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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64화 (264/314)

264화.

호북 중부까지 갔던 이현성은 천웅방 선발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남부로 되돌아왔다.

이현성은 검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 그의 말에 탁탑월패와 한살검패는 사색이 되었다.

진짜 검신이 맞다면 아무리 자신들이라도 승산이 없었다.

화경고수는 초인이었다.

인해전술이 통하지 않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그렇기에 이천의 고수들을 믿고 밀어붙이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본방으로 돌아가겠다면… 모른 척해주겠나?”

“검패!”

“냉정하게 생각해! 월패!”

한살검패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그라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목숨은 물론 이천의 목숨을 헛되이 버릴 순 없었다.

그의 말에 이현성은 나직하게 말했다.

“천웅방주께서 호북정벌을 포기한다면… 보내주지.”

“…방주께선 그럴 생각이 없으시다면?”

“그대들이 천웅방주와 함께 호북무림을 짓밟게 만들 수 없다.”

“젠장!”

용마창패와 용마대는 이미 호북남부에서 수백여 명을 학살했다.

그 과정에서 무림인들만 아니라 민초들이 입은 피해도 상당했다.

재물을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아낙네들을 간살하거나 눈에 거슬린다고 죽이기까지 했다.

이를 알게 된 이현성은 재고할 것도 없이 그들을 전멸시켰다.

허나 탁탑월패와 한살검패가 이끈 이진은 달랐다.

이제 막 호북성에 도착했기 때문인지 아직 민초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이현성은 살인마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까지 몰살시킬 생각은 없었다.

허나 그들을 그냥 돌려보낸다면 본대에 합류해서 호북무림과 민초들을 위협하게 만들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천웅방주가 호북정벌을 포기한다면 몰라도 아닌 이상 그냥 돌려보낼 순 없었다.

“우리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마!”

“놈! 고작 그 인원으로 이천명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탁탑월패와 한살검패는 각자 독문무기인 월(鉞)과 검(劍)을 휘두르며 이현성을 위협했다.

허나 그 정도로 위협을 느낀다면 이현성이 어찌 검신이라 불리겠는가.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곧 도와줄 테니, 놈들을 휘젓기만 하게.

―존명.

이현성은 탁탑월패와 한살검패를 상대하기에 앞서 암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무리 암월이 초절정고수고, 귀림의 호위들이 특급살수의 능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이천 명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허나 그들의 살수능력이라면 이천 명 사이를 휘저으며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암월과 귀림 호위들이 움직이는 사이, 이현성은 탁탑월패와 한살검패를 상대했다.

쾅!

“큭!”

“커억!”

“과연 천웅팔패군. 아무리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내 일검을 감당하다니 말이야.”

이현성의 말은 결코 조롱이 아니었다.

그만큼 화경과 초절정지경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다.

그것을 알기에 탁탑월패와 한살검패는 이를 악물었으나 치욕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승산은 없다! 일검에 모든 것을 걸자!

―좋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검신의 일검을 막아냈으나 더 이상은 어렵다는 것을.

그렇기에 자신들 역시 목숨을 걸고 일검에 모든 것을 담기로 결정했다.

일말의 희망을 갖은 채로.

그 순간 그들의 월과 검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어렸다.

이현성은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허나 긴장하지는 않았다. 물론 무시하지도 않았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파산격(破散格)!”

“한음멸살(寒陰滅殺)!!”

“…여기까지다.”

서걱!

강렬한 폭음도 거대한 후폭풍도 없었다.

선천진기까지 끌어올린 탁탑월패와 한살검패의 일격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태극의 정수까지 자신의 무학에 녹여낸 이현성은 한층 더 성장했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일격조차 쉽게 베어버릴 정도로 강해졌다.

괄목상대라는 말이 그를 위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현성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탁탑월패와 한살검패를 뒤로 한 채 암월과 귀림 호위들이 상대하고 있는 천웅방 이천의 고수들을 향했다.

“후…! 저들을 모두 죽일 생각은 없지만, 더 이상 칼을 들고 설칠 생각은 못 하게 만들어야겠지.”

* * *

쾅!

“놈! 감히 본방의 행보에 재를 뿌려!”

선발대에 이어서 이진까지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천웅창제는 대노했다.

비록 이진의 경우 몰살당한 것은 아니지만, 수백이 죽고 나머지는 전의를 상실한 채로 뿔뿔이 흩어졌다.

무엇보다 천웅팔패인 탁탑월패와 한살검패가 죽었다.

선발대의 책임자인 용마창패까지 합치면 팔패 중 셋이나 그의 손에 죽은 셈이었다.

천웅팔패 한 명 한 명이 매우 중요한 전력이었다.

그런 전력이 셋이나 죽었다는 것은 천웅방의 전력이 급감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천웅창제가 대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천리풍패!”

“예! 방주님!”

천웅창제의 갑작스러운 호명에 천리풍패는 깜짝 놀랐다.

특히 그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패와 도패만 이끌고 먼저 갈 테니, 그대가 본대를 이끌고 합류해라!”

“바, 방주님!”

일만이나 되는 본대를 이끌고 가려면 아무래도 시일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용마창패를 먼저 선봉대로 보내고, 탁탑월패와 한살검패의 이진을 보낸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천웅창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기에 먼저 움직일 생각이었다.

허나 혼자 떠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방해꾼을 생각해서 천웅팔패 중 가장 강한 천패와 사자도패를 대동할 생각이었다.

특히 천패가 딴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기에 후방에 둘 수도 없었다.

감히 거부할 명분이 없는 만큼 천패는 반박할 수 없었고, 그의 심복인 사자도패는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따로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으나 암패 역시 천웅방주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이 먼저 떠나자 천리풍패는 다급해졌다.

“뭐하느냐! 방주님께서 먼저 떠나셨다! 어서 서둘러라!!”

천웅방의 본대가 발칵 뒤집어졌을 때, 한 무리가 호북성에 도착했다.

* * *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맹주님.”

“허허… 맹주 자리에서 물러난 지 한참 되었네.”

그들은 전(前) 무림맹주였던 백의무제 백무강과 신산 제갈윤호 그리고 그들의 호위 및 호북무림을 지원하기 위해 무림맹에서 차출된 백호당과 멸사대였다.

그들의 소식을 들은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원로들이 마중을 나왔다.

다만 대부분의 고수들은 이미 호북남부로 이동했기에 마중 나온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허나 백의무제는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정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검신, 그 친구 이야기를 들었네.”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천웅방의 선발대가 전멸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헛소문으로 치부했다.

호북무림의 명문이라는 형문파조차 용마창패가 있는 선발대는 막지 못하고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도착했을 리가 없고, 무한의 고수들이 도착하기에도 이르다.

그나마 가능성은 의창의 고수들이었다.

의창은 호북성에서 성도인 무한 다음으로 번창한 지역이었다.

그렇다 보니 사람이 몰리고, 무림문파들 역시 여럿 자리를 잡았다.

특히 의창 오행당은 무한의 칠성검문과 함께 무당 속가문파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그 외에도 제법 굵직한 문파나 무림세가가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의창이었다.

그러나 의창의 고수들일 수는 없었다.

천웅방의 선발대만 해도 의창고수들만으로 버거운데, 이진까지 감당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신이 있다면 내가 나설 일이 없겠군.”

“아무렴 무제 님만 하겠습니까? 게다가 천웅창제는 무제 님께서 막아주셔야지요.”

“허허… 태청검성, 그대도 듣지 않았나? 지옥대제는 나도 장담할 수 없는 자일세. 그런 그를 상대로 무사했다면 검신은 내 아래가 아닐세.”

“무량수불…! 검신이 그 정도입니까?”

무당삼검성의 둘째인 태청검성(太淸劍星) 적풍진인은 깜짝 놀랐다.

검신 이현성이 강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백의무제의 표정을 보니 검신을 과대평가 하는 게 아닌 듯싶었다.

놀란 것은 적풍진인만이 아니었다.

“형님, 좋으시겠습니다. 손녀사위가 그리 대단하니 말입니다.”

“윤한이 너는 왜 여기에 있느냐?”

“형님을 모시려고 기다렸습니다. 명색이 본가의 태상가주이신데, 저라도 남아서 모셔야지요.”

“그게 뭐 중요하다고…….”

제갈세가에서는 원로이자 제갈윤호의 사촌아우인 제갈윤한이 대표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다른 원로들은 가주인 제갈인섭과 함께 이미 호북남부로 향했다.

천웅방을 막지 못한다면 제갈세가의 생존이 어렵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검신에게만 짐을 지울 수 없으니 우리도 서두르세나.”

“그러시지요.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천웅방의 선발대와 이진은 저지했으나 본대는 그들과 격이 다르다.

무엇보다 본대에는 천웅창제가 있었다.

그렇기에 천웅방의 본대가 호북 남부에 도착하기 전에 자신들 역시 도착해야 한다.

그러한 사실을 아는 만큼 백의무제를 위한 그들은 서두르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호북성은 동서보다 남북의 거리가 짧은 편이었다.

서두른다면 보름 이하로 도착할 수 있었다.

‘허허…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까?’

* * *

호북성이 전의로 불타고 있을 때, 섬서성 여산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이, 혹시 왕호 그 친구 못 봤나?”

“왕호? 치료를 다 받았으니 돌아갔나 보지?”

“그런가? 그 친구, 그간 들인 정인 얼만데 가면 간다고 말 좀 할 것이지.”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실제로는 결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매일 같이 환자들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백 단위로 환자가 새로 왔다가 돌아가는 성수의가였으니 환자 몇몇이 보이지 않는 것을 신경 쓸 자는 없었다.

게다가 이곳이 어딘가, 성지라고 불리는 성수의가였다.

그런 이곳에서 무슨 일을 당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던 것이 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였다.

“멍청한 놈, 눈에 띄지 않는 놈으로 고르라고 하지 않았더냐!”

“죄, 죄송합니다!”

“문제 생기지 않게 조심해! 다음에도 이러면 네놈을 던져줄 테니까.”

“다. 다시는! 이,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성수의가에는 백우종을 위시한 의원(의원, 의생, 의녀)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보은단 말고도, 편의를 봐주는 잡부들 역시 있었다.

보은단처럼 성수의가에 은혜를 입고 자진해서 성수의가를 돕는 자들이었다.

허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천요후 백인혜가 원하는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자들도 있었다.

현재 그들은 환자들 중에서 당장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자들을 선별하고 은밀하게 빼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왜 이런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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