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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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육안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도검 등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허나 그들은 군부의 군사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숨소리는 매우 거칠었다.
“…이거 맹주께서 너무 서두르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무림맹의 신임 맹주 십절무왕(十絶武王) 모용묵은 이천에 달하는 고수를 이끌고 출맹했다.
무림맹을 대표하는 사신당의 청룡당과 현무당, 별동삼대의 제마대와 의협대 등 어느 한 명 고수 아닌 자가 없었다.
그런 그들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나올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실세 중에 실세라는 신창과 언중경으로서는 맹주의 이런 결정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그들 역시 지금 섬서무림이 직면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들이 아는 십절무왕은 결코 섬서무림을 걱정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섬서 서안에는 사해련주인 사망도제가 있다.
그들은 십절무왕이 오제(五帝)인 사망도제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두르는 지금의 상황이 걱정스럽기만 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십절무왕은 무림맹 고수들을 독려할 뿐이었다.
“섬서의 동도들이 위험에 처했네! 모두 서두르게나!”
“존명!”
십절무왕의 독려에 무림맹 고수들이 대답했으나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엿보였다.
그만큼의 강행군이었다.
이 상태라면 제때 도착한다고 한들 치진 그들이 사해련 고수들을 상대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서안에 가까워질수록 십절무왕은 흥분하는 듯 보였다.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는지 신창과 언중경, 아니, 무림맹 수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맹주인 십절무왕의 독려 때문인지 어느덧 육안으로 서안이 보이는 거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안과 가까워질수록 처참한 전쟁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였다.
“서, 설마!”
“이런!”
그들의 머릿속에 모두 같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미 서안이 사해련에게 함락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들이.
그래서인지 무림맹 고수들은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무림맹 고수들이 서안의 지척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서안에서 그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무기를 쥔 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무림맹 고수들 역시 언제든 무기를 휘두를 수 있게 준비했다.
“누구냐! 사해련의 잔당이더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어? 어?”
서안에서 나온 자들은 무림맹 고수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하지만 곧 이상함을 느꼈다.
그건 무림맹 고수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무, 무림맹!”
“그대…는? 누군가?”
“서, 섬서목가의 목지광이라고 합니다. 혹시 무, 무림맹에서 오셨습니까?”
“…맹주님이시오.”
십절무왕의 곁에 있던 모용세가 장로의 말에 목지광은 물론 섬서무림인들은 기겁하며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무림맹주를 목전에 두고 목을 뻣뻣이 세울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허나 그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십절무왕은 물론, 무림맹 고수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두들 허리를 펴게. 어떻게 된건가. …사해련주는 어디에 있는가?”
“그, 그게…….”
쉴 새 없이 묻는 십절무왕의 물음에 목지광은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보다 못한 언중경이 다시 물었다.
“괜찮으니 진정하고 말해보시오.”
“아… 네. 그러니까 사해련주는 도망쳤습니다!”
“……!!”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사해련주가 도망치다니!!”
목지광의 대답에 무림맹 고수들은 경악했다.
사해련주가 누군가.
죽은 자하검제와 함께 오제에 속한 절대고수였다.
그런 자가 도망을 쳤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특히 사해련주를 제물 삼아서 자신의 이름을 천하에 알리려던 십절무왕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십절무왕의 호통에 목지광은 움찔했다.
“저, 정말입니다. 아, 안 그렇소?”
“마, 맞습니다. 목 대협의 말씀대로 사해련은 물러났습니다.”
목지광의 주변에 있던 섬서무림인들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런 그들의 확고한 반응에 무림맹 고수들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천하의 사망도제가 직접 나선 상황에서도 서안 함락을 실패한 것이 놀라운데, 그가 도망쳤다고 하니 이해될 리가 없었다.
그때 한 노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량수불… 종남의 송광이 맹주님을 뵙습니다.”
“아… 무극검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오?”
십절무왕의 물음에 무극검군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검신께서… 사해련주를 쓰러트리셨습니다.”
“거, 검신!”
검신(劍神).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무림맹 고수들은 그 어떤 이견도 없이 바로 납득했다.
허나 맹주인 십절무왕만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빠드득…….
‘검신… 검신! 네놈이 내 앞길을 막는구나!!’
* * *
무림맹 고수들이 서안에 도착하기 세 시진 전, 섬서무림과 사해련의 싸움은 극에 달했다.
“제, 젠장! 이가장 놈들 때문에!”
“조금만 더 버텨라! 분명 련주께서 승리하실 것이다!”
불과 몇 시진 전만 해도 사해련 섬서정벌군에 의해 섬서무림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가장이 합류하게 되면서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젠장! 이가장 놈들!’
머릿수만 본다면 이가장은 결코 대세에 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달랐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가장이 강했기 때문이다.
초절정고수란 전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막강한 존재들이다.
적양신장(赤陽神掌) 구연청, 천검(天劍) 한승 그리고 혈견살객(血犬殺客) 초운비.
초절정고수인 그들의 참전으로 전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사해련 고수 수십이 쓰러졌다.
그러니 사해련의 사기가 곤두박질치는 것은 당연했다.
그에 반해 사해련 소속 초절정고수들은 섬서무림의 초절정고수들에게 발이 묶였다.
사해련에서는 저들을 막을 자가 없었다.
“망할. 저 계집을 잡아라! 검신의 부인을 인질로 잡으라고!!”
“염병할! 어쩔 수 없지!”
사해련 섬서정벌군은 내키지 않았으나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서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검신의 부인인 문교교를 인질로 잡아서 검신과 이가장을 압박하려는 심산이었다.
그 외침에 사해련 섬서정벌군 수십, 아니, 수백명이 문교교를 향해 달려들었다.
반대로 섬서무림인들은 기겁했다.
“마, 막아!”
“부인을 지켜라!!”
순간 싸움의 양상이 바뀌었다.
문교교의 신병을 확보하려는 싸움으로.
그녀의 신병만 확보하면 전세는 얼마든지 바뀐다.
그렇기에 그녀를 잡으려는 사해련 섬서정벌군과 지키려는 섬서무림은 사력을 다했다.
문제는 죽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이다!”
“헉!”
“아, 안 돼!!”
결국 섬서무림인들의 인간방벽을 뚫고 사해련 섬서정벌군 수십명이 문교교에게 향했다.
섬서무림인들은 뒤늦게 그들을 잡으려고 했으나 사해련 섬서정벌군이 조금 더 빨랐다.
“컥!”
“으아악!!”
허나 그들은 문교교를 인질로 잡을 수 없었다.
귀림의 고수 이백 명이 그녀를 호위하고 있다.
비록 살수 출신이었지만, 삼대 삼종의 하나인 귀림(鬼林) 출신이다.
따라서 다른 살수들과는 급이 다르다.
사해련 섬서정벌군 수십여 명은 귀림 고수들에 의해 순식간에 베였다.
설령 귀림의 포위를 뚫는다고 해도 문교교를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녀의 곁에는 칠현마금(七絃魔琴) 독고혜와 귀왕(鬼王) 야래향이 딱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해련 섬서정벌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더 많은 고수들을 밀어붙여 문교교를 잡으려 했다.
문교교를 인질로 잡는 것 외에는 이 상황을 타파할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였다.
허나 그런 그들의 행위가 독고혜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이것들이!”
팅! 팅! 티팅!!
독고혜는 자신의 무릎 위에 칠현금을 올려놓았다.
그녀가 현을 튕기기 시작하자 아름답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등골이 오싹한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컥!”
“우웩!!”
얼마 지나지 않아서 휘청거리거나 쓰러지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한 자는 토하거나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더 놀라운 점은 그들 전원이 사해련 섬서정벌군이라는 것이다.
독고혜는 칠현금을 통해서 음공(音功)을 펼쳤다.
음공은 홀로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무서운 무학이다.
그러나 적아가 혼재되었을 때는 아군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허나 독고혜는 그런 음공의 약점을 넘어서 사해련 섬서정벌군만 골라서 피해를 주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위력과 범위가 현저히 낮아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
“치, 칠현마금!!”
“젠장!!”
사자후와 같은 기본적인 수준의 음공을 제외하고 전문적으로 음공을 익힌 고수는 무림에서도 흔치 않았다.
더더욱 이와 같은 음공의 대가는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사해련 섬서정벌군은 독고혜의 정체를 너무도 쉽게 깨달았다.
“림주도 한 수 보여주게나.”
“장로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출(出)!”
독고혜의 말에 야래향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사라졌다.
그 직후 여기저기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억!”
“뭐, 뭐야. 으아악!!”
초절정지경에 오른 야래향은 이제 귀왕인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십대암기인 귀왕인을 막을 수 있는 자는 그들 중에 없었다.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귀왕인이 다시 야래향의 손가락에 끼워졌다.
“아, 암기술의 고수다!!”
“괴, 괴물들이다!”
독고혜와 야래향의 무서운 솜씨에 사해련 섬서정벌군의 사기가 꺾였다.
그러는 사이에 정신을 차린 섬서무림인들은 그들을 베거나 제압했다.
그렇게 전쟁의 승기는 섬서무림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가고 있었다.
허나 섬서무림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쾅! 콰쾅! 쾅!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천지가 뒤흔들렸다.
“서, 설마!!”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검신과 사망도제의 승패가 갈렸다는 것을.
* * *
“커억… 퉷!”
거대한 구덩이 안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으며 어딘가를 허망하게 바라봤다.
“…설마 그렇게 도망칠 줄이야.”
싸움은 끝이 났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도망쳤기 때문이다.
화경고수로서의 체면을 버린 결정이었다.
허나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었다.
죽는다면 끝이었지만 살아 있다면 언젠가 복수를 할 기회가 있을 테니까.
“불사마공을 익혔으니 죽지는 않겠지. 허나 사라진 팔까지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러니 그댄 이제 끝이야 사망도제.”
놀랍게도 도주한 인물은 사해련주인 사망도제였다.
불사마공의 괴이한 공능을 과신했던 그였으나 결국 검신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 대가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