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신임 맹주는 신창이 추천한 모용세가의 십절무왕 이외에도 몇몇 후보가 거론되었다. 대 무림맹의 맹주를 선출하는 만큼 신중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맹주 후보 대부분이 거절하거나 자격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제외되면서 결국 십절무왕으로 낙점되었다.
허나 요녕의 모용세가에서 하남의 무림맹까지 오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의 정식 맹주 취임은 잠시 미루어진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신임 총군사는 부군사 중 한 명이었던 문일지오(聞一知五) 서문경이 맡게 되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은 몰라도 다섯은 깨닫는다는 기재였다.
명문인 서문세가 출신으로, 오만하지 않고 원만한 성격 덕분에 부군사들 중 그가 총군사로 추대되었다.
그는 애초부터 신산각의 부군사였었기에 빠르게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보다 이제 어쩔 생각이십니까? 아직… 손자분을 찾지 못하셨잖습니까?”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가능했다면 진즉에 찾아냈겠지.”
무림맹주의 자리에 관심이 없던 백의무제 백무강이 제갈윤호의 제의를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오래 전에 잃어버린 손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세력을 일구지 않은 백의무제로서는 이 넓은 천하에서 손자를 찾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허나 무림맹의 힘이라면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에 마음에도 없는 맹주직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사임하는 지금까지도 잃어버린 손자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개방과 제갈세가의 무영대가 조사해주었음에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살아 있지 않을 수 있단 생각도 들었다.
맹주 자리에 미련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돌아갈 생각이네. 그 전에 검신, 그 아이나 만나볼 생각이네.”
“그를… 말씀이십니까? 그럼 같이 가시지요.”
“자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네.”
“아닙니다. 저도 세가로 돌아가기 전에 손녀 얼굴이나 보고 갈 생각입니다.”
맹주와 총군사의 자리에서 사임했음에도 그가 자신을 보좌하려고 하니 백의무제는 사양했다. 허나 제갈윤호의 손녀가 검신의 부인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목적지가 같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아…! 신산 그대의 손녀가 검신의 부인이었다는 것을 잊었군. 그럼 그렇게 하세나.”
“예, 무제 님.”
그렇게 백의무제와 신산이 무림맹 총단의 문을 나서는 순간 맹 내에는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그들의 부재로 친(親) 맹주파였던 감찰단주와 백호당주 등 오대세가 출신들의 입지가 줄게 되었고, 신창양가나 진주언가 등 새로운 세력들의 입지가 커지게 되었다.
그렇게 구세력과 신세력 간의 갈등으로 인해 무림맹은 다시 한번 진통을 겪으며 자중지란에 빠졌다.
그러한 와중에 정파무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긴장하는 호북무림
“허…! 결국은 알려지게 되었구나.”
“사숙님의 등선을 오래 숨길 수 없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무당파는 입단속을 철저히 했으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었다.
결국 태극검선의 등선 사실이 외부에 유출되고 말았다.
무당의 전설이자 천하제일검이라는 태극검선이었다.
그의 등선에 대한 여파가 어마어마한 것은 당연했다.
그로 인한 무당파의 부담이 너무도 컸다.
무당파는 사파사세의 하나인 호남 천웅방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정확히는 천웅창제 담중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 하게 하는 것이 태극검선의 역할이었다.
그런 태극검선이 등선하면서 더 이상 천웅창제에 대한 구속력이 사라지게 되었다.
안휘 남궁세가에 검왕이 있으나, 그는 절강 천사교의 천사존을 견제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런 상황에서 천웅창제까지 견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덕분에 무당파의 걱정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막내는 진전이 좀 있던가, 사제.”
“…아쉽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형.”
무당파 원로인 무당삼검성의 첫째이자 전대 장문인인 적도진인과 둘째인 적풍진인은 막내인 적성진인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전전대 무당제일검이었던 태극검선의 제자이자 전대 무당제일검이 바로 적성진인이었다.
원로로서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무당제일검 자리는 그의 제자이자 현 장문인에게 물려주었다. 허나 누가 뭐라 해도 현재 무당제일고수는 바로 적성진인이었다.
누군가 태극검선의 뒤를 이어서 무당의 수호신이 된다면 그건 적성진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 그러한 부담 때문인지, 화경의 벽 앞에 머문 지 수십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제는 어떤가?”
“약간의 진전이 있었으나… 아직입니다.”
적풍진인은 무당 삼대신공 중에서도 가장 강맹하다는 태청강기를 9성까지 익혔다.
태청강기는 위력도 뛰어나고 무당 삼대신공 중 그나마 익히기 쉽기에 무당파 장로들이 가장 많이 익힌다.
허나 반대로 그만큼 대성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태청강기를 익힌 적풍진인이 진전이 있다는 말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어쩌면 적성진인보다 먼저 벽을 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형께서 어떠십니까?”
“8성조차 버겁네. 사제.”
“양의신공을 7성 이상 익히신 조사님들도 흔치 않을 정도입니다. 8성이라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양의신공을 7성까지 익힌다면 마음을 나누어서 동시에 두가지 무공을 펼칠 수 있다는 대단한 신공이었다.
허나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양의신공을 6성까지 익힌 무당파 고수는 많았으나 7성에 오른 자는 흔치 않았다. 그런 양의신공을 무려 8성까지 익혔다는 것은 적도진인 역시 대단한 인물이란 뜻이었다.
허나 무학이란 8성과 9성의 차이가 크고, 9성과 10성은 아예 차원이 다르다.
양의신공을 8성에 오른 것도 대단하였지만, 뜻을 이루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무량수불…! 예상은 했으나 사숙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구나.”
“그만큼 저희가 사숙께 너무 많은 짐을 짊어드린 것이겠지요. 진즉에 짐을 거들었어야 했거늘… 저희가 너무 미흡해서…….”
무당삼검성이라고 불리면서 태극검선이란 거인의 그늘 안에서 안이했던 자신들이 부끄럽기만 했다. 그렇기에 사숙인 태극검선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와닿았다.
‘무량수불…! 이 난관을 어찌 할꼬…….’
* * *
“허…! 그렇군. 그가 그리 되었군…….”
태극검선의 등선은 정파무림만 아니라 사파무림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천웅창제는 그의 등선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태극검선이 그를 견제하듯 천웅창제 역시 태극검선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선과 오제를 비슷한 선상에 두면서도 이선을 오제의 위에 두었다.
천웅창제는 자신의 창으로 그를 넘어서 그러한 생각을 바꾸려고 했다. 허나 그 목표를 이루기 전에 태극검선이 등선하고 말았다. 그러니 그로서는 너무도 아쉬웠다.
그러나 그는 무인이었지만 동시에 천웅방이라는 거대세력의 주인이기도 했다.
따라서 아쉬워만 할 순 없었다.
“방주님, 지금이 적기입니다. 백의무제 역시 맹주직을 내려놓아서 무림맹이 혼란스러운 지금이라면 무리 없이 호북을 접수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맹주 자리가 비었다고 해도 무림맹은 호락호락하지 않네, 검패.”
“물론 알고 있소, 풍패 선배. 허나 지금만한 적기가 없지 않소?”
“그야 그렇지만…….”
태극검선의 등선이 알려지면서 천웅방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그의 죽음은 천웅방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런 긴급회의에서 팔패의 한 명인 한살검패(寒殺劍覇)는 호북 정벌을 주장했다.
호북무림에는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있으나 태극검선이 등선한 이상 천웅방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림맹 역시 맹주와 총군사가 바뀌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의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천리풍패가 반대의견을 냈으나 그 역시 지금이 적기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허나 호북정벌은 정사대전의 개전을 알리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암월영패 이후 새로운 팔패가 된 암패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를 제외한 칠패는 각자의 생각을 밝혔다.
“천패,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정사대전이 두려워서 호북 정벌을 주저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방주님.”
“그럼 천패 그대의 생각은 지금 당장 호북 정벌에 나서자는 말인가?”
“허나 지금은 아닙니다. 방주님.”
천패가 딴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천웅방주는 그의 대답에 의아했다. 당연히 정사대전의 시작이 될 호북 정벌을 주장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맹주의 부재로 자중지란인 무림맹도 신임 맹주인 십절무왕이 합류하면 진정될 겁니다. 십절무왕은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어서 말해보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천패가 자신의 눈치를 살피다가 뒷말을 흘렸다.
그런 그의 반응이 천웅방주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의 되물음에 천패는 헛기침을 하다가 결국 말을 이었다.
“호북 정벌을 하게 된다면 무당도 무당이지만, 제갈세가가 걸립니다.”
“제갈세가라… 분명 그들의 지략은 무섭지. 허나 강력한 힘 앞에 지략은 무의미하다. 그대의 생각은 다른가?”
제갈세가의 지략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림세가로서 무력은 그들보다 뛰어난 명문세가가 여럿 존재한다.
그럼에도 오대세가의 하나로 제갈세가가 꼽힌 것은 그만큼 그들의 지략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허나 그런 제갈세가의 지략도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결국 무림은 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파이면서 패도를 지향하는 천웅방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태극검선이 없는 무당과 제갈세가는 천웅방의 앞을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천웅방주만 아니라 모두의 생각이었다.
천패라고 해서 생각이 다르지는 않았다.
그 역시 힘을 숭상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허나 천패가 지금 제갈세가를 거론한 것은 그들의 지략 때문이 아니었다.
“어찌 속하라고 다르겠습니까. 방주님. 허나… 제갈세가는… 검신의 처가입니다.”
“……!”
“끄응…! 검신…….”
“흠흠…….”
천패의 말에 회의장 내에 파장이 일어났다.
그들도 잠시 잊고 있던 점이었다. 검신 이현성과 제갈세가의 관계를.
천패는 다시 말을 이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나, 검신이 지옥성주와 충돌하고도 유유히 떠났다고 합니다. 독왕이 지옥성을 탈퇴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
천패는 말을 멈추었다.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좌중은 당황하며 천웅방주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옥대제는 천웅창제와 함께 오제의 일인이었다.
두 사람이 직접 손속을 나눈 것은 아니나 쉽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대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