 지금 상황에서 사해련은 그리 중요한 패로 사용할 수 없지 않은가. 대군사.”
북천적가는 한때 청해를 호령하던 가문이었다.
허나 그들의 이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사망도제는 북천적가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사해련을 세웠다.
애초 북천적가의 혈족 혹은 가신이 없기 때문에 이미 유명무실한 가문이었다.
사망도제의 죽음으로 북천적가의 맥을 적천우가 잇게 되었을 뿐 큰 의미는 없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적천우에게 적선하듯 사해련을 내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적천우가 사해련주가 된다고 해도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당장은 아니지만, 사해련은 분명 크게 쓸 데가 있을 겁니다. 대장로님. 대호법님.”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군.”
대군사 문인윤걸은 대장로와 대호법이 이미 사해련에 마수를 뻗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더 이상 그들과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해련주 자리를 적천우에게 넘겨준 것도 자신의 능력 이상을 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로부터 사해련주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이제 적천우의 몫이니 더 이상은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어쩔 생각인가, 대군사.”
“사실상 사파사세를 움직여서 정사대전을 일으키는 것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반대로 해야겠지요.”
“반대라…….”
동조해줄 삼세의 협력자들이 제거된 이상 반파된 사해련만으로 정사대전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적천우가 흔들린 사해련을 수습할 시간도 필요했다.
“정파를 움직여야겠지요.”
“…무림맹에 심어둔 놈들만으로 가능하겠는가?”
대장로는 말은 대군사에게 걸었으나 눈빛은 대호법에게 보냈다.
정파무림의 협력자들을 혁련세가가 건재할 당시에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런 혁련세가가 무너지면서 정파무림 협력자들의 상당수가 등을 돌렸다.
그러나 아직 혁련세,가 아니, 혁련중광의 끈을 잡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혁련세가 본가가 무너졌음에도 혁련중광이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다만 그 협력자들 중에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수장급이 없었다.
“무림맹의 호법이라도 그들만으로는 힘들겠지요. 허나 십절무왕이 사천당가로 향했으니 분명 틈이 생길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야…….”
정파무림의 협력자 중 무림맹 수뇌급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휘의 황산파, 하남의 낙양검문 등 무림맹 호법들이 혁련중광과 연을 맺고 있었다.
허나 무림맹 호법이라도 급이 떨어지는 편이었기에 무림맹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
“본천에서 흘린 정보인 줄도 모르고… 멍청한 놈.”
“그만큼 십절무왕이 공에 눈이 먼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호법님.”
제갈윤호가 총군사를 맡고 있을 때는 신산각에 혈천의 간자를 심지 못했다.
하지만 제갈윤호가 총군사직을 사임하며 혼란한 틈을 타서 신산각에 간자를 심을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서 후임 총군사가 된 서문경에게 거짓 정보를 자연스럽게 흘릴 수 있었다.
사천당가주인 암군 당자성이 마공을 익히고 있다는 정보를 흘리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마공의 정체가 앙천독강이란 사실을 전하지는 않았다.
너무 많은 정보가 나온다면 서문경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비록 제갈윤호보다 못하지만 서문경 역시 무림맹 총군사가 된 인물이었다.
따라서 결코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게 자신의 목을 조이는 줄도 모르고… 쯧쯧쯧.”
그들도 암군이 십절무왕을 제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암군이 독마 수준까지 앙천독강을 익힌다면 가능성이 있었으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암군에 의해 십절무왕이 곤욕을 치를 것을 알고 있었다.
암군에게 십절무왕의 약점을 흘렸기 때문이다.
어느덧 혈천십삼세 회의는 대장로에서 대호법으로 주도권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환마(幻魔). 너무 좋아하지 마라. 네놈이 무림맹을 신경 쓰고 있을 때 나는 사해련을 가질 테니까.’
* * *
“아무리 련주님의 손자라고 하지만, 그런 애송이에게 어찌… 허참…….”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사해련은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감숙과 달리 사천과 섬서정벌의 실패만 해도 경악스러운데, 호기스럽게 출사표를 던진 사망도제의 죽음은 사해련을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로 인해 사해련을 떠나려는 자들이 많았으나 오히려 대권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된 자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사망도제의 손자인 적천우를 신임 련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은 많은 이들에게 반감을 주었다.
특히 사해련 십대고수는 아니었지만, 바로 아래 직위를 가진 자들의 반발은 상당했다.
“허나 마옹과 궁귀께서 적 공자를 추대한 이상…….”
“미친 거 아니오? 어찌 그딴 애송이를… 에잉!”
사해련 십대고수 중 절반 가까이가 죽었다.
남은 육대고수 중 서열이나 무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이대봉공인 흑천마옹과 진뢰궁귀가 적천우를 지지한 이상 거부할 힘이 없었다.
차라리 흑천마옹이나 진뢰궁귀가 신임 련주가 된다면 따르겠으나 애송이인 적천우를 따를 생각은 없었다.
적천우보단 자신들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도 나름 초절정고수 아닙니까. 게다가 련주님의 무공을 계승한 후계자이고…….”
“살인단주. 그래서 이대로 애송이의 발이나 핥겠단 말이오! 나는 절대로 못하오!”
“발을 핥다니! 말이 좀 과하시오! 탈혼단주!”
사해련의 십대고수 다음의 실력자는 바로 육대단주였다.
그중 하나인 진뢰궁수단이 진뢰궁귀의 직속이니 오대단주라고 할 수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