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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73화 (273/314)

273화.

허나 아무리 진법 수련을 열심히 해왔다고 해도 절대적인 힘 앞에는 통하지 않는 법이었다.

“헉! 뭐가 이렇게 빨라!”

“정신 차리고 막아라!”

보은충렬진이 완성되자 혈마신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강렬한 기파가 풍겨 나왔다.

그로 인해 혈마신이 보은충렬진을 구성한 보은단에 달려들었다.

“크윽!”

“으아악!”

“버텨라!!”

금강불괴지체를 무기로 삼은 혈마신의 무시무시한 돌격에 보은충렬진의 선두에 위치한 자들은 물론 진법 자체가 휘청거렸다.

보은충렬진은 격체전공(隔體傳功)의 묘리를 담고 있었다. 보은단은 일개 대원이 일류고수이며, 조장급은 무려 절정고수들이었다.

그런 고수들 수십여 명의 내공이 격체전공으로 인해 모였음에도 진법이 휘청거렸다는 것은 기겁할 일이었다.

“놈! 어림없다!”

추혼엽사는 단원들이 진법을 재정비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줄 요량으로 시위를 당겼다. 사천왕의 일인답게 그의 화살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어렸다.

슝! 슈슝!!

추혼엽사는 순식간에 십여 발의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보은단원들을 피해서 오직 혈마신만 노렸다.

추혼엽사의 뛰어난 점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난전에서도 오로지 목표로 삼은 적만 추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엄청난 궁술 덕분에 보은단원들이 가까이에 있음에도 혈마신만 맞출 수 있었다.

허나 그뿐이었다.

팅! 팅! 티팅!

추혼엽사가 날린 십여발의 화살은 혈마신의 육신에 꽂히지 못한 채 튕겨나갔다.

나무는 물론 바위에도 꽂힐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가진 추혼엽사의 궁술임에도 금강불괴지체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지만 보은충렬진을 재정비할 시간을 충분히 벌어주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천라창영이 이끄는 보은단은 조금 전과 달리 먼저 혈마신을 공격했다.

수십여 명의 고수들이 혈마신을 공격했으나 이렇다 할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건 눈을 가리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천라지멸(天羅地滅)!”

천라창영의 외침에 혈마신을 공격하던 보은단 고수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의 창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건 바로 강기. 창강이었다. 게다가 위력을 예상할 수 있도록 무시무시한 크기의 창강이었다.

아직 초절정의 벽을 넘지 못한 천라창영이 이런 무시무시한 창강을 발현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그가 혼자 해낸 거라면 놀라운 일이었지만, 수십여 명의 고수들의 힘을 격체전공으로 합친 거라면 말이 다르다. 무지막지한 창강이 어린 천라창영의 창이 혈마신에게 쇄도했다.

그때였다. 맹검 위지천을 날려버렸던 검붉은 기운이 혈마신의 전신에서 휘몰아쳤다.

콰쾅! 쾅! 쾅! 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광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 충격으로 흡사 지진이라고 일어난 듯 일대가 크게 흔들렸다. 덕분에 성수의가를 찾아온 환자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헉… 헉… 쿨럭! 우웩!”

“헉… 헉… 헉…….”

무리를 했기 때문인지 천라창영은 초췌해졌을 뿐만 아니라 피까지 토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격체전공으로 내공을 전이했던 보은단원들 역시 하나 같이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은 밝았다.

괴물을 처리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허나 그러한 뿌듯함도 오래가지 못했다.

자욱했던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검붉은 장막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검붉은 장막 역시 사라진 순간 보은단 고수들은 경악했다.

정체불명의 괴한이 너무도 멀쩡히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듯 더욱 섬뜩하고 난폭한 살기를 주변에 뿌려댔다.

“제, 젠장!”

그날, 성지라고 불리던 여산 성수의가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여산혈겁과 자하검제의 죽음은 천하를 공포에 물들게 만들었다.

혈마신

“으…으…으…….”

화옥령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감겼던 그녀의 눈이 떠졌다.

그런 그녀에게 보이는 천장은 평소 보았던 동굴 천장이 아니었다.

목재로 된 천장이었다.

두문령으로 인해 폐관수련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고모… 깨어나셨어요?”

“아… 소군이구나. 내가 왜 이곳에 있느냐. 아버님께서 두문령을 거두신 것이더냐?”

화산 장문인 화천기의 여식이자, 화산파 일대제자인 화소군은 자신의 사고(師姑)이자 고모인 화옥령의 물음에 순간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조카의 반응에 화옥령은 의아했다.

두문령이 거둬진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폐관수련장을 벗어나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이더냐, 소군아.”

“그게 저… 으음… 고모 기억… 안 나세요?”

화소군은 대답하기 어려운지 오히려 되물었다.

허나 화옥령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하며 기억을 되새기려고 했다.

“뭐가 기억… 으윽…….”

“고, 고모!”

기억을 되새기려는 순간 화옥령은 갑작스러운 두통에 괴로워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화소군은 당황했다가 밖으로 나갔다.

의약전의 사숙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본능적으로 잊고 있던 아니, 잊으려고 했던 기억이 봇물 터지듯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순간 그녀의 두 눈에서 붉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그건 바로 혈루(血淚)였다.

부친의 죽음. 그리고 그 일에 한때나마 사랑했던 그리고 이제는 증오스러운 사내가 관여되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화산파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 이런!”

“려, 령아야!”

“고모!!”

의약전의 의원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화옥령을 보며 당황했다. 직접적으로 눈을 다친 것이 아닐 바에 혈루를 흘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다르게 말하면 엄청난 심화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누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화천기는 손가락을 튕겼다.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지풍으로 그녀의 미혼혈을 누른 것이다.

“장문 사형, 아무래도 사부님께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원량 사숙을? 알겠네. 모셔오게!”

화옥령의 상태는 현 의약전주조차 손을 쓸 수 없는지 그의 사부이자 전대 의약전주인 원량진인을 모셔 오길 청했다.

자하원의 출입은 함부로 할 수 없기에 장문인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의 허락에 화산파 제자는 경공술을 펼쳐서 자하원으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현 의약전주는 화옥령의 응급치료를 했다.

이를 지켜보는 화천기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도대체 이거 무슨 업보란 말이더냐. 령아…….”

* * *

“아가씨, 지금이라도 돌아가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니에요. 아버님의 마지막 지시셨어요. 자신 대신 검신 님을 치료하라고…….”

여산을 떠난 백인혜 일행이 호북의 북부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믿을 수 없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여산혈겁(驪山血劫).

정체불명의 괴한에 의해서 여산 성수의가에서 치료받던 환자들은 물론 그들을 치료하던 의원과 수호하는 보은단마저 몰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 나쁜 망언이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다른 곳도 아닌 여산 성수의가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의 군사들이 진상규명을 위해서 출동하게 되었다.

그 결과 소문이 사실이라고 공포했다.

그로 인해 천하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여산 성수의가가 어딘가.

무림만이 아니라 민초들 사이에서도 성지로 불리는 곳이었다. 그런 성수의가가 몰살을 당했다.

게다가 성수의가를 세운 성수 백우종의 시신까지 발견되면서 천하 민초들은 하늘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

성수의가의 유일한 생존자는 혈겁 직전에 여산을 떠난 백인혜 일행뿐이었다.

“아가씨… 힘내십시오! 저희가 평생 지켜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여러분…….”

절검지를 위시한 보은단 정예고수들은 백인혜를 위로했으나 그녀는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사실 성수의가가 몰살당한 것으로 백인혜는 그리 상심하지 않았다.

애써 키운 보은단과 백우종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알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절검지와 보은단 정예고수들이라도 건졌으니까.

문제는 완성직전이었던 혈마신이었다.

‘백우종 이 머저리 같은 놈, 장담하더니 일을 이렇게 만들어! 살아 있었어도 네놈은 내 손에 죽었어!’

그녀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백우종이 혈마신을 빼돌리려고 했다가 이러한 사달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광분해서 주화입마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소저는 잘 돌아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자하검제께서 암살을 당하셨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에게는 또 다른 동행자들이 있었다.

바로 이현영과 신룡표국이었다. 천웅창제를 막아내다가 검신이 쓰러졌다는 사실이 여산까지 전해졌다.

이에 성수의가를 대표해서 의봉 백인혜가 호북으로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현영이 동행을 희망했다.

친누이가 쓰러진 오라버니에게 가기 위해서 동행하겠다는데,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이현성의 의제인 철우와 최근 차도를 보이는 적묘 역시 동행을 원했으나 거절당했다.

차도를 보인다고 해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환자를 대동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백인혜와 동행한다고 해도 검신의 누이만 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신룡표국의 표사들 역시 동행하게 되었다.

적묘의 곁에는 철우가 있고, 성수의가 내에 있을 것이기에 그들이 꼭 있을 필요는 없었다.

허나 현재 이현영과 신룡표국은 백인혜와 동행하고 있지 않았다.

여산혈겁과 함께 알려진 또 다른 비보.

자하검제의 암살 소식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쓰러진 오라버니를 뵙고 싶었으나 부친의 죽음으로 슬퍼할 사부가 떠올라서 화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자하검제의 암살은 분명 본천의 작품이겠지. 이대로라면 위험해…….’

오제인 자하검제를 누가 암살할 수 있겠는가.

혈천의 소행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즉, 혈천의 대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혈천십삼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성수의가를 잃은 그녀의 자리가 위험하게 되었다.

때문에 기필코 이를 만회해야 한다.

‘대호법 늙은이가 알아차리기 전에… 검신은 무조건 먹어치워야 해!’

성수의가를 몰살시킨 괴한에 대해서 혈천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혈마신의 존재 그리고 혈마신을 혁련후로 제련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그럼 과연 혁련중광이 자신을 가만 놔두겠는가. 혈마신을 완성했다면 상관없으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검신의 정기를 흡수해서 스스로 벽을 깨는 방법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여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더 서둘러서 호북 형주로 향했다.

* * *

“컥!”

“괴, 괴물!!”

여산 성수의가를 몰살시킨 정체불명의 괴한은 혈겁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지나는 마을마다 피가 마르지 않았다.

그렇게 죽어간 생명이 벌써 수천에 이른다. 대부분이 힘없는 민초였으나 그중 무림인도 수백에 이른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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