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261화 (261/314)

261화.

그러한 지옥대제와 충돌하고도 검신이 유유히 떠났다는 것은 천웅창제를 상대할 때도 다르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내포한 말을 천웅방주의 면전에 대고 했으니 분위기가 이상한 것은 당연했다.

그때 침묵하던 천웅방주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천패, 자네의 뜻은 어떤가? 검신이 두려우니, 호북 정벌을 미루자는 뜻인가?”

“…그건…….”

흥분해서 날뛸 줄 알았던 천웅방주가 차분하게 반응하자 오히려 천패가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발끈해서 검신 따윈 자신이 베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였다. 물론 평소 천웅방주가 쉽게 흥분해서 충동적인 판단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허나 천웅방주는 자신의 무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토록 포악하고 잔혹한 천잔마왕을 죽이고 권좌에 오른 그라서 자부심이 강한 것도 당연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무위와 연관되었다면 평소의 냉철함이 사라지는 성향이 있었다.

이를 잘 아는 천패였기에 지옥대제와 검신의 일을 거론한 것인데, 오히려 낭패를 보게 되었다.

반대하면 검신이 두렵다는 뜻이고, 찬성한다면 호북 정벌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이 자신에게 생긴다.

덕분에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웠다.

천웅방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저는…….”

“바, 방주님!”

“이놈! 여기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되었네. 무슨 일인가?”

회의장은 팔패는 물론 천웅방이 중추들만 참석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한 중요한 자리를 방해한 것은 중죄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방해를 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천웅방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내는 호흡을 가다듬고 보고했다.

“검신이… 검신이 귀주를 지나서 호북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

호북 정벌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신이 호북에 당도했다. 이게 무슨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

이현성 역시 태극검선의 등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물론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 사실이 외부에 유출되었을 때의 여파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서둘러 움직인 것이다.

천웅방의 도발로부터 호북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천패 자네의 뜻은 뭔가?”

* * *

“서운하더냐?”

“아니에요. 장문 사백님.”

결국 이현영은 자하검제를 설득해내지 못했다.

그는 단호하게 이현영의 청을 거절했다.

두문령 중인 화옥령을 만나는 것을 수락할 수 없다는 단호함을 나타냈다.

제자인 이현영으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그녀에게 화옥령은 단순히 사부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였고 언니였으며 또한 사부였다.

허나 자하검제에게도 화옥령은 애증의 존재였다.

너무도 사랑했던 딸이었기에 그녀가 자하검제에게 준 상처는 너무도 컸다. 게다가 화산파 전대 장문인이었던 그로서는 사문에 죄를 범한 여식을 두둔할 수만은 없었다. 자하검결의 유출은 중죄 중의 중죄였으니 그것을 생각하면 두문령은 오히려 너무도 자비로운 처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형벌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이를 결정한 자하검제로서 용납할 수 없었다.

“대신이라고 할 수 없으나… 사조님께 가르침도 받았는걸요.”

“아버님께서 널 많이 아끼시는가 보구나. 내게도 가르침을 잘 주시지 않는데 말이다.”

사랑하는 딸의 대신인지, 자하검제는 이현영에게 호의가 가득했다. 비록 자하신공이나 자하검결을 전수해준 것은 아니나 검학의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독학으로 독고구검을 수련 중인 그녀에게는 단비와 같았다. 허나 그러한 가르침도 사부님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지는 못했다.

“령이의 두문령에 대해서는 내가 나중에 아버님께 말해둘 테니,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장문 사백님.”

화천기는 이현영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돌아갔다.

그러자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서 화소군과 몇몇 일대제자들이 다가왔다. 그들 대부분이 이가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던 이들이었다.

“사저, 사형들…….”

“벌써 떠나는구나. 섭섭해서 어떡해.”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아쉽구나.”

그들은 다시 떠나는 이현영을 보며 너무도 아쉬워했다.

화산에 오른 이후 자하검제에게 가르침을 받느라 정작 저들은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재회가 이런 작별인사가 되었다.

“제 일행들이 성수의가로 먼저 떠나서 저도 빨리 가봐야 해요. 죄송해요.”

“아니야. 어쩔 수 없지. 고모님을 뵙지 못해서 아쉽겠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이현영의 방문이 화옥령을 만나기 위함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특히 화소군은 화천기의 여식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다음에 오라버니랑 정식으로 올게요.”

“오! 검신께서!”

그들도 잠시나마 이현성과 함께 지내면서 그의 신위를 몇 번이나 목격했다.

무학을 익힌 무림인으로서 검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영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화산파에도 자하검제라는 전설적인 존재가 있었다. 허나 그들에게 자하검제는 사조인 만큼 오히려 더욱 어려운 존재였다.

그에 반해 검신 이현성은 자신들 사매의 오라버니였고, 나이 차이도 그리 크지 않았다.

덕분에 오히려 더 존경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같이 가자. 가깝다고 해도 여산을 혼자 보내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아버님께 허락받고 올게.”

“어? 그럼 나도…….”

정주 이가장까지는 동행할 수 없으나 여산이라면 이곳에서 이틀 거리였다. 그 정도는 장문인이라도 허락해줄 거라 판단했는지 화소군과 몇몇 일대제자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그런 사형제들을 보며 이현영은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이현영은 화산 어딘가를 바라봤다.

‘사부님…! 다음에는 꼭 뵐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 * *

“어떻습니까, 의원님.”

화음현에서 이현영을 내려준 마차는 무사히 여산 성수의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수많은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큰 소란 없이 통제가 잘 되었다.

물론 개중에는 나름 콧방귀 좀 뀐다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천한 것들처럼 자신들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표했으나 그뿐이었다.

성수의가를 수호하는 보은단이 나서서 제압하거나 내쫓아버렸기 때문이다. 괜히 성수의가가 성지가 아니었다.

적묘도 그러한 절차를 거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성수의가의 상급 의원들조차 적묘의 병세에 손을 쓸 수가 없어서 결국 성수 백우종이 직접 나서게 되었다.

그런 그의 진료를 보며 곁에 있던 철우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가 좀 필요할 것 같소. 이곳에서 지내면서 허해진 기를 보충하는 것이 좋겠소.”

“그 말씀은…….”

“가능은 할 것 같구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과연 3대 신의는 달랐다.

의독선생 종리우와 성수의가 상급 의원들조차 단전만큼은 손을 대지 못했었는데, 성수 백우종은 가능하다고 장담하는 것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허나 그조차 바로 진료하지 못할 정도라니, 혈천의 금제는 과연 무시무시했다.

“의녀(醫女)를 통해서 탕약을 보내줄 테니, 거르지 말고 복용시키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의원님.”

정주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런 거리를 약화된 몸으로 왔으니 적묘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백우종이 나가자 철우는 적묘의 손을 잡아주었다.

“되었다. 이제 되었어. 그러니 조금만 더 참거라.”

“예, 대장… 아니 오라버니…….”

과거에는 혈살칠객과 혈살객의 관계였으니 이제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철우는 그녀에게 자신을 대장이 아닌 오라버니로 부르게 했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호칭이었다. 그러나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

“난 유 형님께 가볼 테니까. 쉬고 있어.”

“예…….”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성수의가가 바로 호굴이라는 것을.

* * *

“확실해? 혈살단금술(血殺丹禁術)이? 그거 혈살객 놈들에게만 펼친 금제잖아?”

적묘의 병세를 살핀 백우종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핑계로 치료를 유보했다. 그녀의 단전에서 발견해선 안 되는 무언가를 발견한 탓이다.

백우종은 일단 시간을 번 후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여식으로 알려진 백인혜를 찾아왔다.

“저 역시 착각한 줄 알고 두 번 세 번 확인했는데, 혈살단금술이 맞습니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백우종의 말에 백인혜는 뭐가 재미있는지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혈천에선 혈살객을 양성하면서 한가지 금제를 걸어두었다. 그게 바로 혈살단금술이었다.

사실 혈살단금술은 금제인 동시에 대법이었다.

사람의 피에는 미량이지만 생명력(선천지기)이 녹아 있었다. 그러한 기운을 강제로 단전에 흡수시킬 뿐만 아니라 육체적 성장에 도움이 주는 대법이었다.

허나 단전에 강제로 흡수시킨 기운으로 인해 특별한 방식의 자극을 준다면 단전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혈살단금술은 혈살객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대법인 동시에 그들을 제어하는 금제인 셈이었다.

혈살객의 이름도 이 혈살단금술에서 따올 정도로 그들의 양성에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러한 혈살단금술은 고도의 대법이었기에 아무나 펼칠 수 없고, 필요한 약초와 독초가 많기에 혈살객에게만 허용했다. 이 혈살단금술을 혈천에 전한 사람이 바로 백우종이었기에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의 경우 여산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혈살객 양성과정에 직접적인 협조는 하지 못했다.

“그럼 그 계집이 혈살객이란 말인데… 보고 받은 것 있어?”

“요후께서 모르시는데, 제가 알 리가 있겠습니까?”

혈천에서는 그들에게 이렇다 할 정보를 준 적이 없었다. 정보를 숨길 가능성도 있으나 그럴 이유가 없으니 혈천에서도 적묘에 대해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천요후 백인혜는 재미있었다.

혈천에서도 모르는 재미있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니 그럴 만했다.

“어찌해야 합니까, 요후님.”

“치료해줘.”

“예? 저, 정말 치료해줍니까?”

적묘의 병세가 악화된 것은 무림맹에서 입은 부상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혈살단금술에 문제가 생겨서였다.

혈살객들은 일정주기로 해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혈살객들은 모른다.

그들의 먹는 식사나 술 등을 통해서 은밀하게 해약을 복용시켰기 때문이다.

중원에 파견된 이후에는 비밀안가 관리인이 그 임무를 담당하는데, 적묘는 이가장에 지내면서 해약을 복용하는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해약을 복용하지 못했다고 해서 바로 단전이 폭발하는 것은 아니나 혈살단금술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혈살단금술을 거두라는 말이 아니야. 보강해서 시간을 주라는 거야. 가능하지?”

“가능은… 합니다.”

적묘의 병세를 호전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혈살단금술을 거두거나 악화된 혈살단금술을 보강시키는 방법이었다.

3대 신의라고 불리는 성수 백우종이었다.

게다가 혈천에 혈살단금술을 전한 장본인이었다.

적묘에게 가해진 혈살단금술을 거두는 것은 물론 악화된 혈살단금술을 보강해서 병세를 호전시킬 수도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