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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93화 (293/314)

293화.

부친인 전대 가주의 눈 밖에 난 후 천운현은 가주 후보는커녕 모든 것을 잃었다.

그렇다고 한들 전대 가주의 아들이자 현 가주의 아우였다.

때문에 언제 딴마음을 먹을지 모른다.

그는 거의 모든 권한을 빼앗겼으나 여전히 천운성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런 천운현의 곁에 누워 있는 나신의 여인은 놀랍게도 당령.

사천당가의 꽃이었으나 이젠 천운성의 노리개가 된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몸을 섞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량한 신세가 된 두 사람이 금단의 사랑에 눈을 뜬 것은 아니었다.

모종의 거래로서 서로의 약점이 되어준 것이다.

“자신 있어? 집사장이 있는데?”

“집사장은 놈의 수하가 아니야. 본가의 수하이지. 결국 본가를 위해서라도 내게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

지금은 짐짝 취급을 받으나 한때는 천씨세가의 가주 후보였던 천운현이다.

단순히 천진룡 대장군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주 후보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재능과 인망 그리고 명분을 가진 기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지금은 많이 망가졌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천운성의 눈을 속이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천씨세가의 가주 자리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지 않은 것이다.

그런 그가 천운성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자리를 비웠을 거라고 생각할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조치가 집사장이라는 것 역시 눈치채고 있었다.

모른다면 모를까 알고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게다가 부천주가 패전을 했다더군. 성공했다면 위험할 뻔했는데, 실패의 책임을 물으면 놈을 끌어내리는 것이 제법 수월해질 거야.”

“끌어내리는 것이 끝은 아니겠지?”

“설마? 불안 요소를 남겨둘 정도로 내가 무른 놈은 아니라고.”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천운성으로부터 가문을 빼앗으려는 천운현과 천운성에게 짐승처럼 유린당한 복수를 꿈꾸는 당령.

그런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천운현은 아직 자신의 입김이 닿는 자들을 이용해서 영향력을 은밀하게 넓히던 중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

천운성의 노리개로 있으면서 듣게 된 은밀한 정보를 가진 당령이 천운현에게 거래를 청했다.

최종 목적은 다를지라도 두 사람 모두 천운성이 몰락하기를 바랐다.

덕분에 그들은 너무도 쉽게 손을 잡았고, 한쪽이 배신할 수 없게 잠자리라는 약점을 만들었다.

실패시 혼자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당령의 눈에 독기가 번들거렸다.

‘개자식. 내가 얼마나 독한 년인지를 알려주마!’

당령이 복수를 꿈꾸며 천운현과 밀회를 즐기고 있을 때, 혈천 수뇌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 * *

쾅!

“부천주가 살해당하다니! 그게 말이 되나!”

사해련주이자 혈천의 부천주인 사망도제가 검신에게 패배한 후 도주했다는 소식은 혈천을 발칵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같은 오제도 아닌 검신에게 사망도제가 패배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외부에 알려진 사망도제의 무위는 오제 중 하위였지만, 그가 숨기고 있는 힘을 생각하면 오제 그 이상이었다.

그런 그가 검신에게 패배했다는 것은 결코 믿을 수 없었다.

허나 그의 패배는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지급 서신이 혈천에 전해졌다.

그건 바로 야차도귀가 보낸 서신으로, 사망도제의 죽음에 대해 적혀 있었다.

사마도제의 패배에 이은 그의 사망소식으로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신의 소행은 아니오? 대군사.”

“부천주님의 시신이 발견된 곳과 검신이 떠난 방향은 정반대였기에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대호법님.”

혈천 수뇌부는 대장로의 주관 하에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부천주가 없는 이상 차상위 서열자는 바로 대장로였다.

허나 대장로에게 전혀 꿇리지 않는 대호법이 그의 독주를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대호법은 대장로를 견제하기 위해서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검신이 아니라면 누가 부천주를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

대장로는 이제 부천주의 호칭에 ‘님’자를 생략하고 있었다.

죽은 사망도제 따윈 더 이상 경칭을 사용해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는 자가 없었다.

“부천주님께서 검신과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으셨다면… 그가 아니라도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예상되는 인물은 있는가, 대군사.”

“특별히 발견된 인물은 없습니다만… 야차도대주의 보고에 의하면 부천주님의 시신 곁에 수라검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라검대가? 놈들이 왜 거기에 있는 거지?”

수라검대가 거론되자 대장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대호법은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수라검대는 허리가 뻣뻣한 것으로 유명한 자들이었다.

모두 그들을 원하는 동시에 그 뻣뻣함을 못마땅해했다.

부천주만 아니라 대장로와 대호법 역시 자신들의 손에 넣지 못한 수라검대의 거론에 모두 다른 반응 보였다.

“대군사, 놈들이 나간 것을 알고 있었소?”

“그게 그러니까…….”

대군사가 난감해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부탁했습니다. 대장로님.”

“…그대는 혈궁의 혈영 부궁주가 아닌가?”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좌중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자리에는 혈천을 이끄는 혈천십삼세의 주인들만 참석할 자격이 있었다.

그 외에는 대리 참석도 불가능하였다.

그렇기에 부궁주는 이 자리에 허락되지 않았다.

허나 혈궁은 혈천주를 수호하는 집단이다.

그런 혈궁의 이인자인 혈영수라를 무시할 자는 없었다.

게다가 혈영수라는 혈궁의 부궁주인 동시에 혈천의 호법, 즉, 초절정고수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장로님 그리고 십삼세의 주인님들.”

“그런데… 자네가 부탁했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기에 혈영수라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모두 아시겠지만, 자하검제의 암살 임무로 부상을 입으신 궁주께서 본천에 복귀를 못 하신 상황입니다. 궁주님을 모셔오기 위해서 본궁의 수하들을 움직일 수는 없기에 수라검대주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렇군. 헌데 말이야.”

혈궁은 혈천주를 수호하는 집단인 만큼 임의로 인원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부궁주인 혈영수라는 궁주인 혈뢰검마를 모셔오기 위해서 수라검대를 움직였다는 말이었다.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예 말이 안 되는 변명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장로의 물음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과 수라검대가 부천주의 시신 곁에 있던 것이 무슨 연관이 있지?”

허나 그건 수라검대가 외부로 나간 명분이지, 부천주의 시신 곁에 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았다.

제법 예리한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혈영수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건 궁주께서 은신한 곳이 섬서이기 때문입니다. 수라검대는 궁주님을 찾으러 가는 길에 부천주님의 시신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네의 목을 걸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수라검대가 부천주님을 해할 이유도, 능력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네만?”

“…장담하지요.”

혈영수라의 확언에 대장로는 더 이상 수라검대를 거론하지 않았다.

혈궁의 이인자인 혈영수라의 목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때 대군사가 흐름을 끊듯 새로운 안건을 꺼냈다.

“부천주님의 죽음은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 알려질 겁니다. 사해련주 자리의 공석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장로님, 대호법님.”

공석이 된 사해련주 자리가 거론되자 너나할 것 없이 눈에 탐욕의 빛이 번들거렸다.

비록 이번 일로 상당한 전력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지만 무려 사파사세의 사해련이었다.

여전히 막대한 힘을 가진 자리였다.

“그야 그렇지. …자넨,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겐가?”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수라검대의 일로 끼어든 것은 묵인했으나 혈영수라는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기에 대장로는 축객령을 내렸다.

어차피 목적을 이룬 혈영수라 역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대군사에게 눈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으나 누구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초비상인 상황이었다.

“신임 사해련주는…….”

* * *

“문인윤걸,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사해련주 자리를 두고 설전이 오갔다.

혈천십삼세의 주인들 모두 사해련주 자리가 탐이 났으나 감히 나설 수 없었다.

탐욕을 드러내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덕분에 후보는 둘로 추려졌다.

대장로와 대호법으로.

비록 죽은 부천주만은 못 하지만, 그들 역시 화경고수였다.

그러므로 충분히 사해련을 차지할 능력이 있었다.

문제는 두 사람 중 어느 한 명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사망도제의 죽음 이후 힘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사해련은 여전히 사파사세였다.

반파된 혼세교나 멸문에 가까운 혁련세가를 대신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사해련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순간 힘의 우위에서 확실하게 밀리게 된다.

그러니 결코 상대방에게 양보할 수가 없었다.

“적천우, 그 애송이와 그새 거래가 있었단 말인가!”

놀랍게도 예상치 못한 후보가 나왔다.

바로 사망도제의 손자인 적천우였다.

혈룡대주인 그는 초절정고수이며, 무엇보다 사망도제의 혈육이었다.

비록 신임 사해련주로서는 부족하지만, 흑천마옹과 진뢰궁귀가 적천우를 옹립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이런 제안을 내놓은 자는 놀랍게도 대군사인 문인윤걸이었다.

대군사는 대장로와 대호법 다음의 서열이었다.

게다가 혈천의 지낭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제안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장로와 대호법은 갑자기 초를 친 대군사를 찢어죽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사해련을 대장로와 대호법 한 사람에게 넘겨주어서 균형을 무너트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젠장. 이대로 당할 수는 없는데 말이야…….”

혁련중광 입장에서는 대장로에게 사해련을 넘겨주는 최악의 상황만은 면했다.

허나 적천우에게 넘겨주는 것은 차악일 뿐이었다.

그는 이대로 사해련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신임 사해련주 후보로 적천우가 거론된 것이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혁련중광은 이 판을 뒤집을 계책을 짜야 했다.

그 시각 문인윤걸은 누군가를 은밀하게 만나고 있었다.

* * *

“부궁주의 청대로 제안하긴 했으나 나로선 무척 위험한 결정이었소, 정말… 그분의 지시가 맞소?”

문인윤걸을 은밀하게 찾아온 자는 놀랍게도 혈궁의 부궁주인 혈영수라였다.

혈궁(血宮)은 혈천의 일에 나서는 법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혈천주의 안위뿐이었다.

그렇기에 혈궁주인 혈뢰검마도 혈천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 혈궁에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수라검대의 일은 물론, 사해련 신임 련주 선출에도 관여를 하고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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