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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82화 (282/314)

282화.

흑천마옹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은지 반박하지 않고 오천의 병력과 함께 아미산으로 향했다.

“아쉽군. 독종이 살아 있었다면 조금은 재미있는 싸움이 될 텐데 말이야.”

청해마왕은 아직 몰랐다. 아무리 독종의 그림자가 깊다고 해도 당가가 왜 사천의 패자인지를.

그리고 군세를 나눈 것이 얼마나 크나큰 실수인지 아직은 알지 못했다.

“모두 서둘러라! 당가만 무너트리면 된다!”

“존명!”

그렇게 청해마왕의 독려에 사천정벌군이 서두르고 있는 시각, 사천당가의 심처에서는 누군가 폐관수련 중이었다.

* * *

“크으윽!”

어두운 암록의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 암록의 기운이 닿자 석벽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지독한 기운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느꼈는지 가부좌를 튼 중년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과연… 독마의 앙천독강이로군.”

중년 사내의 정체는 놀랍게도 암군 당자성이었다.

사실 당자성이라고 독공을 익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다른 직계혈족 수준 정도는 독공을 익혔다.

허나 그는 암군(暗君). 독종이라고 불린 부친의 독공 대신 숙부인 탈명교수의 암기술을 익힌 인물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이런 무시무시한 독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생전의 아버님도 두렵지 않겠어.”

광오하게도 당자성은 스스로의 경지를 선친에 비견된다고 판단했다.

경지? 정확히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강의 위력을 말하는 것이다.

선친이 익힌 독공은 사천당가 최강의 독공이었다.

허나 그가 익힌 앙천독강은 사천당가의 독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생전의 선친도 두렵지 않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나갈 때가 된 건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지자 당자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수련을 방해할 정도라면 분명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란 뜻이었다.

그걸 알기에 당자성은 아직 원하는 경지까지 오르지는 못했으나 수련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기감이 틀리지 않음을 알려주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주님, 총관입니다. 드릴 말씀이, 헉!”

“자네군. …무슨 일인가.”

사천당가의 현 총관은 당자성과 같은 배분이었지만, 서열이 상당히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총관직을 맡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총관이 당자성을 보며 헛바람을 들이마실 정도로 놀랐다.

당자성의 눈빛과 기질이 예전과 비교해 너무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기세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고수라고 불리기에는 약간 손색이 있는 총관으로서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 수련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가주님. 청해마왕이 이끄는 사해련 잡놈들이 성도의 지척까지 도착했다고 합니다!”

“준비는?”

“당씨 성을 가진 자들은 모두 무장을 한 상태고, 성도의 모든 문파들이 가주님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으음… 좋군. 무장 수준은?”

당자성은 총관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절차에 따라서 잘 대처하고 있으니 가주로서 기분 나쁠 이유가 없었다.

“가칙에 따라서 을(乙)급 무장으로 준비했습니다.”

“무장상태를 갑(甲)급으로 상향 조정한다.”

총관은 당자성의 말에 깜짝 놀랐다. 갑급 무장은 사천당가의 역사상에서도 몇 번 없었던 일이었다.

사천당가는 갑을병정 네 단계로 무장 상태를 나눈다.

정은 평시에 갖추는 기본 무장 상태를 말한다.

병은 소규모의 전투를 위한 무장 상태로, 극독을 제외하고 사용이 가능했다.

을은 대규모의 전투를 위한 무장 상태로, 팔대극독과 팔대암기를 제외한 모든 극독과 암기 사용이 가능했다.

태양마종과의 일전에서 사천당가는 을급 무장에 팔대극독과 팔대암기의 사용까지 허용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갑은 정사대전급 무장 상태였다.

“가, 갑급이라면… 무형지독의 사용을 허가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본가와 우리 사천의 원수인 사해련 잡놈들이다. 무형지독이 아니라 더한 것도 사용 못 할 이유가 있더냐.”

“아, 아닙니다. 준비시키겠습니다.”

총관은 섬뜩한 당자성의 눈빛을 보곤 움찔하곤 고개를 숙였다. 말을 잘못한 순간 목이 뜯겨나갈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다. 그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무형지독은 비록 독인의 무형지독을 인위적으로 흉내 냈음에도 무색무취무미무형(無色無臭無味無形)의 특성을 가진 천하제일독이었다.

사천당가에서 금제라고 표현하는 팔대극독의 경우는 해약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중독되는 순간 절명하기에 해약이 무의미할 뿐, 해약은 존재한다. 허나 무형지독은 다르다.

애초 해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천당가는 무형지독을 갑급 무장으로 지정해서 반 봉인해둔 것이다.

‘가주께서 후폭풍을 어찌 감당하시려고…….’

사천당가가 주변의 질타를 받을 수 있는 독과 암기를 다루면서도 명문정파, 그것도 오대세가에 꼽힐 수 있는 것은 강력한 힘을 사용함에 있어서 절제할 줄 알기 때문이다. 허나 해약이 없는 무형지독의 사용은 이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천마대전 혹은 세외침공에만 봉인을 풀었던 무형지독의 사용은 분명 후폭풍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당자성은 갑급 무장을 명했다.

물론 갑급 무장을 명했다고 해도 실제로 갑급 무장을 할 수 있는 인물은 사천당가에서 열이 넘지 않는다.

그만큼 무형지독은 다루기에 까다로운 절대지독이었다.

허나 질타도 살아 있을 때 의미가 있었다. 사해련에 의해서 전멸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해련 잡놈들…! 씨를 말려주겠다!”

잔재

“괜찮으…실 리가 없지요. 어떠십니까.”

백의무제의 비보(悲報)를 들은 이현성은 무당파로 왔다.

백의무제는 아직 무당파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혈마신의 동귀어진으로 인해 백의무제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숨이 아직 붙어 있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이현성의 물음에 백의무제의 치료를 맡고 있는 무당파 전대 의약전주인 적현진인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검신.”

“그런…….”

소림의 성승을 제외하고 정파무림에서 가장 강한 고수가 바로 백의무제였다.

사해련의 갑작스러운 행보로 인해 정사대전까지 운운할 정도로 무림정세가 좋지 못했다.

그런 시기에 그가 쓰러진 것은 정파무림에 크나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이현성은 그러한 이유로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백의무제는 그가 정파무림에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러한 그가 치료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이 심각하다고 하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무제 님 저, 이현성입니다.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으으…으…….”

다행히 백의무제의 의식이 남아 있는지 신음으로 반응해주었다.

최악은 아니었다.

이현성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버텨주십시오!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으…으…….”

숨만 붙어 있을 뿐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인 백의무제였다.

그런 그에게 이러한 말은 희망고문에 불과했다.

허나 이현성은 생각이 달랐다.

‘독왕, 그분의 도움이 필요해. 하지만… 가능할까.’

독왕은 천하 3대 신의이자 화경고수였다.

그라면 백의무제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현성에게 빚이 있는 독왕이라면 그의 청을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느냐였다.

비록 지옥성에서 탈퇴했다고 해도 칠사의 독사라고 불렸던 독왕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같은 시기에 정파의 영역인 호북성에 오는 것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지옥대제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독왕이 남만을 벗어나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고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백의무제를 남만으로 보내는 것도 어렵다.

‘성수가 살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산 성수의가는 섬서성이지만, 동남부에 위치했기에 호북 북부에 위치한 무당파와 그리 멀지 않다.

허나 성수 백우종이 이미 죽은 마당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그의 여식인 의봉이 천요로 확인까지 되었으니 설사 살아 있다고 한들 성수를 신용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현성의 눈에 기묘한 흔적이 들어왔다.

“이건… 단순한 흔적은 아닌 것 같은데…….”

“무제 님의 가문인 백가를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검신.”

“……!!”

태극문양이 무당파를 상징하고, 매화문양이 화산파를 상징하듯 흔치 않으나 고유문양을 보유한 가문이 있었다.

백가가 그 흔치 않은 가문 중 하나였다.

문제는 이현성의 눈에 익은 문양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텐데… 검신께선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 아… 예… 예전에…….”

이현성의 대답에 적현진인은 의아했다.

백의무제의 백가는 무림세가라고 할 정도로 세를 이루지 않았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장원조차 해체했다고 알려졌기에 백가문양을 젊은 이현성이 봤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허나 그가 본 적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기에 적현진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진인, 무제 님과 단둘이 있고 싶은데…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검신께서 원하신다면…….”

나이야 손자뻘이지만, 상대는 검신.

그의 청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되겠는가.

이현성의 청에 따라 적현진인이 밖으로 나가지 이현성은 일어나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곤 백의무제에게 큰 절을 했다.

“철우의 의형, 이현성이 할아버님께 인사드립니다.”

큰 절을 마친 이현성은 다시 백의무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무제 님의… 아니, 할아버님의 문양과 같은 문양의 목걸이를 가진 녀석을 압니다.”

꿈틀.

이현성의 말에 놀랐는지 움직일 수 없는 백의무제가 꿈틀거렸다.

그러한 그의 격한 반응에 이현성은 더욱 확신을 했다.

그리곤 가슴 속에 묵혀둔 옛 이야기를 꺼냈다.

돈을 받고 팔려 갔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혈무곡에서 의제 초운비와 철우를 만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정체가 혈천이라는 암중 거대세력이란 등 길고 긴 이야기를 풀었다.

“…다행히 녀석을 찾았습니다. 찾아온다는 말이 옳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녀석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버텨주십시오. 녀석에게 할아버님을 찾아드리고 싶습니다.”

“으으…으으…….”

이현성이 잡고 있는 백의무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게다가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힘들기 때문인지 모르나 이현성은 백의무제의 감정이 격해졌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성수의가가 몰살당했다고 하지만 녀석이 호락호락하게 당할 리가 없어. 분명… 어딘가 살아 있을 거야.’

이현성은 백의무제를 쓰러지게 만든 마물이 성수의가를 몰살시켰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이어서 적묘의 치료를 위해서 철우와 이현영 그리고 신룡표국이 여산에 갔다는 사실까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다행히 쓰러진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이현영과 신룡표국이 그전에 여산을 떠났으나 화산파의 일로 돌아갔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철우와 적묘의 행방이었다.

아직 그들의 행방이 묘연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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