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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살수-248화 (248/314)

248화.

‘확실히… 강해. 과연 천잔마왕의 아들답구나.’

문인주희는 혈천의 머리라는 대군사 문인윤걸의 손녀였다. 따라서 제법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다만 천씨세가와 칠웅방이 혈천의 새로운 식구가 된다는 것은 수뇌부만 알고 있는 기밀사항이었기에 그녀도 미처 알지 못했다. 게다가 순찰령의 창설은 그녀가 혈천을 떠난 이후의 일이니 더더욱 알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그들을 의심했으나 그의 마학을 본 후 정체를 눈치챘다.

잔혹하면서도 섬뜩한 손속.

죽음의 무학이라는 천잔마공의 천잔마수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순찰령은 수백의 사천무림인을 전멸시키고 돌아왔다. 순찰령에도 피해가 발생했으나 무척 미비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로 강한 흑도집단이 있었다는 것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수고하셨어요.”

“오호, 그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군.”

“…….”

문인주희는 형식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현휘군의 뼈가 있는 말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적천우와 다른 의미로 대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의 싸늘한 반응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현휘군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지만,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선을 넘지 않는 이상 직접적인 마찰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곧 청해에 도착하니, 그때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청해에 도착할 때까지만?”

“본련에서 마중을 나올 테니까요.”

사해련 고수들은 순찰령이 사해련 본련에서 온 고수들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혈천 소속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사해련까지 갈 순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청해성에 도착하면 사천무림인들도 더 이상 추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이 청해성으로 넘는 순간 사해련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테니까. 현재 그들은 사천성 끝자락에 위치했다. 즉, 얼마 있지 않아서 사천성을 벗어나 청해성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글쎄… 저들은 쉽게 놔줄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

현휘군의 말에 문인주희는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졌다.

그제야 또 다른 무리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상대한 자들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번에는 쉽지 않겠는데…….”

현휘군의 입에서 비관적인 말이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들은 사천삼세의 고수들이었다.

대라신군이 청성파 진산제자와 속가제자 삼백을 이끌고 감숙성으로 떠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적천우가 사천성에서 발견되었다. 그를 추살하기 위해서 청성의 장로가 진산제자 수십을 이끌고 움직였다.

또한 안심이 되지 않은 장문인의 부탁을 받은 건곤신군이 뒤를 따랐다. 그런데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진산제자 수십은 물론 건곤신군마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눈이 뒤집어진 청성파 장문인은 급하게 모은 일백 명을 직접 이끌고 추적에 나섰다. 때마침 사천당가와 아미파의 고수들 역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과 합류하게 되면서 제법 해볼 만한 싸움이 되었다. 건곤신군의 죽음으로 사천삼세의 고수들 중에는 초절정고수가 없었다.

허나 순찰령 역시 연이은 전투로 체력과 내공이 깎인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현휘군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당가의 물건으로 당가놈들을 죽이면 재미있겠어.”

수개월 전, 칠웅방은 천씨세가를 도와서 사천당가의 본가를 무너트렸다. 그리고 전리품을 챙겼다. 당가의 여인과 재물만이 아니었다.

당가의 창고에 잠들어 있는 독과 암기를 챙겼다.

절독이나 금용암기 등은 따로 보관하기에 챙길 수 없었으나, 제법 쓸 만한 수준의 독과 암기는 많이 챙길 수 있었다.

당가의 독과 암기를 쓸어간 자들이 순찰령임을 모른다면 저들 사천삼세의 고수들은 오늘 제대로 낭패를 볼 것이다.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독과 암기에 당하면 고수라도 대응하기 어렵다.

“모두에게 보여줘라! 우리가 어떤 놈들인지!”

협정

“…놈 감히!”

사천성과 감숙성이 사해련으로 인해 시끄러울 때, 지옥성 대표로 호남 천웅방으로 떠났던 나백 일행이 본성에 도착했다.

사파사세의 회담이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했으나 지옥대제는 소성주인 나백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고, 나백의 위치가 흔들릴 일을 만들 순 없었다.

란희는 양부인 독왕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검신의 전언을 전하는 과정에 곤명에서 나백과 있었던 일도 언급했다.

나백에게 진절머리가 난 그녀만의 복수인 셈이었다.

성주에게 말을 안 한다고 했지, 양부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노―옴!”

“고…정하세요. 아버님.”

“으음…! 미안하구나. 네게 그런 일을 겪게 하다니… 이 애비가 부족한 탓이다.”

“아니에요. 아버님이 부족하다니요. 그런 말씀마세요.”

양부와 수양딸의 관계였지만, 친 부녀지간처럼 끈끈한 관계였다.

묘족의 미래를 위해서 지옥성의 한축이 되었으나 이런 상황까지 참아야 하는 것이 독왕은 무척이나 화가 났다.

홧김에 말하긴 했으나 양부가 움직인다면 곤란하기에 란희는 그를 말렸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백은 지옥성의 제일 소성주이자 지옥대제의 아들이다.

그렇기에 란희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그보다 아버님… 검신을 만나보실 건가요?”

“으음…! 네 생각은 어떠냐? 이 애비가 어떡하면 좋겠느냐?”

중원의 정세가 심상치 않은 이러한 시기에 검신이 운남성에 나타났다. 그리고 사파무림의 거두인 독왕에게 독대를 청했다. 비록 검신이 정파라고 할 순 없으나 그의 입장에선 적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처가가 무려 오대세가인 제갈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검신의 꿍꿍이를 알 수가 없었다.

란희는 그에게 단순히 수양딸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묘족의 재녀이자 무녀이기도 했다.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독왕이 자신의 후계자로 사내가 아닌 그녀를 삼은 것은 그러한 이유였다.

총명함을 넘어서 통찰력을 가진 란희라면 자신에게 좋은 조언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검신은 분명 아버님과 우리 묘족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했어요. 함정이 아니라고 확신할 순 없으나… 만나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으음… 그렇단 말이지.”

란희의 말에 독왕은 깊은 한숨과 함께 생각에 잠겼다. 지옥대제의 은근한 감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검신을 만나는 것이 옳은 행동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옥성에서 묘족의 구성이 4할이라고 하지만 독왕의 영향력이 4할인 것은 아니었다.

묘족의 대부분은 지옥성 외부에 퍼져 있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지옥대제는 혹시 모를 변심을 막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항상 감시와 견제를 하고 있었다.

나백과 란희의 혼사도 그러한 이유로 밀고 있었다.

“검신이라… 만나볼 가치가 있겠구나.”

“잘 생각하셨어요. 아버님.”

독왕은 검신 이현성과 독대를 해보기로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그의 결정에 란희가 환한 미소를 지었으나 그것을 독왕은 물론 그녀 본인도 눈치채지 못했다.

허나 이현성을 만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성주의 눈을 어떻게 피하냐인데…….”

지옥대제도 독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지척까지 눈을 붙여 두지는 않았다. 설사 붙여두었다 해도 화경고수인 그의 기감을 속일 수 있는 고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척만 아닐 뿐 조금만 벗어나도 지옥대제의 눈이 발견된다. 부성주인 독왕의 거처인 독왕전에도 그의 눈이 있을 정도였다. 물론 화경고수인 독왕이었다. 감시의 눈쯤을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지옥대제가 낌새라도 느끼고 찾아온다면 그를 막을 자가 없었다.

지옥대제라도 제 살 까먹을 생각은 없겠지만, 명분이 생긴다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나백과 란희의 혼사를 통해서 지옥성과 묘족의 강제 통합 등을 이루려 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지옥성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존에 가깝다.

묘족의 힘이 지옥성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고, 독왕이 지옥대제를 제압할 수 없는 이상 명분을 내어줄 순 없었다.

“그의 배짱을 한번… 봐야겠군.”

* * *

“불가! 안 됩니다. 주군!”

이현성이 검신이란 별호를 얻은 이후 절대적인 충성을 해오던 암월이 처음으로 반발했다.

독왕의 밀서 때문이다.

“독왕 선배의 말도 일리가 있음을 알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도 안 됩니다. 어찌 지옥성에 잠입하신단 말입니까! 그것도 주군께서 홀로! 정녕 가시겠다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독왕은 그에게 제안이자 시험을 내놨다. 자신과 독대를 하고 싶다면 지옥성 독왕전으로 찾아오라는 전언이었다.

물론 지옥대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지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도 적혀 있었다.

그의 입장을 생각하면 타당한 제안이었다.

다만 중립지역도 아니고, 호굴에 스스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만약 그게 독왕의 함정이라면 아무리 이현성이 검신이라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함정이라면 독왕만 아니라 지옥대제도 상대해야 한다.

태극검선이 전한 태극의 정수를 어느 정도 깨우친 지금 일보 전진했다고 하지만 무려 화경고수가 둘이었다.

태극검선 본인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 될 일일세! 암월 호법. 그대의 실력을 모르지 않으나 지옥대제의 기감을 속이긴 힘들 것일세. 본 장주가 위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일일세. 혈천의 행보를 생각하면 꼭 이루어야 하는 일이란 말이네.”

“그렇지만…….”

암월은 혈천과 직접적으로 원한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현성을 통해서 그들의 무시무시함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성적으로는 이현성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성적으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24대 암월이기 때문이다.

“설사 함정이라도 내 몸 하나 빼낼 자신이 있네. 허나 자네까지 책임질 수는 없네.”

“속하는 상관없습니다!”

“내가 상관있네. 그대를 잃을 수 없어. 그리고 자네는 암월의 맥을 끊을 생각인가?”

“그건…….”

24대에 걸쳐 이어온 암월이었다.

살백, 유령, 귀왕과 달리 세력화시키지 않고 일인전승으로 이어온 그들이었다.

따라서 그가 죽으면 암월의 맥은 끊기게 된다.

“자네의 목숨은 그대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임을 잊지 말게. 그리고 돌아가면 후계자도 찾아오게. 후계자를 키우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주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결국 암월은 이현성의 뜻에 따라 귀림의 호위들과 함께 곤명에 잔류하기로 했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소임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쉽지는 않겠어.’

귀환살수

— 문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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