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헉… 헉… 우웩!”
지옥대제의 입어서 거친 숨소리가 나왔다.
그것으로 부족한지 피까지 토했다.
이런 가공한 위력이었다.
아무리 지옥대제라도 지옥겁화지멸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대가를 지불해도 될 정도로 그 위력은 확실했다.
덕분에 피를 토하면서도 지옥대제의 입 꼬리는 말려 올라가 있었다.
“흐흐흐…! 내가 바로 지옥대제다! 천하는 내 앞에 굴복할 지어다!”
“…지옥천하!”
“무적대제!”
지옥대제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지옥성 고수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천하는 지옥성의 것이며, 지옥대제 앞에 적수가 없다(地獄天下 無敵大帝)는 너무도 광오한 말이었다. 허나 이 가공한 신위를 눈앞에서 봤다면 어느 누가 이견을 낼 수 있겠는가.
그런 지옥대제의 파안대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쯤 합시다. 성주의 체면을 세워드릴 테니…….
“……!!”
그 순간 지옥대제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들려서 안 되는 자의 목소리에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기겁하는 그의 귀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성주와 지옥성이 더 이상 굴욕을 보길 바라는 것이 아니오. 허나 싫다면… 이 후배, 안타까운 선택을 해야 하오. 그러니 성주께도 혈천에 이용당하지 말고 이만하십시오.
“……!!”
이현성의 혜광심어를 들은 지옥대제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혈천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사파사세인 지옥성의 주인인 그가 혈천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관일창왕과 운남무림을 움직인 것도, 독왕을 설득한 것도 이현성의 소행이었다.
허나 지옥성을 위시한 사파사세와 정파무림을 충동질하는 것은 혈천의 짓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이현성도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며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전…군 회군한다!”
“예? 조, 존명!”
예상치 못한 지옥성주의 명령에 좌중은 당황했다.
그의 가공한 신위로 관일창왕과 운남무림을 짓밟을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회군 명령이 떨어졌으니 당연했다.
허나 항명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다음 희생자가 자신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옥성의 고수들은 영문도 모른 채 회군 준비를 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남만 독립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부성주님!”
지옥성은 발칵 뒤집어졌다.
독왕전 아니, 지옥성 내에 기거하는 수백의 묘족들이 갑자기 움직였기 때문이다. 지옥성 고수들은 그들을 강제하려고 했으나 독왕까지 움직이니 불가능했다.
현재 지옥성 내에는 지옥대제는커녕 초절정고수조차 없었다. 참전하지 않은 동천강과 남천강은 지옥성의 수호를 위해서 지옥성 외부 사방위에 기거했다.
그러나 일천이나 되는 지옥성 고수들은 안절부절못할 뿐 감히 독왕을 막을 수가 없었다.
“비켜라. 본왕의 마지막 자비이니라.”
“아, 안 됩니… 컥!”
독왕이 두렵기는 하지만 지옥성 고수들은 물러날 수 없었다. 그를 막지 않는다면 성주가 복귀했을 때 그 문책을 자신들이 받아야 했다. 게다가 설마 독왕이 손을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두려워하면서도 앞을 막아섰다. 허나 그게 그들의 오판이었다.
독왕은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손을 썼다.
“미, 미친!”
“사, 살려줘!”
독왕은 가볍게 손을 흔든 것뿐인데, 지옥성 고수 십여 명이 중독되었다. 그것도 그가 많이 봐준 것이었다. 그가 독하게 마음먹었다면 순식간에 녹아내렸을 것이다.
지옥성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면 지옥대제가 끝까지 추적할 수도 있으니 독왕도 손을 독하게는 쓸 생각이 없었다. 해독제만 제때 복용하면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손을 썼으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지옥성 고수들은 기겁하며 도망쳤다. 그러자 수백의 묘족들이 독왕의 뒤에 섰다.
그들이 지옥성을 떠남에도 어느 누구도 감히 앞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막 지옥성을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부성주님,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성주님께서 좌시하지 않으실 거요!”
수백의 고수들이 지옥성 밖을 포위하고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남천강과 동천강이 휘하 천강단 일부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들의 등장에도 묘족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사대천강단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옥성을 대표하는 무력단이니 그 강력함은 말이 필요 없었다. 허나 자신들 역시 만독궁과 묘족의 정예들이었다. 충분히 해볼 만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앞에는 독왕이 있지 않은가.
“아니 그는 좌시할 것이네. 다만 그대들을 죽여서 그와 더 이상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으니 그만 물러나게.”
“불가!”
지옥사천강은 성주의 권좌를 노리는 동시에 지옥성의 수문장들이었다. 외세로부터 지옥성을 지키는 존재들.
독왕과 묘족이 이탈해서 지옥성의 전력이 급감하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았다. 독왕은 고민이 되었다.
‘죽여?’
지옥사천강은 지옥성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들이었다. 그중 둘만 죽여도 지옥성의 힘이 많이 줄어든다.
만약 지옥대제가 남만을 노린다면 미리 저들을 제거해서 지옥성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허나 저들을 죽인다면 지옥대제도 자존심 때문에라도 남만과 일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저들을 죽여서 지옥성의 힘을 줄이는 것과 남만 정벌의 명분을 주지 않는 것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쿠아아아!!
“뭐, 뭐야!”
“헉! 호, 호랑이!!”
우렁찬 호랑이의 포효에 지옥성 고수들은 움찔했다.
맹수지왕이라는 호랑이는 일개 미물이라고 할 수 없었을 정도로 강력한 맹수였다.
무림인이라도 경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황소만 한 호랑이가 수십 마리에 집채만 한 거호(巨虎)까지 나타났으니 그들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 놀라운 점은 호랑이들의 등에 사람들이 타고 있다는 점이었다.
“형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허허허…! 사람도 참, 곧 가겠네.”
거호의 등에 탄 사내는 사람인지 호랑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람하고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그를 본 남천강의 눈이 커졌다. 사내의 특이한 외형을 보고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끙…! 야수왕(野獸王)…….”
“……!!”
사내의 정체는 바로 야수문주인 야수왕이었다.
독왕과 달리 화경에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외공에 한해서는 소림도 한 수 접어준다는 외공고수가 바로 그였다.
독왕조차 무형지독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다는 명실상부한 남만 제이고수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친위대인 맹호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으나 결코 만만히 봐선 안 된다.
흉노족이 인마일체(人馬一體)의 어마어마한 기마술을 가졌다면, 맹호대는 인호일체라는 전무후무한 기호술(騎虎術)을 익혔다.
맹호대원조차 야수문 최정예인데, 신묘한 기호술이 합쳐지면서 능히 열 배의 적도 무찌를 수 있었다.
특히 야수왕의 거호 호군(虎君)은 강기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영물 중의 영물이었다. 그런 야수왕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독왕이 작정했다는 뜻이었다.
“어르신, 빨리 가시죠?”
“흑봉주…까지…….”
독왕을 마중 나온 사람은 야수왕만이 아니었다.
충술사(蟲術士)의 한 갈래인 봉술사(蜂術士).
벌 중에서도 지독하기로 유명한 흑봉(黑蜂).
흑봉의 침은 워낙 독성이 강해서 잘못 맞으면 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허나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법. 흑봉의 흑밀은 남만에서 유명한 약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흑봉 조련이 워낙 어렵기에 웬만한 봉술사들은 절대 키우지 못한다.
오직 흑봉 일족만이 조련에 성공했으며, 그 수장이 바로 흑봉주였다. 독왕의 만독궁이 아니라 야수왕과 흑봉주만 나서도 지옥성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덕분에 남천강과 동천강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란희 소성주… 딸을 생각하십시오. 부성주님.”
“…….”
수양딸인 란희의 이름이 거론되자 독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미 검신에게 연락을 해둔 상황이었다.
그가 조치를 취해준다면 다행이었지만, 아니라면 란희의 목숨은 보장받을 수 없었다.
독왕은 수양딸의 목숨 대신 묘족의 미래를 선택했다.
눈물을 머금고 내린 결단이었다.
허나 이미 야수왕과 흑밀주까지 움직인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녀의 목숨이 귀하다고 한들 지금은 도저히 물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가 감히 내 딸을 들먹이며, 오라버니를 협박하는 것이더냐!”
“미친! 독모까지 왔단 말인가!”
한 중년 미부의 등장에 좌중은 당황했다.
그 당황하는 자들 중에는 독왕도 있었다.
그가 야수왕과 흑밀주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독모는 아니기 때문이다.
남만의 신녀이자 무녀들의 수장인 독모곡주 독모(毒母).
겉보기에는 3, 40대의 중년 미부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육십이 넘은 노파였다.
심후한 내공과 신녀의 신기 때문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독모의 힘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무시무시했다.
거칠기로 유명한 야수왕조차 독모를 피할 정도였다.
“누, 누님도 오셨습니까?”
“넌 뭐하는 놈이길래, 오라버니가 저딴 놈들에게 저런 소리를 듣게 만들어!”
험상궂은 야수왕이 미부에게 움찔하는 모습은 너무도 놀라웠다. 허나 그는 다름 아닌 야수왕이었다.
그는 인간 같지 않은 날카롭고 섬뜩한 살기를 피웠다.
“이야기 들었지! 비켜라! 아니면 모두 당장 죽여주마!”
“놈! 우리를 허수아비로 아느냐!”
야수왕과 독모 그리고 흑밀주의 위명은 잘 알지만, 자신들 역시 지옥성을 대표하는 고수들이었다. 결코 밀리지 않는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미 좋게 끝을 낼 수 없다면 차라리 독왕이 손을 쓰는 것이 훨씬 묘족의 피해 없이 끝을 낼 수 있었다.
결국 독왕이 손을 쓰려는 순간이었다.
“모두 뭐하십니까?”
“아…….”
독왕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공을 바라보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발견한 독왕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아직 안 떠나셨습니까? 혹시나 싶어서 들렸는데…….”
“아버님!”
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무리에서 한 여인이 외쳤다. 그녀를 본 순간 남천강과 동천강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독왕은 두 사람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걸리는 점이 없군. 마지막 권고일세. 비키게. 그대들의 죽음이 지옥성에 결코 득이 되지는 않을 걸세.”
“크윽!”
두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독왕의 말이 옳았다. 설사 자신들의 목숨으로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결국 두 사람은 독왕과 묘족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독왕도 쓸데없이 피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지옥성을 나오자 란희가 독왕의 곁으로 갔다.
그런 그녀를 보며 독왕은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하구나. 이 애비가 부족해서 널 위험하게 만들었구나.”
귀환살수
— 문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