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사라진 자들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과거에도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건장한 사내들이었고, 말 그대로 간혹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녀노소를 불문했고, 하루에도 몇 명씩 공급해야 했다.
물론 병들어서 죽어가는 자들이 아닌 어느 정도 회복한 환자들이어야 했다.
“알았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제물이 될 자들을 탐색했다.
보은단의 고수들은 그들의 행동을 모른 척했다. 아니, 인식하지 못했다.
심령이 장악된 보은단 고수들에게 천요후가 그들의 행동에는 일체 간섭하지 말라는 명령을 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수백명의 환자가 있는 곳이라지만 보은단 고수들의 기감을 속이고 이런 짓을 벌일 수는 없었다.
보은단의 수좌인 사천왕 중에는 초절정고수인 절검지가 있었다. 그의 기감까지 속이기에는 아직 저들의 능력이 일천했다. 그리고 보은단은 아니었지만, 성수의가에는 또 다른 초절정고수도 있었다.
한때는 천사교의 호교사자였고, 몇 년 전에는 이가장의 부장주이기도 했던 맹검 위지천이 있었다.
천하의 맹검도 천요후의 섭혼술과 성수의 약물은 버거웠는지 결국 그녀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유백은 그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부장주님 아니,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지요?”
“…….”
과거에도 말이 별로 없던 위지천이었지만 지금은 아자(啞子:벙어리)라고 의심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그러한 그의 반응에 유백은 순간 당황했다.
왕래가 없는지 수년이 되었으나 한때는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선배님께 가르침을 받은 여송은 지금 환환검(幻幻劍)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함께 왔는데, 선배님을 뵈면 무척 좋아할 겁니다.”
“…….”
여송은 과거 신룡대원으로, 부장주였던 맹검을 성수의가까지 호위했던 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른팔을 잃고 실의에 빠졌다가 맹검에게 가르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자였다.
현재는 다른 신룡대원들과 함께 신룡표국의 일원이 되었다.
특히 여송은 맹검에게 전수받은 환환미종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덕분에 신룡표국의 대표두가 되었고, 신룡표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가 되었다.
비록 한 팔을 잃게 되었으나 그 대신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한 여송은 맹검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맹검이 이가장을 탈퇴했다는 말에 그 역시 따라 나오려고 할 정도였다.
허나 주변의 만류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맹검 때문에 뜻을 꺾었다.
여송은 이번에 여산으로 향한다는 말을 듣고 자청해서 합류했다.
혹시 맹검을 만나 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선배님… 저희를 잊으셨습니까? 서, 선배님!”
“…….”
맹검은 유백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그냥 아무 말 없이 떠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백은 한숨이 나왔다.
분명 과거에도 무뚝뚝했으나 무시당했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너무도 바뀌어 버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백은 답답하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선배님…….”
“…으윽!”
유백을 뒤로 한 채, 거처로 온 맹검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참기 힘든 두통이 그를 괴롭혔다.
“…왜지……?”
맹검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 두통의 정체를.
그런 그에게서 너무도 섬뜩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놈… 그놈 때문인가…….”
두통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맹검은 이 고통이 유백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이런 두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인해 육신이 약해졌을 때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백인혜의 섭혼술로부터 끝까지 저항했던 맹검 위지천이었다.
허나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그 부작용으로 위지천은 거의 감정이 사라졌다.
그저 백인혜의 명령만 수행할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살심을 품은 지금 쉽게 살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위지천은 검을 쥐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유백을 찾아다녔다. 그의 기운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유백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강렬한 살기는 너무도 많은 자들을 불러 모았다.
“부장… 선배님 무슨 일로… 헉!”
“죽어라!”
빠르기로 유명한 위지천의 검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기습에 유백은 기겁하며 검을 휘둘렀다.
비록 초절정지경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검신이라는 이현성과 이가장 고수들 그리고 창천검군의 가르침을 받은 그였다.
덕분에 신룡검법도 상당부분 복원했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경지에 올랐다.
이가장 고수들 중 열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그런 그의 성장을 알려주듯 유백은 위지천의 검을 막아냈다.
허나 위지천은 초절정고수였다.
유백이 막으려 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검이 아니었다. 겨우 막아내기는 했으나 위지천이 억지로 밀어 찔렀기에 옆구리를 베이고 말았다.
다행히 심장이 다치는 치명상은 면했다. 허나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무슨…짓입니까!”
“감히 누가 국주님을 노리느냐!”
“미친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무, 물러서! 부, 부장주님 왜, 왜 그러십니까!”
신룡표국의 표사들은 각자 무기를 쥐고 정체불명의 괴한을 향해 겨누었다.
그러나 괴한의 정체를 눈치챈 몇몇은 당황했다.
그들은 신룡대 출신인 대표두와 표두들이었다.
특히 그에게 은혜를 입은 여송은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죽여…버리겠다!”
“물러…서!”
고작 표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기습이었다고 하지만 신룡표국 최고수인 유백이 일검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아직 고수라고 불리기에 미흡한 표사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유백은 부상을 입었으나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다.
쾅!
“커억!”
“구, 국주님!!”
전력을 다해도 감당할 수 없는 맹검을 부상까지 입을 몸으로 어찌 상대할 수 있겠는가.
결국 유백은 다시 나가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여송을 위시한 대표두와 표두들은 검을 뽑아서 위지천을 경계했으나, 그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난감했다.
괴한이 위지천임을 알면서 검을 휘두르기 힘들었고, 설사 휘두른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죽어라!”
“젠~장!!”
챙!!
놀랍게도 누군가 위지천의 검을 막아냈다.
허나 그의 검을 막아낸 자는 여송도 또 다른 대표두도 아니었다.
대검을 쥔 청년이었다.
“누구이기에… 이들을 헤하려는 것이더냐!”
“처, 철 대협!”
청년의 정체는 바로 철우였다.
너무도 강렬한 살기에 그가 바로 반응했다.
혈우살객이라고 불렸던 그였기에 살기에 반응하고 싶지 않아도 몸이 절로 반응했다.
“죽여…버리겠다!”
“놈! 어림없다!”
“대, 대협 저분은……!”
여송이 만류하기도 전에 철우와 위지천의 검이 충돌했다.
쾅! 쾅! 콰쾅!!
비록 강기까지는 운용하지 않았음에도 초절정고수들답게 박력이 남달랐다. 덕분에 주변에 있던 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둘러 물러나고 말았다.
“으… 으…….”
“구, 국주님!”
“장 표사와 곽 표사는 국주님을 모시고, 의원님께 가게!”
“예! 대표두님!”
여송은 대표두답게 부상자부터 챙겼다.
그런 그가 안타까운 눈으로 위지천을 바라봤다.
은공으로 생각한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결국 강기까지 운용했다.
‘젠장! 강하다!’
철우는 분명 강했다. 하지만 맹검 위지천은 더욱 강했다. 덕분에 밀리는 쪽은 철우였다. 허나 이대로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젠장, 광룡현신까지는 펼치고 싶지 않았는데…….’
철우가 익힌 광룡마공은 무척이나 광폭한 마공이었다.
그만큼 강하지만 또 위험하기도 했다.
광룡현신(狂龍現身)은 광룡마기를 폭발시키는 기술로, 일시적으로 위력을 증폭시킬 수는 있으나 자칫 광룡에게 먹힐 수 있었기에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사용해서는 안 되는 금술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무림맹 신산각에서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죽을 순 없었기에 철우는 결국 광룡현신을 펼치려고 했다.
“놈 후회하지 마라! 내게 광룡현신을…….”
“무슨 일인가!”
“음? 저자는 맹검이 아닌가!”
고수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철우처럼 맹검의 살기를 느끼고 모여든 보은단의 고수들이었다.
특히 그들의 앞에는 사천왕 중 두 사람이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만약을 대비해서 백우종과 백인혜의 곁으로 갔기 때문이다.
“감히 성지에서 싸움이라니! 우리를 물로 보았군!”
“아, 아닙니다! 저자가 우리 국주님을 갑자기 공격했습니다! 철 대협께서 나서지 않았다면 국주님은 물론 저희까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위지천의 정체를 모르는 표사의 말에 그의 정체를 아는 표두들과 보은단은 난감했다.
허나 그렇다고 성수의가의 지척에서 이런 일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 보은단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위지 대협께선 물러나시오!”
보은단의 수좌인 절검지의 외침에도 위지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철우를 공격했다.
이를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초절정고수인 그를 막은 자는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실례하겠…….”
“이게 무슨 일이죠?”
절검지가 그의 자랑인 지강을 막 펼치려고 할 때였다.
아름다운 옥음이 울려 퍼졌다.
옥음의 주인공은 바로 삼봉의 한 명이자 성수의가의 자랑인 의봉 백인혜였다. 모두를 무시하던 맹검 위지천이 처음으로 움찔하며 새로운 반응을 보였다.
허나 여전히 철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런 그를 보며 백인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창영! 아가씨를 이토록 위험한 곳으로 모시면 어떡하는가!”
“죄송합니다. 대형, 아가씨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부탁한 것이니, 그에게 화를 내지 마세요.”
“흠흠… 아가씨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심령이 사로잡혔기 때문인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천요기를 바탕으로 펼친 섭혼술의 무서움은 심령이 사로잡혀서 다른 섭혼술과 달리 겉보기에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 또한 누구도 그들이 심령이 사로잡혔음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천요기를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거역할 수 없었다.
“위지 대협,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진정하세요.”
“…….”
움찔.
위지천은 그녀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허나 검을 거두지는 않았다. 덕분에 백인혜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위. 지. 대. 협.”
순간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기운이 백인혜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이미 심령이 사로잡힌 보은단은 움찔했으나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허나 신룡표국의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녀가 이러한 기운을 가졌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뭘 그리 놀라시오. 아가씨께서 삼봉의 한 명이신 걸 모르시오?”
“아…! 과연 대단하시구나.”
보은단원의 말에 신룡표국의 사람들은 그제야 의심을 거두었다. 그러는 사이 위지천은 결국 검을 거두었다.
정확히는 쥐고 있는 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리곤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위지천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더니 어딘가를 향해 뛰쳐나갔다.
보은단원들은 당황해서 그를 쫓으려고 했다.
“괜찮아요. 놔두세요. 제가 따라갈 테니까요.”
“위험합니다! 아가씨!”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위지 대협께서 절 해할 리가 없잖아요?”
“아, 알겠습니다.”
보은단은 백인혜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뜻을 따랐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신룡표국만 당황스러웠다.
백인혜는 그들에게 미소를 짓고는 조금 전 위지천이 향한 곳으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평소의 청초하고 우아했던 백인혜는 사라지고, 지금은 섬뜩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천요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러한 일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왜 내 천요기가 흔들린 거냐고!”
위지천의 심령을 장악하기 위해서 심어둔 자신의 천요기가 일부 흩어져 있었다.
심어지기 전이라면 몰라도 뿌리를 내린 후라면 불문의 고승이라도 천요기를 흩어놓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그렇기에 이런 생각지 못한 상황은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흩어졌던 천요기가 백인혜가 다시 심령을 장악하자 위지천을 괴롭히던 두통도 사라졌다.
덕분에 그는 다시 평소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천요기가 흩어졌던 원인을 알 수 없는 천요후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신룡표국주란 놈을 갑자기 공격했다고 했지?”
천요후는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원인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신룡표국이 검신의 표국이라고 했던가? 아, 네가 이가장에서 왔었지?”
맹검 위지천이 천사교의 호교사자였다는 사실이 워낙 유명해서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런데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그가 탈교 후 이가장에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즉, 천요기가 흩어진 일에 옛 기억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을 죽여?”
순간 그녀는 유백과 신룡표국에 살심을 품었다.
그들을 죽이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곧 생각을 접었다.
아무리 흔적을 잘 지운다고 해도 검신의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자신이 검신을 감당할 수 없는 이상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연구를 좀 해봐야겠어.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곤란하니까.’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