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274화 (274/314)

274화.

처음 움직인 자들은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의 고수들이었다.

화산의 속가문인 매검문과 종남의 속가문인 태을장, 섬서목가 등 서안을 대표하는 문파들이 수백의 고수들을 이끌고 혈겁을 일으키는 괴한을 응징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사람들은 괴한의 죽음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사, 살려… 컥!”

“으아악!!”

아무리 절검지와 보은단 정예고수들이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사천왕과 일백이 넘는 보은단 고수들이 지키고 있는 여산 성수의가였다.

그럼에도 괴한의 손에 몰살을 당했다.

그러므로 몇 배 더 많다고 하지만 서안의 고수들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괴한은 작은 마을만 아니라 현(縣) 단위의 도시까지 몰살시키며 그 희생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뒤늦게나마 종남파 본산에서 고수들이 움직였고, 자하검제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던 화산파 고수들 역시 본산 제자들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괴한은 하남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설마… 나를 쫓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향해야 해! 형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다.’

학살하고 있는 괴한, 혈마신을 멀리서 지켜보는 일남일녀가 있었다. 그들은 철우와 적묘였다.

여산혈겁으로 성수의가에 기거하는 사람들이 몰살당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 극히 일부이지만 생존자가 있었다. 다만 몰살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극소수만 생존했다.

그중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었다. 속내는 알지 못했으나 성수 백우종의 의술로 적묘는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즉, 성수의가에 빚을 진 철우는 괴한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보은단은 물론 성수의가에 신세를 지고 있는 무림인들과 함께 혈마신에게 대적했다.

하지만 화경급 마물인 혈마신이었다.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혈마신의 일격에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십여 명씩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강했다.

초절정지경에 오른 철우조차 혈마신을 상대로 피해를 주긴커녕 피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금술인 광룡현신까지 펼치게 되었다.

그럼에도 혈마신의 옆구리를 살짝 베는 것에 그쳤다.

물론 금강불괴지신인 혈마신의 육신에 상처를 입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다만 부작용을 감수하고 금술인 광룡현신을 펼친 대가가 작은 상처이니 크게 손해 본 장사였다. 허나 그 틈을 타서 도망칠 수 있었으니 손해만은 아니었다.

“형님의 장원으로 돌아갈 순 없을 것 같아.”

“오라버니… 소림이라면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렇군. 소림이라면…….”

철우는 적묘와 함께 이가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가장은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에 위치했다.

정주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도시가 존재했고, 그 중에는 하남성 3대 도시인 낙양이 존재했다. 그리고 낙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등봉현의 숭산이 있었다.

숭산은 오악 중 하나인 중악이라 불리는데, 이곳에는 중원무림의 정신적인 지주라는 소림사가 존재한다.

소림이 움직일 때까지 많은 피가 흐르겠으나 광룡현신을 펼친 철우조차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는 혈마신을 막을 방법은 이제 그들밖에 없었다.

소림에는 살아 있는 전설인 성승과 반야신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그만 가자꾸나.”

* * *

“앙큼한 계집, 설마 혈마신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천요후가 예상했듯 여산혈겁에 이어서 섬서에서 혈겁을 일으키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한에 대해서 혈천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괴한의 정체를 눈치채고 말았다.

“허나 실패했나보군. 폭주해서 날뛰는 것을 보면 말이야. …아깝군. 혈마신이 내 것이 되었다면 아니꼬운 부천주 놈에게도 꿇리지 않을 텐데 말이야.”

혈천의 대호법인 혁련중광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다만 그 이유가 혈천의 대업을 위함이 아니라 일신의 욕망 때문이다. 혁련세가를 잃은 지금 그는 세력으로 부천주는 커녕 대장로에게도 밀리는 상황이었다.

대장로의 혼세교가 반토막 났으나 아직 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혁련세가는 가주를 비롯해 원로들 대부분을 잃고, 수백의 고수들까지 죽었다.

현재 잔존한 이들은 일백도 채 되지 않는다.

물론 혁련세가와 별개로 혁련중광이 키운 고수들이 남아 있고, 혈천 내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기에 그 위치가 흔들리지 않으나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그였기에 화경급 마물이라는 혈마신의 존재가 무척 탐이 났다.

“방법이 없으려나…….”

혈마신은 전설의 천마강시에 버금가는 마물이었다.

게다가 폭주한 상태라면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혁련중광은 혈마신에 대한 욕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조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휘구나. 들어오거라.”

누구에게나 차가운 혁련중광이었지만, 유일하게 따스하게 대하는 인물이 바로 장손인 혁련휘였다.

그의 방문에 평소와 달리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를 향해 혁련휘가 고개를 숙였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혈룡대의 일로 바쁜 것을 알고 있단다.”

혈룡대의 부대주인 혁련휘는 대주인 적천우와 같은 부대주인 문인주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혈룡대를 장악하기 위해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적천우와 문인주희가 자리를 비웠음에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무척이나 뿌리 깊었다.

덕분에 그들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혈룡대를 장악하는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중립을 지키던 두 명의 조장 중 한 명을 포섭하는데 성공했으며, 혈룡대원들 역시 상당수 끌어들였다.

덕분에 이제는 적천우보단 못해도 거의 근접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섬서에서 혈겁을 일으키고 있는 혈마신이… 후가 아닌가 싶습니다.”

“뭐! 후라고? 그게 정말이더냐!”

혁련중광은 혁련휘의 말에 깜짝 놀랐다. 크게 애정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명색이 자신의 손자였다.

허나 그가 놀라는 이유는 단순히 손자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확인된 사항은 아닙니다. 다만… 후의 흔적이 끊긴 장강이라면 섬서로 이어지며, 무엇보다 인상착의가 비슷합니다.”

“설마 그년이……!!”

빠드득!

정말 혈마신이 혁련후가 맞다면 천요후가 자신을 우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혈천십삼세의 한 명인 천요후가 자신의 손자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손자를 혈마신으로 제련했다는 것은 자신을 우습게 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자존심 강한 혁련중광이 이 일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같은 혈천십삼세의 일좌임에도 불구하고.

“그년이 어디에 있느냐!”

“…상부의 지시로 검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형주로 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부님.”

“그렇지. 검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검신… 자, 잠깐! 검신이라고!”

“왜… 그러십니까?”

버럭 화를 내는 조부를 보며 혁련휘는 움찔했다.

자신에게만큼은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조부이기 때문이다. 혁련중광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 찢어죽일 년이 아무리 부천주의 지시라지만 그런 위험부담이 큰일에 직접 움직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직접 움직였다. 왜 그렇겠느냐.”

“…소손은…….”

“그건 검신의 정기를 노린 것이다!”

“헉! 그게 정말이십니까!”

혁련중광 역시 성수 백우종 대신 천요후 백인혜가 움직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허나 부천주와 대장로를 견제하느라 천요후의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자하검제의 죽음과 여산혈겁 그리고 혈마신 등 굵직한 사건들 덕분에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천요후의 노림수를 이제야 눈치채고 말았다.

“그건 큰일 아닙니까!”

“만에 하나 그년이 성공한다면…….”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오제급으로 알려진 검신이었다.

그런 검신의 정기를 천요후가 흡수한다면 벽을 넘는다는 것이 꼭 꿈은 아니었다.

만약 천요후가 화경에 오른다면 혈천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지만, 혁련중광 개인의 입장에서는 결코 좋지 않았다. 자신을 농락한 대가를 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천요후의 신분을 흘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게 되면 검신 놈을 제거할 기회를 잃게 돼. 게다가 자칫 부천주나 대장로의 귀에 들어가면 놈들이 가만둘 리가 없다.”

같은 혈천 아래 모였으나 언제든 상대를 짓밟을 생각을 가진 그들이었다.

동료를 팔아서 검신이란 큰 원수를 제거할 기회를 잃었다는 명분을 그들이 모른 척할 리가 없었다. 그걸 알기에 혁련중광은 쉽게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망할 계집, 네년이 원하는 대로 놔둘 것 같더냐!”

* * *

“큭!”

“커억!”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괴물을 보며 종남과 화산의 고수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만큼 혈마신은 공포스러운 마물이었다.

허나 모두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한월애루(寒月哀淚)!”

중년 미부의 검격이 혈마신에게 작렬했다.

안타깝게도 혈마신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수월혈염(水月血染)!”

쉴 새 없이 쇄도하는 미부의 검격에 혈마신은 더 이상 다른 자들을 신경 쓸 수 없었다.

그런 그녀 덕분에 종남과 화산의 고수들은 잠시나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허나 그녀 홀로 감당하기에 혈마신은 너무 강했다.

“크윽!”

“매화낙섬(梅花落暹)!”

콰쾅!!

여인이 위험에 처하자 누군가가 혈마신을 공격했다.

그 틈을 타서 여인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괜찮으냐, 옥령 사질.”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원극 사숙.”

여인의 정체는 한천마녀라고 불렸던 화옥령이었다.

자하검제의 등선으로 시름시름 앓던 그녀는 혈겁을 일으킨 괴한의 소식을 듣고 검을 쥐었다.

원수인 혈뢰검마가 떠올라서 검을 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를 구한 노인은 자하검제의 사질이자 화산의 원로인 매화검절(梅花劍絶) 원극이었다.

그가 버럭 호통을 쳤다.

“매화검수들은 언제까지 얼이 빠져 있을 것이더냐! 매화검진(梅花劍陳)을 펼쳐서 당장 놈을 제압하지 않고!”

“조, 존명!”

그때 다른 곳에 또 다른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삼십육검은 북두대천강검진(北斗大天剛劍陳)을 펼쳐서 화산파 도우들을 도와라!”

“존명!”

화산파에서 매화검절이 매화검수들을 이끌고 왔다면 종남파에는 무극검군이 천하삼십육검을 이끌고 왔다.

매화검절과 무극검군은 화산과 종남을 대표하는 원로이며, 그들이 이끌고 온 매화검수와 천하삼십육검은 양파를 대표하는 정예고수들이었다.

이들만으로도 거대문파들을 상회할 정도로 대단한 전력이었다. 그럼에도 혈마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괜히 최악의 마물이 아니었다.

“크윽!”

“포기하지 마라! 아직… 커억!”

매화검수로 구성된 매화검진과 천하삼십육검이 펼친 북두대천강검진은 강자를 제압하기 위한 화산과 종남 최고의 검진이었다.

실제로 많은 무림공적들이 매화검진과 북두대천강검진에 의해 사로잡혔다.

하물며 이번에는 초절정고수가 셋이나 돕고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