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백의무제를 설득하기 위해서 온 무림맹의 명숙들은 바로 감찰단주이자 황보세가의 소가주인 황보관영과 남궁세가의 장로인 남궁영준 그리고 무당파 장로인 현광진인이었다. 아무래도 그와 가까웠던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명숙들이 설득하기에 용이하다고 현 무림맹 수뇌들은 판단했다.
“모두 오랜만들이군.”
“그간 잘 계셨습니까? 맹주… 무제 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맹주님이라고 불렀던 만큼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백의무제를 맹주라고 불렀다가 급히 무제라고 호칭을 바꾸었다.
다행히 백의무제는 불편한 기색은 없어보였다.
“허허, 잘 지내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가장에서 너무 잘 해주어서 호강하고 있다네.”
“다행입니다.”
천하의 백의무제를 푸대접할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의 말대로 이가장의 대접이 좋았는지 아니면 무림맹주라는 무거운 짐을 벗었기 때문인지 백의무제는 매우 좋아보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에게 부탁을 하러 온 세 사람은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야 편해진 백의무제에게 다시 짐을 지우려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 무제 님… 저희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알겠네. 그렇게 하겠네.”
“예?”
“신산에게 이미 들었네. 천웅방이 심상치 않다고?”
아직 부탁을 하지도 않았는데 허락하는 백의무제를 보며 세 사람은 당황했다.
그들은 백의무제의 곁에 있는 신산 제갈윤호를 바라봤다.
그는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후배들이 미력해서 무제 님께 이러한 청만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닐세. 맹을 위해서가 아닐세. 천하를 위한 나의 마지막 선물일세. 그러니 자네들이 너무 미안해하지 말게나. 그리고 여기 신산도 함께 해주기로 했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가장으로 오던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은 백의무제의 배려로 조금은 가볍게 돌아갈 수 있었다.
허나 앞으로 벌어질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손에 다시 피를 묻혀야 하는구나. 내 업보이거늘…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는가.’
호북정벌
“커억!”
“사, 살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어우러져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짓는 자들이 있었다.
“이렇게 뭉그적거려서 선봉장에서 선 나 용마창패의 체면에 똥칠할 생각이더냐!”
“아닙니다! 주군님!”
용마창패(龍馬槍覇)가 이끄는 천웅방의 선봉대였다.
천웅방은 선전포고를 한 직후 호북무림을 강습했다.
설마 선전포고를 한 직후 호북성을 넘어올 줄은 상상도 못한 호북무림은 제대로 대응하기도 전에 남부가 초토화되었다.
호북무림의 정신적인 지주인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호북 북부에 있었고, 호북의 성도인 무한과 대도시인 의창은 동부과 서부에 있었다. 부랴부랴 고수들을 파견했으나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용마창패가 이끄는 선봉대가 호북 남부를 차근차근 접수하고 있었다.
“곧 검패와 월패의 지원대가 도착한다! 그전까지 최대한 접수한다!”
“예! 알겠습니다!”
용마창패는 기동력이 뛰어난 기마대를 이끌고 움직였기에 천웅방의 선전포고에 호북무림이 제대로 대응 못 한 것도 당연했다.
아무리 용마창패가 강하고 그가 이끌고 간 용마대(龍馬隊)가 뛰어나다고 해도 호북무림을 휘젓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천웅방에서는 선발대의 이진(二陣)으로 한살검패(寒殺劍覇)와 탁탑월패(托塔鉞覇)를 필두로 이천의 고수들을 보냈다.
선봉대와 이진이라면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도착할 때까지 호북중남부까지 장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호북무림 전체를 굴복시키는 것은 어렵다.
현재 천웅방과 호남무림의 고수 일만으로 구성된 호북정벌군 본대가 움직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호북성에 도착한다면 무당파와 제갈세가라도 막을 수 없었다.
“흐흐흐… 꽁무니를 빼고 모두 도망쳤나 했는데, 죽고 싶은 불나방들이 더 있었군.”
용마창패의 중얼거림에 용마대는 창을 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족히 이백은 되어 보이는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정파고수들답지 않게 살기를 풀풀 풍겼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한살검패는 비웃었다.
그 정도 살기는 애들 장난으로밖에 안 보였다.
“이노옴! 하늘이 무섭지도 않더냐! 이 형문일검(荊門一劍)이 하늘을 대신해서…….”
“거참, 같잖은 것이 말도 많군.”
“뭐, 뭣이! 형문의 제자들이여! 저 악종을 죽여라!!”
그들은 호북무림의 명문인 형문파의 고수들이었다.
특히 형문파의 장문인 형문일검은 비록 초절정지경에 오르지 못했으나 호북무림에서 이름 높은 고수였다.
무당파의 고수들도 그의 검을 인정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이끄는 형산파는 호북무림에서도 인정받는 대문파였다.
허나 그를 보는 용마창패의 얼굴에는 귀찮음이 역력했다.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지? 대주?”
“물론입니다. 주군. 저희 용마대에 맡겨 주십시오!”
용마대는 용마창패의 직속이기에 그의 가르침을 받은 고수들이었다. 특히 용마대주는 용마창패의 오른팔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고수였다.
그의 무위는 천웅방에서 오십 위 내에 있을 정도라서, 형문일검과 일전을 치루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죽여라! 저 하루살이들에게 본방이, 그리고 나 용마창패가 누구인지 알려줘라!”
“존명!”
이미 일전을 치룬 용마대였지만, 그들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분해서 형문파 고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형문파 역시 검을 쥐고 달렸다.
이를 지켜보며 용마창패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본방의 호북정벌을 떠올릴 때마다 나 용마창패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어주지. 크하하하!!”
* * *
“미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창패가 우리 팔패 중 하위에 속한다지만, 쉽게 죽을 놈이 아닌데!”
천웅방의 호북정벌대 이진을 맡고 있는 탑탁월패와 한살검패는 당황스러웠다.
호북정벌의 선발대로서 호북남부를 휘젓고 있던 용마창패와 용마대가 전멸했다는 비보 때문이다.
비록 용마창패의 무위가 천웅팔패 중 하위에 속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팔패의 일인이었다.
게다가 준영물이라는 용마(龍馬)를 탄 상태라면 탑탁월패와 한살검패도 한수 접어준다.
그런 용마창패와 용마대가 전멸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혹시 무당삼검성이 나타난 것 아닐까?”
“그렇다면 말이 되지만… 그들이 벌써 도착했을 리가 없잖아?”
무당파의 원로인 무당삼검성이라면 용마창패와 용마대의 전멸이 말이 된다.
비록 화경에 오르지 못했을 뿐, 태극검선의 뒤를 잇는 자들이다.
허나 무당파는 호북 북부에 있고, 용마창패가 활개를 친 곳은 호북 남부였다.
시간적으로 벌써 도착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혼란스러웠다.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변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용마창패와 용마대를 전멸시킨 자들이라도 자신들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한살검패는 천웅팔패 중 천패와 사자도패 다음으로 강했다.
그리고 탁탑월패 역시 팔패 중 중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무려 이천(二千)의 고수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니 과연 누가 자신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감히 본방을 건드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당연한 소리!”
허나 그들의 그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박살나고 말았다.
그것도 열도 되지 않는 적은 인원에 의해서 그리 되었다.
그때 이진의 선두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어느 미친놈들이 앞을 막고 있습니다!”
“몇 백 명이나 되지?”
“열도 채 되지 않습니다.”
“고작 그 수로 무슨 보고야! 그냥 밀어버려!”
기백쯤 된다면 몰라도 고작 열도 되지 않는 수를 상대로 이천이나 되는 병력이 멈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탁탑월패는 버럭 화를 냈다.
한살검패는 말은 하지 않았으나 같은 생각인지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그들은 곧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컥!”
“크으윽!”
“괴, 괴물…….”
순간 멀리서 수많은 사람의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당연히 자신들을 가로막은 멍청한 자들의 죽음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이어진 보고에 그들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정체불명의 무리에 의해 선두로 움직인 첨병대 일백이 전멸했습니다!”
“고작 열 명도 안 된다며!”
“그, 그게…….”
“머저리 같은 것들! 검귀들은 당장 놈들의 목을 가져와라!”
“명!”
한살검패는 자신들의 직속 수하들을 보냈다.
그들은 검귀(劍鬼)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지독한 검객들이었다.
그들이라면 저 어리석은 자들의 목을 베어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그 역시 착각이었다.
콰쾅!!
흠칫!
“뭐야! 이 기운은!”
“검패,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네!”
검귀들이 움직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폭음과 함께 천웅팔패인 그들이 움찔할 정도의 강렬한 기운을 느끼게 되었다.
그제야 자신들의 앞을 막고 있는 자들이 범상치 않은 자들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우리가 나서세.”
“칫! 어쩔 수 없지.”
결국 탁탑월패와 한살검패가 움직였다.
이진의 후방에 있던 그들이었지만, 초절정고수답게 단숨에 선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은 기겁하고 말았다.
낯익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놈 혹시…….”
“맞는 것 같다. 그 배신자 놈…….”
그들은 정체불명인 무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허나 그들 중 한 사람의 정체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얼굴은 본 적이 없으나 기운을 느낀 적이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배신자 놈이 검신에게 붙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저놈들, 이가장 놈들이란 말인가!”
그들이 느낀 기운은 한때 암월영패라고 불렸던 암월의 기운이었다.
천웅방의 암월영패였던 시절에는 항상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게다가 언제나 방주의 주변에 은신만 할 뿐, 전면에 나서지 않았기에 더더욱 알 수 없었다.
허나 천웅팔패는 하나 같이 고수였기에 그의 기운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탁탑월패와 한살검패가 암월의 기운을 기억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의 정체를 눈치채니 함께 있는 자들의 정체도 유추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다 아니었다.
“검신이… 호북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설…마…….”
이현성의 행보는 어느 정도 알려진 상황이었다.
운남성으로 향할 때와 달리 돌아가는 길에는 은밀함보다는 빠른 속도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현성이 호북성에 도착했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상황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그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분명 그들은 강했다. 하지만 화경고수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검신은 팔왕보다 강하다고 하지 않던가.
“검…신…….”
“천웅방에 유감은 없다. 허나… 호북 정벌이라는 헛된 꿈을 꾸게 할 수는 없다!”
“젠장!”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