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저, 저자는! 모두 독과 암기를 준비하라!!”
“저놈을 향해 철시를 쏘아라!!”
독과 암기의 사정거리는 결코 활을 따를 수 없었다.
활 혹은 노를 쥐고 있던 당가고수들은 급히 독과 암기를 준비했다.
청해마왕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고수에게 화살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목시라면 몰라도 철시라면 타격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살을 철시로 바꾸었다.
허나 그게 실수였다.
청해마왕쯤 된다면 화살을 피하는 것은 물론 잡거나 막는 것도 가능했다.
문제는 궁수들의 시위가 청해마왕에게 몰리면서 다른 사해련 고수들의 접근을 허용하고 말았다.
“주, 죽여라! 저놈만 죽이면 이길 수… 컥!”
“감히 누굴 죽이겠다고?”
콰쾅!!
청해마왕은 철시는 물론 독과 암기를 피해가며 성벽 위의 당가고수들을 유린했다. 청해마왕은 독종과 함께 동귀어진한 태양마종과 쌍벽인 고수였다.
청성의 대라신군이나 아미의 금정신니라도 버거운 상대가 바로 청해마왕이었다. 하물며 청성의 봉문으로 대라신군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흑천마옹이 오천의 군세를 이끌고 아미산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금정신니 역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누가 그를 막아낼 수 있겠는가.
쾅!
“큭! 누구냐!”
당가고수들을 유린하던 청해마왕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했다.
화가 난 그의 시선에 한 중년사내가 들어왔다.
청해마왕은 그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차렸다.
“독종의 아들놈이 맞나? 듣던 것과 많이 다른데?”
“곧 죽을 놈이 말이 많군.”
중년 사내는 바로 암군(暗君) 당자성이었다.
청해마왕은 갑작스러운 비수를 막아냈다.
그가 놀란 이유는 비수에 강기가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암기에 강기를 담는 것은 상당한 경지에 해당된다.
암군 당자성이 그 정도 수준이란 말은 듣지 못했기에 청해마왕은 얼떨떨했다.
실제로 과거 당자성의 무위도 이 정도가 아니었다.
그가 최근 익힌 금단의 무공이 당자성의 무위를 한층 높여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건방진 애송이 놈! 네 애비가 살아 있다고 한들 감히 내게 그딴 건방진 소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버님이 아니다!”
순간 당자성에서게 섬뜩한 살기와 동시에 광기가 느껴졌다.
명문정파의 고수답지 않은 기운이었다. 청해마왕은 의아했으니 이 정도로 기가 꺾일 그가 아니었다.
“오냐, 네놈을 죽이면 성도를 장악하는 것이 수월하겠구나.”
“내가 할 말이지. 네놈을 죽이고 너희 사해련 잡놈들 모두를 찢어 죽여주마!”
“큭!”
쾅! 콰쾅!!
당자성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층 더 강해진 당자성이었지만 상대는 청해마왕이었다.
사해련 이전 청해무림을 지배한 고수 중 한명이었다.
그는 생전 독종보다 오래 무림을 구른 인물인 만큼 당자성에겐 분명 버거운 상대였다.
허나 놀라기는 청해마왕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독종도 아니고 그 자식놈이 이 정도라니! 역시 당가란 말인가!’
분명 당자성의 나이는 적지 않았다.
허나 청해마왕이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무림에 구른 시간 자체가 다르다.
허나 청해마왕은 이미 지는 해고, 당자성은 떠오르고 있는 해였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청해마왕이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은 요원했다.
그에 반해 아직 당자성은 더 높은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있었다.
‘본련을 위해서라도 놈은 오늘 기필코 죽여야겠어.’
이대로라면 당자성은 제 아비인 독종 이상의 경지에 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사해련의 방해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놀랍지만 아직 자신의 아래라고 확신한 청해마왕은 당자성을 기필코 죽일 생각이었다.
당자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를 죽이지 못하면 당장 당가의 내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당자성 역시 청해마왕을 죽일 생각이었다.
당자성의 손에 수십의 암기가 쥐어져 있었다.
“만천화우!!”
“역시… 그렇게 나왔단 말이지!”
사천당가를 오대세가의 반석에 올려놓은 최강의 암기술 만천화우(滿天花雨).
수십 수백의 암기를 일제히 던져서 흡사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착각을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암기술이었다.
현 사천당가에서 만천화우를 익힌 사람은 열을 넘지 않는다. 그중에서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셋.
그리고 오직 당자성만이 완벽하게 시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만천화우를 펼친 암기 중에는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해하는 암기도 있었다.
그렇기에 호신강기만 믿고 있다면 큰일 난다. 그걸 아는지 청해마왕은 호신강기만 아니라 양손을 빠르게 움직여서 몰아치는 암기의 비를 흘려버리려고 노력했다.
“큭!”
아무리 청해마왕이더라도 그 많은 암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막거나 흘릴 수는 없었다.
결국 몇 개의 암기가 그의 몸에 박히고 말았다.
허나 수백의 암기 중 고작 열개 미만만 허용했다니, 과연 청해마왕다웠다.
“과연… 당가의 만천화우답군. 하지만 이젠 끝이다!”
“과연… 그럴까.”
만천화우는 사천당가의 모든 것이라고 할 정도로 최강의 암기술이었다.
만천화우가 막힌 이상 그 어떤 암기술도 청해마왕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청해마왕이 승리를 자신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비장의 패였던 만천화우가 막혔음에도 당자성은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여유를 유지했다.
청해마왕은 그게 허장성세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만천화우 이상의 암기술이 사천당가에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순간 당자성의 양손에 폐관수련 때 보여주었던 암록의 연기가 어렸다.
“마왕… 헉!”
콰쾅!
암군이라는 별호에 어울리지 않게 당자성의 숨겨진 한 수는 바로 독공이었다.
허나 이상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암군이라고 불린다지만 그는 사천당가의 가주이자 독종의 아들이 아닌가.
그가 독공을 숨기고 있다고 한들 놀라울 것은 없었다.
허나 문제는 그 위력이었다.
“크윽! 퉤! 으… 지독하군. 당가에 이 정도 독공이 있었단 말인가.”
“…….”
절학을 펼치려던 청해마왕은 당자성의 독장을 맞았다.
청해마왕쯤 되는 고수라면 어느 정도 독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자성의 독장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피와 함께 뱉어낸 독이 성벽의 돌을 녹일 정도로 지독했다.
중원 독문의 자존심다웠다.
청해마왕의 말에 당자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허나 이어진 청해마왕의 말에 그의 미간이 주름지게 되었다.
“당가의 독이 이 정도라면 독왕의 독은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독왕? …오늘 네놈을 죽이고, 독왕 역시 내 손으로 죽일 것이다.”
독왕이라는 칭호를 운남 만독궁주에게 빼앗긴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당자성은 청해마왕에 이어서 그 역시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당자성의 눈빛에 살기를 넘어서 광기까지 느껴졌다.
허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기? 설마!”
“닥쳐!”
청해마왕은 당자성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의 정체는 바로 마기(魔氣)였다.
살기나 광기는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살기를 익히게 되니까.
그리고 집착이 강해진다면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광기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성을 잃을 정도의 광기만 아니라면.
허나 마기는 다르다. 선천적으로 마기를 타고난 경우는 백만 아니, 천만에 한 명 있을까 말까했다.
그럼에도 마기를 품고 있다면 다른 경우였다.
“으윽! 역시… 네놈… 마공(魔功)을 익혔구나!”
“곧 죽을 놈이… 입이 너무 가볍구나!”
청해마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명색이 명문정파의 가주란 자가 설마 마공을 익혔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중원마도의 그저 그런 마공도 아니었다.
그런 마공을 주변의 질타를 감수하며 당자성이 익힐 이유가 없으며, 청해마왕이 기겁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단 하나.
“네놈… 마교의 마공을 익혔구나!”
“흐흐흐… 앙천독강이라면 네놈을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겠지.”
앙천독강이라는 말에 청해마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하를 공포로 물들게 만들었던 천마신교의 다른 이름은 십만마교였다.
그들의 본산을 십만대산이라고 불리기 때문도 있으나 마교도가 십만이 넘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었다.
실제로 마공을 익힌 마인이 십만이나 되지는 않는다. 평교도를 포함한 수였다. 그렇다고 한들 천마신교의 마인이 수두룩한 것은 사실이었다.
수많은 마인들의 정점에 선 자를 진마(眞魔)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교에는 그러한 진마가 무려 열여덟 명이나 되었다.
십팔진마(十八眞魔)의 수좌가 바로 교주인 천마였다. 그 외에 괴력난신이라고 불린 철마 역시 진마 중 한 명이었다.
앙천독강은 진마 중 한 명인 독마(毒魔)의 독문마공이었다.
천마대전 당시 독마 역시 죽었고, 그의 마공 역시 유실되었다고 알려졌다.
허나 사실은 조금 달랐다. 이렇게 사천당가가 은밀하게 빼돌렸으니까.
물론 사천당가가 앙천독강을 익히기 위해서 빼돌린 것은 아니었다.
앙천독강을 연구해서 사천당가의 독공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목적으로 마교의 마공을 빼돌린 문파나 무림세가가 적지 않았다.
“독마의 앙천독강이라니… 정파의 위선자답구나! 이 일이 무림에 알려지면 재밌어지겠군!”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死者無言)!”
당자성은 지금 청해마왕을 죽여서 입을 막겠단 말을 하고 있었다. 그만 죽는다면 당자성이 마교의 마공을 익힌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테니까.
“살인멸구(殺人滅口)라… 죽이는 것만큼 확실히 비밀을 지키는 방법은 없지. 허나 감히 나 청해마왕을 상대로 살인멸구를 하겠다고!”
“닥치고 그냥 죽어라!!”
당자성이 독마의 앙천독강을 익히고 있듯 청해마왕 역시 숨겨진 한 수가 있었다. 그의 손에는 강기가 흡사 강환 아니, 강기의 공처럼 압축되어 있었다.
마왕포(魔王砲). 강기를 압축해서 흡사 포처럼 쏘아내는 절기였다.
가공한 위력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무지막지한 내공을 소모하는 양날의 검이었다. 그렇기에 청해마왕은 위급하지 않다면 결코 펼치지 않는 진정한 비장의 패였다.
허나 당자성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익힌 앙천독강은 괜히 독마를 진마로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천마대전 당시 독마의 손에 죽은 중원무림고수는 십팔진마 중 세 손가락에 꼽힌다.
물론 독의 특성상 다수를 죽이는데 효과적이기 때문도 있지만, 그만큼 앙천독강이 가공했기 때문이다.
청해마왕의 모든 내공을 담은 마왕포와 당자성의 앙천독강이 충돌했다.
콰쾅! 콰쾅!
콰콰쾅!!
무엇이든 파괴하는 마왕포와 무엇이든 녹여버리는 앙천독강의 충돌로 그들이 싸웠던 성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컥!”
“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성벽만이 아니었다.
나름 일정거리를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던 사해련과 사천무림의 고수들까지 휘말려서 그대로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 위력만큼은 화경고수들의 격돌 못지않았다.
“헉… 헉… 헉…….”
“쿨럭… 쿨럭…….”
그 중심에는 두 사내가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