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살수-252화 (252/314)

252화.

허나 이현성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서 귀파 그리고 운남무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본파와 운남무림은 언제든 검신 님의 부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장문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검신의 방문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나 운남무림의 명숙들에게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연락을 해둔 상황이었다.

독왕과 협정이 불발되었다면 지옥성이 곧바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현성은 나직하게 말했다.

“노선배님께서 화경에 오르신 사실을 밝히고 운남무림의 힘을 모아주십시오.”

“지옥성과… 전면전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장문인의 물음에 이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참에 지옥대제를 제거하거나 지옥성을 무너트린다면 운남무림이 안전해질 수는 있으나,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희생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나머지 사파삼세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었다.

따라서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아닙니다. 운남무림에 화경고수가 나왔고, 힘을 규합한다는 소문이 나면 지옥성에선 지옥대제나 독왕께서 움직이게 될 겁니다.”

“그 말씀은…….”

“지옥대제가 직접 움직인다면 제가 그의 발을 묶을 것이고, 독왕께서 움직이신다면 지옥성을 벗어날 명분이 생기겠지요.”

“아…….”

협정을 맺었으나 독왕과 묘족이 지옥성에 갇혀 있다면 의미가 없었다. 지옥대제와 독왕을 떼어내야 묘족이 지옥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명분을 주기 위해서 이현성은 점창과 운남무림에게 무리임을 알면서도 이러한 청을 한 것이다.

관일창군이 아닌 검신의 이름을 내세우면 그들 중 한 명이 아닌 두 사람 모두를 움직이게 만들 테니까.

이현성이 원하는 것은 지옥성과 묘족을 분리하는 것이지, 전면전이 아니었다.

지옥성이 대대적으로 움직이길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파무림의 힘을 깎아서 정파천하를 일구는 것이 아닌 중원무림의 힘을 최대한 지켜서 혈천에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독왕과 묘족의 이탈로 지옥성의 힘이 위축되겠으나 지옥성 역시 건재하길 원했다.

지옥성은 물론 사파사세 역시 중원무림의 일원으로서 혈천을 상대할 귀한 재원이었다.

‘혈천,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

* * *

쾅!

“건방진 것들!”

지옥대제는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했다. 한낱 소문에 불과하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관일창왕께서 운남무림의 힘을 모으신다!

관일창군이 아니라 관일창왕(貫日槍王)이란다.

청해마왕처럼 상징적인 의미의 왕(王)이 아닌 그가 화경에 올랐다는 뜻이었다. 화경에 올랐다고 하지만 관일창왕 따위가 지옥성을 넘볼 수는 없었다.

팔왕은 오제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팔왕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독왕이 지옥대제에게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관일창왕이 주제도 모르고 운남무림의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 주제도 모르는 행동이 지옥대제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성주, 본인이 놈에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려주겠소.”

“부성주께서 직접 말이오?”

“놈이 정말 화경에 올랐다면 성주 말고, 본인밖에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없지 않소?”

“그렇긴 한데…….”

지옥성에도 수많은 고수가 있었다. 관일창군을 상대할 만한 고수가 없지는 않았다.

허나 관일창왕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화경고수는 화경고수만 감당할 수 있었다.

괜히 화경을 초인지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 독왕답지 않은 적극적인 행동에 지옥대제는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청을 들어줘? 허나…….’

오랜만에 적극적인 독왕을 막을 필요는 없었다.

독왕이라면 관일창왕을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이유 없이 그가 나설 리가 없었다.

그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모르기에 지옥대제는 쉽게 수락할 수 없었다. 허나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

“아니, 본 성주가 직접 놈에게 오만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소.”

“…본인의 실력을 믿지 않으시는구려. 성주, 섭섭하오.”

“허허…! 내 어찌 부성주의 실력을 못 믿겠소? 사실 오랜만에 몸을 풀고 싶어서 그러니, 이번에는 부성주께서 양보해주시구려.”

“…성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후…! 따르겠소.”

독왕은 아쉬운 티를 팍팍 냈다. 지옥대제가 의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그의 속내는 완전히 달랐다.

‘기회를 만들어주겠다는 검신의 말이 바로 이거였구나.’

협정을 맺은 이후 독왕은 무림맹주에게 전할 친서를 작성해서 이현성에게 은밀하게 전했다.

이에 이현성은 독왕에게 지옥성을 벗어날 기회를 만들어주겠단 희보를 전해주었다.

허나 그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독왕으로서는 무척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그가 말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허나 지옥대제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부성주께서 허락하신다면 독군과 란희도 데려가고 싶소.”

“녀석…들을 말이오? 어찌 녀석들을…….”

독왕은 지옥대제의 청에 당황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이복동생인 독군도 문제였지만, 수양딸인 란희가 그에게 인질로 붙잡혀 있다면 자신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야말로 허를 찔린 셈이었다.

수양딸이지만 친딸처럼 생각하는 란희였다.

게다가 자신의 후계자이기도 했다.

허나 이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 묘족이 지옥성에서 벗어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덕분에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거절한다면 지옥대제에게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허허… 별거 아니오. 내 며느리가 될 아이니, 이 시부의 실력을 한번 보여주려는 것뿐이오. 물론 걱정 마시오. 본인이 설마 며느리가 될 그 아이를 전장에 밀어 넣겠소? 백이랑 독군이라면 잘 지켜줄 것이오. 안 그렇소?”

“…그렇구려. 알겠소. 성주의 뜻대로 하시오.”

초절정고수 둘이 지킨다는데 반대할 수가 없었다.

결국 독왕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옥대제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런 그를 보며 지옥대제는 득의했다. 동시에 독왕은 심란해졌다.

‘희야…! 이 애비가 어찌하는 것이 좋겠느냐.’

* * *

“이놈들아! 우리 운남무림의 힘을 보여주마!!”

운남무림인들은 지옥성과의 경계인 애뇌산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기는 최고였다. 그간 그들이 느끼고 있던 울분은 상당했다.

사파사세인 지옥성에 의해서 위축된 삶을 살아왔다.

그런 굴욕적인 시간이 수십 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운남무림에서도 화경고수가 탄생했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허나 모두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후…! 과연 이게 최선인지 모르겠어.”

“그러게 아무리 관일창군 아니, 창왕이시라도… 지옥대제와 독왕을 상대하시는 것은… 버거우실 텐데 말이야.”

주위의 귀도 있기에 불가능하다는 말 대신 버겁다는 표현을 썼으나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무림인이라면 팔왕이 오제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쉬쉬하면서 은연중에 불안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는 돌고 돌아서 운남무림 수뇌들의 귀에도 들어왔다.

“커~험! 다들 불안해서 하는 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진인.”

“마, 맞습니다.”

운남무림의 명숙들은 괜히 관일창왕이나 점창파의 심기가 불편해질까 봐 변명 아닌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하나는 운남제일이 아니라 구파제일이라는 점창파이기 때문이다.

허나 의외로 점창파는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답지 않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허허…! 도우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거늘… 불쾌할 것이 무엇이겠소?”

“하, 하하…….”

관일창왕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좌중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가 그렇다는데 반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긍하면 관일창왕과 점창파의 자존심을 긁는 꼴이 되었다.

동시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옥대제와 독왕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면 관일창왕은 무슨 생각으로 운남무림을 모았나 싶었다.

만에 하나 그가 지옥대제나 독왕에게 죽는다면 운남무림은 다시 지옥성에 대적할 유일한 패를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로 운남무림은 쑥대밭이 될지도 모르다.

그럼에도 이렇게 운남무림의 힘을 모았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자신감이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싶어서 모두 어리둥절했다.

아직 검신 이현성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았다.

입이 많아지면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다.

만약에 하나 그가 운남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계획이 모두 꼬이기 때문이 장문령에 의해서 외부발설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계획이 성공할 때까지만 버틸 수 있으면 된다.

“…사백님. 정찰을 나갔던 제자들의 보고입니다.”

“말해보게, 장문 사질.”

“신평 진지에 지옥대제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

점창 장문인의 말에 좌중은 눈이 커졌다. 신평은 애뇌산과 하루거리의 평야였다.

운남무림인과 대치한 지옥성의 군세가 신평에 진지를 세워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제일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

드디어 관일창왕을 상대하기 위해서 지옥성에서 지옥대제가 직접 움직였다.

“…독왕은… 오지 않았느냐?”

“첩보에 의하면 지옥대제가 이끌고 온 본대에서 독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으음…! 그렇구나. 알겠네. 장문 사질.”

무려 부성주이자 화경고수인 독왕이었다.

지옥대제 다음으로 엄중하고 화려한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위치상 결코 숨어서 움직일 리가 없었다.

그건 관일창왕이 두려워서 뒤통수를 치는 격이었다.

지옥성의 자존심상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독왕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는 이번에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할까요. 사백님.”

“…우리가 먼저 움직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대비는 해야지 않겠나, 그렇지 않소? 단가주님?”

“맞습니다. 먼저 움직여서 체력을 소비할 필요는 없지요.”

운남무림을 대표하는 무림세가인 대리단가.

단가주는 운남무림에서도 몇 없는 초절정고수였기에 그의 발언권은 상당했다. 점창의 관일창왕과 대리단가주가 합의를 봤는데, 누가 토를 달겠는가. 그렇게 운남무림은 언제든 움직일 채비를 하되, 먼저 움직이지는 않기로 했다. 말을 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필요했다.

‘검신이여, 그대가 원하는 대로 준비되었소. 부디 성공하시기 바라오.’

* * *

‘하…! 또다시 아버님의 짐이 되었구나.’

신평 진지로 오게 된 란희는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독왕에게 검신 사이에서 오고간 대화를 들었다.

그렇기에 드디어 묘족의 해방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허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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